이재명 시장님, 정치인의 본분을 고민하세요

[주장] 유효하지 않은 '세대론'... 이젠 20대 탓 그만하길

등록 2016.03.21 07:45수정 2016.03.21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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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성남시장이 다시 한 번 '20대 개XX론'에 불을 붙였다. 18일, 이재명 시장은 페이스북에 <한심한 대학생에 한심한 지도교수, 그리고 한심한 대학>이라는 글을 게재했다. 글의 요지는 '국회의원선거일인 4월 13일 상당수 대학들이 MT를 간다. 대학생들은 정치에 무관심하다. 청년의 정치무관심이 오늘날 청년문제의 주범이다'라는 것이다(관련기사:'한심한 대학생'이 이재명 시장님께 쓰는 편지).

비단 이재명 시장 뿐 아니라, 수많은 '어른'들이 20대의 투표율을 들먹이며 청년 세대를 한심한 세대로 규정한다. 물론 그 논리는 빈약하기 짝에 없다.

[사실 하나] '상당수' 대학은 국회의원 선거일에 MT를 가지 않는다

"들은 바로, 상당수 대학생들이 이번 선거일에 MT를 간다고 한다. 대학은 우리 사회 최고 교육기관이고, 대학생들은 최고 지성집단으로 불린다. 그런데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구성원이자 미래를 짊어질 대학생들이 선거일에 MT라니..."

이재명 성남시장이 18일 페이스북에 남긴 글 ⓒ 유종헌


나는 모 대학 총학생회에서 활동하고 있기에 대학가 소식을 꽤나 빠르게 접하는 편이다. 적어도 내 주변에 국회의원 선거일인 4월 13일에 MT를 기획하고 있는 학과는 없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봐도 4월 13일에 MT를 가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먼저, 4월 셋째 주는 중간고사 직전 기간이다. 대학생들이 아무리 놀기 좋아한다고 해도 중간고사 전 주에 MT를 기획하지는 않는다. 당연히 참여율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4월 13일은 수요일이다. MT는 보통 1박 2일로 진행되는데, 12일과 14일에는 수업이 정상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굳이 13일에 MT를 진행할 이유가 없다. 차라리 직전 주 주말에 MT를 기획할 것이다. 만일 특정 대학이 무리해서 12~13일 MT를 진행한다 하더라도, 학생들은 보통 이튿날 새벽차를 타고 귀가하기 때문에 오후 6시까지 진행되는 선거에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재명 성남시장이 접한 소식이 대체 어느 학교의 얘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재명 시장의 말처럼 '상당수' 대학이 선거일에 MT를 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사실 둘] 우리나라 20대의 투표율은 결코 낮지 않다

20대의 투표율이 유독 낮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최근 20대의 투표율은 그 어느 세대보다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18대 총선에서 28.1%를 기록했던 20대 투표율은 19대 총선에서 41.5%로 13.4%포인트 올랐다. 대선 역시 마찬가지였다. 17대 대선 당시 46.6%였던 20대 투표율이 18대 대선에선 68.5%까지 수직상승했다. 총선과 대선 모두에서 전세대 연령층 중 가장 높은 연령대별 상승률을 기록한 것이다.

물론 '그래도 아직 다른 연령층에 비해서 투표율이 낮은 건 사실 아니냐'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젊은 유권자들의 투표율이 낮은 것은 전세계적인 현상이지 한국의 20대들이 특별히 정치에 무관심해서가 아니다.

2015년 OECD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자료보기) OECD 국가 중 다른 계층(만25-50세) 대비 젊은층(만18-24세)의 투표율은 평균 84%포인트였다. 또 유로바로미터(eurobarometer)에 따르면 유럽 전체에서 20대의 투표율은 61%로, 78%를 기록한 30대 이상의 투표율보다 현저히 낮았다. 네티즌들이 자주 인용하는 프랑스의 경우에도 젊은층의 투표율은 다른 계층 대비 14%포인트 낮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젊은 유권자들의 투표율이 낮은 것은 비단 한국만의 사례가 아니고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히 청년계층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가 아니고, 관심을 가질 수 없는 환경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젊은 유권자들의 삶은 대체로 불안정하다. 2030세대는 입시(N수생의 경우), 취업 준비, 결혼 준비 등을 감내해야 하는 이들이 밀집된 세대기 때문이다. 비단 투표일에 시간을 내지 못하는 것 뿐 아니라, 평소에도 정치에 관심을 가지기 힘든 것이다. 만일 당신이 우리나라 20대를 탓하려면, 적어도 OECD 국가 모두의 20대도 함께 탓해야 할 것이다. 당신이 말하는 '정치선진국'들이 여기 포함되어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사실 셋] 투표율은 그 자체로 결코 우리의 삶을 바꾸지 않는다

투표율은 그 자체로 숫자에 불과하다. 다른 말로, 투표율 그 자체는 아무런 실천적 결과를 도출하지 않는다. 만일 투표율이 높은 계층에 정치인이 눈꼽만큼이라도 신경을 쓰고 있다면, 우리나라가 OECD국가 중 노인빈곤율 1위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는 일은 없었을 거다. 19대 대선에서 가장 높은 투표율을 기록한 60대 이상의 노년 세대가 지금 이 순간 도대체 어떤 권리(혹은, 특권)를 누리고 있는가? 선거의 본질은 '누구에게 투표했느냐'는 것이지 '투표율이 얼마나 높냐'가 아니다.

어떤 이들은 "프랑스의 대학생들은 투표율이 83%나 된다. 등록금이 싼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주장하지만 프랑스의 경우에도 20대의 투표율(대학생의 투표율은 다른 직업군과 마찬가지로 당연히 집계되지 않는다. 그건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20대 중에는 대학생이 아닌 계층의 비율도 상당하다. 그러니까 20대와 대학생을 혼동해 사용하지 말자!)이 전 연령층에서 가장 낮은 축에 속한다.

2012년 대선 당시 1차 투표와 2차 투표 모두 참여한 이들은 전체 20대 유권자의 65% 정도로, 우리나라 18대 대선 20대 투표율인 68.5%보다 낮다. 프랑스 대학의 등록금이 낮은 이유는 1968년 5월 혁명을 통해 프랑스 사회 전반이 대학을 바라보는 시선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프랑스의 대학 등록금이 낮은 이유를 투표율보다 68혁명에서 찾아야 하는 것처럼, 우리나라의 청년이 힘든 이유는 낮은 투표율이 아니라 특정 권력자들의 그릇된 통치방식과 신자유주의화가 초래한 경제위기에서 찾아야 한다.

2012년 프랑스 대선 세대별 투표율. 1985~1993년생 유권자 중 1차, 2차 투표에 모두 참여한 유권자는 65% 남짓이다. ⓒ 유종헌


물론 투표는 중요한 의사표출의 수단이다. 그러나, 투표의 결과가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단순히 투표율의 제고를 꾀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지하는 가치를 표출하는 행위를 적극적으로 전개해야 한다. 이러한 사회 운동이 그러한 가치를 표방하는 정당에 대한 집단적 투표행위로 이어질 때에서나 투표율이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리고 대학가 전반에는 이미 다양한 연대활동을 통해 청년의 목소리를 모아내려는 노력들이 시도되고 있다(관련기사 : "더 이상 들러리는 NO! 정치, 청년이 바꾼다").

[사실 넷] 당신들의 세대론은 그다지 유효하지 않다

'헬조선'에서 유독 20대의 삶만이 흔들리는 것도 아니다. 일자리의 전면적인 비정규직화, 임금피크제 등의 노동악법 도입, 테러방지법 제정 등의 문제는 결코 세대를 갈라 볼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당연히 우리 모두의(적어도 우리 계층 전반의) 문제인 것이다. 그러니까 20대들에게 선거를 통한 정치참여를 독려해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당신들의 위기는 낮은 투표율이 자초한 것이다"고 꾸짖을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겪는 어려움을 힘을 모아 헤쳐나가자"고 청년들을 설득하는 것이 훨씬 유효할 것이다.

"청년들이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는 선거에 관심도 기여도 하지 않으면서, 정치가 자신을 배려해주길 바라는가?" 이재명 성남시장이 페이스북에 남긴 말이다.

먼저, 정치는 배려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을 좌우할 수 있는 생존의 문제이자, 무엇이 더 옳으냐는 가치판단의 문제다. 이재명 시장이 전제하고 있는 명제, 그러니까 '정치인은 투표율이 낮은 집단은 배려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생각은 잘못되었을 뿐만 아니라 매우 위험하다.

다음으로, 만일 청년들이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러한 현실을 구성한 사회문화적 배경을 분석하고 이를 반전할 수 있는 기획을 시도해야지 무책임하게 이들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당신은 평론가가 아니라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청년계층의 투표율이 낮은 것은 이들이 투표를 통해 스스로의 삶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정치인의 탓이다. 이재명 시장은 유체이탈화법으로 허수아비치기할 시간에 정치인의 본분을 고민하는 게 훨씬 나을 거라 생각한다.
#총선 #20대 #청년 #이재명 #개새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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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을 공부하는 대학생. 사회의 어두운 곳을 비추는 기자가 되길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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