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손자의 1/10만 날 사랑해줘!"

사랑스러운 외손자의 돌잔치...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라!

등록 2016.04.04 15:39수정 2016.04.04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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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잔치 상을 받은 왼손주 ⓒ 오문수


지난주 서울에서 외손자 돌잔치를 치르고 직장복귀를 눈앞에 둔 딸과 함께 여수로 내려왔다.


돌잔치는 첫 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의식으로 유아의 앞날이 번창하기를 기원하는 한국 풍습이다. 지금이야 의료시설이 뛰어나 영아사망율이 높지 않지만 내 어릴 적에는 태어난 지 1년이 못 돼 죽어가는 아기를 종종 봐왔다. 

내 어릴 적 친구 이름에 '개똥'이나 '돼지'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들도 있었다. 천하게 불러야 오래 산다는 풍습 때문이다. 병의원이 거의 없는 시골마을에 홍역이나 장티푸스가 돌면 앞산에 애기무덤이 생겨나곤 했었다.

그래서 1년 동안 무사히 살아남은 아이를 위해 여러 사람을 초대해 화려한 돌잔치를 치렀다. 하지만 요새는 직장동료를 초대하거나 옛날처럼 화려한 돌잔치를 치르는 게 민폐라고 여겨 직계가족만 모여 간단한 식사로 대신한다.

손자에게 통장 마련해준 사돈 어른들

지난해 말, 딸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버지, 시아버지께서 엄마 아빠와 함께 연말을 맞아 송년회 의미로 식사하자고 하시며 서울로 올라오셨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는데 좋아요?"

'무조건 오케이'였다. 요즈음 사돈 간에 얼굴 붉히며 서로 왕래하는 걸 꺼려하는 세태인데 연말을 함께 보내자는 초대 말씀이 너무 고마웠다. 아내와 딸의 시어머니는 자주 통화하고 명절이면 양쪽 아버지들도 서로 안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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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돈어른은 손주 돌잔치를 기념해 백만원짜리 통장과 도장을 만들어 선물했다 ⓒ 오문수


돌잔치 하루 전 딸집에 도착하니 딸이 통장을 보여주며 "시아버지께서 지수한테 100만 원이 든 통장을 선물하셨어요. 대학교 입학할 때까지 돈을 키워 학자금으로 써야겠죠?" 허례의식을 치르며 돈을 써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사돈어른들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돌잔치를 위해 식당에 도착하니 안사돈이 특별히 준비한 케이크를 보여준다. 떡 위에 예쁜 꽃들이 가지런히 배열된 케이크를 보고 케이크에 대한 내력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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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잔치를 마치고 양가 부모와 함께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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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사돈은 손주의 돌잔치를 위해 손수 떡케이크를 만들어 상에 올렸다 ⓒ 오문수


손재주가 있는 안사돈은 문화센터 강습회에 참석해 '떡케이크 앙금플라워'를 배웠다. 강습 네 번째 만에 손자를 위해 만들었다는 떡 케이크에 올라가는 앙금꽃 재료는, 천년초·단호박·자색고구마·비트 등이다. 단호박은 노란색깔을, 자색고구마는 분홍색을, 녹색은 클로렐라로 연출한 꽃들이 생화처럼 예쁘다.

아이 키우기 쉬운 환경 만들어줘야

내 어릴 적 기억이다. 농사일이 바쁜 부모님께서는 아침 일찍 들에 나가 깜깜할 때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형제들이 대여섯 명 있는 집의 간난애는 누나나 조금 더  큰 형이 돌본다. 업고 아기를 보다가 아기가 울면 엄마가 일하는 들녘까지 갓난아이를 업고 가 젖을 먹인 후 다시 집으로 돌아와 아이를 보며 놀았다.

삶이 힘들었던 당시엔 육아란 개념이 있었을까 싶다. 부모님들은 농사지으러 들에  나가고 옆집 친구와 골목길에서 놀며 애기를 업고 놀다가 땅바닥에 내려놓으면 닭똥을 집어먹는 친구 여동생도 있었다. 친구의 예쁜 여동생은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 별명이 따라 다니며 놀림감이 되곤 했었다.

"달구똥! 달구똥!"(달구똥은 닭똥의 전라도 사투리다)

그때는 아이들이 저절로 크는 줄 알았다. 그런데 하나 둘만 낳는 요즈음 육아서에 기초해 기르는 방법도 철저하고 기저귀·이유식·놀이방·유모차 종류 등 알아야 할 게 어찌나 많은지! 아침 일찍 출근해 저녁까지 일하고 돌아와 보채는 아이를 달래고 집안일까지 하는 여성 직장인들이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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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 식사 ⓒ 오문수


딸은 1년간의 출산 휴가를 끝내고 며칠 후 복직할 예정이다. "저 아이를 어떻게 떼놓고 출근하지?" 하며 걱정하는 딸을 보며 화제를 돌렸다.

"대구 금복주회사는 임신했다고 회사를 그만두라고 하는데 네 회사는 좋은 회사다."  

"맞아요!" 라고 수긍하는 딸은 출근하는 몇 달간 시가에 들어가겠다며 시어머니한테 허락을 받고 싶단다. 보육시설에 맡기거나 보모를 둬도 마음에 안 놓인다며 시가에 들어가기를 자청했다. 시부모 특히 시어머니가 좋으시니까 그렇지 언감생심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딸 친구 중 한 명은 "명절에도 시가에 가기 싫은데 대단하네!"라며 놀랍다고 한다.

아내의 외손주 사랑에 찬밥 신세가 된 나

외손자가 생기면서 집에 생긴 변화는, 내가 찬밥 신세가 된 것. 아내는 하루에도 몇 번씩 카카오톡의 페이스톡 화상통화를 켜고 손자를 불러내 온갖 아양(?)을 떤다. 어쩔 땐 손자 앞에서 재롱부리는 것 같아 우습기까지 하다. 손자가 귀여운 줄 알지만 아프다고 하던 아내가 딸이 보낸 카톡 소리가 들리면 벌떡 일어난다.

손자가 와 있는 요새 맛있게 요플레를 만들어 먹을라고 하면 "지수 주게 그만 먹어!" 하고 말린다. "알았어!"라고 대답하며 "손자의 1/10만 사랑해줘!" 하고 말하면 아내가 빵 터진다.  뭐! 비타민이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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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간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직장 복귀를 앞둔 딸이 외손주와 함께 국내 유일 범선인 코리아나호에 승선해 여수 바다를 감상하고 있다 ⓒ 오문수


좋은 시부모님을 만난 딸도 복이고 양가의 사랑을 듬뿍 받는 외손자도 복이다. 돌잔치를 마치고 여수에 와있는 외손자는 이제 막 걷기 시작했다. 제 키에 닫는 물건은 만지고 입에 가져가는 외손자와의 전쟁이 버겁다.

하지만 방긋방긋 웃으며 재롱을 부리는 아이가 한없이 사랑스럽기만 하다. 귀여운 손녀가 하나 더 있으면 좋겠지만  아이 키우기가  힘들어 하나만  낳을 계획이라는 딸의 계획이 맞아 떨어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덧붙이는 글 여수넷통에도 송고합니다
#돌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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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 인권, 여행에 관심이 많다. 가진자들의 횡포에 놀랐을까? 인권을 무시하는 자들을 보면 속이 뒤틀린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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