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전법륜지에서 부처의 흔적을 찾다

[북인도 라자 문화기행 18] 사르나트 불교유적

등록 2016.04.01 10:10수정 2016.04.01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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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주라호 시골마을에서 아이들과 함께 ⓒ 이상기


카주라호 시내에 있는 사원들을 보고 난 우리는 다음 행선지인 바라나시로 떠나야 한다. 카주라호에서 바라나시로 가는 비행기가 오후 2시 5분 출발이어서 시간여유가 좀 있다. 그래서 카주라호 외곽의 마을을 한 군데 방문하기로 한다. 마을 이름이 프라나바스티(Pranavasti)로 관광객을 대상으로 살아가는 마을 같다. 마을 입구에는 생필품 상점이 있고, 승용차와 오토 릭샤도 보인다. 마을 한 가운데로 들어가니 펌프 샘과 힌두교 사원이 있고, 은세공품과 공예품을 파는 가게도 보인다.

집과 담벼락을 페인트로 칠해서 마을이 깨끗해 보인다. 우리가 마을을 둘러보는 동안 아이들이 지속적으로 따라붙는다. 또 마을에 대해 적극적으로 설명하는 젊은이도 있다. 아이들이 공부만 할 수 있다면, 이 마을의 미래 더 나가 인도의 미래가 밝다는 얘기다. 우리는 이 아이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상점에서 먹을 것을 하나씩 사 준다. 그리고는 다시 버스를 타고 카주라호 공항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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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주라호 공항 ⓒ 이상기


카주라호 공항은 시내에서 남쪽으로 4㎞ 떨어져 있다. 공항에서의 수속은 비교적 신속하게 이루어진다. 승객이 별로 많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이 남아 회원 중 일부는 공항에서 기념품을 사기도 한다. 바라나시(Varanasi)로 우리를 태워다줄 비행기는 제트 에어웨이스(Jet Airways)로 인도 국내를 주로 운행한다. 에티하드(Etihad) 항공과 코드쉐어를 통해 유럽, 미국, 아시아로 연결된다고 한다.

비행기는 2시 15분쯤 이륙한다. 이곳에서 동쪽으로 350㎞쯤 떨어진 바라나시까지는 50분 정도 걸리는 것으로 되어 있다. 바라나시로 날아가며 아래를 내려다보니 황량한 들판이 끝없이 이어진다. 처음에는 야무나강의 지류인 켄(Ken)강을 지나고, 바라나시 근처에 이르러 갠지스강을 만난다. 바라나시는 갠지스강변에 있는 힌두교 성지로, 역사 문화 종교적으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신성한 도시다. 또 인근 사르나트는 석가모니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후 최초로 불교의 가르침을 전파한 곳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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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나시 공항의 아쇼카 석주 사자상 ⓒ 이상기


바라나시 공항에 내리니 델리나 아그라에 비해 기온이 높고 습한 편이다. 그것은 위도가 더 낮고 큰 강변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공항 앞 주차장 가는 길에 아쇼카 석주에 있는 네 마리 사자상과 법륜 조각이 세워져 있다. 이곳이 불교의 도시임을 알려주는 표지다. 우리는 이제 버스를 타고 아쇼카 석주가 있는 사르나트 유적지로 간다. 그곳에서 부처의 흔적을 확인하고, 사르나트 고고학박물관을 보기 위해서다.

사르나트가 가지는 불교사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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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나트 유적지 발굴 사진 ⓒ 이상기


우리는 그동안 델리, 자이푸르, 아그라, 카주라호에서 이슬람교, 힌두교, 자이나교 문화유산을 살펴보았다. 이제 사르나트에서 부처의 흔적과 불교 문화유산을 찾아보려고 한다. 사르나트는 바라나시 북동쪽 13㎞ 지점에 있다. 그러나 공항이 바라나시 북서쪽 26㎞ 지점에 있기 때문에, 공항에서 사르나트까지는 40㎞ 가까이 된다. 그러므로 사르나트까지 가려면 1시간은 잡아야 한다.


사르나트 유적지에 도착한 우리는 표를 끊고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발굴전시관에 들러 사르나트의 역사와 발굴관련 사진 자료들을 살펴본다. 사르나트는 불교의 4대 성지 중 하나다. 보드가야에서 깨달음을 얻은 부처가 이곳 사르나트에서 5명의 승려에게 처음으로 가르침을 펼쳤다. 그 가르침의 내용이 사성제(四聖諦)와 팔정도(八正道)다. 네 가지 성스런 진리와 여덟 가지 올바른 길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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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에게 설법하는 부처 ⓒ 이상기


사성제는 고통과 집착을 없애고 도에 이르는 과정을 말한다. 인간에게는 생노병사라는 4가지 고통이 있다. 그 때문에 번뇌와 집착이 생긴다. 그 번뇌와 집착을 없앨 때 진정한 도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그 도에 이르는 여덟 가지 수행과 실천방법이 팔정도다. 팔정도는 바르게 보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며, 바르게 순명하고 정진하며, 바른 마음가짐을 가지고 명상하는 것이다.

다섯 명의 제자에 이어 바라나시에 사는 부자집 자식 야사(Yasa)가 부처의 가르침을 받고 여섯 번째 제자가 된다. 곧 이어 야사의 어머니와 부인이 출가했고, 야사의 친구 네 명이 또 다시 부처의 제자가 된다. 2달이 지나지 않아 야사의 친구들도 제자가 되고 아라한과를 증득해 모두 60명의 아라한이 불교 교단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에 부처는 이들 60명의 제자를 전국 각지로 보내 자신의 법과 가르침을 전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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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쇼카 석주 ⓒ 이상기


부처는 깨달음을 얻은 후 45년 동안 인도 북부에서 가르침을 펼치다 80세에 입적했다. 그 후 부처의 가르침을 통일하기 위해 기원 전 383년경 가섭, 아난, 우바이 등이 중심이 되어 제1차 불전 결집을 이룩했다. 이를 통해 경장과 율장이 만들어졌다. 불교는 그 후 100년 동안 율의 해석에 이견이 생겨 기원 전 280년경 제2차 불전 결집을 행했고, 그 결과 보수파인 상좌부와 개혁파인 대중부로 갈라지게 되었다.

기원전 269년에는 마우리아 왕조의 제3대 아쇼카왕이 등극해 8년 동안 정복전쟁을 통해 전 인도를 통일한다. 그리고 260년경 불교에 귀의해 상좌부 중심으로 불교를 통일하고, 불교의 진흥과 전파에 큰 역할을 한다. 그 후 그의 명령으로 날란다와 탁실라 등에 불교사원이 만들어졌고, 산치와 보드가야 등에 커다란 탑이 설치되었다. 그것이 유명한 산치대탑과 마하보드탑이다. 그리고 10여 개의 석주(Pillars)를 세워 불교의 가르침을 새겨 넣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이곳 사르나트에 있다.

아쇼카 석주와 다멕 스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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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나트 유적지 평면도 ⓒ 이상기


우리는 먼저 그 아쇼카 석주를 보러 간다. 아쇼카 석주는 중심사원 서쪽에 위치한다. 사르나트에 대한 발굴은 1815년 매킨지(C. Mackenzie)에 의해 처음 이루어졌다. 그러나 별 성과가 없었고 1835년부터 1836년까지 커닝햄(Alexander Cunningham)에 의해 체계적인 발굴이 이루어졌다. 이때 발굴한 것이 사원, 탑, 수도원이고, 이를 통해 사르나트 유적의 전모가 밝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1904년부터 1905년까지 외르텔(Friedrich O. Oertel)이 중심사원 근처에서 4마리 사자가 조각된 아쇼카 석주, 가르침을 펼치는 부처상, 카니시카 시대의 불상 등 500점 이상의 유물을 찾아냈다. 이들 유물은 현재 사르나트 고고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사르나트 유적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중심사원의 성소, 아쇼카 석주, 다르마라지카(Dharmarajika) 스투파, 다멕(Dhamek) 스투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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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마라지카 스투파 기단부 ⓒ 이상기


중심사원의 성소에서는 부처가 하안거를 하면서 승려들에게 가르침을 주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아쇼카 석주는 기원전 3세기 아쇼카왕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높이가 5.25m이고, 상단에 법륜과 4마리 사자가 조각되어 있다. 그런데 현재는 기둥이 부러져 2.03m 밖에 안 되고, 법륜과 네 마라 사자로 이루어진 주두는 사르나트 박물관 중앙 현관에 전시되어 있다. 석주의 하단부에는 '승단을 분열시키는 일을 그 누구도 해서는 안 된다'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중심사원 남쪽에는 다르마라지카 스투파가 있던 자리가 있다. 다르마라지카 스투파는 아쇼카왕 시대 이전에 만들어진 몇 안 되는 스투파다. 18세기까지만 해도 스투파의 일부가 남아 있었으나, 그것이 바라나시의 빌딩 건축으로 사용되었고, 현재는 기단부만 남아 있다. 우리는 이제 동쪽으로 난 길을 따라 다멕 스투파로 간다. 다멕 스투파는 이곳 사르나트 유적지에서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상징적인 문화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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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멕 스투파 ⓒ 이상기


다멕 스투파는 2층의 원통형 탑으로, 높이가 33.53m나 된다. 기단부까지 계산하면 높이가 42.06m다. 원형의 아랫부분 지름도 28.5m나 된다. 이 탑은 기원전 249년 아쇼카 시대 세워진 구조물을 대체해서 기원 후 500년경 굽타 시대 세워졌다고 한다. 그 때문에 기단부는 아직도 아쇼카 시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다멕 스투파의 원형 벽에는 8개의 벽감이 있고, 벽감 옆과 아래에 보살, 새, 연꽃과 식물, 기하학적인 문양을 장식했다. 전체적으로 연꽃이 가장 많은데, 만개한 것, 반만 핀 것, 무리지어 있는 것 등 다양하다. 더욱이 이들 조각이 정교하기 이를 데 없어서 굽타시대의 예술적인 우수성과 미학을 짐작할 수 있다. 벽감에는 석불좌상이 안치되었을 것으로 추측하는데, 현재는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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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멕 스투파의 조각 ⓒ 이상기


640년 사르나트를 방문한 현장법사는 가람의 모습을 아래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정량부는 상좌부가 분열한 것으로 소승불교의 일파다. 한 가운데 정사는 앞에 언급한 중심사원을 말하는 것이다. 서남쪽 스투파는 다르마라지카 스투파를 말하는 것 같다. 현장은 그리고 나서도 네 개의 스투파를 더 언급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다멕 스투파다. 

"바라나시강 동북쪽으로 10여리를 가면 사르나트 녹야원(鹿野苑) 가람이 나온다. 구역이 8등분 되어 있으며,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건물과 2층 누각은 규모가 대단히 크고 화려하다. 승려가 1,500명이나 되며, 소승 정량부(正量部)의 법을 배우고 있다. 사원 한 가운데 정사(精舍)가 있으며 그 높이가 200척이나 된다. […] 정사의 서남쪽에는 돌로 만든 스투파가 있는데, 아쇼카왕이 세운 것이다. 기단이 다소 허물어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100척이 넘는다. 앞에 세워놓은 (아쇼카) 석주는 높이가 70여척에 달한다. […] 여기는 여래께서 정각을 이룬 뒤에 처음 법륜을 굴린 곳이다. 그 옆으로 멀지 않은 곳에 스투파가 있는데, 교진여(憍陳如) 등이 보살을 따르다 그가 고행을 포기하는 것을 보고 이곳으로 와 스스로 선정을 익힌 곳이다. (현장 저/ 김규현 역주: 대당서역기. 글로벌콘텐츠 2013, 305-3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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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멕 스투파에서의 독송 ⓒ 이상기


다멕스투파 주변에는 관광객보다 불교신자들이 더 많다. 티벳, 동남아, 한국과 일본 등에서 온 승려와 신도가 탑돌이를 하며 독송을 한다. 그리고 나서는 탑 주변 잔디밭에 앉아 염불을 하거나 명상을 한다. 그중에는 서양 사람도 보인다. 이들 모두의 표정이 진지하고 또 간절하다. 탑 주변 울타리에는 이들의 기원을 담은 타르초도 보인다.

수도원 곳곳에 남겨진 문화유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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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이 정교하고 아름다운 기둥 ⓒ 이상기


나와 아내는 이제 사원의 북쪽에 있는 수도원 지역으로 간다. 동서로 길게 길이 나 있고, 중간 중간 건물과 기둥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곳에 수도원이 네 개 정도 있었다고 한다. 제4수도원과 제3수도원에는 조각이 멋진 기둥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 제2, 제1수도원 쪽에는 기둥 대신 주추와 벽면 같은 건축 부재들이 널려 있다. 연꽃조각도 아름답고 불상조각도 아름답다. 법륜을 조각한 주춧돌도 보인다.

수도원 한쪽으로는 이들 부자재를 모아놓기도 했다. 이곳은 상대적으로 지대가 높아 남쪽의 중심사원과 아쇼카 석주를 내려다 볼 수 있다. 아까는 사원의 벽과 석주의 기둥만 보였는데, 여기서 보니 건축물의 기단부와 주춧돌이 사원을 꽉 채우고 있다. 이를 통해 승려가 1500명이나 된다는 현장법사의 기록이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나 1400년이 지난 지금 승려들은 사라지고, 불교신자와 관광객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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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불교사원의 석불입상 ⓒ 이상기


이제 우리는 사원을 나온다. 길 왼쪽으로 자이나 사원이 보인다. 이상하게도 입장료를 받는 울타리 영역 안에는 자이나 사원만 있고, 불교 사원은 없다. 이곳 사르나트에는 티벳, 스리랑카, 태국, 일본에서 세운 불교 사원이 있다. 그 중 나는 태국의 사원엘 들린다. 그곳에는 높이가 24m나 되는 거대한 불상이 서 있다. 이 석불입상은 현재 인도에서 가장 크다고 한다. 이곳을 나온 우리는 이제 사르나트 고고학박물관으로 향한다.
#바라나시 #사르나트 #초전법륜지 #아쇼카 석주 #다멕 스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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