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문재인'이 얻은 것, 그리고 아직 얻지 못한 것

[取중眞담] 스쳐지나간 '질타', 다시 간다면 얻을 수 있을까?

등록 2016.04.10 11:13수정 2016.04.10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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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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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전략적 투표 해주십시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김홍걸 국민통합위원장과 호남방문 2일째인 9일 오후 전북 전주 전북대 앞에서 김윤덕(전주갑), 최형재(전주을), 김성주(전주병) 후보와 유세를 하며 지역 후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문 대표는 연설 중 "전략적 투표를 해달라"며 "정당은 원하시는 정당하되, 후보는 더민주 후보를 꼭 뽑아 달라"고 호소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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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김홍걸 국민통합위원장과 함께 광주를 방문한 8일 오후 광주 양동시장을 출발해 광주천을 걸으며 시민과 대화를 하고 있다. 주변을 둘러 싼 사람들은 기자와 당직자들이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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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절 하는 문재인과 전주 후보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김홍걸 국민통합위원장과 호남방문 2일째인 9일 오후 전북 전주 전북대 앞에서 김윤덕(전주갑), 최형재(전주을), 김성주(전주병) 후보들과 유세 도중 시민들을 향해 큰절을 하고 있다. 문 대표는 연설 중 "전략적 투표를 해달라"며 "정당은 원하시는 정당하되, 후보는 더민주 후보를 꼭 뽑아 달라"고 호소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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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호남 방문 이틀째인 9일 오후 전북 전주 한옥마을 인근을 찾아 시민들과 함께 걷고 있다. ⓒ 이희훈


서울에 온 지 겨우 한 달이 지났다. 군복무할 때 빼곤, 29년 동안 광주에 살았다. 기자가 된 이후에도 2년 간 광주에서 근무했다.

"문재인, 계란 맞는 거 아냐?"

그래서인지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광주에 간다고 하니, 동료 기자나 서울에 사는 지인들에게 위와 같은 질문을 참 많이 받았다. 사실 나도 궁금했다. 일부 언론을 통해 비춰진 광주와 문 전 대표의 관계는 과장을 조금 보태 철천지 원수였으니.

기자는 항상 '만에 하나'를 고려한다. '문 전 대표가 정말 계란을 맞을까?' 이런 생각이 수차례 들었다. 문 전 대표 스스로도 광주에 와 "돌에 맞을 각오", "회초리 맞을 각오", "계란 맞을 각오" 등 수차례 자신이 한 각오를 말로 표현했다.

그래서 8~9일 광주를 찾은 문 전 대표를 취재하며 휴대폰 동영상 기능을 참 많이 사용했다. 언제 계란이 날아들지 모르니까. 나 뿐만이 아니었다. 서울에 본사가 있는 어느 언론사는 광주에 10명 가까운 기자를 보냈다. 아예 기자 한 명에게 휴대폰 동영상 촬영을 전담으로 맡긴 언론사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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얻은 것 : '호남과의 반목' 이미지 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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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김홍걸 국민통합위원장과 호남방문 2일째인 9일 오후 전북 전주 전북대 앞에서 김윤덕(전주갑), 최형재(전주을), 김성주(전주병) 후보 지원 유세를 마치고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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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호남 방문 이틀째인 9일 오후 전북 전주 한옥마을 인근을 찾았다. 문 전 대표가 시민들과 취재진에 둘러싸여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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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호남 방문 이틀째인 9일 오후 전북 전주 한옥마을 인근을 찾았다. 문 전 대표가 시민들과 취재진에 둘러싸여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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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호남 방문 이틀째인 9일 오후 전북 전주 한옥마을 인근을 찾았다. 문 전 대표가 시민들과 취재진에 둘러싸여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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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전주 '맨발 호소'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홍걸 국민통합위원장이 호남 방문 이틀째인 9일 오후 전북 전주 한옥마을 인근을 찾았다. 문 전 대표가 유세를 하기 위해 신발을 벗은 채 단상 위에 올라가 있다. ⓒ 이희훈


문 전 대표의 광주행이 이번 총선에 얼마나 영향을 끼칠 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더민주가 광주 선거에서 맞붙은 상대는 현역 의원 대다수가 후보로 포진해 있는 국민의당이다. 지역 기반이 강한 상대는 웬만한 변수로 무너지지 않는다. 이번 광주 방문 한 번으로 선거 상황이 바뀔 거란 생각은 오히려 과한 해석일 수 있다.


하지만 문 전 대표는 분명한 소득을 얻었다. 일단 '호남과의 반목' 이미지를 희석시켰다. 문 전 대표는 계란을 맞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광주시민의 환호와 마주했다(관련기사 : "반문? '반'갑다 '문'재인!" 광주에 변수가 생겼다). 문 전 대표가 만난 광주시민들은 그를 반갑게 맞았다. 광주 방문 이틀째인 9일엔 문 전 대표가 "힘이 난다"고 말할 정도였다. 9일 오후 전북 전주로 이동한 문 전 대표의 표정은 전날 광주를 막 찾았을 때에 비해 많이 밝아져 있었다.

'문재인 vs 호남' 구도에 의문점을 던지는 기사도 제법 나왔다. 한 기자는 광주 충장로우체국 앞에서 문 전 대표를 둘러싼 인파에 치이다가 "뭐야, 광주에서 문재인 인기 없다며"라고 농담 섞인 말을 내뱉기도 했다. 문 전 대표의 이름은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를 오르내렸다. 경쟁자인 국민의당과 새누리당은 잇따라 비판 의견을 내놨다. 이슈가 된 건 확실하다.

변수를 만든 것도 문 전 대표가 거둔 수확 중 하나다. 별다른 변곡점 없이 국민의당이 더민주에 우세한 구도로 굳어가고 있던 광주 선거판세에서, 문 전 대표의 광주행은 변수가 되기에 충분했다. 변수가 없는 것과 미약하더라도 변수가 조금이라도 생긴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여론조사 공표금지 기간 직전까지 국민의당은 '광주의 녹색바람'이라 불릴 정도로 강세를 보였다. 문 전 대표가 만든 변수는 그 영향력이 크든 적든 국민의당을 상대로 방패막이를 세웠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또한 문 전 대표는 '대권주자 문재인'의 이미지를 다시 한 번 각인시켰다. 그는 광주에서 "(더민주에 애정을 갖고 있는 호남이) 저에 대한 지지를 거두시겠다면, 대선에 도전하지 않겠다"라고 발표했다. 이러한 문 전 대표의 선언은 이번 총선을 겨냥함과 동시에 내년 대선을 향하고 있다. 정권교체 여론이 강한 광주의 유권자들은 그의 선언을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관련기사 : 문재인 "호남이 지지 거두면 정계은퇴·대선 불출마").

얻지 못한 것 : 약이 되는 말, 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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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김홍걸 국민통합위원장과 광주방문 2일째인 9일 오전 광주 서천 발산 경로당을 찾아 어르신들과 함께 대화를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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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김홍걸 국민통합위원장과 광주방문 2일째인 9일 오전 광주 문빈정사를 방문한 뒤 무등산 등산객들과 대화의 시간을 갖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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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8일 오후 광주 광산구 월곡시장을 방문해 한 식당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4050과의 대화를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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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김홍걸 국민통합위원장 광주방문 2일째인 9일 오전 광주 서천 발산 경로당을 찾아 어르신들과 함께 대화를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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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둘러 싼 광주 학생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8일 오전 광주 전남대를 방문해 학생들과 함께 모여 앉아 즉석 간담회를 하고 있다. ⓒ 이희훈


그렇다면 문 전 대표의 광주행은 마냥 성공적이었을까. 사실 광주 방문을 계획하면서, 문 전 대표는 '환호받는 자신의 모습'을 의도하지 않았다. 그가 밝힌 광주 방문의 목적은 "위로, 사과, 경청"이었다. "직접 진솔한 이야기를 듣고, 거침없이 질타를 듣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하지만 이틀 동안 문 전 대표는 이런 시간을 거의 갖지 못했다. 문 전 대표도 "기대 밖으로 따뜻하게 맞아주셔서 힘이 나지만, 부족했던, 섭섭했던, 실망스러웠던 이야기를 듣고 싶다"라고 말했다. 8일 오후 전남대 학생들과의 만남, 4050 막걸리 토크, 9일 무등산 등산객과의 대화 등에서 문 전 대표는 "이제는 약이 되는 말, 쓴소리를 듣고 싶다"는 말을 수차례 반복했다(관련기사 : 광주시민과 '막걸리 토크', 문재인 "돌 맞을 각오로..").

문 전 대표가 쓴소리를 마주할 수 없을 만큼, 이른바 '반문 정서'는 없었던 걸까. 유권자들이 느끼는 온도차에 따라 해석은 다르겠지만, 어쨌든 호남에서 더민주는 역대 선거 어느 때보다 고전하고 있다. 현재까지도 패배를 점치는 게 자연스러울 정도다. 문 전 대표 자신도 이런 현상에 책임을 느끼고 있다.

크게 드러나진 않았지만, 이틀 동안 기자는 문 전 대표가 듣고 싶어했던 광주의 쓴소리를 일부 마주했다. 8일 문 전 대표가 다녀간 직후 광주공원에선, '더민주냐, 국민의당이냐'를 놓고 설전이 벌어졌다. 광주공원은 주로 장년층이 머물고 있는 공간이다. 격앙된 이들 사이에서 고성과 욕설이 오갔다. 9일 문 전 대표가 등산객들을 만난 무등산 문빈정사 일대에서도, 먼발치를 지나던 일부 시민들은 그를 향해 못마땅하다는 반응을 내놨다.

당초 계획은 문 전 대표가 이러한 시민들과 마주해 "질타도 듣고, 솔직한 심경을 밝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솔직한 심경을 밝히는 것"엔 성공했지만 "질타를 듣진" 못했다. 짧은 방문 기간 속 빡빡한 일정이라 그럴 수밖에 없었을진 모르지만 결과적으론 '질타'는 그저 스쳐지나간 상황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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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유세, 생각에 잠긴 문재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호남 방문 이틀째인 9일 오후 전북 전주 한옥마을 인근을 찾았다. 문 전 대표가 유세 도중 생각에 잠겨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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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김홍걸 국민통합위원장과 함께 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 내 유영봉안소를 방문해 참배 후 영정을 살펴보고 있다. ⓒ 이희훈


문 전 대표가 총선 전에 다시 한 번 광주를 비롯한 호남을 찾을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당 일각에서도 "아무래도 지지자 중심의 만남이 많았다", "아직 부족한 면이 있으니 한 차례 더 방문해 많은 시민들을 만나봐야 한다" 등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관련기사 : 문재인, 광주 민심훑기 이틀째 "국민의당은 정권교체 못해").

문 전 대표는 총선 전 다시 한 번 광주를 찾을까. 만약 또 광주를 찾는다면, 이번에 얻지 못한 것을 얻을 수 있을까.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광주 #20대 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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