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도 아이들에게 지켜야 할 예의가 있다

[별별인권이야기 ⑤]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가 있다

등록 2016.04.26 10:07수정 2016.04.26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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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아버지는 옛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셨다. 당신이 겪었을 일제시기의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6.25를 겪어야 했던 10대에 이르기까지. 소나무껍질을 껌 씹듯 잘근잘근 씹어 먹었다는 이야기며, 지게를 지고 나무를 해야만 했던 이야기 등등 그 이야기는 마치 아득한 옛이야기처럼 멀기만 했고, 나른했으며, 심지어 평화롭기(?)까지 했다. 나와는 아무 연결고리도 찾을 수 없었음으로.

유독 화초나 동물 키우기를 즐겨하시던 아버지는 늦은 나이에 결혼한 막내딸에게 아주 어린 나무를 선물하셨다. 10센치미터도 채 되지 않은 아주 작고 어린 벤자민 나무였다. 화초 키우기라고는 난생 처음 해보는 바쁜 막내딸은 그저 화분을 방치하기만 했고 어쩌다 눈길이 가면 물 한번 뿌려주는 게 전부였다.

작은 나무를 선물하신 아버지는 이제 계시지 않지만, 그 벤자민 나무는 13년째 무럭무럭 자라고 있고, 아파트 베란다에서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을 정도로 큰 나무가 되었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그 옛날 아버지가 하시던 이야기가 새삼 다시 떠오르고, 왜 더 많은 이야기를 들어주지 못했나 후회가 밀려왔다. 비로소 그 아득했던 어린 시절의 아버지와 지금의 내가 이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오랜 세월 환경운동에 몸담아 활동을 하다 보니 아이들을 만날 기회가 많다. 학교에 직접 가서 아이들을 만나기도 하고, 학생들과 함께 환경이 파괴되고 있는 현장을 함께 가기도 한다. 아이들은 때론 흥미롭게 때론 지루해 하면서도 우리의 이야기와 함께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마지막의 물음은 어느 학교를 가든지 어느 아이를 만나던지 비슷하다.

"그런데 선생님! 어른들은 왜 그렇게 환경을 파괴하는 일을 많이 해요? 그러면서 우리보고 환경은 소중하다고 지키래요."

도둑질 하다가 들켜버린 기분이 든다. 자신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환경의 권리를 어른들이 빼앗아 가고 있다는 것을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다.

헌법 제35조에도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환경권에 대해 명문화 되어 있다. 이러한 환경권에 대한 이념에 대해 온 세계가 앞 다투어 그 나라의 법체계에 흡수시켰지만 실제로는 소극적인 사후규제 수준에 머물러 있다. 만약 진정으로 미래세대의 환경권에 대한 인식과 체계적인 법제화가 되어 있다면, 30명이 넘는 영아가 사망한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이 한국에서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개발의 광풍 아래 '환경난민'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전 세계적으로 점점 늘어나고 있다. 사막화, 열대림의 파괴,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 등 환경 재앙의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으며, 그 파괴력은 점점 강해지고 있다. 불가피한 환경재해를 인간이 모두 다 막는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현재를 잠시 빌려 쓰고 사라지게 될 우리가 환경재앙을 재촉하고 있지는 않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우리가 내뿜는 자동차 연기, 사라져 버린 숲, 공장의 매연, 헤아릴 수 없는 각종 유해물질들 이런 것을 유산처럼 물려주는 어른은 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아이가 건강하게 잘 자라길 바란다. 하지만 그러한 바람과 소망은 개인의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과 같은 재앙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환경난민'의 사태가 발생하지 않으려면, 기업이, 사회가, 국가가 더 나아가 전 지구가 함께 하지 않으면 불가능 한 일이 되어 버렸다.

며칠 전 4학년 아들이 물었다.

"엄마,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지켜야 할 예의가 없어?"

할아버지 댁을 방문하면서 어른에게 지켜야 할 예의에 대해서 일장 연설(?)을 하던 중에 나온 돌발 질문이었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지켜야 할 예의와 도리' 아이가 묻는다. 이제는 우리가 답을 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공정옥 시민기자는 대구시민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으며, 인권위 대구인권사무소의 인권필진 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별별인권이야기'는 일상생활 속 인권이야기로 소통하고 연대하기 위한 공간입니다.
#인권 #환경 #환경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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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와 함께 차별없는 인권공동체 실현을 위하여 '별별 인권이야기'를 전하는 시민기자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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