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의 자서전에 '출신 대학'이 없는 이유

[서평] 교도통신 정치부 기자 출신 노가미 다다오키의 <아베 신조, 침묵의 가면>

등록 2016.04.29 09:10수정 2016.04.29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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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이 좋든 싫든 지리, 역사,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최근 한일 관계는 해방 이후 최악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가장 가까이 있는 두 나라 정상이 3년 넘게 얼굴을 마주하지 않았고, 독도 영유권·위안부 협상·식민지 역사 등 지난 반세기 동안 양국이 극복하지 못한 문제들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등장 이후 더욱 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화려한 정치 명문가 혈통에 부드러운 외모, 훤칠한 키의 아베는 평화헌법 개정, 집단 자위권, 역사 왜곡, 언론 통제 등 일본 보수층이 봐도 지나친 우경화 노선을 고집하며 자국 내 분열은 물론이고 주변국과의 관계까지 비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아베에 관한 책 <아베 신조, 침묵의 가면>(해냄)이 나와 눈길을 끈다. 교도통신 정치부 기자 출신의 정치 평론가 노가미 다다오키는 아베의 부친 신타로부터 아베 가문을 수십 년 간 밀착 취재해 왔다. 이번 책은 한 마디로 '아베 연구서'라 할 수 있다.

'금수저' 아베가 갖지 못한 유일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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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가면, 아베 신조 ⓒ 해냄

한국은 경제 권력이 세습되고, 일본은 정치 권력이 세습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일본 정치권은 혈통을 중시한다. 지역구 대물림이 흔하고, 한 가문에서 국회의원이나 장관 등이 수두룩하다. 아직도 입헌군주제를 유지하는 국가라서 그런지 국민들의 저항감도 덜한 듯하다.

아베는 일본 정계에서도 최고의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 외할아버지는 권력의 정점에 올랐던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 아버지는 중의원을 10선이나 하고 외무장관까지 역임한 아베 신타로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베가 정치인이 된 것은 어찌 보면 숙명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완벽할 수는 없다. 국가를 짊어진 가문이라 집안 어른들은 항상 바빴고, 외할아버지 집 유모의 손에서 자란 아베는 "아버지와 아들이 친구처럼 노는 것을 보면 부러웠다. 가끔 아버지가 집에 와 계시면 나는 어딘지 모르게 어색했다"라며 성장기의 외로움을 털어놓기도 했다.


가진 자의 행복한 불평일 수도 있다. 일본에서 정치인이 되려면 '지반·간판·가방'을 모두 가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지반은 지역구, 간판은 정치 명문가, 가방은 자금력을 의미한다. 이 세 가지를 모두 가지고 태어난 아베는 성인이 되어 남들보다 수월하게 정치권에 입성했다.

그러나 아베도 갖지 못한 것이 하나 있다. 아베의 화려한 배경 뒤에 항상 따라다니는 것이 학력 콤플렉스다. 아베의 집안은 일본 최고의 학부인 도쿄대 법대 진학을 당연시 여겼다. 친할아버지, 외할아버지, 아버지까지 모두 도쿄대 법대를 나왔다. 아베 역시 아버지로부터 도쿄대 법대에 가야 한다는 잔소리를 듣고 자랐으나, 공부와는 궁합이 맞지 않았다.

결국 아베는 사람들이 흔히 아는 일본의 명문대가 아닌 세이케이대 법대를 나왔다. 초등학교부터 시작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까지 시험을 치르지 않고 자동으로 진학하는 상류층 전용의 '사학 코스'다.

아베는 왜 '독불장군'이 되었나

저자는 독재자로 불릴 정도로 아베의 편향적 우경화를 이러한 성장 과정에서 찾는다. 자서전 이력서에 출신 대학만 지울 정도로 학력 콤플렉스가 심한 그는 도쿄대 엘리트를 기용하는 것을 극도로 기피하고, 자신의 주장만을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버럭 총리'가 되었다.

보수적인 일본 정치권에서 학력 대신 혈통을 최대 강점으로 내세운 아베는 가정을 소홀히 했던 아버지가 아닌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를 정치적 우상으로 내세웠고, 그의 우경화 노선을 철저하게 따랐다. 모든 반대의 목소리는 "국익을 위해서"라는 한 마디로 눌러버렸다.

아베의 마지막 목표는 개헌을 통해 일본을 '보통 국가'로 만드는 것이다. 평화헌법을 패전국의 억울한 아픔으로 여기는 그로서는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아베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철저하게 개헌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지지를 얻어내고 국회를 장악하며, 언론을 현혹하면서 반대 여론에는 철저히 눈과 귀를 닫고 있다.

이 책을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는 한국과 일본이 밀접한 관계인 만큼 아베의 정책은 물론이고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우리나라에 큰 파급을 미치기 때문이다. '아베의 일본'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철저한 대응이 절실한 이유다.

이 책에서 민주 국가로는 드물게 60년 넘도록 자민당이라는 특정 세력에 의존하는 일본의 독특한 정치사와 세력 갈등, 그 안에서 아베가 어떻게 권력을 만들고 유지하는가를 살펴보는 것도 일본을 알아가는 좋은 공부가 될 듯하다.

아베 신조, 침묵의 가면 - 정치명문 혈통의 숙명과 성장의 비밀

노가미 다다오키 지음, 김경철 옮김,
해냄, 2016


#아베 신조 #아베 신타로 #기시 노부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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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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