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것도 크게 보시는 할머니들

우리 교회 어버이날 선물

등록 2016.05.09 12:25수정 2016.05.09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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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더군요. 어버이날인데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지 않은 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저희 교회 할머니들은 꽃을 두 개 이상씩 달고 다니셨는데 말이지요. 자칫 실수할 뻔 했습니다. 그러잖아도 어제 고민을 했거든요. 어버이날 선물을 준비하면서 카네이션을 포함시키느냐 마느냐로요.


'할머니들이 꽃을 다셨다 해도 하나 더 달아드리면 되지 뭐!' 이런 마음으로 가볍게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만약 준비하지 않았더라면 할머니 집사님들이 서운하게 생각하셨을 같아요. 할머니들께 차례대로 꽃을 달아드렸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명자 권찰이 저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주며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시라고 인사를 해왔습니다.

김 집사님은 아흔을 한 해 앞두고 있는 할머니입니다. 딸만 셋을 두었습니다. 아들을 보지 못해 젊었을 적엔 시가로부터 적지 않은 구박을 당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매년 어버이날쯤이면 양쪽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고 다닌 분입니다. 두 개 이외의 것 몇 개는 방 벽에 꽂아 놓고 사람들에게 자랑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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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어버이날 선물에는 생필품과 스낵류 과자들에 음료수가 포함되었다. ⓒ 이명재


아들이 없어도 카네이션이 이렇게 많이 들어왔다는 것을 은연 중 드러내고 싶으신 겁니다. 그런데 오늘은 좀 이상하더군요. 그렇다고 예전처럼 벼랑박에 꽂아 두고 나오신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꽃 하나 달지 않은 밋밋한 모습이어서 제가 집사님에게 물어봤습니다. 어버이날 꽃 하나 받지 못하셨냐고요. 김 집사님 대답이 걸작입니다.

"매년 꽃을 사 오는 외손주들이 있지 않습니꺼. 몇 개씩 꽃이 들어오는 것을 올해부터 가지고 오지 말라고 일렀습니더. 하루 달고 다닐 걸 괜히 돈 들일 필요가 없다구요. 정 성의를 표하고 싶으면 현찰로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더. 하하하!"

궁금증이 동했습니다. 그래서 현찰을 가지고 왔는지 제가 되물었습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안캅디꺼. 글씨, 외손주 네 아이가 돈을 모아 생화 화분을 하나 사 왔지예. 얼마라고 꼭 집어 말은 안 했지만 돈을 꽤 주었다 카데예. 그래도 기분은 원카 좋습니더. 산송장과도 같은 할미를 생각해 준다는 기…."

예배 전 교회로 모시고 오면서 이런 대화를 주고받으니 제 마음이 한결 포근해졌습니다. 어제 어버이날 선물을 준비하면서 두 가지를 염두에 뒀었지요. 하나는 두고 쓸 수 있는 생활필수품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과자와 음료수 종류를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아흔에 근접해 있는 할머니들이 혼자 생활하시다 보면 필요한 것이 생필품입니다. 떨어졌다고 바로 해결할 수도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부탁을 해야 합니다. 세제, 일회용 장갑, 수세미, 반찬용 은박지, 칫솔 치약과 비누 등등이 거기에 포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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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당 한쪽 모퉁이에 쌓아 둔 어버이날 선물로 할머니 집사님들이 자주 눈길을 돌렸다. ⓒ 이명재


할머니들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나이 들면 다시 아이가 된다는 것 말입니다. 과자를 무척 좋아하시는 것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도 달콤한 스낵류를 좋아하셔요. 비스켓을 몇 종류 넣고, 또 드시면서 목메지 마시라고 오렌지 쥬스를 포함시켰습니다.

다른 때에도 할머니들은 예배에 집중을 잘 못하십니다. 무엇보다 귀가 어두우시기 때문에 메시지 접수가 잘 안 됩니다. 오늘은 더 산만한 것 같더군요. 중이 제사보다 젯밥에 마음을 더 둔다는 속담처럼 할머니들의 마음도 온통 어버이날 선물에 가 있습니다. 예배당 한 쪽에 쌓아둔 선물에 자주 눈길을 주는 것만으로도 그것을 단박에 알 수 있죠. 이럴 땐 말씀을 보다 짧게 전해야 합니다.

공동 식사 시간에 선물을 전달했습니다. 모두들 흡족한 표정들입니다. 어린 학동들이 명절 선물을 받아들고 좋아하는 표정과 흡사합니다. 오늘 빠진 할머니들에게는 박 권사님이 전달하겠다면서 차에 실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 교회 어버이날 선물 나눔은 끝났습니다. 할머니들이 기뻐하시니까 제 마음이 날아갈 듯하더군요.
#어버이날 선물 #카네이션 #농촌교회 #생필품과 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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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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