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보험에 들떴는데... 결국 퇴사를 택했다

[작가, 방송을 말하다④] ‘작가’라는 타이틀 때문에 쭉 버텨왔던 것 같다

등록 2016.05.11 15:48수정 2016.05.11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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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6일, 언론노조는 <방송작가 노동인권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예상대로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최저시급도 안 되는 임금, 최장시간 노동까지. 이후 방송작가들은 방송작가 유니온을 통해 뭉치기 시작했습니다.

언론노조는 방송작가 노동조합 설립을 통해 방송작가의 노동 환경과 법제도 개선에 나서고자 합니다. 방송작가들이 직접 경험한 방송계는 어땠을까요. 이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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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주변이 없던 나를 좌절로부터 일으켜 세우는 것은 바로 '글'이었다. 공책을 빼곡하게 채운 일기장을 보며 엄마는 내게 말했다 "작가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니?" ⓒ pixbay


말주변이 없던 나를 좌절로부터 일으켜 세우는 것은 바로 '글'이었다. 공책을 빼곡하게 채운 일기장을 보며 엄마는 내게 말했다 "작가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니?"하고 말이다. 나에게 꿈이란 것이 생겼을 때, 나만의 이야기를 꼭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이 불과 15년 전 일이다.

'작가가 되려면 박학다식해야 한다'는 말에 난 덜컥 겁을 먹곤 했었다. 공부 머리와는 워낙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늘 공부를 잘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머리는 잘 따라주지 않았다. 하지만 신문방송학과를 가려는 꿈은 쉽게 포기할 수 없었기에 재수에 삼수까지 감행하게 됐다.

그렇게 세 번의 수능을 치렀지만, 결국 패배의 쓴맛을 보며 좌절을 피할 수 없었다. 그렇게 세 번의 방황 끝에 가게 된 곳은 문예창작과였다. 신문방송학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진 못했지만, 마음껏 글을 쓸 수 있는 그곳에 간 것만으로도 내겐 큰 기쁨이었다. 그렇게 난 방송작가의 꿈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졸업을 앞두고 조교님의 추천을 받은 기고 업무가 있었다. 그 일을 시작으로 프리랜서의 길을 걷게 됐다. 집에서 일을 시작했다. 사회에 대한 두려움과 취업에 대한 막막함 때문이었지만, 내가 쓴 글이 기고된다는 사실만큼 큰 기쁨도 없었다. '좋아하는 취미도 막상 일이 되면 스트레스가 쌓이기 마련이다'는 말도 있지만, 글로써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은 내겐 보람찬 일이 됐다.

그렇게 난 졸업을 하게 됐다. 솔직히 말하면 더 공부하고 싶었지만, 학비는 만만치 않았고, 전공 심화 과정을 위해선 총 작가나 언론 분야의 경력 1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렇게 부랴부랴 면접을 봤고, 처음 방송작가로서 일을 시작하게 됐다.


하지만 당연한 일이 당연한 것이 아니게 된 그 시점부터 처음의 설렘은 곧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가령, 계약서를 써달란 당연한 요구로 인해 남들에겐 세상 물정 모르는 철없는 아이로 취급을 받기도 했고, 최저임금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급여를 받아도 꾹 참아야 하는 상황 말이다.

내 이름 뒤에 붙는 '작가'라는 타이틀 때문에 쭉 버텨왔던 것 같다. 자료조사, 섭외, 대본전달, 방영 일자 및 촬영 일자 스케줄 체크, 현장체크 등 가장 많은 움직임을 요하는 것이 바로 막내 작가다. 하지만 가장 많이 움직이는 것에 비해 급여나 대우에 대한 것들은 좀처럼 기대에 많이 미치지 못했다.

그렇게 '작가'라는 직업에 대해 회의감이 깊어질수록 나는 스스로를 위안했다. '세상의 수많은 작가와 제작진들 심지어 우리나라의 직장인들도 다 이렇게 인간 대접을 기대하지 못하며 고생하겠지'라며.

그렇게 위로하면 나아질 것이라 생각한 나였지만 시간이 지나도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오히려 할 일을 다 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찍 가는 내가 눈치를 봐야 했다. 집안에 사정이 생겨 일찍 가야겠다는 말 한마디에 화를 내며 "그러고도 네가 작가야?"라는 소릴 한 사람도 있었다.

방송작가가 꿈이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이런 최소한의 대우조차 받지 못하는 것 또한 꿈꾼 것은 아니었기에. '이렇게까지 해서 일을 해야 하는 걸까'라는 생각은 머릿속에서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결국 난 더 버티지 못하고 방송작가를 포기하겠단 마음을 가졌다.

작가가 아닌, 글쟁이가 아닌 아예 다른 일을 해볼까란 생각으로 고민하던 끝에 우연히 홈쇼핑 작가로서 일하게 됐다. 당시만 해도 ENG물이나 스튜디오 물의 시사 방송프로그램만 했던 나였기에 좀 생소하긴 했지만, 다시 작가로서 일할 수 있다는 게 못내 기뻤다. 솔직히 말하면 일반 사내방송 형식이었기에 계약직이었지만 4대 보험은 물론 월급도 꽤 괜찮은 수준이었기에 포기할 수 없기도 했다.

기쁜 마음에 한참이나 들뜬 나머지, 난 주변에게 자랑하듯이 이 사실을 늘어놓았지만 오히려 주변에서는 "4대 보험? 그거 당연히 드는 거 아니야?"라며 무안을 주기도 했다. 사실 일반 직장인 기준으로 본다면 그리 많은 급여도 아니었고, 4대 보험은 당연히 드는 것이기 때문에 이해는 갔다. 어쨌든 이젠 최소한의 대우를 기대할 수 있겠다는 큰 기대감 하나로 일을 다시 시작했다.

이제야 작가의 역할을 하나 싶었는데... '반강제'로 나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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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직이었지만 4대 보험은 물론, 월급도 꽤 괜찮은 수준이었기에 포기할 수 없기도 했다. 기쁜 마음에 한참이나 들뜬 나머지, 난 주변에게 자랑하듯이 이 사실을 늘어놓았지만 오히려 주변에서는 "4대 보험? 그거 당연히 드는 거 아니야?"라며 무안을 주기도 했다. ⓒ pixabay


당시 내가 근무하던 곳에서는 방송국의 형태라고 보긴 어려울 정도의 신설부서 개념이었기 때문에 MD도 없었고, PD도 없었다. 그런데 방송국이라고 하니 믿어지지 않았을 정도였다. 그 덕분이었을까. 오히려 방송작가로서 있었던 경험이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경력으로 인정되진 않았지만, 일하는 데 있어선 큰 자산이 됐다. 갖춰지지 않았기에 더 열심히 할 수 있었고, 적성에 맞았던 일이었기에 기획 작가의 역할도 충실히 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찾아온 사내의 정리해고로 인해, 회사는 조직개편이라는 급격한 변화에 처하게 됐다. 운이 좋게도 당시 근무하던 부서는 단 한 명도 정리해고가 되지 않았고, 오히려 회사에서 적극적으로 밀고 나가는 주력 사업으로 성장했다. 이후, 좀 더 갖춰진 시스템으로 MD가 채용되고, PD들도 들어왔다.

내가 성장하는 만큼, 일터도 함께 성장한다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성장은 부작용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경력이 모자르다는 이유로,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본래 하던 업무에 대한 권한은 점점 사라졌고, 나의 업무를 다른 이가 도맡기도 했다. 이곳에서의 입지는 점점 사라졌고, PD에게 권한이 더 쏠리면서 작가라는 위치는 점점 위협을 느꼈다. 결국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주변의 좋지 못한 분위기에 휩쓸려 난 또다시 반강제적으로 퇴사해야만 했다.

당시에는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자책만을 일삼았었다. '환경이야 어찌 됐든 내가 잘 해내지 못했기에 이런 일이 생겼을 것이다'는 생각으로 자존감은 급격히 떨어졌고, 점점 나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만일 지금이었다면 좀 더 현명하게 대처했을지도 모른다. 오로지 '내 탓이오'하며 눈물로 밤을 지새우기보단 '꼭 이럴 수밖에 없었던 건가' 생각을 했을 것이고, 해결 방안을 찾아 나갔을까 싶기도.

하지만 처음 작가를 포기했을 적처럼 무턱대고 포기하진 않았다. 작가라는 것이 나의 천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다른 방법을 생각하게 됐다. 그렇게 다시 프리랜서 생활을 다시 시작했고, 여러 군데의 외주로 일하기 시작했다. 비상근으로 일하기도 하고, 상근으로 출근하기도 한다.

부당하다 느끼면서도 버텨왔던 시간 덕분에 그 경력을 인정해주는 것 같아, 함께 일하는 분들께 늘 감사하다. 이제 나이도 좀 먹고 연차도 어느 정도 생겨서인지, 페이에 대한 협의는 좀 유연해졌지만 아직까지도 계약서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조심스럽다.

월급이 아닌 주급 방식의 프리랜서일 때가 많지만, 그렇다고 해도 정당한 대가를 주는 분들껜 고마울 따름이다. 그러나 근로자로서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이유로 프리랜서를 만만하게 보며 임금체불을 일삼는 이들도 있다. 이유는 많다. '방송이 나가지 않으면 페이 지급이 어렵다'는 이유, '우리도 본사에게 돈을 받지 못했으니 그만 보채라'더니 어느 순간 잠적을 하는 제작사들도 많았다.

직장인들과 똑같이 출근하고, 똑같이 일을 하는데 왜 근로자로 인정이 될 수 없는 건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이게 근로자가 아니면 대체 뭐란 말인가. 작가들이라면 당연히 글은 열심히 쓸 것이고, 보수에 따라 성심성의껏 일할 것이다. 다만 최소한의 대우를 보장해주었으면 한다. 공지영 작가의 소설 제목인 <인간에 대한 예의>처럼 우리 작가들에게도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줬으면 한다.
#언론노조 #작가노조 #방송작가유니온 #방송작가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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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언론노동조합(全國言論勞動組合, National Union of Mediaworkers)은 대한민국에서 신문, 방송, 출판, 인쇄 등의 매체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가입한 노동조합이다. 1988년 11월 창립된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언론노련)를 계승해 2000년 창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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