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장관은 '가습기살균제' 사과한 걸까 안 한 걸까

[국회 환노위] "제도 미비" 답변 반복한 윤성규 환경부 장관

등록 2016.05.11 20:00수정 2016.05.11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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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환노위 가습기 살균제 사태 현안 보고 지켜보는 유가족 안성우 가습기 살균제 피해 유가족 대표가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윤성균 환경부 장관의 옥시레킷벤키저(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태 현안 보고를 지켜보고 있다. ⓒ 유성호


"안방의 세월호 사건이다. (중략) 사과로 끝날 문제도, 단순한 정책 실패도 아니다. 환경부 뿐 아니라 보건복지부, 산자부(산업통산자원부)를 포함한 정부 부처의 명백한 직무 유기다. 검찰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1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사태'를 질타하면서 한 말이다. 윤성규 환경부 장관은 별다른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그런 그를 향해 심 대표는 "소나기만 피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지 마라"라고 재차 질책했다.

환경부의 '가습기살균제 피해사태' 현안보고가 진행된 이날 환노위는 청문회 현장을 방불케 했다. 야당 환노위원들은 가습기살균제의 유해성 여부를 제대로 감독치 못한 관계 정부 부처의 책임을 캐물었다. 앞서 야당에서 제기했던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법안을 지금이라도 수용하라는 압박도 곁들였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사태'에 임할 20대 국회를 미리 본 것이나 다름 없었다.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은 이 문제를 청문회 등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를 해야 할 사안으로 규정짓고 있다. 여당인 새누리당조차 '검찰 수사 이후'란 전제조건을 달면서도 청문회 개최에는 동의하고 있다.

특히 초점은 정부의 책임에 맞춰졌다. 정부가 제대로 된 감독·시정조치를 못했는데도 이에 대한 책임을 기업에만 떠넘기고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였다. 피해자들에 대해 정부 차원의 사과가 있어야 한다는 요구도 잇따랐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 정부가 직접 사과하라"

장하나 더민주 의원은 '탈리도마이드'를 거론하며 대국민 사과를 요구했다. 탈리도마이드는 1957년 서독에서 수면제로 등장, 입덧 처방에 광범위하게 사용됐다가 1만2000명 이상의 기형아 출산을 이끌었던 약제다. 영국정부는 이와 관련해 2009년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했다.


장 의원은 "장관은 법제 미비가 (이번 사태의) 원인이 됐다고 했지만 남의 일처럼 유감 표명에만 그쳤다, 피해자들에게 사과할 의향은 없나"라고 물었다. 이에 윤 장관이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고통을 모르는 바 아니다"라고 답하자 장 의원은 "정부의 책임이 있는 거냐, 없는 거냐"라고 재차 질의했다.

윤 장관은 그제야 "법제가 미비한 것을 제때 선제적으로 (대응) 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다. 또 "그런 책임을 통감하고 있어서 비록 가해자가 분명히 있는 사건임에도 (정부가) 예산을 편성해 치료비와 장례비 등을 지원하는 한편, 그 범위를 넓히기 위해 관련부처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는 "그래서 정부가 사과할 의향이 있다는 것인가"란 장 의원의 질문엔 "앞서 말한 게 사실상 그런 뜻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명시적인 사과는 회피했다.

이 같은 태도는 야당 환노위원들의 집중적인 질타를 이끌어냈다. 한정애 더민주 의원은 "(회의장) 뒤에 피해자 모임 가족 분들이 와 계신다, 이렇게 큰 사고가 나서 많은 아픔이 일어났다면 지금이라도 국가가 사과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새누리당 의원들도 정부의 감독 미비를 질책하고 나섰다. 이완영 의원은 "2014년 말 유해성 검사를 19%했다고 돼 있는데, 제대로 검증 못하고 사용하는 게 80%나 된다는 것 아니냐"면서 "너무나 후진적인 나라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같은 당 민현주 의원도 "관련 제품이 시장 점유율 80%를 차지하고 있을 당시, 왜 정부는 해당 제품의 안정성에 관심을 두지 않았나"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윤 장관의 태도는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특히 민 의원의 질의엔 "당시에는 산업부가 세정제를 관리해 (해당 제품을) 법정 기준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고, 복지부는 (관련 제품을) 전통적인 의약외품으로 인지하지 못한 것 같다"라면서 "(관리 부처) 사각지대라 (감독) 대상이 못 된 것"이라고 답했다.

결국 정부가 관리·감독을 '안' 한 것이 아니라 관련 법·제도의 허실로 '못' 했다는 주장이다. 이에 민 의원은 "그렇게 인기가 있었고 시장에서 많이 팔렸음에도 정부의 관리 감독에서 빠졌다"면서 "과거 제도가 미비해 이제야 개선하겠다고 하면, 국민 불안을 잠재울 수 있겠나"라고 비판했다.

윤 장관은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는 것에 대해서도 "일반법으로도 할 수 있다"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일반법 체계로 이를 정비하려면 6개월 이상 소요되고 하는데 국민들이 볼 때 정부가 피해대책을 '해태(懈怠)'한다고 보지 않겠나"란 이인영 더민주 의원의 질문에 윤 장관은 "(피해 구제를 위한) 기금 조성과 관련된 부분이 (특별법에) 있는데, 일반 국민의 세금으로 출연하고 기업들에게도 부담을 지게 해서 (이 사태에) 책임 없는 이들도 (돈을) 내야 할 의무가 주어지기 때문에 충분한 토론이 필요하고 동의를 받아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국민이 죽었는데 핑계만 대면 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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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태 현안 보고하는 윤성규 환경부 장관 윤성규 환경부 장관이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옥시레킷벤키저(옥시) 가습기 살균제 피해 관련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유성호


이 같은 윤 장관의 태도는 '책임을 모면하려는 비겁한 해명'이란 비판으로 되돌아왔다.

심상정 의원은 이미 1979년 당시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지목된 화학물질이 유독 물질이라고 규정돼 있었는데도 이를 인지하지 못한 것이라고 질타했다. 그는 "이미 미국에서 (독성 물질이라고) 문서화된 사실이 있는데도 정부의 태도가 이게 뭐냐"라면서 "걸핏하면 국제 표준을 말하면서 왜 국민의 생명엔 그 국제 표준을 적용하지 않냐"라고 반문했다.

우원식 더민주 의원도 "제가 받은 자료를 봐도, 미국 환경보호청에서 1998년에 그 유해성을 입증했다"라며 "환경부가 그 때 유해물질로 지정했더라면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이건 직무유기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윤 장관은 기존 태도를 굽히지 않았다. 오히려 억울하단 투의 대답도 나왔다. "그게(해당 물질의 유해성 검사가) 전문가 영역이면 장관은 도대체 뭐했나, 환자들은 만나러 다니셨나"라는 심 의원의 질문에 윤 장관은 "아니 왜 제가 (환자들을) 만나야 되느냐"라고 되물었다.

우 의원이 "과거 기획재정부가 환경부에 보낸 자료를 보면 '가습기살균제 문제는 기업과 개인 간의 문제이기 때문에 국가 개입은 부적절하다'라고 했는데 맞는 얘기냐"라고 물었을 땐 "부적절하다는 말이 근본적으로 틀리진 않는데"라고 말했다. 이에 우 의원이 "정부가 이 사건에 대해 책임이 없다는 얘기인가"라고 묻자 "법제를 사전적, 예방적으로 만들었어야 했다"라고 재차 같은 답변을 내놨다.

결국 우 의원은 "제도 불비라는 이유로 핑계만 대고 있는 것이다, 국민이 죽었는데 핑계만 대면 되겠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마지막 발언을 통해선 2004년 김선일 피랍 사건 당시 "국가가 국민 보호 못 하면 국가가 아니다, 국민 한 사람 못 지킨 대통령은 자격이 없고 용서가 안된다"고 한 박근혜 대통령의 당시 발언을 거론하며 "어디서 구멍이 났고 뭘 잘못했는지 따져봐야 하는데 장관이 다른 부처에서 일어난 건 나와 관계 없는 것이고 제도 미비에 의해 일어난 것이라 책임이 없다고 해 분통이 터진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국회 책임론' 꺼냈다가 무안당한 권성동

한편, 여당 환노위 간사인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은 "국회의 책임도 있다"라고 윤 장관을 감싸다가 무안을 당하기도 했다.

그는 "1차적 책임은 기업, 2차적 책임은 정부가 갖고 있지만 우리 국회도 책임이 있다, 사실 이 문제가 잊혀져 있었다"라며 "제가 19대 하반기 때 환노위로 왔는데 동료의원 누구도 (법안심사소위에서) 이 법을 빨리 논의해달라고 하지 않았다가 언론보도가 집중되니 마치 관심을 갖고 있었던 양 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야당 환노위 간사인 이인영 의원은 "2014년 12월 2일, 2015년 4월 27일 법안심사소위에서 이 문제를 다뤘는데 당시 정부·여당의 책임 있는 분들이 이 법안을 반대하며 대처방안들을 마련하는 과정이 늦어진 것"이라며 "마지막 상임위라 큰 쟁점으로 삼지 않겠지만 사실을 왜곡해선 안 된다, 그것을 방해한 세력은 분명히 있었던 것"이라고 반박했다.
#가습기살균제 #윤성규 #환경부 #장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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