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둘 낳고 복직, 하면 되는 줄 알았건만...

지치지 않도록 균형을 맞추며 사는 삶

등록 2016.05.12 13:15수정 2016.05.12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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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는 것이 아닌 기다렸다가 보조를 맞추며 같이가는 법을 익히는 것, 그것이 워킹맘의 균형있는 삶이었다. ⓒ 이혜선


# 워킹맘 이전의 열정



: "복직하고 나서 제일 힘들었던 것이 뭐에요?"
A : "아이가 아플 때?"
B : "돌보미 퇴근 때문에 일찍 가야 하는데 야근 할 때?"
C : "아이 방학 때?"
D : "아무래도 가장 힘들었던 건 내 자신에 대한 적응이었던 것 같아. 워킹맘 전후 달라진 내 업무 스타일에 적응하는데 몇 년은 걸린 것 같아. "

주변 워킹맘 동료들과 나눈 대화다. 모두 D의 말에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아이가 아픈 것도, 야근을 하는 것도, 방학도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상황들이다.

그냥 예상 없이 닥치는 일이고, 또 지내다 보면 한고비 한고비 넘기게 되는 면이 있는데, 내 자신의 업무스타일은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부분인 것 같은데도 적응하는데 무척이나 오래 걸렸다. 내 자신에 대한 실망은 덤이었다.

예전에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 맡겨져도 그냥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일이란 내가 노력한 만큼 보상받을 수 있는 것이고, 시간이 없다거나 일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그만큼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일이 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규모 프로젝트가 구성되거나 조금 일이 힘들더라도 이슈가 되는 TFT가 구성되면 경험상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곤 했었다. 생소한 업무의 일이라도 배우면 된다고 생각했다. 야근과 주말근무를 자처했다. 다 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서…


# 워킹맘 이후의 열정, 이상과 현실의 차이

엄마가 되었다. 무척 기다리던 일이었고, 원하던 역할이었다. 워킹맘으로서의 삶이 어렵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기는 했지만, 그마저도 늘 그렇듯이 '하면 된다'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실제로 아이 둘을 낳고 복직을 하면서 알았다. 내 생각이 얼마나 오만했던 것인지를…

복직 전에는 단순히 업무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아이를 떼어놓고 직장에 출근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는데, 정작 고민해야 했던 것은 내 자신이었다. 생소한 업무가 맡겨지면 '못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먼저 앞섰다.

갑자기 이슈가 터져서 6시 이후 회의소집이 이루어지면 이슈에 대한 분석보다 전화 돌리기 바빴다. 남편에게로, 시부모님에게로..... 내 퇴근이 늦어지면서 생기는 아이 케어를 먼저 처리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흥미가 생기는 새로운 TFT가 꾸려져도 망설여지고, 될 수 있으면 익숙하고 이슈는 터지지 않기를 매일 기도 하는 마음으로 출근을 했었다.

복직 후 이런 모습이 한 달, 두 달 이어지다 보니 '아, 내가 왜 이러나, 회사는 철저히 조직사회인데 내가 왜 이렇게 비겁해졌나' 이런 생각과 동시에 또 한편으로는 아이에게 미안해졌다. 복직 후 한동안 우울감과 상실감에 시달렸다. 복직하고 나서 이런 나의 심정을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선배 워킹맘이 말해줬다.

"원래 그래, 적응하는데 1~2년은 걸릴 걸?"

짧은 댓글이었지만 이 말은 당시, 나 혼자만 그러는게 아니구나 싶어 많은 위로가 되었다.

# 워킹맘의 열정, 식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것

선배 워킹맘의 말대로 1~2년이 지나니 워킹맘의 삶에 점점 익숙해졌다. 여전히 생소하고 어려운 일에 손들며 자처하긴 힘들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야 돌이켜보건데 내 안의 일에 대한 열정은 식은 것이 아니라 변화 되고 있었다.

복직 후 1~2년간 내가 겪은 일은 열정을 식히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균형을 익혀가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엄마 되기 이전의 나는 얼마나 오만했던가. 내 뜻대로 일이 추진되지 않으면 싸우고, 싸우고 나서 지면 퇴근하면서 울분의 울음을 삼키곤 했었다.

꼭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어도 결국 일은 잘 되기 마련이고, 내가 고집하는 것이 무조건 옳은 것도 아니었다. 때론 남의 말에도 귀를 기울일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인데, 내가 큰소리치고 말하고, 내가 말한 것에 책임을 지려고 더 많이 일을 하면서 내 자신을 혹사시켰으니까 말이다.

엄마가 되고 나서 가장 많이 훈련된 일은 듣고 기다리는 일이었다. 아이의 말을 듣고, 아이의 걸음마를 기다리고, 아이의 실수를 바로 고칠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것. 이런 삶의 태도는 직장에서도 반영되어 하고 싶은 말도, 공격적인 말도 조금 참고 상대방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방법이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일은 내가 추진하든, 남이 추진하든 되게끔 되어있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보조적인 역할도 기꺼이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회사라는 것이고 조직이니까. 이것이 엄마가 되고 나서 보였으니 그 전에 내가 얼마나 오만했는지 지금도 가끔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한다.

# 열정은 삶의 균형으로 이동

워킹맘 이전의 삶이 과도한 열정으로 개인의 삶을 모두 불태우는 것이었다면, 워킹맘 이후의 삶은 일과 삶의 균형을 생각하며 장기전으로 간다는 것이다.

나의 업무 스타일은 목표를 한번 정하면 옆은 보지 못하고 오로지 정해진 길로 목표만을 향해서 가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조금 천천히 가면서 주위 풍경도 바라보고, 때론 그 속에서 지름길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그런 경험은 열정보다는 균형 속에서 나온다는 것을 말이다.

육아를 통해서 비로소 바라 본 세상은 마라톤이라는 것이다. 물론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은 여전히 힘들다. 하지만 힘들지 않은 인생이 있던가? 인생이 쉽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던가? 인생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법이다. 워킹맘의 삶을 선택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삶은 여러가지 순기능으로 나에게 지혜를 나누어주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회도 개인의 삶도, 삶에 대한 태도도 쉽게 변하지 않는다. 복직 후 1~2년의 시간을 거쳐 내가 워킹맘의 삶에 서서히 녹아 들어가듯이 워킹맘을 대하는 사회의 문화도 쉽게 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분명히 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회사 여자 임원분 말씀으로는 예전에는 출산휴가도 없어서 2주일 병가를 냈었다고 한다. 그에 비하면 지금은 출산휴가와 육아휴직도 쓰고 있으니 분명 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변하고 있으니 그 천천히 변화하는 것에 맞추어 내 자신이 일과 육아에서 지쳐 나가떨어지지 않도록 균형을 맞추어가는 것, 워킹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혜선 시민기자의 브런치와 LG 그룹 Blog에도 (http://www.lgblog.co.kr/) 실렸습니다.
#워킹맘에세이 #워킹맘육아 #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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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하면서 프리랜서로 글쓰는 작가. 하루를 이틀처럼 살아가는 이야기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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