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보물 비슬산, 이렇게 망가뜨려야 합니까

[현장] 대구 생태축 망치는 비슬산 임도조성 공사, 그 현장에 가보니

등록 2016.05.16 17:14수정 2016.05.16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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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 났습니다. 지금 비슬산 한 능선의 숲을 다 베어내고 임도를 닦고 있어요. 그 계곡길이 얼마나 아름다운데, 이제 능선을 넘어 계곡길로 내려오고 있어요. 제발 이 미친 토건공사를 멈추게 해주세요."

한 제보자의 다급한 전화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며칠 전이었다. 대구광역시 달성군이 임도(임산물의 수송이나 삼림의 관리를 위해 조성한 도로)를 닦는 공사를 하면서 비슬산의 아름다운 숲을 마구잡이로 훼손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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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슬산 임도조성 공사 현장에서 뿌리째 뽑힌 채 나뉭구는 참나무. ⓒ 정수근


그래서 지난 13일 오후 그 현장을 찾았다. 문제의 임도는 가창 정대에서 화원읍 본리리까지로, 대략 총 6km의 길이에 해당한다. 현재는 가창 정대에서 비슬산 능선까지만 임도를 닦았다. 계획 구간의 절반을 닦았고, 이제 반대편 계곡으로 길을 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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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파란색 구간은 작년에 공사를 끝낸 상태이고, 붉은색 구간은 올해 공사를 계획한 구간이다. ⓒ 달성군 제공


그 반대편 등산길로 산을 올라 문제의 현장까지 가볼 요량으로 길을 나섰다. 그곳으로 가기 위해 들어서게 된 화원읍 본리리는 참 아름다운 동네였다. 비슬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은 남평문씨 세거지라는 전통마을도 자리잡고 있고,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화원자연휴양림도 있다. 대구에도 이런 곳이 있었구나, 하는 말이 절로 나왔다.

남평문씨 세거지와 화원자연휴양림을 지나 용문사 초입까지 차를 몰아 들어가는 길은 그 길 자체가 하나의 등산로였다. 도로가 놓이기 전에는 오솔길을 따라 걸어서 올라가는 멋진 등산로였을 것이다.

용문사 입구까지 다다라 이제 본격적인 등산길로 산을 올랐다. 유명한 용문계곡을 지나게 된다. 제보자의 말처럼 그 등산길은 참 아름답고 호젓했다. 너무 높지도 가파르지 않아 시골길처럼 아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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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젓한 오솔길로 이어진 등산길. 이 길을 따라 걸으면 힐링의 시간이 따라 없다. ⓒ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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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계곡길을 따라 물소리를 들으며 내내 산을 오르게 된다 ⓒ 정수근


용문계곡을 따라 물소리를 들으면서 걸어가니 힐링의 시간이 따로 없다. 평일 오후라 다른 등산객도 없이 오로지 산과 내가 마주하고 있을 뿐이다. 물소리와 이름 모를 새소리가 어우러진 그곳은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누가 이곳의 평화를 앗아가는가

그러나 힐링의 시간은 이내 사라졌다. 경매에 들어선 물건에 붙이는 붉은 딱지처럼 붉은색 리본이 새로 날 길을 따라 상류로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공사 계획대로라면 그 호젓한 오솔길을 따라 폭 5m의 넓은 길이 그 아름다운 계곡길로 밀고 올라가게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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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에도 공사용 표식이 내걸렸다. 계곡도 뭉개고 그 위로 임도를 닦겠다는 뜻이다. ⓒ 정수근


제보자의 다급한 심정이 절로 느껴졌다. 붉은 리본은 소나무에도 박달나무에도 걸렸다. 아름드리 소나무, 굴참나무, 상수리나무, 밤나무, 박달나무 등등 무수한 아름드리나무로 이루어진 숲이 몽땅 잘려나가게 생겼다.

어떤 나무는 노란색 테두리가 쳐져 있다. 이식용 나무라는 뜻이다. 개중에 모습이 아름답고 특이한 소나무는 그렇게 선택 받아, 수천만 원 이상의 큰돈에 팔려 그 정든 숲을 떠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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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젓한 오솔길에 나붙은 공사 표식. 이 길을 따라 폭 5미터 정도의 임도가 계획되어 있다. ⓒ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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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도가 계획된 이곳에 이름모를 야생화가 피었다. 이곳은 수많은 동식물들의 서식처다. ⓒ 정수근


떠나게 되는 것이 비단 나무뿐만은 아닐 것이다. 그 숲을 제집 삼아 살던 수많은 야생동·식물들은 하루아침에 보금자리를 잃고 쫓겨나는 신세가 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계곡길을 오르는데 한 시간도 안 걸려 참혹한 현장을 발견했다. 산허리를 중장비를 동원해 마구 까대면서, 위에서 흘러내린 사석은 아름드리나무에 부딪혔다. 굴참나무는 뿌리째 뽑혀 쓰려져 있고, 박달나무는 허리가 꺾여 있다. 불구가 된 나무들이 여기저기 나뒹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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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뽑힌 나무, 잘린 나무들이 온 숲을 나뒹굴고 있다. 산의 통곡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 정수근


산허리가 완전히 깎여나간 임도 조성 현장

조금만 더 오르니 문제의 임도 조성 현장이 나왔다. 예상대로 중장비를 동원해 산허리를 마구 깎아내렸다. 나무들은 잘려나간 채 어디론가 실려 나갔을 것이고, 일부는 정지 작업이 돼 주변 숲에 모여 있다. 임도는 폭이 무려 5m나 되는 도로다. 그 길에 시멘트 포장도 계획돼 있다. 이것이 이 나라 임도 공사의 실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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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허리를 깎아 임도를 조성하고 있다. 산의 속살이 그대로 드러났다. ⓒ 정수근


그래서 달성군 공원녹지과 담당자에게 물었다. 꼭 이런 아름다운 숲을 망가뜨면서 임도를 내야 하는가 하고 말이다.

"임도는 산림을 관리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유럽 다른 나라에 비해 임도 조성 비율이 많이 낮다. 친환경적인 임도를 닦겠다. 너무 걱정하지 말라."

돌아온 답변이다. 그러나 이는 산림의 양만 단순히 비교한 발언일 뿐이다. 유럽은 산림자원용으로 계획된 수림이 많다. 반면에 우리는 산림자원용으로 조성된 숲이 아니다. 즉, 산림자원으로 쓸 만한 나무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임도는 새로운 도로를 위한 포석?

이 현장에서도 확인한 바지만 임도는 대개 새로운 도로를 위한 포석으로 기능하기도 한다.슬그머니 새로운 도로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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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허리가 잘려나가고 길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 산은 산처럼 그대로 놔둬야 한다. ⓒ 정수근


지금까지 벌인 공사에서 정리를 하면 안 되는가란 필자의 질문에 담당자는 다시 대답했다.

"임도는 연결해야 한다. 이쪽과 저쪽의 주민들 편의를 위해서도 길을 연결해야 한다. 차도 왕래가 가능하다. 산악용 자전거도 이용하게 하면서 많은 이들이 활용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 애초의 목적과는 다른 방향으로 이미 계획돼 있는 것이다. 이 나라의 개발은 대개가 이런 식이다. 제보자도 그 점을 크게 염려하고 있었다. 제보자의 말에 따르면 비슬산의 다른 방향에 있는, 대견사지 터까지 전기차를 운행하는 길도 처음에는 임도였다고 한다. 임도가 어느새 차가 왕래하는 도로가 돼버린 것이다.

이에 대해 대구환경운동연합 노진철 의장은 말한다.

"임도 건설이라는 미명 하에 산야를 마구 파헤치는 파괴 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습니다. 임도는 산야를 관리하고 산불을 막기 위해서 놓는 것인데, 비슬산 임도건설은 그로 인해 오히려 산야가 파괴되는 국토개발 행정의 대표적 사례로 남을지도 모릅니다."

개발이냐 보존이냐

결국은 임도가 새로운 개발의 전초기지 역할을 할 뿐이란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지점이다. 적어도 생태계가 잘 보존된, 대구의 중요 생태축인 비슬산과 같은 산지에서는 임도 조성은 가급적 피하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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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을 옆을 난 호젓한 오솔길을 따라 등산길이 길게 이어져 있다. ⓒ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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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숲속학교로 이용하는 골짜기다. 이래도 공사를 강행하려는가? 환경은 미래세대의 몫이다. 아이들을 위해 이곳은 그대로 보존되어야 한다. ⓒ 정수근


개발이냐 보존이냐, 판단의 기준을 생각해본다. 개발도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꼭 필요한 개발이냐"는 질문을 해봐야 한다. 이번 임도조성은 꼭 필요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대구 근교의 두 아름다운 골짜기를 연결해서 새로운 개발을 하려는 욕망에 근거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필요한 개발'인지 의문스러운 이번 임도 조성공사는 원점에서 재검토 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전국의 모든 임도가 어떻게 조성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필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활동가입니다. 임도 건설 제보를 받고 직접 현장을 찾아 취재를 했습니다. 이 기사는 대구 인터넷매체인 <평화뉴스>에도 함께 실릴 예정입니다.
#비슬산 #임도 #달성군 #개발 #보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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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깎이지 않아야 하고, 강은 흘러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공존의 모색합니다. 생태주의 인문교양 잡지 녹색평론을 거쳐 '앞산꼭지'와 '낙동강을 생각하는 대구 사람들'을 거쳐 현재는 대구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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