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대화하기, 직장상사보다 어렵다

한국언론학회서 경청대화지수 최초 공개…'공공기관, 정치권 적용가능할 듯'

등록 2016.05.24 12:14수정 2016.05.24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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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의 경청과 소통의 현주소를 진단해볼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됐다. 한국언론학회(회장 조성겸)와 ‘함께하는경청’(이사장 정성헌)은 경청·대화 지수를 개발하고 그 타당성을 점검하는 자리로 ‘경청대화 지수 개발과 배경 세미나’를 5월21일 개최했다 ⓒ 박지호


저마다 한국사회를  '불통 사회'라 일컫지만, 무엇을 근거로 판단할 수 있을까. 개인과 집단의 소통 역량에 대한 진단과 측정이 과연 가능할까?

한국사회의 경청과 소통의 현주소를 진단해볼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됐다. 우리 사회 경청문화 확산을 목적으로 2015년에 출범한 '함께하는경청'(이사장 정성헌)은 경청대화 모형을 개발하고, 그 타당성을 학술적으로 검증받기 위해 지난 21일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개최된 한국언론학회(회장 조성겸) 봄철 정기학술대회를 통해 '경청대화 지수 개발과 배경' 세미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이범준 박사(충남대학교 아시아여론연구소 전임연구원)는 일반국민 515명과 기업체 직원 100명을 대상으로 경청대화 모형에 근거한 설문조사 조사결과를 토대로, 경청대화 모형의 이론적 토대와 모형 타당성에 대한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이어 함께하는경청 이사인 최명원 교수(성균관대학교 독어독문학과)의 사회로 '경청대화 모형 개발의 의미와 타당성'에 대한 토론을 진행했다. 토론자로 은재호 연구위원(한국행정연구원), 김은미 교수(서울대 언론정보학과), 허경호 교수(경희대 언론정보학과), 김현주 교수(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등 갈등관리와 대인커뮤이케이션 분야 전문가가 참여하여 모형 개선 및 활용 방안에 대해 조언했다.  

왜 경청대화지수인가? "91%가 한국사회 경청문화 절실" 

이범준 박사는 논문 서두에서 오늘날 한국 사회는 "'충동적·분출적 말문 트임'과 '상실된 말귀 열림'이 결합된 '군론(群論)'형 소통" 체계라는 박승관 교수(서울대 언론정보학과)의 글을 인용하며 한국사회 소통문화의 특징을 짚었다.

이 박사는 최근 한국사회에서 '경청 역량'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이유에 대해 "직장, 가정, 학교와 같은 개인의 일상 영역에서도 권위주의적 상명하달식의 의사소통 방식이 그 정당성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라며, "지도자와 가장의 덕목으로 경청, 대화, 관용 등을 높이 평가하는 가치의 전환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사회에 올바른 경청과 대화 문화가 절실하다는 것은 2015년에 '함께하는경청'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전국 만19세 이상 성인남녀 1006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우리사회에 경청문화 확산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91%에 달했다.

그리고 조사 참여자 79%가 정치인 집단을 우리사회에서 가장 경청이 필요한 집단으로 꼽았다. 우리 국민은 한국사회에 성숙한 소통문화가 절실하다고 생각하며, 경청과 소통이 지도자의 주요 덕목이라 판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결과였다.

'난 잘하는데 상대방이 문제야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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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경청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조사참여자의 대다수인 62%가 “나는 경청을 잘한다”고 평가한 반면, ‘상대방도 경청을 잘한다’고 대답한 경우는 7%에 불과했다. ⓒ 함께하는경청 제공



그렇다면 한국사회에 소통과 경청이 필요한 지점이 공적인 영역뿐일까. 조사 결과를 보면 일상생활의 사적 영역에서도 소통의 어려움과 경청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의견이 많았다. 조사 참여자의 대다수인 62%가 "나는 경청을 잘한다"고 평가한 반면, '상대방도 경청을 잘한다'고 대답한 경우는 7%에 불과했다.

또 45%의 응답자가 "상대방이 경청을 못한다"고 답한 반면, '자신이 경청을 못한다'는 대답은 '4%'에 불과했다. 대다수의 응답자가 불통의 원인이 주로 상대방에 있다고 평가한 셈이다.

직장상사보다 어려운 아버지와의 대화

경청이 잘되는 대상이나 집단에 대한 분류를 살펴보면, 친구 간 경청이 가장 잘 되는 것으로 집계됐고, 아버지와 자녀는 직장상사와 부하직원 간 대화보다 더 소통이 힘든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여야 정치인 간이나 진보와 보수로 이념이 다른 사람들끼리도 소통이 힘들다고 평가했다.

앞선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하자면, 불통사회라는 진단은 공적 영역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개인적, 조직적 차원의 사적 영역 역시 경청과 대화 역량이 요구되고 있다는 현실을 우회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세미나에서 소개된 경청대화 모형의 사회적 의미중 하나는 일상적인 사적 영역에서의 소통행위를 평가할 측정 척도가 마련되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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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이 잘되는 대상이나 집단에 대한 분류에 대해서 살펴보면, 친구 간 경청이 가장 잘 되는 것으로 집계됐고, 아버지와 자녀는 직장상사와 부하직원 간 대화보다 더 소통이 힘든 것으로 조사됐다. ⓒ 함께하는경청 제공


경청대화의 범위는? 동의하지 못해도 이해하는 데까지


이런 사회적 맥락 속에서 경청대화 모형은 '자가진단'과 '조직진단'의 2가지 형태로 개발되었고, 각각의 상황에 맞게 '듣기'와 '말하기'의 2개 영역으로 구성했다.

우선 듣기 관련 항목을 보면 단순히 다른 사람의 말을 수동적으로 듣는 차원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말로 표현"하거나 "다른 사람이 말한 내용을 정리하거나 확인"하는 것까지 포함되어 있다.

함께하는경청과 함께 경청대화 모형을 개발한 이범준 박사는 경청대화의 범위를 "나와 상대방이, 듣고 말하는 상호작용 행위를 통해,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것까지로 설정했다"면서, 대화를 통한 설득이나 합의 도달 여부와는 무관하게, 대화 상대방의 입장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정도를 측정하는 항목을 경청대화 모형에 포함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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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 관련 항목을 보면 단순히 다른 사람의 말을 수동적으로 듣는 차원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말로 표현”하거나 “다른 사람이 말한 내용을 정리하거나 확인”하는 것까지 듣기의 관련 항목도 지표 구성에 포함되어 있다. ⓒ 함께하는경청 제공



대화의 기술만? 경청의 관점과 태도까지! 

함께하는경청의 경청대화 모형은 경청대화 수준을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팀, 부서, 기관 등) 단위에서도 측정할 수 있도록 개발됐다. 이를 통해 공공기관, 민간회사, 정치권 등의 조직 내 경청대화 수준 및 개선방안 도출을 위한 진단지표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함께하는경청의 경청대화 모형은 대화의 행태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경청의 관점이나 태도와 관련이 있는 인식적인 부문도 지표로 구성하였다. 이를 통해 특정 대상 조직이 이견이나 다름이 허용되고 더 나아가서 환영되는 조직 문화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측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런 경청대화 모형은 2가지 유형의 조사를 통한 검증 과정을 거쳤다. 1차 조사는 일반국민 대상 온라인 조사로 실시되었으며, 응답자는 전국 만 19세 이상~60세 미만 성인 남녀 515명을 지역별, 성별, 연령별 인구구성비에 맞게 무작위 추출했다.

가장 최근에 기억에 남는 대화나 회의 상황을 떠올려, 대화나 회의를 주도한 2명의 경청대화 수준을 평가하도록 했다. 2차 조사는 서울의 한 기업 사무직 직원 100명에 대해 온라인조사 방식으로 실시되었는데, 조사대상을 평직원 26명, 대리급 29명, 과장급 25명, 차장급 20명 등으로 구성했다.

2차 조사는 응답자에게 자기 부서장이 평소 대화나 회의를 어떻게 하는지 평가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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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대화 지수에는 대화의 기술적인 부분뿐 아니라, 경청의 관점과 태도에 대한 부분도 지표로 구성됐다. ⓒ 함께하는경청 제공


화려한 말발보다 잘 듣는 게 경쟁력 

조사결과를 요인분석한 결과 23개 항목으로 측정된 경청대화 모형은 '경청하기(듣기)', '이해돕는 말하기', '대화 예의 지키기'등의 3개 차원으로 구성됐다.

또한, 경청대화 행위와 대화 참여자를 매력있게 느끼는 정도 간의 관계를 회귀분석을 통해 살펴본 결과 대화 참여자를 매력있게 느끼는 정도는 '경청하기(듣기)'의 영향이 가장 컸고, 그 다음이 '대화 예의 지키기'로 나타났다.

화자가 얼마나 편하고 다정하게 교류할 수 있는 사람인가는 그가 상대 말을 얼마나 잘 듣고, 상대가 편하게 말할 수 있게 배려하는지에 따라 좌우된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는 미국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Sherwyn Morreale 교수 등의 2015년 논문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대학생 62.3%가 능력 있는 소통행위자의 요건으로 "잘 듣는 사람"을 꼽았고, 이는 전체 21개 항목 응답결과 중 가장 높았다.

화자의 사교적 매력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는 '경청하기'의 영향이 가장 컸고, 그 다음이 '예의 지키기'로 나타났다. 화자가 얼마나 편하고 다정하게 교류할 수 있는 사람인가에 대한 판단에는 그가 얼마나 상대 말을 잘 듣고, 상대가 편하게 말할 수 있게 하는지가 중요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는 미국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한 설문조사 결과와도 자연스럽게 중첩된다. 조사에 따르면 능력 있는 소통행위자의 속성에 대한 질문에 대해 전체의 62.3%가 "잘 듣는 사람"이라는 항목을 선택했고, 이는 전체(21개 항목) 중 가장 높은 비율이었다는 것이다.

한편, 민간기업 내 경청대화 수준을 측정한 이번 결과에 따르면, 부서장 평가 기준으로 소통의 내용적 측면보다 소통의 관계적 측면(대화 예의 지키기)을 더 많이 고려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같이 일하기 좋은 사람'을 평가함에 있어 '이해를 돕는 말하기'보다 '경청하기(듣기)'의 영향이 더욱 컸다.

즉, 대화 상대에게 매력을 느끼는 정도는 그 사람의 '말하기' 능력보다는 '듣기' 능력 및 '듣는 태도'의 영향이 더 크다는 것이 복수의 조사결과를 통해 입증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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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발표 이후에는 ‘경청대화 지수의 의미와 타당성’에 대해 종합 토론이 진행됐다.. ⓒ 박지호


가장 큰 성과? "경청대화 실천 방침 구체적 제시한 것"

주제 발표 이후에는 '경청대화 모형 개발의 의미와 타당성'에 대해 종합 토론이 진행됐다. 이날 토론 사회를 맡은 최명원 교수는 "대화를 한다는 것은 주로 '내 말 좀 들어달라'는 의미로 여겨지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네 말도 들어줄게"라는 열린 마음이 균형을 이룰 때 의미 있는 대화가 가능하다"며 이를 위해 경청대화 모형에 기반한 경청대화 진단이 개인 또는 집단의 경청대화 수준을 제고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했다.

이어 김은미 교수는 "경청 중심의 관점에서 일상의 소통 행위를 평가할 측정 모형을 최초로 개발해 첫걸음을 디뎠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그동안 '듣기'의 중요성은 폭넓게 인식되고 있었지만, "경청"에 부여된 사회적 가치를 반영하여 이를 본격적으로 측정하려는 연구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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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발표 이후에는 ‘경청대화 지수의 의미와 타당성’에 대해 종합 토론이 진행됐다. 왼쪽부터 최명원 교수(성균관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김현주(광운대 교수), 김은미 교수(서울대 언론정보학과), 허경호(경희대 교수), 범준 연구원(충남대학교 아시아여론연구소 전임연구원). ⓒ 박지호


경청대화 모형을 발전시킬 방안에 대한 제언도 나왔다. 은재호 연구위원(한국행정연구원)은 경청대화 모형을 우리 사회의 조직진단 지표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주요 분야별로 맞춤식 모형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경청대화 모형 개발에 참여했던 함께하는경청 기획위원인 한국리서치 김춘석 이사는 "문항을 접하면서 시민 스스로 '경청대화'가 무엇이고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학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설문조사를 통한 경청대화 수준 측정의 실용적 의미로 꼽으며, 함께하는경청이 개발한 경청대화 모형이 "공공기관, 민간회사, 정치권 등에서 개인과 조직의 경청대화 수준을 측정하고, 바람직한 경청 문화 확산을 위한 도구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했다.

#함께하는경청 #경청대화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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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갈등전환센터 센터장 (서울시 이웃분쟁조정센터 조정위원, 기상청 갈등관리 심의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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