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지 몰린 노동자, 그들이 자살을 선택한 이유

[불안정노동자가 죽는다②] 죽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노동자

등록 2016.06.10 18:58수정 2016.06.10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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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9일,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청년노동자의 안타까운 죽음이 한국 사회를 흔들고 있다. 비용 절감을 위한 외주화와 불안정노동의 확산, 부족한 인력으로 돌려막는 경영은 노동자를 위험에 빠뜨리고, 질병으로 내몰고, 죽음에 이르게 한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기획기사를 통해 고용형태와 건강영향 연구 결과를 통해, 비정규직·하청노동 등 불안정노동이 노동자 건강을 어떻게 위협하는지 4회에 걸쳐 소개하고자 한다.<기자말>

(1) 사고와 산재 사망
(2) 정신질환과 자살
(3) 뇌심혈관질환
(4) 원인과 과제

둘째 딸의 결혼식 6개월 전이었다. 결혼식만 끝나고 나면 사직서를 제출할 테니 6개월만 기다려 달라고 했지만 회사는 당장 그만두라고 했다. 사직서를 쓰지 않고 버티자 3개월 후 문을 닫을 다른 지방 공장으로 발령을 냈다. 하루라도 빨리 사표를 내라고 집에까지 관리자들이 찾아오고 전화를 하고, 문자를 보냈다.

깔끔하던 사람이 잘 씻지도 않고, 먹지도 않고, 멍하니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체중도 두어 달 사이에 10kg 이상 빠지고 밤에 잠도 못자고 안절부절못했다. 둘째 달의 결혼식을 한 달 앞둔 어느 날 그는 회사 직원 휴게실에서 목을 매달아 자살했다. 잊을만하면 들려오는 그런 뉴스다. 어느 날 내가 맞닥뜨린 노동자의 사연이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죽음에서부터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어느 회사의 노동자까지, 노동자들이 스스로를 죽이고 있다.

자살자의 35%는 노동자

지난 10년 동안 한국은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했다. 2014년 기준으로 한국의 자살률은 표준인구 10만 명당 28.7명으로 12.0인 OECD 국가 평균보다도 두 배 이상 높았다. 평균 38분마다 한 명이 자살한다. 자살자의 약 35%는 노동자다. 뒤르켐에 따르면 자살은 개인적인 현상으로 나타나지만 그 행위는 사회적 배경과 집단의 역동(dynamics) 맥락에 있으며 전체 자살률은 각 사회 집단의 특성을 나타내는 지표가 된다. 이때 노동은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로 볼 수 있다.

노동자의 자살은 그들이 먹고 살아가는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노동을 통해 일상에 필요한 재화를 얻고 하루의 반 이상을 노동시간이 차지하니 말이다. 이윤을 위해 폭주하는 기관차와 같은 한국사회에서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노동시장의 특징은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교대근무, 초과근무, 저임금, 위험한 물질의 사용, 인력 부족, 비정규직의 증가는 모두 이윤의 증가를 위해 도입된 것이고 이는 노동자를 쥐어짠다. 마른 수건도 쥐어짠다는 신자유주의의 사회에서, 경쟁심화와 불안정 노동이 증가하는 한국사회에는 심지어 사회적 안전망도 부실하다. 노동자들은 빈곤의 문턱을 넘나들고, 실업과 반실업을 오가며 결국 힘들게 삶을 이어가는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한 때 큰 주목을 받았던 송파 세 모녀 사건이 가장 대표적으로 생산가능 인구의 실직과 근로빈곤이라는 노동시장과 관련한 요인과 자살의 관련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이야기한 사례처럼 지금도 어딘가에서 해고의 위기에 놓인 노동자가, 반실업의 경계에서 빈곤에 시달리던 노동자가, 불안정한 고용시장에서의 극심한 경쟁에 지친 노동자가 스스로의 삶을 포기하고 있을지 모른다.

연구나 통계에서도 배제되는 불안정노동

실제로 2003년부터 2011년까지 한국의 실업률과 자살률의 관련성을 분석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실업률이 증가하면 2개월이나 3개월 정도의 시차를 두고 자살률이 증가했다. 이러한 자살률의 증가 효과는 노동자나 실업자 모두에서 나타났는데, 2008년의 경제위기는 노동자들의 자살률 증가와 특히 관련이 있었다(Chan CH, et al. J Epidemiol Community Health 2014;68:246–252.). 1998년의 경제 위기 시의 자살률을 분석한 연구에서는 한국에서 경제 위기시의 자살율의 증가는 실업에 의한 것이라고 밝힌바 있다 (Chang SS, et al. Soc Sci Med. 2009 Apr;68(7):1322-31.).

비정규직에서 자살시도나 자살사고가 많다는 연구 (Min KB, et al. Prev Med. 2015 Feb;71:72-6) 나 비정규직 여성에서는 교육수준, 소득, 직업, 건강 행동 등의 영향을 보정한 후에도 정신건강이 나빠질 가능성이 3.25배나 높았다 (Kim IH, et al. Am J Ind Med. 2008 Oct;51(10):748-57) 는 연구 등도 있다.

실제 노동시장에서의 불안정성과 실업, 고용불안정은 자살이나 자살 사고(thought)의 주요한 위험요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업이나 고용불안정, 고용형태에 대한 연구는 소득수준 등에 대한 연구에 비해 상대적으로는 부족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한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그렇다. 비정규직은 고용 기록을 확보하기도 어렵고 그들의 생애를 추적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의 정의에 대한 합의조차 완전하지 않은 판인데, 실업과 반실업을 오가는 사람들의 정신건강에 대한 실태조사를 하는 것은 안정적인 정규직 노동자들의 정신건강을 조사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게 어렵다. 의학적 근거를 만들어 내는 대규모 코호트 연구들이 공무원이나 간호사와 같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유이다.

먹고 사느라 힘들고, 그들의 건강과 죽음은 기록으로 남지 않고 통계에서도 소외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의학적 근거가 논문으로 쌓이기도 힘들어 원인을 입증하기도 어려운 악순환이다. 그들이 온전히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스스로의 생사여탈권 말고는 아무것도 없을지 모른다. 어쩌면 그러한 절망이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을지 모른다. 먹고 살기 너무 힘들다. 같이 좀 살자.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김인아 기자는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로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직업환경의학교실에서 일하고 있다.
#불안정노동 #자살 #구의역 #위험의 외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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