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기계 본 어머니... "저 안에 사람이 있는겨?"

양기가 가장 센 날에 모를 심는다... 음력 5월 5일 단오날은 벼농사의 절정

등록 2016.06.14 16:59수정 2016.06.14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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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심는 손 ⓒ 전새날


10여 년 전 어느해 6월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침부터 부산하게 움직이니까 어머니가 왜 그리 바쁘냐고 하시기에 모 심는 날이라고 했더니 눈을 번쩍 뜨시면서 "그러면 같이 가자"고 하셨다. 논에 가서 한참을 두리번거리시던 어머니가 "모 심는다 카디 와 모꾼은 엄노?"라고 하셨다. 이앙기가 모를 거의 심어 가는데도 어머니는 수건모자를 머리에 쓰고 팔목에 토시를 낀 모꾼만 찾고 계셨던 것이다.


모꾼들이 가득 들어 있는 승용 이앙기

논에 가서 못줄이라도 잡아야겠다고 호기롭게 집을 나섰던, 아흔이 다 되신 어머니는 이앙기를 가리키면서 "저 안에 모꾼들이 들어가 있느냐"고 물으셨다. 내가 아무리 친절하게 설명을 해도 어머니는 모심는 들판에 20여 년 만에 와봤으니 이앙기를 이해할 수가 없으셨던 것이다.

경험이 단절된 20~30년 전 사람을 지금의 우리 농촌에 데려다 놓으면 다 마찬가지일 것이다. 써레질하는 트랙터나 논두렁 조성기가 논두렁 붙이는 걸 보면 신기하게 여길 뿐 아니라 설명을 거듭해도 이해하기 힘들어 할 듯하다.

모내기가 잘되면 그해 벼농사의 반은 했다고 보면 된다. 그런 모내기가 엄청 달라져 있다. 못자리에서 잘 키운 모를, 삶은 논에 심는 것이 모내기하는 날의 풍경인데, 요즘은 못자리도 없고 논 삶는 모습도 없다. 트랙터와 이앙기 한 대씩이면 일꾼 수십 명 몫을 한다.

트랙터가 논에 등장하기 전에는 수백 년 동안 농부들은 물 로터리를 치는 대신 써레와 번지로 논을 삶았다. 논에 모를 심기 위해 마름질하는 것을 '삶다'고 하는데, 이를 속된 표현으로 비유하자면 거래처나 이해관계를 지닌 상대방을 '구워삶는' 것과 뜻이 같다.


구워삶든 끓여 삶든, 삶으면 거친 충돌 지점이 사그라들고 녹녹해지니까 여린 모를 심기 좋은 물컹물컹한 논이 된다. 그 논에 등장하는 것이 모꾼들이다. 한 줄로 죽 늘어선 모꾼들은 한 손에 모 뭉치를 쥐고 다른 손으로는 모를 네댓 포기씩 못줄을 따라 심는다. 그런 모꾼들이 다 사라지고 승용 이앙기 한 대만이 논 수십 마지기에 모를 심는다.

양들이 농부들을 잡아먹었다고 표현되는 15~16세기 중세 유럽의 인클로저 운동처럼 이앙기가 모꾼을 다 잡아 삼켰다고 해야 할까?

써레질과 논두렁 붙이기

모내는 시기의 농촌 일상은 몇 날 며칠이 정교한 기계보다 더 빈틈없이 돌아간다. 일꾼을 맞추느라 집집마다 모내는 날의 순번을 정하고, 이에 따라 수로로 흐르는 한정된 물이 논갈이하는 집과 써레질하는 집 논에 시간 단위로 흘러들어간다. 모내기 며칠 전에 하는 논갈이에는 물이 조금만 들어가도 된다.

기계 같은 정교함은 모내는 날에 더하다. 여자 중심의 일꾼들이 모를 찌는 동안에 남자 일꾼은 써레질과 논두렁 붙이기를 한다. 써레질이 끝난 논에 번지질을 하고 나면 바지게에 모춤을 잔뜩 지고 논에 나른다. 모춤이 골고루 던져진 논에는 모꾼들이 와서 모를 심는다. 써레질과 번지질, 모 찌기와 모 나르기, 모심기와 못줄 잡기는 어느 것 하나라도 박자가 맞지 않으면 일을 망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써레질이다. 써레질이 잘 돼야 모 심기 좋을 뿐 아니라 모가 잘 자란다.

논갈이보다 써레질이 힘들고 번지질은 더 힘들다. 써레질이나 번지질이 다 무논에서 하는 일이다 보니 발이 푹푹 빠지는지라 써레를 끄는 소를 뒤쫓아 가는 걸음 자체가 무겁다. 더구나 써레 발에다 판자를 대거나 대나무 살을 얽어매고 논바닥을 평편하게 고르는 번지질을 하다 보면 무논의 흙이 떡이 되어 달라붙는데, 이걸 떨어내려고 써레를 무논에서 간간이 들어 올려야 한다.

모를 심는 속도보다 한발 앞서서 하는 게 논두렁 붙이기다. 이는 모 심는 며칠 전의 논갈이부터 시작하는데, 모를 심는 날까지 계속되기도 한다. 논두렁의 반 이상을 쟁기 날로 깊이 갈아 낸 다음 괭이로 흙을 물에 이개서 착착 바르고 괭이의 등으로 지그시 누른 채 죽죽 밀어가며 만든다. 논두렁에 나 있는 두더지 굴이나 모세 현상 탓에 물이 새는 걸 틀어막는 게 이 일의 핵심이다.

논두렁에 물을 끼얹어 가며 논두렁 붙이기를 끝내고 나면 논두렁이 햇볕을 받아 반질반질하게 빛나고 논의 안주인은 논두렁 따라 논두렁콩을 심기도 한다.

줄잡이의 상황 판단으로 모꾼 지휘

못줄은 넓은 줄과 좁은 줄을 교대로 치는데, 이는 논매기와 함께 벼 베기의 편의를 위한 것이다. 나중에 넓은 줄로 간격이 만들어진 곳으로 다니며 논을 매고, 좁은 줄을 따라 자리를 잡은 벼 서너 포기를 한 손에 움켜쥐고 낫으로 베게 된다. 이러한 못줄을 논의 양쪽 끝에서 잡고 있는 사람인 줄잡이는 못줄의 간격뿐 아니라 모심는 속도까지 조절해 내는 위치에 있다.

줄잡이의 능력은 모꾼들의 손놀림을 조정하는 데 있다. 3~4미터 간격으로 늘어서서 좌우로 오가며 붉은 리본으로 표시된 못줄을 기준으로 모를 심는 모꾼들이 마지막 모를 심기 직전에 줄잡이가 "줄이요~" 하면서 고함을 지르고 못줄을 거칠게 들어 올리면 흙탕물이 튀면서 모꾼들을 재촉하게 된다.

줄잡이의 상황 판단은 써레질과 모춤 나르기까지 속도의 완급을 조절하게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심는 속도가 빨라지면 모춤 나르는 일꾼들이 조급한 마음에 뒷걸음치면서 모를 심는 모꾼들 뒤쪽에 모춤을 내던지면 물이 튕기거나 모춤이 거꾸로 떨어지면서 짚 끈이 풀어져 모가 사방으로 흩어지기도 한다.

못줄을 잘못 잡아서 간격이 배게 되면 벼에 병이 올 수 있고 지나치게 넓어 버리면 소출이 줄어들게 된다. 못줄을 너무 느리게 넘기면 모꾼들의 솜씨를 묵히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이가 지긋해 근력도 딸리고 몸동작도 느리지만 경험이 많은 논 주인이 못줄을 잡는다.

망종이 있는 6월 초에서 단오 때인 6월 중하순에 모내기를 했던 것은 양의 기운이 가장 센 곡식인 벼를 양 기운이 가장 센 시기에 맞춰 심는 것이라 하겠는데, 요즘은 5월 초순부터 벼를 심는다. 이는 기후변화 탓도 있지만, 못자리 아닌 하우스 육묘가 더 큰 이유라 하겠다.

모를 내고 보름여 지나면 첫 논매기를 하는데, 팔뚝에는 토시를 끼로 베적삼 속으로는 물 버들가지를 구겨 넣어 몸에 생채기 나는 걸 막고 무더위를 쫒는다. 요즘 유기 벼농사에 적용하는 오리농법, 우렁이농법 등도 다 논매기의 일종이다. 논매기 과정에서 벼를 툭툭 건드리며 땅바닥을 긁어 줌으로 해서 벼의 가지 치기를 촉진하고 논의 물 빠짐을 막기도 한다. 제초제로는 감히 넘볼 수 없는 역할이다.

오랜 역사의, 논을 갈지 않는 직파

모내기는 벼농사의 꽃이라고도 하는데 모내기, 즉 이앙법이 보급된 지는 벼농사의 9000년 역사에 비하면 아주 짧다. 기록에 따르면 중국에서 10세기 초에 이앙법이 등장했다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중후기에 이르러서야 일반화된 농법이다. 그 전에는 다 직파를 했고 논을 갈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이앙법의 장점은 노동력 절감과 다수확 그리고 농지 이용률을 높여 이모작을 가능하게 한 것이라 하겠는데 기계화로 더 촉진된 측면이 있다. 반면에 논을 갈지 않는 벼농사 직파법은 비밀스러운 원리를 품고 있다.

논을 갈지 않으면 토양에 뿌리 구멍 구조가 생겨서 흙을 숙성시킨다. 1996년에 미국 농무부의 사라 라이트 박사가 발견한 '글로말린(glomalin)'이라는 강력한 점착성 당단백질에서 밝혀진 이치다. 뿌리 근처에서 식물과 공생하는 진균(眞菌, fungus)에서 분비되는 글로말린은 식물의 성장과 건강에 핵심적인 구실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논을 갈면 다 죽어버린다고 한다. 트랙터로 로터리를 치는 것은 이를 절멸시키는 일이라고 보면 된다.

글로말린 같은 뿌리균들은 토양을 비옥하게 하고 산화에틸렌을 분비하여 병균을 막아 내서 식물을 건강하게 한다고 한다. 논을 갈지 않을 때 일어나는 일들이라고 하는데, 지속 가능한 농법으로 주목할 만하겠다. 수천 년 벼농사의 역사는 이런 원리를 품고 있었나 보다.

▲ 모꾼 : 모를 찌거나 심는 일꾼. 모내기를 할 때는 써레질과 논두렁질, 모춤 대기 등 여러 일을 하는 사람이 등장하는데 그중 하나다.
▲ 찌는 : 뽑는다는 뜻. 모를 쪄 내는 것은 못자리에서 자란 모를 뿌리가 상하지 않게 잘 뽑아내서, 묻은 흙덩이를 대충 헹구어 내는 걸 말한다.
▲ 모춤 : 쪄 낸 모를 옮기기 쉽게 짚으로 묶은 다발
▲ 망종 : 24절기 중 하나. 보리나 벼 등 까끄라기가 있는 곡식을 거두거나 심는 날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한살림의 원간지 <살림이야기 6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글 전희식. 농부.
그림 전새날. 작가를 꿈꾸는 제과사. 여행과 만화를 좋아한다.
#모심기 #벼농사 #전새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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