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국정조사에서 다뤄야 할 6가지 제도개선방안

[연속기고 ④] 안전한 사회를 위한 '법'이 필요하다

등록 2016.07.11 17:10수정 2016.07.11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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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우리 사회에서 화학물질의 관리와 독성정보에 대한 국민의 알권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 대참사이다. 일과건강은 4회에 걸친 연속기고를 통해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위한 국민선언" 운동을 추진함으로써 법과 제도를 정비할 수 있는 계기를 가지고자 한다. - 기자 말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현재의 법규는 충분한가? 우리의 대답은 '아니오'다.

2015년부터 <화학물질의 평가 및 등록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이 시행되는데도 여전히 그러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그래도 아니오'라고 답을 할 것이다. 이제부터 하나씩 그 이유를 설명하고자 한다. 화학물질 관련 중요한 법률인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도 포함하여 살펴볼 것이다.

우리 사회는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추구하는 정책적 힘이 약하다. 가습기살균제, 불산누출사고, 삼성백혈병 등 각종 사고가 터질 때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거나 개선이 추진된다. 하지만 임시방편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제대로 마무리되지 못하고 시늉만 내기도 한다.

그 주된 이유는 산업계의 반발이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화학물질 관리를 제대로 못 해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가 더 죽는 소리를 하고 정부는 이에 맞장구를 치는 형국이다.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는 '규제는 암덩어리'라며 기업프렌들리를 넘어서서 아예 산업계의 대변인 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법률이 제 모양을 갖추기가 어려운 정치적 상황이다.

어렵사리 법을 만들면, 국무총리실 산하에 둔 민관합동규제완화추진단이나 규제개혁 장관회의를 통해서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무력화하는 일이 벌어진다. 결국, 사람의 생명을 지키고 환경을 보호해야 할 법률이 국민의 생명보다는 기업의 이윤을 향하면서, 제대로 만들어지지는 못하고 있다.

비밀은 위험하고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1981년 미국, 환경주의자였던 카터 대통령이 물러나고 규제 완화를 내건 레이건 대통령이 집권하였다. 미국 산업계는 즉각 움직였다. 정권교체 한 달도 채 되지도 않아서 카터 대통령이 발의한 화학물질 알권리 입법안을 노동부장관 직권으로 폐기하였다. 더 나아가 1983년에는 각 주별로 만들어진 알권리법률을 무력화하기 위해 연방법 제정에 들어갔다. 미국에서는 연방법이 우선하기 때문에, 동일한 조항이 연방법과 주법에 있을 경우 주법의 효력이 상실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산업계와 대통령의 무리한 행보는 결국 강력한 역풍을 맞게 되었다.

1984년 말 수천 명이 사망하고 수십만 명이 질병의 고통에 시달리게 된 보팔참사(화학공장에서의 대규모 유독가스 누출 사건)가 인도에서 발생하였다. 깜짝 놀란 미국 국민들이 자국의 상황을 점검한 결과 보팔참사보다 더 큰 참사가 진작에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 놓여있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 후 레이건 대통령이 무력화시킨 주별 알권리조항들이 연방법으로 부활하게 되었다.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알권리법으로 다시 태어났다. 산업계도 이것을 막지는 못했다. 기업과 정부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하자, 레이건 대통령은 어쩔 수 없이 강력한 환경법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 ▲ 참고 글: 국민의 목숨에 '꾀'를 부리지 말자 (http://safedu.org/activity/106006)

우리나라도 석면베이비파우더사고에 이어 가습기살균제사고, 계속된 화학물질 폭발・누출・화재 사고, 삼성백혈병 사건 등을 통해 기업의 비밀이 무제한 보장되고 있는 현실이 얼마나 위험한지 이미 확인되었다. 화학물질의 위험은 우리 일터와 생활공간 곳곳에 넘쳐나고 있다는 것도 점점 알려지고 있다. 지금처럼 국민을 무시하는 기업과 정부는 미국처럼 부메랑을 맞을 것이다. 비밀은 위험하고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우리는 제2의 가습기 살균제를 막고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한 사람과 환경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화학물질 제도개선방안 6가지를 요구한다.

첫째, 모든 화학물질의 독성정보와 용도정보는 사전에 파악되어야 한다.
현재 화평법은 기업을 위해 선별적 등록방식을 택하고 있다. 모든 화학물질이 등록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2500여 개의 화학물질을 지정하여 그것만 등록하게 할 예정이다. 국내 유통되는 4만5000 종의 화학물질 중 극히 일부만 독성과 용도를 파악할 것이다. 이 방법으로는 가습기살균제 사고를 막는 것이 절대 불가능하다. 유통량이 1톤 이상 되는 모든 기존화학물질 및 0.1톤 이상 되는 신규화학물질은 모두 등록되도록 화평법을 개정해야 한다. 물론, 기준 미만의 소량 물질로 인한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소비자들이 노출될 가능성이 있는 물질은 등록대상으로 별도 지정이 가능해야 한다.

유럽에서는 모든 화학제품에 대해 정확한 독성분류와 표시를 의무화하고 있고(CLP Regulation), 제조/수입자와 판매자들은 모두 화학제품의 독성분류와 표시 결과를 정부에 보고하고 있다. 이 규정은 유통량이 얼마이건 상관없이 적용된다. 이 정보는 인터넷으로 공개되고, 이를 통해 동일한 물질의 독성이 서로 다르게 분류되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고 있다.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이러한 장치가 화평법에 누락되어 있었다. 모든 화학제품의 독성분류와 표시결과를 보고하고 표준화할 수 있도록 화평법을 개정하자.

둘째, 모든 제품에 들어있는 화학물질 정보를 소비자가 알아야 한다.

유럽 <화학물질의 등록, 평가, 허가, 제한에 관한 법률(이하 REACH)>에서 제품이란 자동차나 의류, 소파, 장난감, 장판, 벽지 같은 고형제품(Article)을 뜻한다. 이 제품들로부터 방출되는 발암물질과 각종 환경호르몬은 사람들의 건강을 치명적으로 위협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유럽의 NGO들은 2000년부터 이미 제품으로부터 방출되는 화학물질로 인한 피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제품 내 화학물질 정보가 파악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것은 REACH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화평법을 도입할 때 처음부터 세척제 같은 생활화학용품만 관리하고 고형제품은 전혀 관리하지 못하게 법을 만들어버렸다. 생활 속의 화학물질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도록 모든 제품 중의 발암물질 등 고독성물질을 파악할 수 있게 화평법을 개정하자.

셋째, 발암물질 등 고독성물질은 제조/수입/사용을 줄여야 한다.

금지나 허가 또는 사용 제한은 매우 강력한 규제 수단이지만, 이렇게 규제할 수 있는 물질은 그 수가 몇 개 되지 않는다. 어떤 기업들은 그 물질을 사용하지 않으면 생산이 불가능하기도 하다. 그래서 북유럽에서는 오래전부터 '원치 않는 물질 목록(Undesirable Substance List)' 같은 식으로 금지나 제한은 아니더라도 향후 그렇게 되어야 하는 후보물질의 목록을 기업에게 제시해왔다.

기업은 이 목록에 오른 물질이 향후 금지될 가능성이 있으니 규제에 대한 사전대응 차원 및 기업의 이미지 제고 차원에서 해당 물질을 구매 금지하는 등 적극적 조치를 자발적으로 취해왔다. 유럽 REACH는 이러한 제도를 계승하여 발암성 생식독성 등 독성 우려가 큰 물질에 대해 '허가대상후보물질목록(Candidate List)'을 작성해 공표하고 있다.

이 목록에 오른다고 하여 허가나 사용제한이 곧장 되는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그렇게 된다는 면에서 기업에게 압박이 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허가물질이나 제한물질은 정하지만, '후보물질' 목록 작성공표를 의무화하지 않아 고독성물질의 저감과 대체 유도를 할 소중한 장치를 상실한 상태이다. 허가대상후보물질목록을 정하고 공개할 수 있도록 화평법을 개정하자.

넷째, 독성물질은 독성의 수준에 따라 관리되어야 한다.

발암물질이나 생식독성물질은 그 독성에 맞게 영업비밀이 될 수 없도록 하거나, 노동자와 소비자들이 노출되지 않도록 규제하는 장치들이 자동으로 작동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관리대상물질의 목록을 임의적으로 작성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독성에 따른 자동관리가 불가능하다.

과거 유해화학물질관리법에서는 '유독물'을 정하여 관리하였고, 화평법에서는 '유해화학물질'을 정하여 관리한다. 산업안전보건법은 '관리대상물질'을 정하고 있다. 발암물질 중에서도 이 목록에 누락된 것이 존재한다. 독성분류체계를 구축하고, 특정 독성을 가진 물질들은 그에 맞게 자동으로 관리되도록 화평법과 화관법과 산안법을 개정하자.

다섯째, 안전에 대한 결정권은 노동자/소비자/주민에게 있어야 한다.

미국 <비상대응계획 및 지역사회알권리법(EPCRA)>은 사고의 예방과 대응은 중앙이 아닌 지역별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취지로 제정되었다. 이 때문에 각 주별로 지역을 다시 분할하여 '지역비상계획수립위원회(Local Emergency Planning Committee)'를 설립하게 했다. 기업들은 이 위원회에게 물질안전보건자료와 사업장의 화학물질 취급정보 및 사고 시의 비상대응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위원회는 이 자료들을 토대로 지역사회 전체적인 사고예방과 대응 계획을 수립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화관법에 미국의 체계를 거의 수용하면서, 이 위원회는 배제했었다. 화학물질에 관한 주민의 참여와 협의는 시기상조라는 환경부의 입장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우리 주민들은 개별기업으로부터 개별고지를 받아야 하는 등 정보의 혼란을 겪을 가능성이 더 커지게 되었고, 효과적인 지역 차원의 공동대응은 불가능했었다. 다행히 최근 주민참여와 지방정부의 역할을 높이는 조례제정의 근거가 화관법 개정으로 확보되었다. 이에 만족하지 말고 보다 국민이 주체가 되는 화관법개정과 정책을 강화하자.

여섯째, 화학물질에 대한 완전한 알권리를 실현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화학물질 취급량 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기업의 비밀을 공개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국의 법률은 화학물질의 구체적 저장위치는 비공개를 하더라도 취급량은 모두 공개하는 것이 원칙이다. 물질안전보건자료도 주민들이 모두 볼 수 있게 하고 있다. 화관법에는 화학물질통계조사와 배출량조사 결과를 모두 공개한다는 것이 원칙이다. 이 원칙을 훼손하지 않고 잘 실현할 수 있는 세부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물질안전보건자료를 주민들이 볼 수 있도록 화관법을 개정해야 한다.

유럽과 캐나다, 대만 같이 물질안전보건자료제도를 운영하면서 기업비밀을 사전 승인하도록 하는 국가들이 있다. 이들은 또한 특정 독성 이상은 기업비밀이 될 수 없도록 정하고 있다. 유독 우리가 따라한 1983년 레이건 행정부의 법률만 이를 보장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신속하게 기업비밀 사전 승인 및 기업비밀 제한 장치를 도입할 수 있도록 산안법을 개정하자. 화학물질의 포장용기에 붙이는 라벨에 물질의 성분명과 고유번호(카스번호)가 반드시 공개될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 누구나 궁금한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포장용기에 제품의 중요 성분들이 반드시 기재되도록 산안법을 개정하자.
덧붙이는 글 일과건강은 7월 13일 14시 6가지 요구안을 구체화하는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위한 제도개선방안 토론회’를 국회도서관 지하1층 소회의실에서 정부부처(환경부,고용노동부,산업통상자원부)가 참가한 가운데 개최한다.

이 글은 일과건강 웹진에도 실렸습니다.
#가습기살균제 #산업안전보건법 #화평법 #화관법 #비밀은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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