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의 갑작스런 문자, "4년 전 관리비 안내셨네요"

비용 증명하느라 날려버린 아까운 내 시간... 집주인과 돈 거래시 유의할 점

등록 2016.07.17 17:56수정 2016.07.17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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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집에서 나와 독립한 이후로 쭉 전세살이를 해 왔다. 치사하고 아니꼬운 게 남의 집살이라고 하지만 아직까지 세 산다고 눈물 쏙 빠지게 서러웠던 적은 없다. 왕창 오른 전세금에 쫓겨 도둑 이사를 해 본 적도 없고 보증금을 떼인 적도 없다.


하지만 더러 마음이 불편하기는 했다. 계약이 만료되어 이사 가려고 했더니 내어 줄 돈이 없으니 알아서 사람 채워 놓고 이사 가라는 소리를 듣거나 전세는 알아서 다 고쳐 쓰는 거니 물이 새든 칠이 벗겨지든 알아서 하라는 소리를 참고 들어야 하는 정도다. 그래도 이 정도면 운이 좋았다.

그래서일까. 사소한 것에 신경을 안 쓰고 살았는데 그걸 알고 그랬는지 어제 집주인이 내 뒤통수를 '빡' 하고 때렸다. 황당하다면 황당하고 따지고 들면 또 골치 아파지는 이야기다. 그리고 딱히 나쁜 편 좋은 편 없이 돈이 사람을 '쫀쫀'하게 만든 이야기다.

요즘 무더위다. 비도 안 내린다. 벌이도 시원찮다. 타는 속을 식혀줄 것은 맥주 뿐. 어제 저녁에도 아이스크림 한 통을 앞에 두고 아이와 경쟁하고 맥주를 홀짝이며 하루 시름을 뭉개고 텔레비전에 영혼을 내 주는 중이었다.

해야 할 일은 끝냈고 해도 되는 일은 내일로 미룬 상태라 마음은 가벼웠고 술 기운에 첨벙 뛰어들어 허우적대다가 스스륵 잠이 들기에 아주 좋을 오후 10시 즈음이었다.

집주인이 문자 한 통을 보내왔다.


"안녕하세요. 저희가 관리비 정산을 하는데요. 2012년 9, 10, 11월과 2013년 2월 관리비가 입금이 안 된 것으로 확인이 됩니다."

일기장과 핸드폰을 뒤졌지만 원하는 정보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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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에서 전세로 사는데 월세 없이 관리비만 내왔다. 그런데 4년 전 관리비를 내라는 문자를 느닷 없이 받았다.(사진은 2014년 민달팽이유니온이 추진한 '원룸 관리비 프로젝트' 설문조사) ⓒ ⓒ 신인아


빌라에서 전세로 사는데 월세 없이 관리비만 낸다. 월에 4만 원이다. 아파트 관리비와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명확한 기준 없이 주인이 내라면 내는 거다. 어디에 어떻게 썼는지 내역 따위는 보여주지도 않는다.

고지서가 따로 나오지 않으니 집주인 통장으로 매달 입금해준다. 2011년부터 이 집에서 살았는데 아직까지 관리비 잘 받았다는 문자 답신 한 번 받은 적 없다. 그래서 다달이 입금 확인하고 잘 넘어가나 보다 살아왔던 건데 느닷없이 4년 전 관리비라니?

"이게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리요. 4년 전 관리비를 나보고 어쩌라고!"

이렇게 쏴붙여 주고 싶었으나 상대는 집주인이므로 입은 닫고 공손하게 알아보겠노라 답문했다. 그러고 나서 환상의 술상을 뒤로 하고 취기에 말랑말랑해진 머릿속을 헤집고 먼지 쌓인 일기장을 뒤적이고 다행히 처분 안 한 과거의 핸드폰을 살려 문자 내역을 뒤져보았다.

원하는 자료는 찾지 못했다. 내가 찾는 건 관리비를 대신한 집수리비 내역이다. 이 집에 이사 오고 나서 몇 번이나 보일러가 말썽을 부려 결국 새 걸로 교체했는데 그 과정에서 발생한 수리비가 있다. 몇 만 원 돈인데 집주인이 한 번도 즉시 내 준 적은 없다.

내가 현장에서 결제를 하고 관리비에서 제하는 방식으로 처리했다. 그 내역을 찾아보려는 거였는데 4년 전 일이고 영수증은 당연히 챙겨 두지 않았다. 집주인에게 제시할 다른 근거가 필요했다. 두 시간 넘게 뒤지고 헤집었지만 단서는 나오지 않았다.

대신 걱정만 잔뜩 쌓였다. 4년 전 입금내역을 어떻게 찾지? 찾는다고 하면 집주인이 순순히 받아들일까? 무슨 바람이 불어서 관리비 정산을 했을까?

자정이 가까워져 갔다. 아까운 내 저녁 시간이 홀랑 다 날아갔다. 영원히 찾아오지 않을 평화. 몇 십 만 원 순순히 내 주면 저녁시간을 지킬 수 있었겠지만 내게 그럴 허세는 없다.

날이 밝자마자 애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집으로 돌아와 끼니도 미루고 (지금 밥이 넘어가겠나) 인터넷으로 입금 내역부터 확인했다. 지레 걱정했던 것과 달리 몇 년 전 것이라도 내역을 확인하기는 쉬웠다. 엑셀파일로 받아 정리해보니 집주인이 계산한 게 완전히 틀리지는 않았다. 빈 구멍이 있었다.

이번에는 보일러 AS 센터에다 12, 13년도 수리비 내역을 알아보았다. 솔직히 전화를 걸면서도 반신반의했다. 4년 전 건데 데이터가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있었다. 와, 감사합니다.

가끔 집주인은 돈을 아낀다며 보일러 AS 센터가 아닌 사설 업체에 수리를 맡겼다. 만약 이번 건도 사설 업체가 수리를 했다면 내역은 찾을 수 없었을 거고 관리비 미납 구멍은 확인할 길이 없었을 것이다.

찾은 내용을 엑셀로 정리하고 자세한 내용을 첨부해서 집주인에게 SNS로 보냈다. 혹시 안 볼까봐 문자도 따로 넣었다. 오전 11시가 훌쩍 넘었다. 그렇게 평화로운 아침이 부산하게 날아가버렸다.

돈은 축내지 않았지만 시간을 낭비했다

돈은 축내지 않았지만 시간을 낭비했다. 영수증을 챙겨놓았으면 간단히 증명이 되었을 일이다. 집주인과의 거래라도 증빙을 받았어야 했다. 집주인이 저승사자도 아닌데 받을 게 있으면 정정당당히 받고 근거를 마련하는 게 옳다. 그게 서로 좋지 않은가.

이 참에 관리비 영수증을 끊어 달라고 할까? 내역도 좀 상세히 알려달라고도 하고 말이다. 그래야 재발을 막지?

하지만 내 공상은 거기서 끝을 냈다. 집주인이 저승사자는 아니더라도 1년 후면 얼굴 보고 재계약해야 한다. 괜히 심기를 건드릴 필요가 없다.

서둘러 밥을 먹고 출근을 하려는데 밖이 시끄럽다. 나가보니 집 앞을 거대한 이삿짐 차량이 막아 서 있다. 일하시는 분에게 어디 이사 나가는 거냐고 물어봤다.

"5층이요. 오늘은 옥상 화분만 내 가고 내일 다시 이사 가요."

5층? 집주인층이다. 집주인이 이사를 간단다. 아. 그래서 몇 년 만에 관리비 정산을 했구나. 그런데 이사를 갔으면 갔지 왜 관리비를 정산했지? 이 빌라를 다른 사람에게 판 건가? 그래서 새 주인에게 정산을 해 주려는 거였을까?

만약 건물이 팔린 거고 새 주인이 들어온다면 내년 전세 재계약은 물 건너 갔다. 지금 전세 보증금은 주변 시세에 비해 몇 천 만 원이나 싸다. 그런 까닭으로 나도 찍소리 안 하고 살았던 거다.

새 주인이 우리 사정을 봐줄까? 아닐 거다. 새집을 샀으니 새로 정리를 하려고 할 테고 보증금을 시세와 맞추든지 반전세로 돌리려고 하겠지.

하나 막았더니 하나가 또 터진다. 하지만 세상사 결국 내가 손 댈 수 있는 일만 내 것이다. 감당 안 되는 몇 천만원 돈을 걱정하다가 소중한 지금의 내 시간을 도둑 맞으면 곤란하다.

이번의 관리비 건도 가장 후회스러운 건 괜한 불안에 시간을 빼앗겼다는 거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알토란 같은 시간인데 말이다.

그래서 쫀쫀해진다. 아까운 내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

깨달은 점
1. 관리비는 반드시 그 금액을 계약서에 명기하고 계좌입금을 한다.
2. 집주인과의 금전거래를 반드시 기록하고 이메일 형태로 남긴다. 문자는 몇 년 지나면 사라진다고 봐야 한다.
3. 집수리 시 비용이 발생한다면 되도록 기록관리가 되는 업체를 선택한다.

#관리비 #빌라전세 #세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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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기업하면서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려고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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