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지배구조, 독일을 보라

<시시비비> 시민이 공영방송의 주인이 되는 독일의 사례

등록 2016.07.15 16:37수정 2016.07.15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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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는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고정 언론칼럼으로 매주 한 번 <오마이뉴스>에 게재됩니다.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면서도 한국사회의 언론민주화를 위한 민언련 활동에 품을 내주신 분들이 '시시비비' 필진으로 나섰습니다.

앞으로 김동민(한양대 겸임교수), 김성원(민언련 이사), 김수정(민언련 정책위원), 김언경(민언련 사무처장), 김유진(민언련 정책위원), 김택수(법무법인 정세 변호사), 박석운(민언련 공동대표), 서명준(언론학 박사), 안성일(MBC 전 논설위원), 엄주웅(전 방통심의위원), 이기범(민언련 웹진기획위원), 이병남(언론학 박사), 이용마(MBC 기자), 이진순(민언련 정책위원), 정민영(변호사), 정연우(세명대 교수)의 글로 여러분과 소통하겠습니다. - 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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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언론실천재단을 비롯해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와 전국언론노조 등 언론시민단체 회원들은 5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언론노조 사무실에서 '청와대 공영방송 언론장악 대국민 사과 및 이정현 의원 사퇴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세월호 참사당시 청와대 이정현 전 홍보수석의 KBS뉴스 보도개입 공영방송 장악 문제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는 청와대의 대국민 사과 및 당사자인 이정현 의원의 사퇴, 국회의 진상조사 등을 촉구하고 있다. ⓒ 최윤석


나치 독재에 철저히 이용당했던 참담한 역사에 대한 깊은 반성 때문일까. 오늘 독일에는 세계적 수준의 공영방송이 있다. 2차 대전 패전국 독일은 유럽연합(EU)의 견인차이기도 하다. 독일 재건은 막강한 사회통합의 기반 없이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리고 여기 중추 역할은 공영방송이 맡는다.

종전과 함께 이어진 뼈아픈 분단의 상흔 속에서 당시 서독의 공영방송은 몇 달 동안 모든 사상과 이념에 대한 철저한 검증 작업에 들어간다. 요즘은 이름만 나와도 지배자들이 겁을 집어먹는 마르크스에 대한 허심탄회한 논의가 빠지지 않았다. 공영방송 덕분에 그는 독일의 사회경제 시스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며 그 정신적 힘을 이어간다.

다원주의 원칙이 녹아있는 독일 공영방송 ZDF 이사회

독일 공영방송이 수준 높은 까닭은 정치적으로 독립된 다원적인 지배구조에 있다. 놀랄만한 사실은 공영방송 ZDF의 이사회가 무려 77명이라는 점이다. 여기에는 정부 관료에서부터 정치인, 종교인, 기자, 노조, 시의원, 구의원, 예술인, 영화인, 학자, 교육자 그리고 언론단체대표와 환경단체 대표, 유태인 단체 대표에 이르기까지 정치사회와 시민사회의 사실상 모든 세력이 포진하고 있다. 원칙주의자의 나라 독일답게 다원주의 원칙을 현실에 고스란히 녹여내고 있다. 이 정도는 해야 공영방송이 시민의 소유라고 떳떳하게 이야기할 수 있지 않겠는가.

지난 14일 정치권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방안을 공동 발의키로 했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 3당이 한목소리로 방송개혁을 외치는 모습은 오랜만에 보는 정치미학의 한 장면이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우리나라 공영방송이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얼마나 기여하느냐 대해 상당한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며 "20대 국회에서 여야가 진지하게 논의해 공영방송이 나라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법을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방송민주화와 다원주의적 지배구조에 대해 고민해온 일개 언론학자인 나로서는 이만큼 반가운 말이 없다. 노사가 추천하는 편성위원으로 꾸려지는 편성위원회 구성은 아주 바람직하다. 편성권 독립과 제작 자율성 보장은 언론계에서도 중요시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박태순 미디어로드 연구소장은 "지배구조 개선보다 제작 자율성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더 근본과제"라고 지적한다.

'특별다수제'만으로는 방송의 정치적 독립은 공허하다

다만, 이런 점을 빼곤 야 3당이 내놓은 개선방안에는 유감스럽게도 새로운 내용이 없다. 사실상 핵심은 이른바 특별다수제로 보이는데, 방송사마다 제각각인 이사 수를 여야 7대6으로 통일하고 사장선임 시 재적이사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이다.

특별다수제는 상당히 오래전부터 주장해온 내용일 뿐만 아니라 이사회 구성원에 대한 고민도 새로울 것이 없다. 기존 정당 추천으로 이루어진 지배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되 비율만을 바꾸는 것은 매우 '정치적인' 발상이다.

여야가 7명, 6명을 추천하는 방식은 무엇을 말하는가. 정치권이 방송의 독립을 말하고 있지만, 사실상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 점을 말해준다. 고작해야 이사회 비율을 개선하면서 방송의 정치적 독립 운운하는 것은 공허한 울림이다. 여기 시민사회가 들어갈 공간은 어디 있는가. 아니, 정치권에서 독립된 공영방송, 시민의 공영방송은 대체 언제쯤 '운운'되려는가.

정치가 방송을 통제했던 독일은 나치라는 참담한 역사적 경험을 초래했다. 반면, 시민이 지배자가 된 방송이 정치를 통제하는 오늘, 독일은 막강한 사회통합을 이루어내면서 유럽연합의 중추가 되었다. 독일은 앞선 말한 이사회 위원들 한명 한명을 방송법에 명시해놓았다.

다소 느리지만 다원주의 원칙을 하나하나 실현하는 독일의 모습에서 우리는 무엇을 찾아야 하는가. 정치권에서 독립된 시민의 방송을 만들기 위해 우리 정치권은 진정 혁신적인 정치적 사유를 하고 있는가. 시민의 방송이 되기 위한 진정한 지배구조는 독일이 선례를 보여주고 있다. 오늘 우리 정치권의 공영방송 지배구조 논의에서 '지배자'는 누구인가.
#공영방송 #지배구조개선 #방송 #언론 #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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