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꽃, 어머니가 무덤서 마실 나와 심으셨나?

[포토에세이] 강원도에서 만난 소소한 풍경들

등록 2016.07.21 13:46수정 2016.07.21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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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알리아가 피어난 농가 다알리아가 활짝 피어난 덕분에 쓸쓸해 보일 수도 있었던 농가가 아름답게 느껴진다. ⓒ 김민수


농촌마다 폐가가 늘어나고 있다.


폐가는 유년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마들렌' 같은 존재다.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달콤한 '마들렌'을 통해서 '잃어버린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도 같은 것, 그것이 내게는 곧 사라져버릴 것 같은 풍광들인 것이다.

강원도, 내게는 제2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어머니 산소가 있는 곳이기도 하기에 뭔가가 그립고, 삶이 허전할 때면 강원도로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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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창문 유리가 아닌 비료부대로 마감한 창문, 빛바랜 비료부대엔 세월의 흔적이 새겨져 있다. ⓒ 김민수


갑천면 하대리에 있는 작은 산골마을 '물골'은 마음의 고향같은 곳이다.

물골할머니의 부엌 창문은 유리 대신 '복합비료' 비닐로 마감되어 있다. 무심코 보아 넘겼는데, 하필이면 거꾸로 붙어있는 데다가 아주 오래되어 빛도 바랬다. 손대면 바스러질듯 오랜 세월이 지났다.


내 눈에는 왜 그동안 저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보았으되 별반 관심이 없었기에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의 눈이란, 보고자 하는 것만 보이는 법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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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판 아주 오래된 빨래판이지만, 여전히 사용되어 단단하다. ⓒ 김민수


할머니 부엌에 있는 빨래판은 단단했다.

세탁기도 없이 살아왔으니 당연한 귀결이고, 이젠 할머니 혼자 사시니 빨래라고 할 것도 없다고 하신다. 그래도 매일매일 걸레며 행주를 빨때면 빨래판을 사용하신다.

"저게 몇 년이나 되었을까요?"
"글쎄유, 삽십 년은 넘은 것 같은디유?"

그랬다.

저 빨래판은 그냥 빨래판이 아니라, 할머니의 식구와도 같은 존재다. 가족이다. 물건에 대한 예의, 그것은 저렇게 마르고 닳도록 사용해 주는 것이 아닐까? 너무 쉽게 사고, 너무 쉽게 싫증내고, 너무 빨리 변하는 것들을 소유하기 위해 우리의 삶은 얼마나 많이 소비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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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 시골의 길고양이는 도심의 길고양이보다 행복할 듯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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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 여기저기 떠돌다 그냥 한 식구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 길고양이 ⓒ 김민수


길고양이가 물골할머니 집 근처를 어슬렁거린다.

이젠 한 식구란다. 할머니가 키우는 개들과 한그릇을 사용할 정도로 친하며, 고양이들 덕분에 쥐 걱정도 한시름 놓았으니 서로 의지하고 사니 덜 외롭다고 하신다.

뭔가, 그렇게 사람은 의지할 것이 있어야 외롭지 않은 법이다.

그랬다. 시골집 한편에 피어난 다알리아 한무더기는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할 존재였던 것이다. 그처럼, 어디선가 흘러들어온 미물 길고양이지만, 그가 미물이 아니라 영물이 되어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도시의 길고양이들보다 그들은 한결 행복하고, 평온해 보인다. 물론, 고단한 면면이 없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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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마 처마를 받치고 있는 나무가 썩어 이끼가 자라고 있다. ⓒ 김민수


물골 할머니의 처마를 받치고 있는 나무가 썩어들어간다. 나무가 썩어 흙처럼 변했고, 그곳에서 이끼가 자라기 시작했으니 받침목으로서의 역할을 이제 곧 마감할 것이다.

세월의 흔적, 그렇게 자연의 모든 것들은 흙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사람도 흙에서 왔으므로, 흙에서 온 것으로 양식을 삼고 살아가므로, 흙으로 돌아갈 존재인 것이다. 어머니 산소에 오르는 길에 산도라지를 만났다. 더덕도 만났으나, 이제 도라지도 더덕도 시장에서 조금 사면 될 터인데 애써 피워낸 그들을 그냥 두는 것도 예의려니 싶었다.

그래도 여름이 가기 전에 한창 피어난 도라지 밭은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잠시 뒤에 기억의 한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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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지 보랏빛 도라지 밭에 바람이 불면, 보랏빛 파도가 출렁이는듯 하다. ⓒ 김민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봐봐, 당신이 보고 싶다던 도라지, 도라지밭이 있네!" 한다. 바람이 살랑 불자 보랏빛 파도가 일렁이는 듯하다.

좋다. 그러나 내가 보고 싶었던 도라지밭은 보랏빛 도라지 밭이 아니라 백도라지가 어우러진 도라지밭이었다. 내 바람에 완벽한 도라지밭은 아니었으나 이 정도면 분에 넘치는 도라지 밭을 만난 것이 아니겠는가?

약간의 부족함 혹은 약간의 결핍으로 인해 그 나머지 것들조차도 무의미한 것으로 취급하며 살아갈 때가 많다. 그 반성을 보랏빛 도라지밭에 서서 하게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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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까치수영 거의 끝물인 큰까치수영이라도 곤충들이 찾아와 꿀을 얻는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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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래붓꽃 배배꼬인 타래붓꽃이 피어나는 계절이다. ⓒ 김민수


어머니 무덤가에는 막 피어나는 동자꽃, 철 지난 큰까치수영, 지난해까지는 볼 수 없었던 타래난초가 피어났다. 다들, 어머니가 생전 좋아하시던 꽃이다.

"어머니가 살아계셨더라면 아마 저 꽃들을 무덤가에 심으셨을거야. 어머니가 홀로 계시기 심심하시니까, 무덤에서 마실을 나오셨나? 꼭 어머님이 심으신 것 같아."

장맛비에 어머니 산소로 가는 길에 풀이 껑충자랐다.

불효자의 양분을 먹고 자란 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 생전에도 돌아가신 후에도 불효자라는 생각에 슬퍼진다. 그래도 어머니 무덤가에 피어난 이런저런 꽃들을 보니 조금은 위안이 된다. 그렇게 외롭지 만도 않으셨을 것 같다.

저 꽃들이 싹을 내고 피어나는 모습들을 바라보시면서, 아침 이슬 송글송글 맺힌 모습을 보시면서, 활짝 피어난 모습을 보실 때마다 어머니는 나를 생각하시며 "야야, 꽃이 피었다. 구경 한 번 와라, 꽃도 보고 나도 볼겸" 하시지 않았을까 싶다.
#강원도 #물골 #길고양이 #빨래판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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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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