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기자님, '꼰대질'은 사양합니다

'진짜 속초' 못 느끼는 흙수저가 못마땅하신가요?

등록 2016.07.21 18:33수정 2016.07.21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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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켓몬고 플레이모습. 맨 오른쪽 사진은 테스트판에서 등장한 포켓몬의 모습. ⓒ 나이안틱


포켓몬 고(Pokemon GO) 열풍이다. 아직 우리나라는 포켓몬 고 미출시 국가이지만 속초와 같은 동북쪽 끝 도시들에서 게임을 할 수 있다. 게임 개발사는 마름모꼴로 세계 지도를 구획하는데, 해당 지역이 게임 제한 지역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이 퍼지자 많은 이들이 속초를 포켓몬 세계 속 태초마을(주인공이 모험을 시작하는 마을)에 빗대며 속초로 향했다. 속초행 버스 티켓은 일부 매진되었고, 속초시청은 포켓몬고 마케팅을 대대적으로 벌였다. 속초는 '포켓몬고' 열풍의 대표격 도시가 되었다. 이런 열풍 속에서 "실존주의적 물음"을 중요시 하는 기자님이 한 마디 직격탄을 날리셨다.

"속초가 아니라 속초의 무선통신망과 스마트폰 속에만 있는 포켓몬이 청년들에게 어떤 실존주의적 물음을 던지는지는 모르겠다. 예전의 무전여행과 심지어 불과 5년 전의 자전거 여행을 떠올려봐도 과연 컴퓨터 게임에 이렇게 열광하는 '흙수저 세대'를 이해할 방도가 마땅치 않다.

게다가 마침 큰돈 번 게임회사 대표와 검사 친구 사이의 스캔들로 온 나라가 시끄럽지 않은가. 청춘들이여, 속초에는 아무 일도 없다. 설악과 동해가 그대로이며 바위와 파도도 달라지지 않았다. 포켓몬 다 잡았으면 새벽 바다에 나가 진짜 속초를 느끼고 돌아올 일이다."

이 글은 과거 "청춘" 시절에 속초에서 무전여행을 한 <조선일보> 기자님이 쓴 글의 일부다. 그는 지난해 '간장 종지' 칼럼으로 유명세를 떨치기도 했다. 기자님은 과거 속초로 갔던 무전여행과 이후에 떠났던 자전거 여행의 경험을 한참 풀어놓다가 뜬금없이 '속초에는 아무 일도 없다'며 '흙수저 세대' 청년들을 도저히 이해 못 하겠다고 한다.

속초는 자신이 겪었던 속초와 그대로인데 왜 그리 난리냐는 투다. 포켓몬을 잡는, 사실상 게임이라는 그런 시간 낭비를 할 시간에 자신이 즐겼던 바다나 즐기라는 것이다. 그게 "진짜 속초"니까.

진짜 속초 보여주겠다고? '꼰대질'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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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켓몬 고 열풍 속에서 "실존주의적 물음"을 중요시하는 기자님이 한 마디 직격탄을 날리셨다. ⓒ 조선일보


감사할 따름이다. 무전여행에, 자전거 여행에 '진짜 속초'를 즐기셨다는 분이 요새 청년들에게 "진짜 속초를 알려주마"라며 추천한다. 지금 포켓몬 고 속에 나타난 모습은 속초의 모습이 아니라 무선통신망과 스마트폰 속에만 있는 것이기에 '가짜 속초'인 것이다. 허나 이상하다. 기자님의 속초 여행기를 보면, 정작 '진짜 속초'를 별로 즐긴 것 같지 않다.

1주일의 무전여행 끝에 도착하신 속초에서 기자님은 바다에 한 번 빠지고는, 밤새 술을 먹고 서울로 귀가했다. 5년 전이라는 자전거 여행에서는 가다가 위기를 맞아 트럭을 빌려 속초에 가고는 다시 돌아왔다. 그 여행은 "도전이란 위험한 것이고 이만큼 한 것도 대단하다고 서로 격려해주는 어른이 돼 있었다"란 말로 포장된다.

그 두 번의 속초 여행에서, 단순히 '동쪽 바다가 있는 곳'이라는 것 말고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나만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일까? 칼럼 속, 무전여행을 떠난 청년은 바다에 한 번 빠지고는 밤새 술을 먹고는 귀가했다. 거기에 '진짜 속초'는 어디에 있는가?

기자님 말대로 기자님 역시 속초가 아니라 강화면 강화, 거제면 거제 달려갔을 것이다. 그 여행의 핵심은 '속초'를 보러간 것이 아니라 결국 '서울에서 동쪽 끝 바다로 간다!'였다. '서쪽 섬을 봐야지'라는 점이 중요했다면, 도착지는 강화가 되고 뭐 그런 거 아니겠는가.

십분 양보해서 기자님이 청년들이라도 '진짜 속초'를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마음씨가 고운 분이라고 치자.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애초에 '진짜 속초'란 건 없기 때문이다. 기자님 말씀대로, 속초의 바다와 파도는 그대로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이후도 그럴 것이다. 허나 그것을 보고 즐기면 '진짜 속초'를 보고 온 것이고 그것을 보지 않으면 '가짜 속초'인 것은 아니다.

좋고 싫음에 '진짜' '가짜'가 어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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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에는 '진짜', '가짜'가 없다. ⓒ pixabay


속초에는 '진짜', '가짜'가 없다. 속초에 발을 닿은 사람이 붙이기 나름이다. 도시는, 특히 여행으로 만난 도시는 개인이 느끼기 나름이고 의미 붙이기 나름이다. "평양 감사도 제 싫으면 그만"이란 말처럼, 자기가 싫으면 그 도시가 아무리 좋아도 소용 없다. 좋고 싫음은 결국 개인의 문제고 거기에 '진짜' '가짜'란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도 기자님은 그럼에도, 자신이 '진짜 속초'라는 개념을 사용해도 될 만큼 속초에 대해서 잘 아신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허나 이를 어쩌나. 기자님의 글에서는 조금도 '진짜 속초'가 무엇인지 느낄 수 없다. 기자님이 말한 속초의 설악과 동해, 파도는 지리를 배운 초등학생도 말할 수 있는 수준이다. 애초에 대체 누가 속초라는 도시의 '진짜'와 '가짜'를 이야기할 수 있단 말인가?

에베레스트에 최초로 등정한 영국의 등반가 조지 맬로리는 "왜 에베레스트에 오르냐"라는 질문에 "산이 거기에 있어서"라고 말했다. 그에게는 자신이 오르는 산이 에베레스트라는, 세계 최고의 높이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산이 있었고, 자신은 그 산을 오를 뿐이다. 포켓몬 고도 마찬가지다. "포켓몬 고가 거기에 있어서"가 지금 열풍의 처음이자 끝이다. 기자님의 말씀대로 거기가 어딘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러므로 그 지역이 가지고 있는 자랑거리가 무엇인지도 중요하지 않다.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는 데에는 그만의 이유가 있다. 속초에 포켓몬 고를 잡으러 간 사람들 전부가 포켓몬만 잡고 돌아왔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들이 설령 속초를 전혀 즐기지 않았다고 한들 그게 무슨 문제인가. 그들은 속초로 간 이유를 충족했고, 그럼 끝인 것을.

남들이 내가 생각하는 것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즐기지 않는 것에 참견하고 훈수질 하는 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사실 포켓몬 고를 즐기러 간 사람들이 속초 바다를 보지 않는다고 한들 무엇이 문제인가? 당장 속초시장을 비롯한 속초의 사람들은 '속초마을'(속초를 태초마을에 빗댄 것)이 된 것을 기뻐하고 있고, 간 사람들도 즐거워하는데.

기자님은 "속초로 간 사람들은 무조건 바다를 3시간 이상 봐야 한다"는 법을 만들거나, "속초로 갈 때는 무전여행처럼 낭만있는 것으로 가야 한다"는 법이라도 만들어져야 만족하실 것 같다. 아니면 평생 청년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거나.
#포켓몬고 #한현우 #조선일보 #간장 두종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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