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둑에 축구골대? 어디에 쓰이는 물건인고

농부의 정성 가득한 마음을 읽었습니다

등록 2016.08.04 10:44수정 2016.08.04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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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농촌의 들녘은 그야말로 평화롭습니다. 바람결에 출렁이는 녹색의 바다는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아니 저거 뭐야?

짙은 녹색의 들길에 좀 의아한 게 눈에 들어옵니다. 논 가장자리 농기계 진입하는 곳에 말뚝을 박아 그물망을 쳐놨습니다. 다른 논에서는 볼 수 없는 생뚱맞은 풍경입니다.

'무슨 의미로 저렇게 그물망을 만들어 쳐놓았을까? 새 잡는 그물은 아닐 테고….'

참 이해가 안 되는 상황입니다. 저기에 어떤 의도가 숨어 있을까요?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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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농촌 들녘입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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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골대 그물망과 비슷해 보이지 않으세요? ⓒ 전갑남


축구 골대(?)도 아니고! 벼가 자라는 논에서 편을 나눠 공을 찰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모양새가 뒷그물, 옆그물을 쳐놓은 축구골대 그물망과 비슷합니다. 그물코는 듬성듬성합니다. 그렇다고 단단한 나일론으로 맨 그물망이 아닙니다. 뭐로 엮었을까 자세히 보니, 고춧대를 붙잡아 주는 비닐끈입니다.


비닐끈으로 일일이 손으로 엮어 만든 정성이 대단합니다.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들어가지 않았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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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써 가꾼 것을 지키려는 농부의 정성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 전갑남


그물망이 있는 논에는 피 하나 보이지 않고, 벼들이 건강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부지런한 농부의 정성이 깃들어 보입니다. 나는 의문을 안고 다시 자전거에 몸을 실었습니다. 한참을 달리다 논에 이삭거름을 주려고 준비하는 분을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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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농부들은 비지땀을 흘리며 논에 이삭거름을 줍니다. 쌀 한 톨이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 전갑남


"아저씨, 저쪽 그물망은 뭐예요?"
"저거요! 궁금하죠?"
"축구 골대처럼 생겼는데, 뭐 때문인지?"

"그거 고라니 그물망이에요!"
"고라니 못 들어가게 저렇게 쳐놨어요?"
"고 녀석들이 오죽이나 말썽을 피웠으면!"

고라니가 요즘은 논밭을 가리지 않고 해코지를 한다고 합니다.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밭작물 절단 내는 것도 모자라, 모가 심긴 들판까지 벼논을 망쳐놓는다는 것입니다.

고라니가 이젠 들판에까지

말씀을 듣고 보니, 이해가 가는 듯합니다. 자전거를 타다 보면 고라니가 논둑길에서 튀어나와 논바닥을 헤매는 경우를 가끔 목격합니다. 쏜살같이 내빼는 것을 보면 참 얄미운 녀석들입니다. 고라니는 벼이삭을 먹어치우고, 또 벼논을 뛰어다니면서 사정없이 벼와 논을 짓이겨 놓는다고 합니다. 나는 다시 물었습니다.

"저렇게 쳐놓으면 고라니가 못 들어갈까요?"
"아무래도 장애물이 있으니까!"
"그러다 훌쩍 뛰면요?"
"녀석들이 일부러 뛰나요?"

아저씨는 큰 효과는 의심스럽다고 합니다. 완벽하지는 못해도 그래도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라 이렇게라도 하는 것이 농사짓는 사람의 마음이라고 합니다. 자기는 저렇게까지는 못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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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니가 좁은 논둑길로 이동한다는 것을 착안해 그 길을 막아놓은 것입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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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을 고춧대 묶는 끈을 이용하여 손수 엮어 만들었습니다. ⓒ 전갑남


고라니는 야간에 주로 작은 논둑을 따라 움직인다고 합니다. 녀석들도 자기가 다니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길목이다 싶은 곳에 그물을 쳐놓으면 다른 데로 피해갈 거라고 합니다.

축구 골대 같은 고라니 그물망. 여기에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작물을 지키려는 정성 가득한 농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나저나 아저씨는 거름통을 짊어지며 혀를 찹니다.

"녀석들, 지들 먹을 것 많은 산에서나 열심히 먹고 살지, 사람 사는 데까지 와서 말썽을 피우는지!"
#고라니 #농촌 마을 #농무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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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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