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에 역풍 맞은 트럼프, 한 글자 때문에

[미완의 민주주의-그대의 목소리를 찾아라] 세계적 인지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 교수 ①

등록 2016.08.03 21:47수정 2016.08.13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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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힘의 논리로 억압하지 않는 생명의 순환을 이어가고자 세계의 지성들을 만난 것으로 2013년 책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를 펴냈다. 4년이란 시간이 지난 오늘날 더욱 다가오는 석학의 조언이다. 내일은 좀 더 나은 세상이 되길 희망하기에 당시 공개되지 않은 영상을 공개하며 독자들과 소통하고자 글을 쓴다. [편집자말]
지난 7월 21일 미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도날드 트럼프는 "I Alone can fix it"을 외치며 대통령 선거 후보 수락연설을 했다. 그는 '나만이 당신을 대신해 법과 질서를 다시 확립할 것이다'라고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일주일 뒤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그의 "Alone(홀로)"은 역풍을 맞는다.

힐러리 클린턴이 '그 누구도 홀로 강한 미국을 만들 수 없다'며, "Stronger Together 다 함께 더욱 강하게"를 외친 것이다. 무슬림, 이민자, 성소수자, 여성에게 등을 돌리고, 다른 나라에 담을 쌓아 올리며 영광을 재현할 수 없다는 공격이다. 미국 대선은 "Together 대 Alone"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이것이 정치의 언어이다. 대중의 감성을 자극하여 생각의 틀을 바꿔내는 창조적 프레임을 작동시키는 일. 정당(정치인)은 대중에게 파고들고자 광고시장처럼, 추구하는 가치를 강렬하게 응축시켜 유권자들에게 다가간다. 마음을 열고 설득해내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 '말, 말, 말'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세계적 인지 언어학자이자 '프레임(frame)'의 권위자인 조지 레이코프 교수를 만난 때는 2012년 총선이 끝난 직후였고, 이후 대선을 맞이해서 대한민국 전체가 선거로 출렁이던 봄이었다.

우리에게는 저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로 유명한 그와 정치적 마음이 움직이는 방식에 관해 이야기 나눴고, 무엇보다 당시 언론뿐 아니라 정치권에서 자주 거론하는 '프레임'이라는 단어가 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그에게서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이제 프레임이란 단어는 대중에게 매우 친숙해져 있다. 당시 그가 강조했던 민주주의가 추구해야 할 도덕적 가치는 아직도 우리에게 중대한 과제로 남아있기에 되새겨본다. 조지 레이코프와의 대담은 2012년 4월 27일 낮 12시 UC Berkeley 캘리포니아 주립 대학교 그의 연구실에서 이뤄졌다.


"우리에게는 민주주의를 대하는 두 개의 다른 시선이 있습니다. 진보적 시선과 보수적 시각이죠. 이는 두 개의 서로 다른 도덕적 시스템을 바탕으로 작동됩니다.


진보적 시선은 '민주주의란 시민들이 서로를 돌보는 가운데 기능하는 시스템'으로 보는 거죠. 책임 있는 행동으로 사회적 관점에서 서로를 돌보며,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보살피는 행동을 할 때, 윤리적으로 훌륭한 가치를 갖추게 됩니다.

그래서 마음으로부터 서로 공감할 필요를 느낍니다. 이는 사회적으로 작동합니다. 정부는 두 가지 도덕적 임무를 갖죠. 모든 사람을 똑같이 보호해야 하고, 똑같은 권한을 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공개념을 가져야 하고요.

무엇이 공공성일까요? 이는 정부가 모두에게 기본적인 조건을 제공하는 겁니다. 하수처리시설, 교량, 도로, 대중교통, 공립학교를 지원하는 거예요. 질병을 막는 공공 보건프로그램과 안전한 먹거리가 공급되는지 관리하는 거죠. 기업활동이 누구도 해치지 않고 제대로 기능하도록 규제도 마련해야 합니다. 수많은 부문이 공적 기능으로 작동되고 있어요. 공공 지원 없이 형성될 수 있는 사유재산이란 없습니다. 그 누구도 공공 서비스 없이 돈을 벌 수 없어요.

이는 중대한 사고로, 만약 당신이 '내 재산은 내가 모았다'라고 생각한다면요. 자, 당신이 하수시설을 설치했나요? 길을 닦았나요? 공군 조종사들을 당신이 훈련시켰습니까? 학교에서 일하는 모두를 당신이 양성한 거냐고요? 아니죠. 우리는 공공자산을 사용했습니다. 개인이 혼자 한 일이 아니에요.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공공성을 지켜내야 하는 책임이 따릅니다. 이것이 진보적인 시각입니다.

보수적인 시각은 이 모두를 거부합니다. 이렇게 말하죠. 민주주의는 타인을 신경 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로 관심을 돌리는 것이라고요. 민주주의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데 있어 타인을 상관하지 않을 자유를 보장한다고 합니다. 그 누구의 간섭없이, 타인을 걱정할 필요 없이 말이죠. 그러니까 개인적인 책임만 있을 뿐 사회적인 책임은 없는 거예요. 이를 저는 엄격한 아버지 도덕성이라고 부릅니다.

엄격한 아버지는 절대권력입니다. 선악을 판별하죠. 그래서 우리는 (그 아래서) 원하는 바를 추구할 수 있는 타당한 권위를 갖고 싶어 합니다. 엄한 아버지는 자식이 잘못하면 벌을 줍니다. 자식들은 벌을 피하고자 훈육을 따르고요. 물리적인 제제를 주고 개인은 훈육을 습득합니다. 그런 다음 생존 시장으로 나와 부자가 되고자 배움을 활용하죠.

그런데, 만약에 부자가 못 된다면, 이는 개인이 노력하지 않은 것이기에 가난해도 마땅합니다. 이것이 우파의 추론이에요. 그래서 (무상급식 논쟁에서) 부모라면 자식의 점심을 책임져야 한다고 말하는 거고, 배경에는 이런 사고 체계가 있어요.

이와 달리, 타인을 함께 살펴야 한다고 말하고자 할 때는 모든 학생이 충분한 영양을 받아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지적해야 하는 겁니다. 적절하게 수업받기 위해서, 또 그래야 기업이 인재를 고용할 수 있게 되고, 수업도 잘 진행될 수 있다는 점요. 민주주의 속에서 모두가 공평해질 수 있는 거죠.

우파는 평등은 상관없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개인의 책임과 도덕적 층위를 중시한다고 해요. 이는 돈은 각자 버는 거고 각자 소유라는 거죠. 공공성을 제거해야 한다고 합니다. 말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공적 자산 없이 뭔가를 해낼 수 없거든요. 하지만 그들은 이러한 생각을 하고 행동하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기에 다른 모든 것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 겁니다.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바로 '공공성을 어떻게 이야기 해낼 것인가'라는 물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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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레이코프 교수 ⓒ 안희경


레이코프는 국가의 공적 기능이야말로 삶의 질을 보장받을 수 있는 진정한 자유를 주는 장치라 강조했다. 자유란 바로 공공성을 갖추는 데서부터 보장되기 때문이다. 결코, 보수만의 가치가 아니다. 그는 언어 인지학자로서, 선입견에 갇혀 마음 닫아 건 대중들과 소통하는 창조적인 방법을 찾도록 당부한다.

"제가 제안하는 것은 진보적 정치를 실현하자는 행동이나 일반적인 언어가 아닙니다. 정신을 살리는 창조적 언어를 말합니다. (2012년 당시 수세에 몰리던 상황에서) 미국 민주당은 자신들이 사용해야 하는 언어를 놓치고 있어요. 왜냐하면, 자신들의 근거가 되는 정신을 놓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지과학에서는 이를 '저인지(hypocognition)'라고 부릅니다. 스스로의 위치에 대한 각성이 부족하다는 거죠. 공공의 이익에 대해 생각하는 정치인이라면 반드시 입에서 나오는 모든 언어를 공공의 이익으로 귀결시켜야 합니다."

그와의 대화가 이어지면서 내 안에서 올라오는 생각은 결국 '삶의 내용이 표현 또한 결정하는구나'였다. 타인을 설득하고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가장 먼저 각자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살피고 깨우쳐야 할 것이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공공의 이익이고, 내 생활이 바로 그 속에서 움직인다면, 일부러 공익을 효과적으로 말하려 애쓸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생각과 말과 행동은 늘 실체를 드러낸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냐의 문제이기에 언어적 재능은 삶의 진실을 이기지 못하고 속절없이 사라지기를 반복해왔다. 우리가 선출한 정치적 대리인들에 의해 공중으로 날려버린 공적자금이 얼마인가!

정치적 언어, 정치적 마음을 헤아리는 일은 결코 정당과 정치인만의 몫이 아니다. 우리 생활 곳곳을 규제하고 미래를 제한하는 힘이 정치이기에 언어를 통해 흘러가는 권력의 이동은 바로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의 과제인 것이다.

공공의 이익은 곧 내가 마실 물이며, 내가 누리는 공원과 전기, 학교이기에 공익을 지키는 일은 더불어 안전을 누릴 수 있는 기본권리이자 의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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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경 #조지 레이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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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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