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일 이화여대 본관에서 경찰과 학생들이 대치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제보 사진
심지어 학내에선 '운동권'으로 알려진 학생들의 농성장 출입을 제한한다거나, 대외적으로 '의도가 있는 정치세력들의 개입을 차단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학내 최고 학생 자치기구인 총학생회가 주도하는 시위도 아니었다. 학내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해 자발적으로 모인 학생들이 시위의 주체였고, 언론 대응도 그들이 직접 했다. 그간 대학가에서 볼 수 없었던 특이한 상황의 연속이었다.
여태까지 다양한 학내 운동에 있어 이렇게 폐쇄적인 전략을 구사하고도 승리한 싸움은 없었다. 단일 공동체의 구성원만으로 싸우기엔 학교는 강압적이었다. 이를 중재하는 교육기관은 뒷짐만 지고 있다보니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한 형태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부당한 일을 겪고 있다고 대중에게 알리면서, 학생회를 중심으로 뭉치는 형태를 취했다.
학생회는 전체학생총회를 개최한다거나, 학내 궐기대회를 열면서 학교와의 협상테이블을 준비했다. 그리고 판이 커지면 타 대학 학생회에서 이를 지지하는 기자회견을 여는 형태였다. 이 과정에서 '운동권'으로 불리는 학생들이 나름대로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이번 이화여대 학생들의 시위는 '전복', 그 자체라 말할 수 있었다.
이 배경에는 운동권에 대한 불신과 권력기관의 낙인찍기에 대한 공포감, 그리고 청년세대의 박탈감이 큰 요소로 작동했다. 이화여대 총장이 8월 1일, 학생들의 점거사건과 관련한 기자간담회에서 "정치권이 개입하고, 사회단체들이 개입하지 않았냐?"며 '순수하지 못하다'고 말하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기득권들은 대체로 시민들이 저항의 목소리를 내면 낙인찍기를 통해 그들의 권리와 요구를 짓밟아 왔다. 당연히 이화여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뭉쳤던 학생들에게도 '낙인찍기'의 공포가 작용했을 것이다.
'운동권'에 대한 불신도 한몫 작용했을 것이다. 정치적, 사회적 사안에서 목소리를 내지만 정작 가까운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가지지 못했던 학내 운동권들이 개입하는 게 달갑지 않았을 것이다.
많은 대학에서 '운동권' 소리를 듣는 학생들과 그렇지 않은 학생들의 간극은 크다. 평소에 만날 시간도 없고, 강의실보다는 학교 안과 밖에서 운동을 하고 있는 학생들이 달갑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나의 삶과 가깝지 않은 사람이 시끄럽게 떠들고 있으니 그것이 옳은 말일지라도 거리를 두고 싶을 수밖에 없을 거다. 더군다나 많은 대학의 '운동권'이 점점 위축되면서 외연이 좁아졌다. 이러니 학생들과의 접점은 멀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누적된 불신이 결국 이번 사건에서 단적으로 드러났다고 할 수 있겠다.
권력자의 낙인찍기와, 이에 대항하는 운동권에 대한 불신 사이에서 하나의 이슈에 대한 동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주도한 이 싸움은 비록 폐쇄적일지라도 결과적으로는 승리했다. 하지만 모든 운동이 이렇게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학생이 제 목소리를 내며 싸웠다는 쾌감 속에서, 이번 이화여대 학생들의 투쟁은 많은 고민거리들을 안겨준다. '동지는 간데없고, 승리의 깃발은 나부낀다.' 딱 그런 상황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27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공유하기
'운동권' 배제한 이대생들, 그들의 특이한 승리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