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식민지 청산, 어떻게 해야할까?

등록 2016.08.09 10:29수정 2016.08.09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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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영어를 써요? 일본어를 써요?"

한국의 식민지배 청산 노력에 대해 코스타리카 대학생들에게 설명하던 중에 나온 질문이다. 중남미의 경우 대부분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현실에 비춰보면 당연한 질문이다. 스페인의 침략이후 대부분의 나라에서 인디오들은 죽임을 당하거나, 자신들이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전염병으로 인해 죽어갔다. 살아남은 자들은 자신들의 땅에서 이방인이 되어, 대부분 산이나 밀림 속에 갇혔다.

그런데 정복자들 역시 자신의 모국에 의해 식민지민으로 전락했다. 오랜 식민지 해방 투쟁은 인디오가 아닌 그들에 의한 것이었다. 마침내 독립이 쟁취되었을 때, 인디오들은 새로운 국가의 구성원으로 규정되었다. 자연스레 정복자의 언어가 공식 언어가 되었다.

이후 지금까지 중남미에서 식민지, 식민성의 문제를 논할 때면 의례건 그것은 정복자들의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미국의 인디언이나 정복자들도 유사한 과정을 거쳤지만, 미국의 정복자들은 스스로 세계의 지배자가 되면서 식민성문제를 은폐해 버렸다. 오히려 미국의 식민지배나 식민지적 지배가 논란이 되었다. 한편으로 아메리카 대륙에서의 식민지배 문제는 이민자들이 늘어나면서 잊힌 문제가 되거나, 전혀 다른 문제가 되어버렸다.

"우리가 근대화 하는데 일본이 아주 큰 역할을 했다."

타이완 민주화운동 진영의 사람들과 식민지 경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듣는 말이다. 한국인들은 언뜻 이해하기 힘든 이 말은 자신들의 경험 속에서 나온 말이다. 장제스의 타이완 점령이후 원주민 탄압과 진보적 지식인에 대한 억압과 백색테러라 불리는 국가폭력, 그리고 오랜 독재의 역사가 그런 인식을 만들어 냈다. 정복자 일본이 물러난 후 들어온 장제스의 군대는 일본을 능가하는 정복자이며 독재자였던 것이다.

이와는 조금 다르지만, 동남아시아의 대부분 국가들은 일본의 전쟁 범죄와 점령 책임을 묻는데 크게 적극적이지 않다. 그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현재 일본의 도움이다. 일본의 교과서 역사왜곡이 시작되었던 2000년대 초 한국이 연대를 요청했을 때, 동남아의 국가들은 현실론을 근거로 한국이 자신들에게 어떤 도움이 되고 있는지를 되물었다.


베트남이 정부차원에서 한국에게 과거사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대신,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로 덮어두고 경제 협력에 치중하고 있는 현실과 같은 맥락이다. 한국에서 식민지근대화를 긍정적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이 등장한 것도 미국, 일본과의 협력이나 냉전적 체제경쟁을 더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현실론에 바탕하고 있다.

"경제협력을 통한 지원은 가능하지만, 식민지배에 대한 공식 배상은 곤란"

20세기 첫 인종학살의 주인공은 독일이었다. 독일은 1904년부터 1907년까지 식민지 나미비아의 저항세력에 대해 대대적인 집단학살을 자행했다. 이 3년여 동안 헤레레족 약 8만 5천 명 중 7만여 명이 학살되었다. 대학살이후 희생자들의 일부는 베를린으로 이송되어, 유럽인이 더 우수한 종족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실험재료로 이용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무려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독일 의학 박물관에 전시되었다.

이들 유골의 극히 일부가 공식사과와 함께 반환된 것은 2011년 9월의 일이다. 독일 정부가 나미비아, 탄자니아, 토고 등에 대한 식민지배 도중 노예제도를 운영했던 사실을 공식 인정한 것은 2001년이었다. 독일정부는 이들 국가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경제 지원을 진행했다. 그렇지만 헤레레족의 공식 배상요구는 수용하지 않았다.

프랑스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프랑스 의회는 2001년 노예매매와 노예제도를 인정하는 행위를 반인륜범죄로 처벌한다는 내용의 '토비라(Taubira)법'을 제정했다. 그렇지만 알제리에 대한 공식사과와 배상을 실행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프랑스 의회는 2005년 학생들에게 식민지 정책, 특히 북아프리카 지역 식민지 정책의 '긍정적인 측면'을 가르치는 교육 프로그램을 작성할 것을 법으로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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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누군가에게는 식민지 문제의 가해국임을 인식해야 ⓒ 참여사회


한국의 식민지 청산 요구의 본질은 어떤 모습일까?

세계 곳곳에는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으로 인한 상처가 아물지 못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현재진행형의 문제로 남아있다. 그런데 그것은 대체로 현실적인 제약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구제국주의 국가들은 여전히 세계 질서를 주도하면서, 과거사에 대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입각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과거사 청산의 모범국가로 알려진 독일이나 일본의 식민지 문제에 대한 태도는 크게 다르지 않다. 피식민국가 대부분은 경제성장의 과제나 국제 역관계에 구속되어 공식적인 사과요구는 고사하고,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조차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한국은 가장 강력하게 과거사 청산을 요구하는 국가 중 하나이다.

한국에서 개인의 식민지 피해 문제가 본격 대두한 것은 민주화가 진전되고 냉전체제가 붕괴되기 시작한 1990년대였다. 한편으로 대부분의 식민지 피해국가를 일컫는 또 다른 말인 소위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에서 한류 열풍이 거세다.

사실상 한국은 갈림길에 서있다. 한류를 발판으로 한국의 '경제영토'를 확장하며 제국주의 국가들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 아니면 지난한 역사 속에서도 스스로의 정체성을 지켜온 문화적 전통과 함께 민주화와 식민주의 극복을 위한 노력이 경제성장의 동력이 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공감을 확장해 나갈 것인가. 한국에 의한 피해국에 해당하는 베트남은 물론이고, 같은 식민지피해 문제를 가진 여러 나라들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떤 관계를 맺어나가야 할지, 일본에 대해 과거청산을 어떤 모습으로 요구해야 할지 깊이 생각하게 하는 8월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이신철님은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 소장입니다.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연구교수로 있으며, 남북관계사, 한중일 역사인식 문제 등을 매개로 역사적 관점에서 동아시아평화문제를 해명하고 전망하는데 관심이 많습니다. 『북한 민족주의운동 연구 1948~1961』, 『한일근현대 역사논쟁』등의 저서가 있습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8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역사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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