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권의 '고체 연대', 이대생의 '액체 연대'

[주장] 이기는 싸움 위해 '민주적인 운동 방식'과 '새로운 상상력·창조력' 필요

등록 2016.08.10 21:19수정 2016.08.10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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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지난 주장 기사 <정치성 '표백'해야 순수? 이화여대 승리의 한계들>에 대한 반론입니다.

대학의 시장 종속을 거부하는 이화인의 첫 승리에 많은 관심이 모이고 있다. 더불어 새로운 방식과 전술로도 주목받고 있다. '민주적인 운동 방식'과 '승리를 가져오는 효과적인 전술'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기존 운동권이나 이른바 진보적인 활동가 가운데 일부는 새롭게 등장한 민주적이고 창조적인 투쟁 방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서 문제다.

<정치성 '표백'해야 순수? 이화여대 승리의 한계들>이라는 기사에서도 그런 점을 볼 수 있다. 이 주장 기사는 이화인들이 정치성 표백에 나서기보다는 적극적인 정치 투쟁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 기사도 스스로 말하듯이, 정치와 운동은 애초에 불가분의 관계이고, 미래라이프 대학 폐지 운동은 '이미' 정치 운동이다. 다만, 운동권과는 다른 방식의 정치 운동을 선택했을 뿐이다.

이화인들은 '정치적으로 보이지 않는 정치 운동' 선택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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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라이프 단과대학 설립에 반대하는 이화여대 졸업생과 재학생 100여명이 지난 2일 오후 5시경부터 이화여대 정문부근에서 졸업증서를 학교측에 반납한다는 의미로 졸업증서 사본을 벽에 붙이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최윤석


이화인들은 미래라이프 대학 폐지 싸움에서 현명하게도 '정치적으로 보이지 않는 정치 운동'을 선택했다. 그것은 언론이 정치 혐오, 정치 피로를 유발하지 않는 전술로도 연결된다. 게다가 이러한 전술을 민주적인 과정을 통해 매우 신중하고 사려 깊게 선택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승리를 얻었다.

이번처럼 커다란 싸움에서 어떤 전술을 사용할 것인지 선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나아가 그것은 새로운 상상력과 창조력이 필요한 일이다. 이 점에 있어 이화인들은 '달팽이 민주주의'를 통해서 주동자도 없고 대변인도 없는 이화인 모두가 주동자인 새로운 전술을 창조해 냈다.

그러니까 이화인들은 민주적인 과정을 통해 집단지성을 제대로 발휘하여 고도의 정치적 선택과 판단을 내렸고, 창조력과 상상력으로 싸움 상대를 당혹시키는 새로운 전술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 낡고 뒤처진 운동권들이 하지 못했던 '첫 승리'로 그것이 효과적이라는 것을 증명해 냈다.


이화인들은 이미 고도의 정치 운동을 벌여왔다. 이는 사실 긴 말이 필요치 않다. 다만 그것이 낡은 생각을 고집하고 신념을 중시하는 운동권의 관성으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방식일 뿐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낡은 투쟁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을 인정하지 않고서 소모적인 갈등을 만든다. 진짜 문제는 운동권들이 아집을 버리고 다른 사람들의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큰 힘을 지닌 억압적인 상대에 맞서기 위해 창조적으로 싸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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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이화여대 본관에서 경찰이 한 학생을 끌고 가고 있다. ⓒ 오마이뉴스 제보 사진


<정치성 '표백'해야 순수? 이화여대 승리의 한계들>이라는 주장 기사는 "총장 퇴진 운동은 이화인들의 문제로 한정될 수 없으며, 전 사회적인 운동으로 확산될 때 더 큰 힘을 얻게 될 것이다"라거나 "미래라이프 대학 폐지 이후 '총장 퇴진' 요구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 지금, 더욱더 넓은 사회적 연대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이 촉구된다"고 주장한다.

그동안 익히 들었던 '운동권의 뻔한 얘기'다. 이 공허한 얘기에는 두 가지 큰 문제가 있다. 첫째, 운동권의 제안은 '신념에 의한 주장'으로 정작 정치 투쟁에서 승리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둘째, 시민의 진정한 연대를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그들이 입버릇처럼 늘상 얘기하는 "전 사회적인 운동", "더 넓은 사회적 연대"라는 알맹이 없는 추상어에는 진짜 민중, 진짜 시민이 빠져 있다.

해방 이후, 정권들은 정당성 부족 문제를 안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여러 차례 시민의 저항에 시달려 오기도 했다. 정권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국민을 탄압하는 방대한 조직, 고도의 기술, 담론 등을 오랜 시간 발달시켜 돌파해 왔다. 그리고 경찰, 검찰, 군대, 법원, 국정원 등 온갖 정부 기관과 언론을 비롯한 공식, 비공식 단체와 조직을 거느리거나 통제하면서 저항하는 시민들을 쉽사리 짓밟고 흩어 버렸다. 늘 국민을 탄압할 수 있는 철저한 준비가 되어 있고, 그런 쪽으로 상당히 잘 훈련을 받아 왔다.

국민을 살리는 데에는 매우 무능력하지만, 국민을 탄압하는 데에는 매우 발빠르고 효과적으로 굴러가는 게 정부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운동권의 '30년 전통의 뻔한 방식'에 이미 다양한 정부 기관들이 많은 덫을 깔아 놓았다는 점이다.

<정치성 '표백'해야 순수? 이화여대 승리의 한계들>기사에서는 세월호 리본과 위안부 팔찌의 착용이 제한된 것을 문제 삼는다. 시위 현장에서 세월호 리본과 위안부 팔찌를 착용하며 정치적 표현을 하는 것은 물론 자유다. 그러나 운동권은 그런 신념의 표현에 책임을 지고 있는가? 운동권은 소리 높여 신념만 표현하고, 그들의 행동이 낳는 결과에 대해서는 무책임하다.

큰 권력을 지닌 상대는 이화인들의 이미지를 헐뜯고 모함하기 위해 덫을 깔아놓고 만반의 준비를 해 놓았다. 종교의 영역에서는 신념대로 행동하고 덫에 빠지는 일이 찬양받을지 모르나, 정치의 영역에서 덫은 피해 가는 것이 현명하다.

정치는 신념 표현의 영역이 아니라, 책임의 영역이다. 신념 표현의 영역은 종교다. 정작 '정치' 영역에서 싸울 것을 권하는 그 글은 '신념' 영역에서 소모적인 싸움을 벌이고 있다. 운동권은 종교인도 아닌데 '정신 승리'로 무장한 채 자신들의 효과 없는 운동 방식을 도무지 바꾸지를 않는다.

그렇다면 시민은 어떻게 싸워야 할까?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운동을 벌인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말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경찰을 상대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항상 그들이 반응하도록 훈련받지 못한 일들을 하는 것이다."(데이비드 그레이버, <우리만 모르는 민주주의>, 279쪽)

우리는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말을 경찰에만 한정하지 말자. 억압적인 정부, 또는 큰 힘을 지닌 억압적인 상대에 맞서는 좋은 방법은 그들이 이미 준비한 덫에 걸리지 않게 창조적인 방식으로 싸우는 것이다.

운동권이 종교의 영역에 머물러 있을 때, 이화인은 현실 정치 영역에서 창조적으로 싸웠다. 막강한 힘을 지닌 상대가 미리 준비해 놓은 덫에 걸리지 않고, 상대가 반응하도록 훈련받지 못한 일을 벌였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이화인의 싸움이 빛난다.

그런데 운동권은 성공을 만든 이화인의 창조적인 전술을 흔들면서 과거의 방식으로 돌아가라고 흔들어 댄다. 그러니 운동권이 '구태 세력', '수구의 거울', '꿘충'이라는 소리나 듣고 미움만 살 뿐이다.

연대는 소통과 공감의 확산으로 그때그때 창조적으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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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본관 앞에서 교육부의 지원사업인 '미래라이프대학' 설립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3일째 점거농성이 진행 중인 본관 앞에 모여 있다. ⓒ 연합뉴스


연대의 형식과 방식은 미리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시민들에게 사회적 소통과 공감이 확산될 때마다 그때그때 적절한 연대가 구성된다. 이것이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는, 자유로운 시민들의 다채로운 구성이 있는 '액체 연대'다. 때로 그것은 거대한 파도처럼 폭발적인 모습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2002년 '효순이 미선이 춧불집회'가 그랬고, 2008년 '광우병 우려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가 그랬다.

반면 창조성과 상상력과는 거리가 먼 운동권에게는 연대의 방식과 형식이 미리 정해져 있다. 속류 마르크시즘의 조잡한 도식 아래 변혁의 주체가 설정되어 있고 그들이 정의하는 민중에 따라 알맹이 없는 연대를 이루려고 한다. 이것은 다양한 시민을 수용하지 못하는 '고체 연대'다. 그것은 특정 조직들의 경직된 블록으로, 그 블록은 진정한 시민의 연대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액체 연대' 방식와 '고체 연대' 방식은 갈등을 빚어온 역사가 있다. 2002년 '효순이 미선이 촛불집회' 때가 시작이다. 기존에 집회라고 하면 쇠파이프, 화염병, 각목, 죽창 등이 난무하는 과격하고 폭력적인 조직된 운동권들의 집회였다. 하지만 이때 다양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평화적인 시위를 전개했다. 집회 참여자도 달라졌다. 여중생부터 아이를 업고 나온 어머니까지 다양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민주적인 토론이 벌어졌다. 유동적인 민주 시민의 '액체 연대'가 시작된 것이다. 각기 다른 이들이 모인 '액체 연대'는 수평적인 관계와 활발하고 민주적인 토론을 자극한다.

그런데 '촛불을 들고' 있는 시민들 앞에, 운동권들은 '깃발을 들고' 무리를 지어 나타났다. 그들에게서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토론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단위별로 위계적인 지도와 조직적인 행동만 있었다. 이는 촛불집회를 만든 시민들에게 모욕을 주는 무례한 행동이었다.

이에 시민들은 운동권 조직들에게 '깃발을 내리라'고 요청하며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토론에 참여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운동권 조직들은 기존의 관례대로 선명한 깃발과 위계적인 지도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동적인 시민들과 조직적인 운동권 사이의 갈등이 시위의 현장에서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2008년 '광우병 우려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도 다양한 부류의 유동적인 시민들이 참여해 역동적인 변화를 보여주었다. 처음에는 중·고등학생들이 일을 벌였고, 매우 다양한 시민들이 참여해 판이 계속 커졌다. 당시 누구도 그런 연대가 이루어질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 집회의 현장에서도 운동권과의 갈등이 드러났다. 소수의 운동권들은 시민들이 물렁하다며 더욱 조직적이고 선명한 투쟁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했고, 다양한 부류의 시민들은 그들의 허무맹랑한 '지도'를 거부했다.

현대 사회의 운동은 예측할 수 없고 수용성이 큰 '액체 연대'에 열려 있어야 한다. '액체 연대'에서는 그 다양성으로 인해 수평적인 관계와 민주적인 토론이 자극되며, 누구도 예기치 못한 폭발적인 힘이 나온다. 반면 이미 복잡할 대로 복잡한 한국 사회에서 경직된 '고체 연대'는 다양한 시민을 모을 수도 없고 파괴력도 없다.

이화인은 이미 재학생, 졸업생, 교수들의 아름다운 연대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아름다운 승리가 알려지면서, 다양한 곳에서 공감과 지지의 표현이 나오고 있다. 공감과 지지의 표현, 이것이 연대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이화인은 기존 방식과는 다른 새로운 연대를 낳고 있으며, 그것이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운동권 사람들은 경직된 고체 연대를 고집하는 일을 그만두고, 유동적인 액체 연대 속으로 흘러들어 가 함께하면 될 일이다.

민주적인 운동 통해서만 이기는 싸움 만들 수 있다

이화인의 싸움은 상상력과 창조력으로 새로운 학생 운동, 새로운 진보의 싹을 틔웠다. 새로운 역사의 등장이 아직은 어색할 수 있다. 그것을 본 사람에게도, 정작 당사자들에게도. 이화인의 승리는 결코 독특한 투쟁 방식의 우연한 승리가 아니다. 새로운 정치 운동과 새로운 연대가 낳은 승리다. 이 새로운 방식이 퍼질 때만이 승리가 계속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새로운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운동을 벌인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말을 다시 한 번 참조해 보자.

"어떤 사회적 장치가 있어야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를 만들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하는 것처럼, 운동의 민주적인 성격을 지키기 위해 어떤 종류의 전술을 쓸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데이비드 그레이버, <우리만 모르는 민주주의>, 278~279쪽)

이번 이화인의 싸움은 '운동의 민주적인 성격'으로 주목받고 있다. 학생회도 일반 학생 자격으로 참여할 뿐이고, 직책이나 직함도 없이 자원봉사를 통해서 모든 일이 돌아간다. 또 서로를 '벗'이라고 부르며 수평적인 모습을 보이고, 자발적인 쓰레기 분리수거 등 매우 질서 있는 농성을 벌였다.

무엇보다 운동의 민주적인 성격은 집단 지성이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한다. 그리고 그것은 상대가 진압하도록 준비하고 훈련받은 대응을 넘어설 수 있는 창조적인 전술을 낳는다. 민주적인 운동을 통해서만 우리는 이기는 싸움을 만들 수 있다. 이때 과거 방식의 고집은 방해가 될 뿐이다.
#이화여대 #정치 #연대 #민주주의 #운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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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2002년, 오마이뉴스 2.22상 수상 2003~2004년, 클럽기자 활동 2008~2016년 3월, 출판 편집자. 2017년 5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자유기고가. tmfprlansgh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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