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본관 앞에서 교육부의 지원사업인 '미래라이프대학' 설립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3일째 점거농성이 진행 중인 본관 앞에 모여 있다.
연합뉴스
연대의 형식과 방식은 미리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시민들에게 사회적 소통과 공감이 확산될 때마다 그때그때 적절한 연대가 구성된다. 이것이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는, 자유로운 시민들의 다채로운 구성이 있는 '액체 연대'다. 때로 그것은 거대한 파도처럼 폭발적인 모습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2002년 '효순이 미선이 춧불집회'가 그랬고, 2008년 '광우병 우려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가 그랬다.
반면 창조성과 상상력과는 거리가 먼 운동권에게는 연대의 방식과 형식이 미리 정해져 있다. 속류 마르크시즘의 조잡한 도식 아래 변혁의 주체가 설정되어 있고 그들이 정의하는 민중에 따라 알맹이 없는 연대를 이루려고 한다. 이것은 다양한 시민을 수용하지 못하는 '고체 연대'다. 그것은 특정 조직들의 경직된 블록으로, 그 블록은 진정한 시민의 연대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액체 연대' 방식와 '고체 연대' 방식은 갈등을 빚어온 역사가 있다. 2002년 '효순이 미선이 촛불집회' 때가 시작이다. 기존에 집회라고 하면 쇠파이프, 화염병, 각목, 죽창 등이 난무하는 과격하고 폭력적인 조직된 운동권들의 집회였다. 하지만 이때 다양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평화적인 시위를 전개했다. 집회 참여자도 달라졌다. 여중생부터 아이를 업고 나온 어머니까지 다양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민주적인 토론이 벌어졌다. 유동적인 민주 시민의 '액체 연대'가 시작된 것이다. 각기 다른 이들이 모인 '액체 연대'는 수평적인 관계와 활발하고 민주적인 토론을 자극한다.
그런데 '촛불을 들고' 있는 시민들 앞에, 운동권들은 '깃발을 들고' 무리를 지어 나타났다. 그들에게서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토론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단위별로 위계적인 지도와 조직적인 행동만 있었다. 이는 촛불집회를 만든 시민들에게 모욕을 주는 무례한 행동이었다.
이에 시민들은 운동권 조직들에게 '깃발을 내리라'고 요청하며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토론에 참여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운동권 조직들은 기존의 관례대로 선명한 깃발과 위계적인 지도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동적인 시민들과 조직적인 운동권 사이의 갈등이 시위의 현장에서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2008년 '광우병 우려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도 다양한 부류의 유동적인 시민들이 참여해 역동적인 변화를 보여주었다. 처음에는 중·고등학생들이 일을 벌였고, 매우 다양한 시민들이 참여해 판이 계속 커졌다. 당시 누구도 그런 연대가 이루어질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 집회의 현장에서도 운동권과의 갈등이 드러났다. 소수의 운동권들은 시민들이 물렁하다며 더욱 조직적이고 선명한 투쟁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했고, 다양한 부류의 시민들은 그들의 허무맹랑한 '지도'를 거부했다.
현대 사회의 운동은 예측할 수 없고 수용성이 큰 '액체 연대'에 열려 있어야 한다. '액체 연대'에서는 그 다양성으로 인해 수평적인 관계와 민주적인 토론이 자극되며, 누구도 예기치 못한 폭발적인 힘이 나온다. 반면 이미 복잡할 대로 복잡한 한국 사회에서 경직된 '고체 연대'는 다양한 시민을 모을 수도 없고 파괴력도 없다.
이화인은 이미 재학생, 졸업생, 교수들의 아름다운 연대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아름다운 승리가 알려지면서, 다양한 곳에서 공감과 지지의 표현이 나오고 있다. 공감과 지지의 표현, 이것이 연대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이화인은 기존 방식과는 다른 새로운 연대를 낳고 있으며, 그것이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운동권 사람들은 경직된 고체 연대를 고집하는 일을 그만두고, 유동적인 액체 연대 속으로 흘러들어 가 함께하면 될 일이다.
민주적인 운동 통해서만 이기는 싸움 만들 수 있다이화인의 싸움은 상상력과 창조력으로 새로운 학생 운동, 새로운 진보의 싹을 틔웠다. 새로운 역사의 등장이 아직은 어색할 수 있다. 그것을 본 사람에게도, 정작 당사자들에게도. 이화인의 승리는 결코 독특한 투쟁 방식의 우연한 승리가 아니다. 새로운 정치 운동과 새로운 연대가 낳은 승리다. 이 새로운 방식이 퍼질 때만이 승리가 계속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새로운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운동을 벌인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말을 다시 한 번 참조해 보자.
"어떤 사회적 장치가 있어야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를 만들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하는 것처럼, 운동의 민주적인 성격을 지키기 위해 어떤 종류의 전술을 쓸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데이비드 그레이버, <우리만 모르는 민주주의>, 278~279쪽)이번 이화인의 싸움은 '운동의 민주적인 성격'으로 주목받고 있다. 학생회도 일반 학생 자격으로 참여할 뿐이고, 직책이나 직함도 없이 자원봉사를 통해서 모든 일이 돌아간다. 또 서로를 '벗'이라고 부르며 수평적인 모습을 보이고, 자발적인 쓰레기 분리수거 등 매우 질서 있는 농성을 벌였다.
무엇보다 운동의 민주적인 성격은 집단 지성이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한다. 그리고 그것은 상대가 진압하도록 준비하고 훈련받은 대응을 넘어설 수 있는 창조적인 전술을 낳는다. 민주적인 운동을 통해서만 우리는 이기는 싸움을 만들 수 있다. 이때 과거 방식의 고집은 방해가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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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2002년, 오마이뉴스 2.22상 수상
2003~2004년, 클럽기자 활동
2008~2016년 3월, 출판 편집자.
2017년 5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자유기고가. tmfprlansgh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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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권의 '고체 연대', 이대생의 '액체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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