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탕엔 없었는데, 남탕엔 이게 있었네!"

42년 된 목욕탕, '다 때가 있다' 사진 전시회 열려

등록 2016.08.19 14:42수정 2016.08.19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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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에 전시된 사진들 ⓒ 추미전


골목길 한 편에 자리 잡은 오래된 목욕탕, 평소에는 한 뼘 틈도 없이 꼭꼭 닫혀있는 광민탕의 문이 요즘은 매일 활짝 열려 있다. 지나가던 동네 아주머니가 무슨 일인가 하고 조심스레 목욕탕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고 묻는다. 


"뭐 합니꺼? 여서?(여기서)"

그런데 분명히 여탕 안에 웬 젊은 남자가 앉아 대답을 한다 .

"예, 사진 전시회 합니다. 들어와서 보세요~"

늘 목욕탕에 들어오던 습관대로 현관에서 신발을 벗으려는 아주머니에게 남자가 말한다.

"그냥 신발 신고 들어오시면 됩니다. 들어와서 구경하세요~"


들어와 보니 항상 때 밀러 드나들던 목욕탕 여기저기에 큰 사진들이 걸려 있다. 42년 된 목욕탕 광민탕에서 사진전시회가 열린 것이다. 지나가다 들린 동네주민들은 그저 신기할 뿐이다. 이 목욕탕 단골이라던 한 아주머니는 사진을 꼼꼼히 살피더니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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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광민탕 내부 ⓒ 추미전


"아이구, 여탕에는 에어컨이 없었는데, 이 봐라, 남탕에는 에어컨이 있었네."

부산시 수영구 광안동 122번지에 있는 광민탕, 무려 42년 동안 한 자리를 지켜오던 목욕탕이 지난 7월 27일 문을 닫았다.

목욕탕이 문을 닫은 그날부터 하필 기록적인 폭염이 지속되는 올여름, 사진작가 대광씨는 에어컨도 없는 광민탕, 그것도 여탕에서 땀으로 목욕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동안 찍어온 사진을 전시하기 위해 목욕탕을 갤러리처럼 꾸미기 위해서였다.

다큐멘터리 사진에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있는 손대광씨는 3년 전부터 광민탕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사진으로 남겨왔다. 꼭 폐업을 염두에 두고 사진찍기를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그 자신, 목욕비가 2천원밖에 안 하는 이 목욕탕 단골이었는데 드나드는 사람들을 보니 다들 한평생 열심히 살아낸 인생사들이 얼굴에, 몸에 지문처럼 선명히 남아 있어 왠지 마음이 갔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를 사진속에 담아두고 싶어 시작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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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민탕에 들어가는 사람들 ⓒ 추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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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안에서 목욕중인 사람들 ⓒ 추미전


그러나 한꺼풀 가린 것 없이 훌훌 벗고 알몸으로 목욕하는 사람들에게 사진기를 들이미는 것이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다. 1년여 목욕탕 단골이 돼 서로 통성명을 할 만큼 친해지자 몇 분들에게 먼저 영정사진을 찍어주었다. 영정사진을 맘에 들어 하는 분들에게 자연스레 다가가 비로소 카메라를 댈 수 있었다.

이들의 사진을 착실히 찍고 있는데 광민탕의 폐업 소식이 들려왔다. 손대광씨는 주인 문연희씨에게 폐업된 목욕탕에서 그동안 찍었던 사진들을 전시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했고 주인이 허락을 하면서 이번 전시가 열리게 된 것이다.

은밀한 목욕탕에서 열리는 사진전시회는 여러모로 정겹고 이색적이다. 일단 42년이나 된 목욕탕 안은 마치 엣날 영화세트장에라도 들어온 것처럼 정겨운 느낌이다.

게다가 요즘은 찾기 힘든 시멘트 바닥에 흰 타일이 붙은 구식 욕탕 안, 몸을 담글 수 있는 단 두 개 뿐인 오래된 욕조, 사람들이 몸을 담그고 열심히 때를 밀던 목욕탕 곳곳에 , 실제 그곳에서 목욕을 하던 사람들 사진이 턱하니 전시돼 묘한 느낌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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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민탕 내부에 붙혀진 안내문구와 단골모습 ⓒ 추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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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민탕 내부 전시된 사진 ⓒ 추미전


게다가 자세히 보면 사진 속 인물들의 표정이나 자세가 재미를 더한다. 목욕하는 모습도 제각각이다. 작가는 그들 개개인의 사연들을 다 기억하고는 들려준다. 그 중 어릴 적 교통사고로 한 다리를 잃어 외다리가 됐지만 늘 열심히 살던 목욕탕 단골 한 분은 어제 딸을 데리고 와서 자기 사진을 보고 갔다고 했다.

손대광씨는 사진 중에서도 특히 꾸미지 않은 사람들의 자연스런 모습을 담는 다큐멘터리 사진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터미널을 오고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1년여 기록에 남긴 <터미널 블루스> 사진으로 최민식 사진상을 받기도 했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사람들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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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대광 사진작가 ⓒ 추미전


손대광 작가의 이번 전시회는 일단은 8월 19일까지 예정이 돼 있다. 사진전이 열린 이후 매일 꾸준히 관객들이 오는데, 반응에 따라 며칠 더 연장될 수도 있다고 한다. 부산전시가 끝난 뒤 12월 2일부터 30일까지 서울 <강남 스페이스 22>에서 한 번 더 전시회가 계획돼 있다.

이번 전시회의 부제를 <다 때가 있다>라고 붙힌 손대광 작가, 만사에 다 때가 있나니 날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는 법, 사람이 할 일이란 오직 언제가 올 그 때를 기다리는 일이 아닌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사진을 찍으며 꿈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손대광 작가에게도 언젠가 제대로 꽃필 '때'가 찾아오기를 바라며 목욕탕 갤러리를 나왔다.
#손대광 #광민탕 #목욕탕 #사진전시회 #목욕탕 갤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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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작가협회 회원, 방송작가, (주) 바오밥 대표, 바오밥 스토리 아카데미 원장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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