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지도 반출 논란, '애국주의' 걷어야 보인다

[오마이팩트] 통상 압박에 안보 논리는 역부족, '국내 기업 역차별' 풀어야

등록 2016.08.21 11:04수정 2016.08.21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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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켓몬 고'가 발단이었다. 구글이 지난 6월 1일 우리 정부에 국내 정밀 지도(1:5000 디지털 지도 수치 데이터) 국외 반출을 신청할 때만 해도 관련 업계 관심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7월 세계적 열풍을 일으킨 모바일 증강현실(AR) 게임 '포켓몬 고' 불똥이 구글 지도 반출 논란으로 옮겨붙었다. 한국에선 구글 지도 서비스 제한으로 위치기반 게임인 '포켓몬 고'도 즐길 수 없다는 소문 탓이었다.(관련기사: '포켓몬고' 구글의 꼼수? 구닥다리 제도가 문제 )

구글 지도 반출 막으면 한국선 '포켓몬 고' 못 한다?

나이언틱 증강현실 게임 '포켓몬 고'를 외국에서 실행하면 게임 배경 화면에 지도가 표시되지만(왼쪽) 국내에선 지도 표시가 되지 않는다. ⓒ 나이언틱·김동환


결론부터 말하면 이 소문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구글 지도 때문에 게임을 아예 못하는 건 아니지만, 제대로 즐길 수 없는 건 사실이다.

이미 많이 알려졌듯 강원도 속초 등 국내 일부 지역에선 '포켓몬 고'를 할 수 있다. 나머지 지역은 게임 개발사인 나이언틱에서 GPS(위성항법장치) 신호를 꺼 게임을 실행할 수 없다. '포켓몬 고'의 모태인, 나이언틱의 또 다른 증강현실 게임 '인그레스'는 이미 한글화 작업을 거쳐 국내에서 서비스되고 있다. 결국 게임 실행 자체는 구글 지도는 무관하다.

다만 '포켓몬 고'는 국내에서 게임을 실행하면 배경 화면에 지도가 표시되지 않아 목표를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속초에서 실행되는 '포켓몬 고' 배경도 도로가 빠진 허허벌판이다. 나이언틱은 구글 지도를 기반으로 게임을 만들었지만, 국내에선 구글 지도 서비스가 불완전해 게임에 접목하지 않은 탓이다. 국내 지도 업체와 손잡으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지만 공교롭게 나이언틱은 구글 사내 벤처로 출발해 독립한 회사다. 

국내 구글 지도(구글 맵)는 외국과 달리 '자동차 길찾기'를 비롯해 도보·자전거 길찾기, 실시간 교통정보, 내비게이션 등 주요 기능이 빠져있다. 구글은 국내 정밀 지도 데이터 국외 반출이 막힌 탓이라며 지난 2007년부터 우리 정부에 반출을 줄곧 요구했지만 지난 2010년 첫 시도에서 거부당했다.

국가정보원, 국방부, 국토교통부, 외교부, 미래창조과학부 등 7개 정부 기관이 참여하는 지도 반출 협의체는 결정 시한 하루 전인 오는 24일 반출 승인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정부 안에서도 의견이 조금씩 갈리지만, 지금까지 구글 지도 반출을 거부한 명분은 크게 3가지다. 전통적인 안보 문제와 국내 업체 역차별 문제, 그리고 최근 크게 불거진 국민 정서다.


찬반이 맞서는 지금, 과연 '포켓몬 고' 열풍은 구글에게 약일까? 독일까? <오마이팩트>는 구글 지도 반출을 둘러싼 구글, 한국 정부, 관련 업계 등 주요 이해 관계자들의 주장이 사실인지 검증했다.

[구글 대 한국 정부] 철 지난 안보 타령? 이스라엘-중국도 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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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의 국내 지도 데이터 국외 반출 신청을 둘러싼 정책 토론회가 8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권범준 구글 지도 프로덕트 매니저가 지도 반출 신청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 김시연


"구글 지도 서비스 중인 전 세계 200개 국가 중 199개 국에서 자동차 길찾기 서비스가 됩니다. 나머지 한 나라가 어딘지 아시겠죠?"(권범준 구글 지도 프로덕트 매니저, 8월 8일 국회 공간정보 국외반출 정책 토론회)

우리 정부는 지금까지 안보 문제를 내세워 구글의 지도 반출 신청을 거부했다. 정부는 지도 데이터 반출을 허가하는 조건으로, 구글 위성사진에서 청와대, 군부대 등 국내 보안 시설을 가려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권범준 구글 지도 프로덕트 매니저는 지난 8일 공식 블로그에 "이용자들에게 가능한 한 완전한 정보를 제공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이런 삭제를 하고 있지 않다"면서 "구글 지도에서 이런 지역이 삭제된다고 하더라도 이런 이미지들은 다른 지도 서비스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마치 한국만 실효성 없는 안보를 명분으로 지도 반출 규제를 하고 있는 것처럼 들리지만 이스라엘과 중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에서도 보안 시설 노출이나 지도 국외 반출을 규제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지난 1997년 미국 의회를 통과한 '이스라엘에 관한 상세 위성 이미지 수집 및 배포 금지' 관련 법률에 따라 구글을 비롯한 각종 위성 영상 서비스에서 자국의 주요 보안 시설을 가리게 했다. 중국도 지도 반출을 규제하고 있다. 구글은 중국 현지 업체인 오토내비를 통해 지도 데이터를 받아 부분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아직 중국 정부의 정식 허가는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구글 위성사진에서 미국이나 외국의 주요 보안 시설이 가려진(블러 처리) 사례가 종종 발견된다. 하지만 구글은 자신들이 구매한 위성사진 자체에 이미 블러 처리된 상태였고, 자신들이 일부러 지운 건 아니라고 해명했다.

구글이라고 현지 법제도를 완전히 무시할 순 없다. 구글은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있는 고해상도 위성 사진에는 한국 내 보안 시설을 노출하고 있지만, 정작 국내에선 저해상도 위성사진만 제공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보안 시설을 가리고 있다. 국내 지도 반출이 허용되더라도, 여전히 국내에선 구글의 고해상도 위성사진을 볼 수 없는 셈이다.

아울러 구글은 자신들이 반출하려는 지도 데이터는 SK텔레콤에서 구매한 것으로 이미 보안시설 관련 데이터가 삭제돼 보안 문제는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부는 보안시설 위치 데이터가 삭제된 지도라도 구글의 고해상도 위성사진과 결합하면 사실상 보안시설 위치가 노출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공간정보의 구축 및 관리 등에 관한 법률(공간정보법)'에는 '국가 안보나 그밖에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와 '다른 법령에 따라 비밀로 유지되거나 열람이 제한되는 등 비공개사항으로 규정된 경우' 기본 측량 성과 국외 반출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법을 바꾸지 않는 한 우리 정부가 지도 반출을 거부할 명분은 있다.

다만 지난 2014년 6월 법률 개정으로 관계 기관장 협의체에서 국외 반출을 결정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놨다. 또 국내 공간정보업계에서도 이미 국내 보안시설 위성 영상이 모두 노출된 현실에서 안보 문제만 내세우는 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결국 이 같은 규제는 거꾸로 국내 업체가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때 장애가 될 수 있어서다.

이 때문에 지난 2010년 반출 거부 때와 달리 안보 문제보다는 국내 기업 역차별이나 국민 정서가 더 크게 여론을 움직이고 있다. 

[구글 대 한국 국민] 세금 내고 국내법 지켜라? 네이버식 '애국주의' 역부족  

현재 구글 지도 반출에 가장 큰 장벽은 글로벌 기업에 대한 우리 국민의 반감이다. 여론조사업체인 리얼미터에서 지난달 15일 지도 데이터 국외 반출에 대한 여론조사를 했더니, 반대하는 의견이 56.9%로 찬성(22.0%)보다 2배 이상 많았다. 다음소프트에서 비슷한 시기(7월 2일~17일) 뉴스 데이터와 SNS 여론 분석 결과도 지도 반출 반대 여론이 각각 37%와 42%로, 각각 10%와 5%에 그친 찬성 여론을 크게 앞섰다. 그나마 중립 여론이 53% 정도로 비교적 높았다.

이 같은 부정적 여론에는 안보 문제 못지않게 조세 회피 논란 등 구글에 대한 반감이 큰 영향을 미쳤다.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은 지난달 15일 라인 뉴욕증시 상장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구글이 국내 지도 데이터를 국내 서버나 데이터센터에 저장하면 문제 될 게 없는데도 굳이 국외로 반출하려는 건 국내에서 세금을 내지 않으려는 꼼수라고 주장했다. 

실제 구글이 한국 앱 마켓(구글플레이)에서 거둔 수익만 연간 1조 원대로 추정되지만 국내에 내는 세금은 상대적으로 미미한 수준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는 구글뿐 아니라 유한회사 형태로 운영되는 대부분 외국계 법인에 해당하는 문제이고, 구글이 국내법을 지키고 있는 이상 이를 지도 반출 거부 명분으로 삼기는 쉽지 않다.

실제 구글은 국내 데이터센터 존재 여부와 세금 문제는 무관하고, 국내에 데이터센터를 두더라도 지도 데이터 국외 반출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구글 지도 데이터가 클라우드 컴퓨팅 시스템으로 묶여 전 세계 여러 나라에 분산 저장된다는 것이다.

조세 회피 논란은 현재 유럽 일부 국가나 OECD 차원에서 논의하고 있는 이른바 '구글세'를 도입 외에는 뚜렷한 해법은 없다.

결국 안보와 애국주의 정서를 거뒀을 때 남는 건 구글과 같은 글로벌 기업에 맞서야 할 국내 기업 역차별 문제다.

[구글 대 한국 기업] 피해자 코스프레? '국내 기업 역차별'은 현실

구글의 국내 지도 데이터 국외 반출 신청을 둘러싼 정책 토론회가 8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행사를 주최한 이우현 의원과 공간정보산업협회를 비롯한 국내 공간정보업계 관계자들이 토론회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김시연


지도 서비스는 글로벌 기업의 국내 시장 진출에 마지막 남은 보루다. 구글이 국내 반대 여론에도 10년 넘게 지도 데이터 반출에 매달리는 것도 구글 지도를 바탕으로 한 각종 위치기반 서비스와 자율주행차,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등 차세대 사업의 밑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지난 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공간정보 국외반출 정책 토론회'는 구글 지도 반출 논쟁의 결정판이었다. 국내 디지털 지도 관련 업체들이 모인 공간정보산업협회에서 주관해 반출 반대 목소리가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구글을 비롯한 찬성론자도 만만치 않았다.(관련기사: 네이버 "국내 기업 역차별" vs. 구글 "피해자 코스프레"

당장 구글 지도가 국내에서 제 기능을 발휘하면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지도 서비스가 직접적 타격을 받는다. 앞서 이해진 의장이 구글에게 국내법을 따르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한 이유다.

반면 구글은 혁신과 경쟁 논리를 앞세운다. 구글에서 먼저 스트리트뷰나 길찾기, 내비게이션 등 다양한 지도 서비스를 내놨기 때문에 국내 지도 서비스도 개선됐고, 이용자들에게 그만큼 이득이라는 것이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구글 지도가 네이버나 다음 지도보다 품질과 기능 면에서 앞서는 건 사실이지만 국내에선 큰 차이가 없다. 국내 업체들도 이미 내비게이션을 비롯해 자동차, 도보, 자전거 길찾기 등 다양한 지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문제는 외국인 관광객들이다. 현재 국내 구글 지도는 장소 검색과 대중교통 정보만 확인할 수 있고 도보 길찾기 등 주요 서비스는 이용할 수 없고, 국내 지도는 외국어 지원이 안 돼 무용지물이다. 다만 네이버도 현재 외국어 지도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구글은 지도 반출을 막아 국내 지도 서비스를 제한하는 건 외국 기업에 대한 차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지도 반출을 거부할 경우 이를 한미 간 통상 문제로 키울 가능성이 높다. 미국 정부와 주한상공회의소 등도 구글을 거들고 있다.

하지만 애플 지도의 경우 이미 국내에서 '턴 바이 턴' 내비게이션과 길찾기 서비스에서 외국과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 구글쪽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국내 업체는 오히려 국내 시장 점유율이 90%를 넘나드는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스마트폰에 구글 앱이 선탑재되고, 국내에 서버를 두지 않아 우리 정부의 각종 규제에서 벗어난 것도 역차별이라고 맞서고 있다. 구글은 이를 '피해자 코스프레'라고 일축했지만, 지금까지 국내 기업이 당면한 현실이다.

구글 앱 선탑재 문제만 해도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이용자들은 굳이 새로운 지도 앱을 설치하기보다 이미 설치된 구글 지도를 쓰려는 경향이 강하다. 구글 지도 앱도 애플 아이폰에 선탑재될 때만 해도 iOS(애플 모바일 운영체제) 점유율이 압도적이었지만 지난 2012년 애플 지도에 자리를 내준 뒤에는 점유율이 크게 줄었다.

국내 동영상 스트리밍 시장에서 구글 유튜브가 성장한 이면에는 정부의 인터넷 실명제 규제가 있었고, 카카오톡이 국내에서 수사기관 감청과 압수수색 문제로 시달리는 사이 '텔레그램'이 반사 효과를 얻었다. 네이버는 라인 사업을 한국이 아닌 일본에서 시작해 뉴욕 증시까지 상장시켰다.

국내 기업 발목 잡는 정부, "형평성부터 맞춰야"

네이버 라인이 지난 7월 1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상장 기념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 네이버 제공


공간정보 관련 업체 외에 구글플레이나 애플 앱스토어 등을 발판으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려는 모바일 앱 개발 업체들까지 감안하면, 지도 데이터 관련 규제 해소에 따른 산업적 효과는 긍정과 부정 양면이 모두 존재한다.

문제는 상대가 구글이란 점이다. 스마트폰 도입 초기였던 지난 2010년보다 구글의 모바일 장악력은 더 커졌다. 정부의 규제 속에 버텨온 국내 업체의 경쟁력은 구글에 비해 약하다. 구글을 언제까지 규제로 묶을 수 없다면, 국내 기업부터 규제에서 풀어주는 게 바람직하다.

안정상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방송통신 수석전문위원이 지난 1일 발표한 '구글의 국내 지도 데이터 반출 신청에 대한 검토와 제언' 보고서에도 이런 우려가 담겨 있다.

안 위원은 정부에 "구글의 지도 반출 허용은 안보 우려뿐만 아니라 국내 산업에 미치게 될 마이너스적 파급 효과까지 감안해 다각적인 검토와 의견 수렴을 거쳐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면서 "구글도 국내법에 근거해 국내 기업과 형평성에 맞는 규제가 적용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구글에게도 "지도 데이터 반출이 거부되더라도 구글이 의지만 있다면 상세한 구글 지도 서비스 및 관련 비즈니스 실행이 가능한 상황"이라면서 "과욕을 버리고 현실에 부합하는 현실직시적 입장으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당부했다.
#구글 지도 #포켓몬고 #지도 반출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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