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벌도 좋아하는 무화과, 잼은 어떤 맛일까

[시골노래] 우리 집 가을잼 담기

등록 2016.09.06 16:02수정 2016.09.06 16:02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우리 집 무화과 ⓒ 최종규


무화과를 실컷 따서 먹습니다. 우리 집에는 무화과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무화과나무는 감나무 못지않게 여느 살림집에서 제법 많이 키웁니다. 제가 나고 자란 인천에서도 무화과나무를 마당에 기르는 분이 꽤 많았어요. 전남 고흥에서도 읍내를 거닐다 보면 골목 안쪽 집 마당에서 무화과나무를 곧잘 봅니다.


우리가 심은 무화과나무는 아니지만, 이 집에 깃들 적에 무화과나무가 퍽 작게 있었어요. 우리는 이 나무를 살뜰히 건사하기로 했고, 가지치기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가지를 치면 나무는 '난쟁이 나무'가 되지요. 이러면 사다리를 안 받치고도 열매를 따기 쉽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나무에는 좋은 일이 아니라고 느껴요.

나무는 나무대로 즐겁게 자랄 때 사람한테도 더 살갑게 열매를 베풀 것이라 봅니다. 열매를 얻으면서 고맙다고 노래합니다. 열매가 조그맣게 달려서 차츰 무르익을 적에는 아침저녁으로 바라보고 쓰다듬으면서 기운을 내라고 속삭입니다. 아이들하고 함께 열매를 따고, 높은 가지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서 땁니다. 무화과나무는 가지가 단단하면서도 잘 휘기에 살살 잡아당겨서 열매를 딴 뒤에 가볍게 놓아 주면 제자리로 돌아갑니다.

우리 집 뒤꼍으로 가는 길에서 해마다 무럭무럭 가지를 뻗는 무화과나무 ⓒ 최종규


날마다 무럭무럭 익는 무화과입니다. ⓒ 최종규


늦여름부터 익는 무화과를 노리며 멧새가 으레 우리 집으로 찾아옵니다. 무화과는 우리 식구도 먹지만 새가 함께 먹습니다. 이러면서 개미랑 벌이랑 파리도 무화과를 함께 먹어요. 새가 콕콕 쫀 틈으로 개미가 드나듭니다. 잘 익다 못해 옆구리가 터지면 이때에도 개미가 드나들어요. 말벌은 무리를 지어 무화과 열매 한 톨을 삭삭 갉아서 먹습니다.

무화과를 딸 적에 옆에서 말벌이 붕붕거리면 무섭다고 여길 수 있을 테지만, 저는 무섭지 않아요. 말벌한테도 가만히 얘기해요.

"얘들아, 말벌아, 너희는 우리 집 무화과 나무가 좋지? 너희는 그 알을 먹으렴. 우리는 다른 알을 먹을 테니까. 너희는 이 한 알에다가 저 한 알, 또 저기 한 알을 즐겁게 먹으렴. 우리 같이 먹자."


잘 익은 무화과는 사람만 좋아하지 않아요. 멧새는 날마다 수없이 무화과나무를 찾아들어 잘 익은 녀석을 골라서 쪼고, 말벌이나 파리도 무화과를 먹으려고 달라붙습니다. ⓒ 최종규


말벌 무리가 갉는 무화과 알 바로 옆에 잘 익은 무화과를 톡 톡 따더라도 말벌은 저를 쳐다보지 않습니다. 다디단 무화과를 갉느라 바쁠 뿐입니다.

한 소쿠리 가득 따고서 더 딴 뒤에 이 무화과를 달리 먹어 보자고 생각합니다. 지난해까지는 그날그날 따서 그날그날 다 먹었는데, 올해에는 잼을 졸이기로 합니다.

무화과를 따 놓으면 한 그릇도 금세 빕니다. ⓒ 최종규


맛있지? ⓒ 최종규


먼저 무화과 알을 알맞게 썰어 놓습니다. 사탕수수 가루(사탕수수를 졸여서 나온 덩어리를 다시 잘게 부수어 놓은 가루)를 10:6 부피로 넣습니다. 1:1로 하거나 10:5로 맞추어도 되고, 덜 단 잼을 바란다면 10:2나 10:3으로 할 수 있어요. 무화과가 워낙 달기에 설탕이나 사탕수수 가루는 적게 써도 됩니다. 여기에 라임을 조금 섞습니다.

한 시간쯤 사탕수수 가루에 재우고서 큰 냄비에 부은 뒤 졸입니다. 처음에는 가운뎃불(중불)로 졸이고, 제법 부글부글 끓으면 나무주걱으로 살살 저으면서 여린 불로 바꿉니다. 이때부터 두 시간 남짓 졸이면서 젓기를 되풀이한 끝에 잼을 석 병 얻습니다.

첫여름에 들딸기로 잼을 졸이며 온 식구가 즐겁게 먹었으면, 이제 가을로 접어드는 길목에서는 무화과로 잼을 졸이며 온 식구가 새삼스레 즐겁게 먹을 수 있습니다. 이제 곧 집에서 빵을 구워서 무화과 잼을 발라서 먹으려 합니다.

무화과잼을 졸이기 앞서, 사탕수수가루(사탕수수를 졸여서 우린 뒤에 낸 가루)로 재워 놓습니다. 흔히 흰설탕을 쓰지만, 우리 집 잼은 사탕수수가루를 쓰기로 했어요. ⓒ 최종규


크게 한 소쿠리 반을 졸였는데 석 병이 가까스로 나왔습니다. 다음에는 더 많이 따서 졸이려 해요. ⓒ 최종규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글쓴이 누리사랑방(http://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무화과잼 #무화과 #시골노래 #고흥 #삶노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단독] 대통령 온다고 축구장 면적 절반 시멘트 포장, 1시간 쓰고 철거
  2. 2 플라스틱 24만개가 '둥둥'... 생수병의 위험성, 왜 이제 밝혀졌나
  3. 3 '교통혁명'이라던 GTX의 처참한 성적표, 그 이유는
  4. 4 20년만에 포옹한 부하 해병 "박정훈 대령, 부당한 지시 없던 상관"
  5. 5 남자의 3분의1이 이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다고?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