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말할 수 있다... "오늘 회식 안 가요"

[사무실을 살려줘 시즌2 - 꼰대님, 이러지 마세요 ⑧] 회식 회피를 위한 '무한도전'

등록 2016.09.30 15:46수정 2016.09.30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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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오늘?" 상사의 느닷없는 회식 제의는 불안을 잠식한다. 사진은 '헛개차' 광고 중 한 장면. ⓒ 광동제약


"어떻게, 오늘?"

어느 광고에서 나오는 대사다. "오늘, 한잔할까?"라며 묻는 장면. 광고에 등장하는 회사원들의 표정에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직장 상사의 느닷없는 회식 제안은 불안을 잠식한다. 왜, 어째서, 하필이면 오늘 회식이란 말인가.

해당 음료 광고는 "회식 경쟁력"이라는 개념을 강조하며 제품의 숙취 해소 기능을 홍보한다. 술에 약한 직장인이라면 숙취 해소라도 잘해야 '회식 경쟁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 그야말로 한국 사회의 슬픈 현실을 압축한 영상이다.

이와 같은 광고가 시리즈로 제작된 것은, 아마도 한국에서의 직장 생활이 보통 권위적인 분위기와 회식 문화의 연속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또한 구성원 중 남성이 많은 직장, '남초사회'라면 더욱 이런 분위기가 심할 수 있다.

사발에 소주 가득, 소맥 폭탄주가 '콸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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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무한도전>의 '무한상사' 중 한 장면 ⓒ MBC


나는 과거 보안업체에서 일한 적이 있다. 마트, 병원, 은행의 보안 업무를 담당하는 하청 업체였다. 그중 한 곳은 직원 약 110명 중 100명이 남성이었는데, 분위기가 군대와 흡사했다. '상명하복'이 당연한 일상이었고, 이는 회식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느 날은 사발에 소주를 잔뜩 부어서 마셔야 했다. 탁자를 열 개 가까이 붙여서 수십 명이 앉은 회식 자리, 다들 무릎을 꿇은 채로 사발을 높이 들어서 '건배'를 외치는데 차마 나만 "못 마십니다"라고 할 수 없었다. 결국 그 날 몇 사발을 들이켰는지, 언제였는지 기억할 수도 없는 어느 순간에 나는 의식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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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술 한잔 할까!"라는 말이 튀어나오면 소리없는 한숨이 사무실을 가득 채웠다. '정시퇴근은 글렀다'는 생각에 사무실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그걸 보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직원들도 회식이 싫기는 마찬가지인 듯했다. ⓒ flikr.com


훗날 다른 곳으로 이직했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새로 옮긴 직장에는 유독 '소맥(소주+맥주) 폭탄주'를 좋아하는 상사가 있었다. 늘 회식 자리에 먼저 도착해서 소주와 맥주를 준비해야 했다. 그곳에서도 나는 '하청업체 소속 직원'이었다. 대놓고 그런 말이 튀어나오지는 않았지만, 언제든지 상사의 결정에 해고당할 수 있는 곳이었다. 내가 입사하기 전에 일하던 직원도 "맘에 들지 않아 잘랐다"고 들었다.

"오늘 술 한잔 할까!"라는 말이 튀어나오면 소리 없는 한숨이 사무실을 가득 채웠다. '정시퇴근은 글렀다'는 생각에 사무실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그걸 보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직원들도 회식이 싫기는 마찬가지인 듯했다. "까라면 까" 식의 '꼰대' 문화가 회식까지 번지면 그보다 서글픈 것도 없다.

회식에 가면 술을 마셔서 괴롭고, 안 가면 다음 날 '너만 빠지냐'는 핀잔을 들어 괴로웠다. 회식 자리에서도 상사가 잔에 부어준 '소맥'을 마시지 않으면 "내 정성을 무시하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오곤 했다. 회식이 끝나는 순간에 취하지 않은 채로 귀가할 수는 없었다.

마음 맞는 사람과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술 한잔 기울이는 자리는 즐겁다. 다만 권위에 의한 음주 강요나 의사에 반하는 행사 참여는 그 자체로 큰 스트레스가 되기 마련이다. 오죽하면 누군가는 '회식은 업무의 연장'이라고 표현했을까. 지금까지 길다면 긴, 짧다면 짧은 경험으로 축적된 회식 피하기 노하우를 공개한다.

1. 아파요, 몸도 마음도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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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무한도전>의 '무한상사' 중 한 장면. 정시퇴근은 얼굴이 창백한 사람에게 유리한 종목일까. ⓒ MBC


20대의 직장 생활을 그렇게 보내니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너무 힘든 회식은 회식이 아니었음을. 어느 걸그룹 노래 가사처럼 회식은 나를 '으아으아(우아우아)하게 만들'었으니까. 실제로 원하지 않는 회식에 다녀오면 몸도 마음도 아프고 힘들다.

숙취 해소 음료를 잔뜩 마시고도 숙취에 시달려야 했던 나날은 내게 깨달음을 주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의 적용 범위에서 회식은 예외라는 것 말이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해야 한다. 피할 수 없는 파도처럼 보이더라도 일단 피하려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회식으로 인한 피로가 누적되면 그것만큼 힘든 것도 드물지 않나.

'회식을 피하는 방법'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건강' 문제다. 일단 아프면 술을 제대로 마실 수 없다. 분위기를 봐서 표정을 굳히고 말 수를 줄이도록 한다. 오전부터 화장실에 자주 다녀오는 것도 '정황상 알리바이'를 쌓아나가는 방법의 하나다. 설사병을 앓는 이에게 술자리를 권할 사람은 없다. 이때 약국에 가서 약을 잔뜩 사 오는 것도 좋다.

단, 하루종일 깔깔 웃고 떠들다가 갑자기 '아프다'고 하면 역반응이 나올 수 있으므로 주의하자. 평소 병약한 이미지를 미리 심어놓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먹히는 수단이다.

2. 비! 상! 탈! 출! 선약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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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드라마 <미생> 중 한 장면. 모든 회식이 이렇게 화기애애하다면 좋으련만. ⓒ tvN


지인과의 약속은 때로 확실한 '비상탈출 버튼'이 되어주곤 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저울질이다. 회식과 약속의 중요성 중 어느 것이 더욱 무게감을 드러내는지 잘 설정해야 한다. 

약속이 없는데 무작정 지어내기 힘들다면 '페이크 콜(fake call)' 앱을 이용해보자. 이 애플리케이션의 기능은 '가상의 상대'를 만들어 스마트폰에 '가짜 전화'를 걸어주는 식이다. 다만 연기가 어색한 사람이 어쭙잖게 시도했다간(...).

굳이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다면 '나 자신과의 약속'을 잡아도 괜찮다. 저녁에 운동에 매진할 계획이 있더라도 '약속'이 있는 셈이다. 어떤 약속인지 구체적으로 답해야 할 필요는 없다. 회식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나만의 일정이 있다면, 그것도 약속은 약속이지 않은가.

3. "모르는데 어떻게 가요" 불참 후 시치미 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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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세바퀴> 중 조세호씨 출연 장면. "안재욱 결혼식, 왜 안 왔어?"라는 김흥국씨의 물음에 그는 모르는데 어떻게 가요"라고 답한 바 있다. ⓒ MBC

회식 일정을 통보받는다면, 일단 고개를 숙이고 업무에 집중하라. 회식 장소와 시간을 말하는 순간, 당신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야 한다. 누군가 말했지만 당신은 '듣지 못한 것'이다.

귀가하라.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당신을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라. 그리고 다음날, 누군가 "자네는 회식에 왜 오지 않았나?"라고 묻는다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하면 된다.

"회식이요? 모르는데 어떻게 가요?"

자고로 '아는 것이 힘'이라 했다. 반대로 말하면 모르는 사람에겐 힘이 없다. 회식 일정 자체를 몰랐다면, 참가하지 않은 것으로 인한 비판도 피해갈 수 있다.

회식이 괴로운 당신, 한 마리의 개복치가 되어라. 바다 생물 개복치의 학명은 '몰라 몰라(Mola mola)'이다. 복어목 개복치과에 속하는 바닷물고기가 되어버린 당신에게 회식 참석을 강요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4. 제삿날입니다, 제 제삿날 말고요

제사는 조상을 기리기 위해 음식을 차려놓고 성의를 표하는 전통문화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권위적 회식에는 가부장적 제사로 맞서는 게 적절하다고 판단된다.

'제사' 콘셉트가 궁극적으로 먹혀들기 위해서는 평소 '가족 일정 챙기는 일에 무척 예민한' 집안 환경이라고 밑밥을 충분히 깔아두는 것이 유리하다. 보수적인 집안이라고 이미지를 심어둘 경우 '통금시간'이 있다고 응용할 수도 있으니 기억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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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무한도전>의 '무한상사' 중 한 장면. ⓒ MBC


유의할 점은 자주 사용하기 힘든 방식이라는 점이다. 1년에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가 중복되면 곤란하다. 혼동으로 지난해와 제사 날짜가 바뀌더라도 의심을 받을 수 있다. 조부 제사라고 둘러댔다가 직장에 할아버지께서 찾아오시면 낭패다. 실패할 경우 내 제삿날이 될 수 있으므로 매우 신중히 해야 한다.

5. 오늘 회식에 빠집니다, 갈 기분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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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무한도전>의 '무한상사' 중 한 장면. ⓒ MBC


때로는 솔직한 것이 가장 효과적인 해법이 될 수도 있다. "오늘 회식은 도무지 갈 기분이 아닙니다"라고 속내를 털어놓자. 이번 일정에서는 '빠졌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대신 다음을 기약해보면 어떨까.

어차피 회식은 즐겁게 술 마시기 위한 자리가 아니던가. 취지를 되돌아보면, 원하지 않는 사람은 가지 않는 게 맞다. 참가를 원하는 사람만 모이는 회식 자리가 진정 아름다운 것이라고 상사를 설득해보자.

'소폭을 소신껏' 마시느라 속 쓰린 당신,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회식 안 간다고, 다음에 가겠다고, 오늘 저녁은 '친구를 만나느라 샤샤샤'"라고 말이다. 숙제 밀린 기분, 고구마를 잔뜩 삼킨 듯한 답답함을 쌓아두는 것보다 당당하게 말하는 쪽이 더 나을 수 있다.

회식을 피하고 싶은 직장인들이여, 일어나라. '회식 경쟁력'을 챙기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먼저 내가 살아남아야 한다. 업무를 위해 모인 곳이 회사이니까.

술에 잔뜩 취하고 다음 날 <부산행> 속 좀비가 되느니 속 편하게 오늘 '귀가행'을 선택하자. 당신의 퇴근길이 마동석의 팔뚝처럼 굳건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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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맞는 사람과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술 한잔 기울이는 자리는 즐겁다. 다만 권위에 의한 음주 강요나 의사에 반하는 행사 참여는 그 자체로 큰 스트레스가 되기 마련이다. 오죽하면 누군가는 '회식은 업무의 연장'이라고 표현했을까." ⓒ flick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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