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수 따라 기관 장도 싹둑, 지옥문이 열렸다

[공공부문 성과주의는 '국민피해'③] 좋은 일자리 늘리는 길, 성과주의 폐지가 답

등록 2016.09.13 07:24수정 2016.09.13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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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부문 성과주의 임금체계 도입을 둘러싸고 정부와 노동자 간의 갈등이 심각해지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산하 철도, 지하철, 병원, 가스, 건강보험, 국민연금 등 공공성서비스를 제공하는 6만여 명의 공공기관 노동자가 9월 27일 대규모 무기한 동시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9월 23일에는 금융노동자, 9월 28일 보건의료노동자가 파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성과주의는 '국민피해' '민영화'로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사회공공연구원과 오마이뉴스는 공공부문 성과주의가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을 총 6회에 걸쳐 짚어본다.

공공운수노조는 민주노총 산하의 공공부문을 대표하는 산별노조(연맹)로서, 조합원 17만명의 민주노총 산하 최대 조직이다. 철도, 지하철, 건강보험, 국민연금, 가스, 서울대병원, 출연연구기관 등 주요 공공기관 및 학교와 지자체비정규직(공무직)·인천공항비정규직 등 공공부문 비정규직, 버스, 화물연대 등 운수산업 노동자를 포괄하고 있다. [편집자말]
구의역에서의 안전문 정비 노동자 사망, 인간으로 대우해 달라는 공항 비정규직 노동자의 절규...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참한 현실이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고 정부는 뒤늦게 대책을 내놓지만, 현실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공공부문 상시업무를 직접고용하고 처우를 개선하겠다는 대통령의 공약 역시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정부 정책도 우리 사회의 논의도 근본으로 나가지 못하고 땜방식 처방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공공부문 인력 축소, 외주화 확대 강요하는 성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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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 수리도중 사망한 19살 김모씨를 추모하는 시민들이 지난 6월 2일 오후 사고현장인 구의역 9-4승강장에 모여 추모행사를 연 뒤 고인의 분향소가 차려진 인근 건국대병원 장례식장까지 촛불행진을 벌였다. ⓒ 권우성


지하철 안전문 정비 노동자와 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는 모두 간접고용 노동자다. 공공기관에서 일하고 있지만 용역업체와 고용계약을 맺고 있다. 간접고용이라는 고용형태가 열악한 처우와 고용불안은 물론 안전위협까지 일으키는 주 요인이다.

무엇이 이들을 간접고용 노동자로 만들었을까? 이들 일자리는 과거에는 모두 직접 고용된 부문이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공공기관의 인력 감축과 외주화가 확대되며 이들은 용역업체로 밀려났다. 신규 사업이 확대되어도 정부가 정원을 늘려주지 않자 각 기관에서는 비정규직으로 부족한 인력을 채우는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공공부문 고용규모는 OECD 국가 중 매우 낮은 편이다. 특히 복지나 보건의료 등 사회서비스 부문의 지출 규모와 종사자수 모두 작다. 국제 수준으로 공공부문 고용을 늘려야 할 판에 정부는 거꾸로 가고 있다.

2008년~2015년 동안 신규 지정 또는 해제된 기관을 제외할 경우, 기존 공공기관의 정원은 매년 1.8% 증가하는데 그쳤다. 같은 기간 우리 사회의 상용직 근로자가 4.9%씩 증가한 것에 비해 매우 낮다. 반면 공공기관 노동자 1인당 예산집행액은 늘었다. 하는 일은 늘었지만 인력은 그만큼 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정부가 적정 인력이 아니라 최소 인력 유지를 우선 목표로 삼아 왔기 때문이다.


더구나 정부는 업무를 외주화하고 비용을 절감하면 기관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주는 식으로 공공기관을 비정규직 늘리기 경쟁, 쥐어짜기 경쟁에 내몰아 왔다. 매년 실시되는 공공기관 평가 결과를 좌우하는 핵심 기준은 비용 효율성이다. 외주화를 확대하고 용역 단가를 후려쳐 비용을 절감하면 높은 점수를 받고, 외주화를 줄이고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하면 낮은 점수를 받도록 되어 있다.

평가 점수에 따라 성과급이 많게는 천 만원 이상 차등 지급되고 기관장 해임도 가능하도록 하여 공공기관의 기관장부터 구성원 전체가 평가 결과에 목을 매도록 하고 있다. 그 결과 전체 중앙 공공기관의 경우 2015년 말 기준 41만명의 종사자 중 11만6천명이 비정규직이며, 이 중 간접고용 노동자가 7만5천명이나 되는 기형적 인력 구조가 형성되었다.

특히 에너지, 공항, 철도 등 국민의 안전과 직결되어 있는 기관의 비정규직 비율이 높다. 비용의 외주화, 위험의 외주화로 인한 작업자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위태로운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성과주의 끝판왕, 성과-퇴출제

정부는 근본적인 문제는 그대로 두고 생색내기 대책으로만 일관해 왔다. 박근혜 정부가 중점을 두어 온 기간제 비정규직의 무기계약직 전환은 선별적 전환으로 전환 대상에서 누락되는 경우가 많아 비정규직 축소에 큰 효과가 없었고 오히려 간접고용 노동자만 늘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처우 개선은 권고하면서 이를 위한 예산 지출에 불이익을 주는 등 실효성 없는 대책의 남발도 한계가 많았다.

결국 1990년대 중반 이후 20년간 한국의 공공부문을 지배해 온 '성과주의'의 총체적 극복 없이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비극은 지속될 것이다. '공공부문 성과주의'는 공공부문의 경영 관행, 예산 관리, 인력 관리 등 모든 측면에서 성과를 평가하고 이에 따라 관리하자는 이념이다.

이는 케인즈주의적 국가를 거대 정부의 실패로 규정하고 시장주의적 민간 경영의 원리를 국가부문에 도입하여 효율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신자유주의의 주요한 교리이기도 했다. 금융위기와 함께 신자유주의가 사실상 파산 선고를 받은 바 다름없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성과주의 극복은커녕 오히려 극단까지 밀어 붙이려 한다. 정부는 올해 안에 공공기관 직원에 성과연봉제를 확대하고 강제퇴출제를 도입하겠다며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고 있다. 이미 공공기관 직원은 기관평가와 내부평가에 따라 성과급이 지급되고 있다. 이러한 성과급은 전체 임금의 최대 10~25% 수준까지 이른다.

그런데 이 정도도 모자라 개인까지 실적을 평가하여 정해진 비율대로 등급을 매겨 임금을 차등 지급하고 저성과자는 퇴출까지 시키겠다고 한다. 정부가 도입하려는 성과연봉제는 상대평가에 따른 개인별 강제 차등 임금체계로 다른 나라의 공공부문에서는 유사한 사례를 찾기 어려운 극단적 성과주의 임금체계이며 GE, 마이크로소프트 등 민간 기업에서조차 폐해가 심각하여 폐지된 체계다.

그런데 이러한 제도가 공공부문에 도입되면 어떻게 될까? 기관평가-기관장평가-부서평가-개인평가로 이어지는 성과주의 시스템은 공공기관의 꼭대기부터 밑바닥까지 모든 구성원을 국민을 상대로 한 돈벌이 경쟁, 비정규직을 늘리고 쥐어짜는 비용절감 경쟁으로 내몰 것이다.

그 결과는 국민 피해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노동조건이 후퇴될 것이다. 더구나 공공부문에서 나쁜 선례는 민간으로 확대되어 사회 전체의 일자리 질의 하락과 노동시장 양극화 문제는 더욱 심각해 질 수밖에 없다.

성과주의 확대가 아닌 폐지가 좋은 일자리 늘리는 길

신자유주의적인 공공부문 '성과주의'는 공공부문의 성과를 비용 절감과 이익 극대화 중심으로 왜곡시켜왔다. 하지만 공공부문의 존재 목적은 국민을 위해 질 좋은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또한 정부와 공공기관은 모범사용자로서 민간의 노사관계의 모범을 보여야 하며 전체 일자리의 상당 부문을 직간접적으로 고용하고 있는만큼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특히 공공부문은 전통적으로 민간과 달리 경기변동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경기변동에 따른 고용파괴를 최소화하는 역할을 해 왔다. 지금처럼 한국사회의 청년 실업 문제가 심각하고 좋은 일자리가 부족한 상황에서 공공부문의 성과는 '좋은 일자리 만들기'가 되어야 한다. 인력 감축이 아니라 적정 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적정 인력을 확충하고 신규 일자리를 늘리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고 처우를 개선하여 나쁜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전환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성과-퇴출제 강행이 중단되어야 하고 나아가 공공부문의 '성과주의'와 이를 지탱하고 있는 운영구조, 평가제도가 완전히 개혁되어야 한다. 첫째, 현재의 운영과 평가의 기준과 원칙이 공공성과 좋은 일자리 만들기를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적정 인력의 유지와 일자리 질 개선, 노동기본권 보장을 공공부문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둘째, 운영과 평가가 정부의 관료가 독점하고 밀실에서의 행정적 판단으로만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사실상 공공기관의 인력 규모는 어떤 사회적 논의와 객관적 기준 없이 기획재정부와 행정자치부 등 정부 관료에 의해 밀실에서 결정되고 있다. 논의와 결정 과정이 투명해지고 객관적 기준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셋째, 평가의 결과에 따라 임금을 차등 지급하거나 고용에까지 연결시키는 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 인센티브가 필요하다면 비금전적 보상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시작으로 공공부문에서의 대대적인 정원의 확대와 상시적으로 노동하는 비정규직의 전면적인 정규직화와 처우개선으로 공공부문이 좋은 일자리 창출에 적극 나서야 한다. 특히 외주화 된 부문의 재직영화 등 간접고용 노동자의 직접고용이 절실하다.

신규채용, 정규직화와 처우 개선을 위해서는 재정이 필요하다. 재정 조달을 위한 사회적 논의에 기반을 둔 재정 분담 방안이 마련되어야 하겠지만 성과주의를 유지 확대하기 위해 불필요하게 들어가고 있는 예산을 우선 사용할 수 있다.

2015년 중앙 공공기관 경영평가 성과급으로 지출된 금액만 6400억 원이다. 기관이 매년 경영평가 성과급 지급을 대비하여 편성한 예산은 훨씬 많다. 또한 정부가 성과연봉제를 조기 도입하는 기관에 추가 지급하는 성과급만 1700억 원이다. 이 막대한 예산을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고 신규채용을 늘리는데 사용한다면 재정의 상당 부분이 해결될 수 있다.

국민과 공공부문 노동자가 개혁의 주체로 함께 나서야

공공부문의 주인은 국민이다. 정부는 국민의 뜻에 따라 공공부문을 대신 운영하는 관리자일 뿐이다. 그런데 정부가 성과퇴출제를 강행하면서 국민의 뜻을 물어 본 적이 있었던가. 정부의 노동개악에 국민이 총선 참패라는 심판을 내렸음에도 그 뜻을 겸허히 수용하기는커녕 공공부문에서부터 행정권을 남용하며 노동개악의 불씨를 살리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국민의 뜻을 어기고 마음대로 공공부문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 이 정부에 진짜 주인인 국민이 제동을 걸어야 한다.

한편 공공부문의 노동자들도 정부의 눈치를 보며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지키는데 급급해 온 것이 사실이다. 외주화 확대, 비정규직 확대를 막지 못했다. 구의역 사고를 사전에 막지 못했다. 공공운수노조는 그 책임을 통감하며 공공부문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민주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국민과 함께 나서고자 한다. 그 일환으로 공공운수노조는 정부가 성과연봉제를 조기 도입한 기관에 지급한 성과급을 반납하며 이 재원을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처우개선을 위해 사용할 것을 정부에 제안한 바 있다.

국민과 공공부문 노동자가 다시는 구의역 사고와 같은 비극적인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공공부문을 바로 세우자.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공공기관사업국장입니다.
#공공부문성과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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