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한국사 시험, 위험에서 벗어나는 법

[기출문제로 보는 한국사 1회] 건국절? '정부수립'만 기억해야

등록 2016.09.19 17:36수정 2016.09.19 20:10
10
원고료로 응원
a

1948년 8월 15일의 ‘정부수립 국민 축하식.’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건국절 논란이 현재진행형인 가운데, 11월 17일 목요일 수능시험에서 한국사 시험이 출제된다. 1945년 8월 15일 해방부터 48년 8월 15일 정부수립까지의 역사는 한국사 시험의 단골 문제다. 

2007학년도 시험 이래 지난 10년간, 정부수립 과정에 대한 문제는 총 10회 출제되었다. 한국사(국사)에서는 4회. 한국근현대사에서는 6회였다. 국사와 한국근현대사가 각각 별도로 치러진 2013학년도까지는 두 시험 중 한쪽에서 이 문제가 매년 출제되다가, 두 시험이 한국사시험으로 통합된 2014학년도부터는 한국사 시험에 3년 연속으로 출제되었다. 이 정도면 출제 빈도가 높은 편이다.

'건국절을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촉발된 건국절 논란은 대한민국의 건국일을 언제로 볼 것인가의 논쟁이다. 3월 1일, 4월 11일 혹은 13일, 8월 15일, 9월 11일, 10월 3일 등의 여러 날이 제기되고 있다.

4월 11일(임시헌장 공포일)과 13일(임시정부 수립 선포일)은 상하이 임시정부가 수립됐다고 주장되는 두 개의 날짜이고, 9월 11일은 임시정부 성격을 띤 한성정부와 블라디보스토크 대한국민의회가 상하이 임정으로 통합됨으로써 임시정부의 위상이 격상된 1919년의 그날이다. 8월 15일을 주장하는 견해는 둘로 나뉜다.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1945년 그날을 건국일로 봐야 한다는 견해와,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된 1948년 그날로 봐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여러 견해 중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헌법 전문에서 임시정부를 대한민국 정통성의 원천으로 규정했으므로 4월 11일 혹은 13일을 건국일로 봐야 한다는 견해(A)와, 임시정부는 실질적 통치권을 발휘하지 못했으므로 1948년에 정부가 수립된 날을 건국일로 봐야 한다는 견해(B)다.

애당초 논쟁을 제기한 쪽은 B 견해에 가깝다. 48년 8월 15일을 염두에 두고 논란을 일으켰던 것이다. 여타의 견해들은 B에 맞서 나온 의견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논쟁은 한마디로, 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인정할 것인가 아니면 기존대로 건국절 없이 그냥 둘 것인가로 정리될 수 있다.

그리고 논쟁 속에는 여러 가지 정치적 함의가 담겨 있다. 1919년 임시정부를 어떻게 볼 것이며 김구와 이승만을 어떻게 볼 것인가, 북한이나 통일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등에 관한 입장 차이에 따라 건국절에 대한 생각도 달라진다.


일례로, 대북 적대정책을 지지하거나 통일에 대해 소극적인 쪽은 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이 완전체로 건국되었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그날을 건국절로 지정하자고 주장하기가 쉽다. 반면에, 분단국 체제를 불완전체로 인식하는 쪽은 48년 그날에 완전한 국가가 수립되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날을 건국절로 지정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기가 쉽다.  

하지만, 수능시험에서 한국사 문제를 푸는 목적은 정치적 견해를 표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답을 맞히고 점수를 얻어 대학에 가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수험생이나 학부모는 정답을 맞히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 적어도 시험 때까지는 이 논란을 머릿속에 담아 두서는 안 된다.

만약 논란을 머릿속에 담은 상태로 수험장에 갔다가 관련 문제를 접할 경우에는 다만 1, 2초간이라도 집중력을 잃을 수 있다. 지금 해야 할 일은 무조건 '48년 8월 15일 정부수립'만 기억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고 '48년 8월 15일이 건국절이라고 했는데'라는 생각을 품고 있다가는 잠깐이라도 주의력이 분산될 수 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기존의 한국사 시험문제들은 48년 8월 15일이 정부수립일이라는 관점에서 출제됐기 때문이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2015년 3월 전국연합학력평가 20번 문제를 보자. 수능시험과 같은 형태인 이 시험은 서울시교육청이 고등학교 2학년을 대상으로 출제했다.

a

2015년 3월 전국연합학력평가 고2 한국사 20번 문제. ⓒ 서울시교육청


'건국' 아닌 '한국 정부수립' 추진한 국제사회

'건국절은 48년 8월 15일'이라는 주장에 동조하는 수험생이 위 문제의 지문에 표기된 '정부 수립'이란 글자를 본다면, 시험 중의 그 바쁜 와중에 '정부 수립이 아니라 건국이 아닌가?'라는 생각으로 잠시나마 시간을 허비할 수 있다. 

45년 해방에서 48년 정부수립까지의 인과관계를 묻는 이 문제의 정답은 3번이다. 8·15 광복과 함께 여운형의 조선건국준비위원회가 발족되었고, 그 해 12월 모스크바에서 미·영·소 3국 외무장관(외상)이 '한국 임시정부를 세운 뒤 이를 신탁통치한다'라는 결정을 내렸으며, 이 결정을 집행하기 위해 46년 1월부터 미·소 양국이 미소공동위원회를 열었다.

공동위원회가 결렬되자 유엔은 남한만의 단독 선거인 5·10 총선거를 하기로 결정했고, 이 선거에 의해 국회가 구성되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48년 8월 15일에 정부가 수립됐다고 생각하지 않고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고 생각하는 수험생은 시험장에서 잠깐이라도 주의력을 잃을 수 있으므로, 시험 전까지는 이 논란을 아예 잊어버리는 게 상책이 될 수도 있다.

지금은 48년 8월 15일이 정부수립일이냐 건국절이냐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지만, 당시에는 대한민국 건국이란 개념이 나올 수 없었다. 왜냐하면, 한국의 운명을 쥔 국제사회가 '한국 건국'이 아니라 '한국 정부수립'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3년 이집트 카이로에서 미·영·중 3국 수반은 "한국의 독립을 보장하는 국제적 합의를 하였다"라고 선언했다. 카이로 선언이라 불린 이 선언에서 '한국의 정부수립'이 아니라 '한국의 독립'을 언급한 것은, 당시 국제사회가 한국이란 나라를 이미 존재하는 국가로 인식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이란 나라는 이미 존재하지만 식민통치 때문에 노예상태에 빠져 있으므로 한국이란 나라를 독립시켜야 한다는 게 카이로 선언의 취지였던 것이다.

정부는 국가의 의지를 집행하는 기관이다. 따라서 정부가 없으면 국가는 남의 조종을 받는 노예상태에 빠질 수 있다. 카이로 선언에서 한국을 노예상태로 인식한 것은 일제강점기의 한국이 독자적인 정부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당시 국제사회의 관점에 입각하면, 정식 정부를 세우는 게 한국의 독립을 완성하는 길이었다.

카이로 선언에서 그런 전제를 깔아놓았기 때문에 45년 12월 모스크바 3상 회의에서 '한국 건국'이 아니라 '한국 정부수립'에 관한 논의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3상 회의에서는 '한국 임시정부를 세운 뒤 신탁통치를 한다'는 결정이 내려졌고, 이 결정에 입각해서 미소공동위원회가 한국 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논의를 했던 것이다.

이 점을 염두에 두면서 2013년 11월에 실시된 2014학년도 수능시험 19번 문제를 보자. 사진과 대화 내용을 제시하면서 '이것이 무슨 회의이며 회의의 결정 사항이 무엇인가?'를 묻는 문제다.

a

2014학년도 수능시험 19번 문제. ⓒ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제시된 사진은 미소공동위원회의 회의 장면이다. 유명한 사진이기 때문에, 사진을 보자마자 공동위원회를 떠올리는 수험생이 많을 것이다. 사진 속의 대화 내용을 보면, 회의 참가자들이 이 회의 앞에 있었던 어떤 회의를 전제로 이야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소공동위원회는 모스크바 3상 회의의 결정사항을 집행하기 위한 실무기구였다. 따라서 공동위원회에서 이전의 어떤 회의를 전제로 논의했다면, 그 회의는 모스크바 3상 회의일 수밖에 없다. 모스크바 회의에서는 '한국 임시정부를 세운 뒤 신탁통치를 한다'는 결정이 나왔다. 따라서 정답은 4번이다.

4번과 유사한 3번 문항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성급한 수험생은 3번을 찍을 수도 있다. "통일정부의 수립이 어렵다면 남한만이라도 임시정부를 구성하자"는 이 발언에서는 남한만의 단독 정부라도 빨리 세우고 싶어 하는 조급함이 살짝 느껴진다. 그 당시 남북분단을 조장하는 데 기여한 이 발언은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된 뒤에 나온 이승만의 이른바 '정읍 발언'이다.

미소공동위원회 회의 장면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45년 이후에는 한국의 건국이 아니라 한국의 임시정부 수립을 둘러싸고 주변 국제관계가 작동됐다. 비단, 국제관계뿐만이 아니었다. 해방의 감격을 만끽하던 한국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오늘날 건국절 제정을 추진하는 우파의 조상격이라 할 수 있는 해방 당시의 우파도 그러했다. 그들을 포함해서 한국인 대다수가 건국이 아니라 정부수립을 목표로 했다. 국사편찬위원회가 주관한 2015년 제2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46번 문제를 보자.

유엔이 '국가승인' 아닌 '정부승인' 해준 이유

a

2015년 제2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46번 문제. ⓒ 국사편찬위원회


"동포여!"로 시작하는 이 선언은 신탁통치를 배격하고 "우리 정부 밑에 모이자"는 외침을 발하고 있다. 모스크바 3상 회의 다음 달인 46년 1월 '신탁통치 반대 국민총동원 위원회'가 발표한 선언문이다. 따라서 정답은 2번이다. "우리 정부 밑에 모이자"며 유엔 간섭 없이 우리 나름의 정부를 수립하자는 이 선언에서 당시 국제사회뿐 아니라 한국인들도 건국이 아니라 정부 수립을 목표로 활동했음을 재차 느낄 수 있다.

이렇게 한국인들과 국제사회가 한결같이 건국이 아니라 정부수립을 추진했기 때문에, 1948년 8월 15일의 행사도 '정부 수립 축하식'이란 이름으로 거행될 수 있었고, 그 해 12월 12일의 유엔 총회에서도 대한민국 정부를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고 승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유엔이 한국을 상대로 국가승인이 아닌 정부승인을 해준 것은 그런 맥락에 기초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비록 노예상태기는 하지만 일제강점기에도 한국이란 나라는 존재했으며 48년 8월 15일에 이 나라의 정부가 정식으로 수립됨으로써 독립국의 위상을 갖게 되었다는 게 유엔의 판단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한국사 시험을 칠 때는 '정부수립'만을 기억해야 정답을 고를 수 있다. '1948년 8월 15일이 건국절'이란 주장을 머리에 담고 있는 수험생은 귀중한 시험 시간을 단 1, 2초라도 엉뚱한 생각으로 허비할 수 있다. 시험을 앞두고 전투력을 강화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불필요한 잡생각을 지워버려야 한다. 
#건국절 #수능시험 #정부수립
댓글10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모임서 눈총 받던 우리 부부, 요즘엔 '인싸' 됐습니다
  2. 2 카페 문 닫는 이상순, 언론도 외면한 제주도 '연세'의 실체
  3. 3 생생하게 부활한 노무현의 진면모... 이런 대통령은 없었다
  4. 4 "개도 만 원짜리 물고 다닌다"던 동네... 충격적인 현재
  5. 5 "4월부터 압록강을 타고 흐르는 것... 장관이에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