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정보 '전부' 수집, '테러방지'면 괜찮아?

[김성호의 독서만세 97] 세계 논객들의 토론 배틀 <감시국가>

등록 2016.10.07 11:47수정 2020.12.25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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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정부를 신뢰합니까?'

시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정부가 사생활을 감시해도 되는지에 대한 열띤 토론은 마침내 정부에 대한 신뢰의 문제로 귀결됐다. 이 물음에 긍정적인 답을 내놓는 이들은 정부가 사생활을 일부 감시해도 된다고 주장한다. 한편 반대편에선 영장청구를 거친 적법한 정보수집으로도 충분하다고 맞선다. 논점은 감시의 주체인 정부를 신뢰할 수 있느냐이고 이에 대한 입장차이가 곧 토론 주제인 '국가감시는 국민의 자유를 지키는 정당한 수단인가?'에 대한 입장차이로 연결된다.


모던타임스가 스노든 시리즈 2편으로 내놓은 책 <감시국가>는 '국가감시는 국민의 자유를 지키는 정당한 수단인가?'라는 주제로 진행된 제13회 멍크 디베이트를 그대로 옮겼다. 멍크 디베이트는 2008년 캐나다 자선재단인 오리아(Aurea) 재단 주도로 시작했다.

당대 최고의 논객 4명이 2대 2로 팀을 나눠 세계적인 관심사를 주제로 공개토론을 벌이고 3000명 내외의 유료청중이 투표로 토론의 승패를 가린다. 90분 내외로 진행되는 토론에 앞서 그날의 주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청중의 의견을 받고 토론이 끝난 뒤 다시 투표를 진행해, 더 많은 청중을 끌어온 팀이 승리하는 방식이다.

연 2회 열리는 멍크 디베이트에선 인도주의적 개입, 해외원조의 효과, 지구 온난화의 위협, 종교가 지정학에 미치는 영향, 중국의 부상, 유럽의 쇠퇴 등이 주제로 다뤄졌으며 패널로는 헨리 키신저, 토니 블레어, 크리스토퍼 히친스, 폴 크루그먼, 피터 만델슨, 파리드 자카리아 등 명성 높은 사상가와 학자, 정치가 등이 출연했다. 각 토론은 캐나다와 미국의 미디어를 통해 북미 전역에 중계되고 출판물로도 만들어져 전 세계에서 널리 읽히고 있다.

국민을 감시하는 나라, 바로 여기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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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국가 책 표지 ⓒ 모던타임스

이날 주제인 국가감시는 2013년 6월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 이후 국제적인 쟁점으로 떠올랐다. 한국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MB정권에선 청와대, 국무총리실이 개입된 민간인 사찰 논란이 거세게 불더니 지난 2014년에는 급기야 검찰의 카카오톡 검열 논란까지 터져나왔다(관련기사 : 진짜 '큰 의리', 바로 이런 겁니다).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 도를 넘었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을 시작으로 검찰이 사이버명예훼손 전담팀을 구성했고, 실제 카카오톡이 검찰의 감청영장을 받아왔다는 사실까지 드러나며 상황은 걷잡을 수 없는 수준으로 확대됐다. 이에 불안을 느낀 이용자들이 해외에 서버를 둔 메신저 텔레그램에 가입하는 소위 '사이버 망명'을 벌이자 카카오톡은 감청영장에 불응하고 보안채팅 기능을 도입하겠다 밝히기도 했다.

이게 끝이 아니다. 지난해에는 국가정보원이 이탈리아 해킹업체로부터 해킹프로그램을 구입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논란을 빚었다. 이 프로그램을 이용, 민간인을 사찰하고 선거에 개입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국정원의 불법대선개입 논란이 있은 지 불과 몇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역시 아무 죄도 없는 시민을 간첩으로 조작했다 발각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국정원의 이 같은 행태는 비난받기 충분한 것이었다.

올해 초에는 수많은 논란 끝에 테러방지법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골자는 국정원장이 테러위험인물로 지목한 인물에 대해 금융정보 조사와 통신 감청 등을 허용하는 것으로 정보기관을 통한 국가감시의 위협이 더욱 커졌다.

경찰도 예외가 아니다. 올해 초 경찰이 범죄수사 등을 이유로 통신 3사에 통신자료 및 통신사실 확인자료 등을 제출받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 논란을 빚었다. 미래창조과학부에 따르면 최근 3년(2013-2015) 간 경찰이 당사자 동의 없이 넘겨받은 통신자료 및 통신사실 확인자료는 5294만717건에 달한다.

해당 자료는 가입자 성명과 주민등록번호, 주소, 가입 및 해지일자, 전화번호는 물론 통화상대 전화번호와 통화일시, 시간, 인터넷 로그기록, 발신기지국 위치추적자료를 망라한다. 이 가운데 일부는 법원의 영장을 필요로 하지만 당사자 동의는 전혀 필요치 않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 청와대, 총리실, 국정원, 검찰, 경찰 등 한국 정부기관은 테러와 범죄를 막는다는 명목으로 국민에 대한 감시를 감행해왔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권한을 넘어선 부적절한 감시였다. 더욱이 테러방지법 통과 등에서 보듯 한국에서의 국가감시는 그 범위와 정도가 더욱 확대되고 강화되는 상황이다.

국가감시를 주제로 벌이는 최고 수준의 논의

이 같은 상황에서 국가감시를 주제로 한 멍크 디베이트는 한국사회에 상당한 시사점을 지닌다. 국가감시에 대한 논의가 성숙한 담론으로 발전하지 못한 채 정쟁의 도구로 활용되다 마침내는 테러방지법이란 결과물을 낳은 오늘의 한국에서 보고 배울 점이 적지 않다. 이번 토론엔 국가감시와 관련해 상상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패널 4명이 참석했다. 글렌 그린월드와 알렉시스 오헤니언, 마이클 헤이든과 앨런 더쇼비츠가 그들이다.

글렌 그린월드는 영국 <가디언> 기자로 일하던 2013년 6월 NSA(미국 국가안보국)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으로부터 NSA가 내·외국민의 전화, 이메일 등을 무차별적으로 감시한다는 증거자료를 받아 특종보도한 인물이다. 그가 소셜뉴스 웹사이트 '레딧' 창업자 알렉시스 오헤니언과 짝을 이뤄 국가감시를 반대하는 측 패널로 나섰다.

찬성패널 역시 화려하다. 공군 4성장군 출신으로 NSA 국장, CIA 국장 등을 역임한 마이클 헤이든, 하버드 로스쿨 최연소 교수 출신으로 미국 최고의 형사사건 피고인 변호사로 명망 높은 앨런 더쇼비츠가 한 팀으로 나와 그린월드, 오헤니언과 격렬한 토론을 벌였다.

NSA국장 출신 마이클 헤이든은 감시의 정당함을 논하기에 앞서 감시의 목적과 감시의 실체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알려진 것과 달리 NSA가 프랑스·노르웨이·스페인 등에서 입수한 수천만건의 메타데이터는 국제적으로 승인된 무력분쟁지역에서 다른 정보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수집됐다고 항변한다. 이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야후에서 입수한 정보 역시 적법한 감시대상과 관련된 정보로 한정됐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헤이든은 시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쓰나미 같이 몰려드는 전 지구적 통신정보 가운데' 메타데이터를 대량 수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9·11 테러 이후 적은 미국 내에서도 활동하고 있다며 "NSA와 CSEC(캐나다 정보국)이 여러분을 계속 안전하게 지켜주기를 바란다면, 이들 정보기관의 업무에는 여러분의 데이터가 저장된 공간에 접근하는 일도 포함돼야 한다"고 말한다.

헤이든과 함께 찬성패널로 참석한 앨런 더쇼비츠는 '감시 없이 살아남은 국가는 없고 과도한 감시 속에 살아남은 국가도 없다'는 이야기로 토론을 시작한다. 그는 과도한 감시를 제한하고 균형을 맞추되 국가의 정보수집 능력을 없애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논의를 이어가는데 주장의 핵심은 적절한 수준으로 제한된 국가감시가 안보 등 공익을 위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당신은 이 나라 정부를 신뢰하나요?

반대 패널 알렉시스 오헤니언은 국가감시가 세 가지 측면에서 위협이 된다고 본다. 하나는 경제적 위협이고 다른 하나는 기술적 위협이며 마지막은 안보 위협이다. 오헤니언이 볼 때 정보기관의 감시는 서비스 제공자와 이용자에게 이를 피하려는 요구를 증폭시키게 마련이고 결과적으로 경제적, 기술적, 안보적 손실을 입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감시가 프라이버시와 안보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며 데이터 수집에 드는 비용의 일부라도 네트워크를 더 안전하게 만드는데 투자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오헤니언은 인터넷이 본질적으로 전 세계적이고 민주적인 플랫폼이며 늘 그렇게 유지돼야 한다며 국가감시에 반대표를 던진다.

이날 토론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글렌 그린월드는 헤이든과 더쇼비츠의 주장에 정면으로 반박한다. 그는 우선 적국이나 테러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합법적 절차로 감시가 이뤄진다는 헤이든의 주장에 대해 스노든의 폭로를 통해 입수한 NSA 문서 등을 토대로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는 NSA 문서에 등장하는 "전부 수집하라. 전부 잘라 내라. 전부 파악하라. 전부 처리하라. 전부 이용하라"는 문구를 예로 들며, 토론의 대상이 될 감시국가의 실체는 매일 미국인이 주고받은 17억 건에 달하는 이메일과 전화 통화를 수집해온 정보기관이라고 강조한다.

이어 그는 안보를 위해 적절한 감시가 필요하다는 더쇼비츠의 주장에 현 국가감시가 표적에 집중하는 감시 시스템이 아닌 시민 일반에 대한 무제한적 감시체계임을 들어 반대 논지를 펼친다.

안타깝게도 토론은 국가감시의 실체에 대한 정보가 충분하지 못한 탓에 충분히 깊이 있게 진행되지 못했다. 헤이든과 그린월드의 주장 상당수는 전제가 되는 사실관계를 달리하고 있으며 둘 모두가 각자의 주장을 청중에게 입증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를 확보하고 있지 못해 단순한 주장의 반복에 그칠 뿐이다.

때문에 청중은 스노든의 폭로와 NSA의 두터운 벽에 감춰진 진실 사이의 간극만을 확인할 뿐이다. 토론의 핵심인 헤이든과 그린월드의 논쟁이 진전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적절한 수준'을 찾으려는 더쇼비츠의 노력이나 '완전한 자유의 효과'에 대한 오헤니언의 주장 역시 외곽만 맴돈다.

실체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이어지는 논의는 결국 감시의 주체인 정부에 대한 신뢰 문제로 귀결된다. 정부를 신뢰하는 사람은 정부에 의한 감시 역시 받아들이고 정부를 신뢰하지 못하는 이는 이를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의 신뢰란 현재만이 아닌 현 정부의 연장선에 있는 미래의 정부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토론의 승패에 대해서는 이 글에서 언급하지 않겠다. 중요한 건 승부 그 자체가 아닌 주제와 토론, 각 선택의 이면에 숨은 가치의 경중이니 말이다. 저들과 한국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한국의 독자들이 책을 읽고 어떤 결론을 내릴지 궁금해진다.

그럼 답해보자. 당신은 이 나라 정부를 얼마나 신뢰하는가?

[또 다른 멍크 디베이트 <부자가 천국 가는 法>서평]
예수 이후 2천 년... 이젠 부자도 천국 들어가야할 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감시국가 / 모던타임스 / 글렌 그린월드, 알렉시스 오헤니언, 마이클 헤이든, 앨런 더쇼비츠 지음 / 오수원 옮김 / 2015. 11. / 13000원>

감시국가 - 국가감시에 관한 우리 시대 정상급 논객들의 라이브 토론 배틀

글렌 그린월드 외 3명 지음, 오수원 옮김,
모던타임스, 2015


#감시국가 #모던타임스 #멍크 디베이트 #김성호의 독서만세 #에드워드 스노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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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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