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길 의사 손녀에게 전해진 백범일지 뒷이야기

그 때 백범 김구선생님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등록 2016.10.07 11:31수정 2016.10.10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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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ew윤봉길 의사의 아드님이신 윤종님이 용산에 살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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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실천원양성소 1기 수업 사진. 건국실천원양성소는 1947년 국가건설을 위한 인재양성을 목적으로 서울 용산구 원효로에 있던 원효사를 본부로 설립한 단체다 ⓒ Wiki Commons


얼마 전 신문을 보다가 흥미로운 기사를 발견했습니다. 뜻깊은 고서적이 헌책방을 돌고 돌아 원주인에게 돌아간 일이었습니다. 헌책방의 먼지 속에서 발견된 바로 그 책은 백범 김구 선생님의 친필서명이 들어간 백범일지였습니다.

1949년 3쇄로 발간된 그 책 앞쪽 속표지에서는 '윤종 군 기념 기축년 이월 칠십사세 백범 김구'라는 백범 선생님의 친필서명이 적혀있다고 합니다. 글 속에 등장하는 윤종군은 바로 윤봉길 의사의 아드님이며, 60년 만에 제자리를 찾아가 그 책을 받게 된 분은 윤종님의 따님이자 윤봉길 의사의 손녀인 윤주경 독립기념관장이었습니다.

저에게 남달리 눈이 가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윤종님께서 뒤표지에 적어 놓으셨던 "용산구 갈월동 101번지 윤종"이었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아드님이신 윤종님이 용산에 살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곳은 지금 현재는 한강대로로 편입되어버린 갈월동 지하차도 바로 앞입니다. 윤종님이 언제부터 용산에 거주하셨는지까지는 모르지만 윤봉길 의사를 효창공원 삼의사묘역에 안장한 이후가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백범 김구 선생님께서 윤종군에게 책을 전달해준 기축년은 1949년으로 김구 선생님께서 안두희에게 총탄을 맞아 서거하신 1949년 6월 26일 바로 4달 전이었던 때였습니다. 김구 선생님과 윤봉길 의사의 죽음까지도 맹세했던 뜨거운 만남과 그 만남의 유명한 상징이 된 시계교환이 떠오릅니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미안함과 윤봉길 의사가 못다한 사랑을 대신하려 했을 김구 선생님의 마음이 뭉클하게 다가옵니다.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며 고군분투하시던 선생은 좌익 투항이니 이승만정권에 대한 비협조 등을 이유로 정치적 입지는 좁아져 가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장덕수 암살사건의 배후로 지목되어 미군법정에서 재판을 받는 시련까지 겪게 됩니다. 그럼에도 선생께서는 남북민간지도자 회담을 통해 통일을 실현하자는 방안을 밝히는 등 활동을 전개하셨습니다.


바로 이즈음 김구 선생님께서는 그 유명한 마음속의 38선이 무너져야 땅 위의 38선도 철폐될 수 있다는 말씀을 하셨던 '대조' 1949년 3, 4호에 "민족통일의 재구상"을 발표하기 위해 글을 쓰시던 때였습니다. 이글을 통해 김구 선생님이 꿈꿔온 나라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나라의 앞날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시기의 글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사상의 넓이와 깊이가 지금도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줍니다. 경제력과 군사력이 아닌 높은 문화의 힘, 나와 우리가 모두 행복한 높은 문화의 힘이 그립습니다.

일제의 지배력을 뒷받침하던 일본군사령부가 있던 용산기지, 일제의 전쟁물자를 나르고 한반도 경제수탈의 통로였던 철도의 핵심기지 용산에 자주독립의 기운을 불러일으켜야겠다는 김구 선생님의 고뇌는 바로 효창원에 의열사를 모시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후 건국실천원양성소로 구체화하였습니다. 그리고 김구 선생님 서거 후 자신 또한 용산에 묻히심으로써 용산의 자주독립국의 정신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완성됩니다.

오늘 마음이 헛헛할 때 갈 길을 잃었을 때 김구 선생님, 윤봉길 의사를 생각하며 효창원에서 원효로까지 걷겠습니다. 그 분들의 고뇌와 우직한 걸음 그리고 뜨거운 마음을 떠올려봅니다.

보이지 않던 역사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을 발견할 수 있는 공간에 가까이 산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큰 자산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기사를 쓴 설혜영은 6대 용산구의회 의원을 역임했습니다.
#윤봉길 #백범 김구 #백범일지 #효창공원 #윤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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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대안적 개발을 모색하고, 생태환경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불평부당한 사회를 민의 힘을 믿고 바꿔 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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