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는 상대가 원하는 것이어야 한다

[서평] 장애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그림책 <엘 데포>

등록 2016.10.15 15:03수정 2016.10.15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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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데포> 표지 ⓒ 밝은 미래

듣는데 문제가 없는 사람이 청력을 잃은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요? 또 어떻게 하는 것이 장애를 가진 사람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일까요? 시시 벨(Cece Bell)이라는 작가의 귀여운 그림책 <엘 데포>(El Deafo)는 이와 같은 물음에 적절한 대답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은 네 살 때 급작스러운 뇌수막염으로 청력을 잃었던 작가가 본인의 체험을 기초로 쓴 것입니다. 고도 난청으로 커다란 기계장치를 가슴에 매고 귀에는 보청기를 끼고 살아왔던 아이 시시의 이야기입니다. 청각 장애를 가진 어린 아이가 보통의 아이들 사이에서 성장하면서 겪었던 불편, 상처, 깨달음이 담담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책의 제목 '엘 데포'는 '세상에 하나뿐인 청각장애인'이라는 뜻입니다. 주인공 시시가 어느 날 텔레비전에 나온 청각 장애를 가진 아이를 보고는 스스로에게 붙여준 이름입니다. 이것은 장애를 가진 자신의 현실을 인정하지만 그것이 다른 이들과 다른 고유한 '차이'일 뿐이라는 것을 자신에게 선언한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다름'은 '장애'가 아닌 '차이'일 뿐입니다

시시는 특수학교 대신 보통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선생님이 하는 말을 듣기 위해 마이크와 보청기가 한 세트로 된 장치를 사용해야 했습니다. 선생님이 마이크를 목에 걸고 말하면 시시의 보청기로 음성이 전해지는 것이었죠. 시시는 다른 친구들의 눈에 쉽게 보이는 이 커다란 보청기를 싫어했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이 마이크를 목에 걸고 다녔기 때문에 시시는 다른 친구들은 결코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신기한 능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신기한 능력'은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관계가 끊길 뻔했던 친구의 진심을 들을 수 있게 해 주었고, 마침내 이 친구와 다시금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줍니다.

게다가 학교에서 시시는 이 남다른 능력을 이용해 자습시간에 선생님이 오시는지 망을 봐줌으로써 반 친구들 모두를 아주 즐겁게 해 줍니다. 이와 같은 경험은 시시가 장애라고 여겼던 자신의 다른 모습이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을 수 있게 주었습니다. 작가의 말에서 시시 벨은 장애를 보는 자신의 변화된 관점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나는 정상 청력 아이들에 둘러싸인 난청 어린이였습니다. 나는 남들과 달랐고, 다른 것은 좋은 것이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속으로도 또 겉으로도 나는 소리를 못 들어서 남들과 다르고, 그것을 장애라고 생각하고 부끄러워 했습니다."

"지금은 난청이 내 작은 일부라고 생각하고, 감추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난청을 약간 불편한 일로 여기고 축복으로도 여깁니다. 원할 때면 언제라도 세상의 소리를 끄고 평화로운 정적 속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남들과 다른것? 그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좋은 부분이 되었습니다. 약간의 창의력과 많은 노력을 기울이면, 어떤 다름도 놀라운 것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들과 다른 것이 우리의 슈퍼 파워입니다."


하지만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모두 시시와 같은 인식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작가가 말했듯 뭔가 다르다는 것이 놀라운 능력으로 변화되기 위해선 '많은 노력'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더해 장애를 가진 사람을 대하는 주변 사람들의 태도도 장애에 대한 인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친구가 된다는 것

책을 읽으면서 시시 주변 사람들이 시시를 대하는 몇 가지 서로 다른 방식에 주목하게 됩니다. 지니라는 친구는 보청기를 한 시시를 배려한답시고 또박또박 천천히 큰 소리로 말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반을 함께 즐기고 싶어 시시에게 들려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의도와는 달리 지니의 말은 알아 듣기가 더 힘들었고, 전혀 알아 듣지 못하는 노래를 듣는 건 시시에게 정말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시시에게 수화로 말을 거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수화를 하니 주변 사람들이 시시를 쳐다보게 되고 시시가 청력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금세 알려지게 되었죠. 시시는 자신의 불편한 마음을 엄마에게 말하지만, 오히려 엄마는 시시를 수화교실에 데리고 갑니다. 시시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시시는 듣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에게 수화를 하는 것을 매우 못마땅해 했습니다.

반면, 시시보다 한 살 어린 마사라는 동생은 시시를 아주 스스럼없이 대했습니다. 시시가 보청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시시를 생각한다며 큰 소리로 말하지도, 수화를 하려고 하지도, 자기 멋대로 하지도 않는 아이였습니다. 마사는 시시를 보통의 아이들과 똑같이 대했습니다. 시시는 이런 마사를 진실한 친구라 여겼습니다.

시시가 짝사랑한 마이크라는 옆집 남자 아이도 있었는데, 이 친구는 단순히 시시의 보청기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보청기와 한 세트인 마이크를 자신의 목에 걸고 시내를 다니며 보청기의 성능을 시험했던 친구입니다. 그런데 마이크는 보청기의 놀라운 능력을 이용해 시시가 장애를 바라보는 관점을 180도로 바꾸는 데 아주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장애를 가진 이들을 어떤 태도와 마음가짐으로 대해야 할 것인가는 명확해 보입니다. 마사나 마이크 같은 친구가 이들에겐 필요한 것이겠지요. 책을 읽는 동안 주변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는 장애인들을 대할 때 필자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친구 지니, 시시에게 수화로 말을 걸던 친구, 시시의 엄마처럼 상대방보다는 내 생각을 중심으로 배려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마음을 들여다보니 장애를 결핍으로 여기는 모습이 보입니다. 또 장애인을 연민의 눈을 가지고 도와줘야 할 존재로만 생각하던 필자의 모습이 보입니다. 단지 주어진 신체적 혹은 정신적 조건이 달라 불편한 것 뿐인데 동정을 보내고 있었다는 것도 깨닫게 됩니다. '다름'이 '장애'가 아닌 '차이'란 인식은 보통 사람인 필자에게 더욱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엘 데포 - 특별한 아이와 진실한 친구 이야기, 2015 뉴베리 명예상 수상작

시시 벨 글.그림, 고정아 옮김,
밝은미래, 2016


#엘 데포 #시시 벨 #청각장애 #뉴베리 아너상 #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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