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나날들, 검은 안경 쓴 낯선 여자가 찾아왔다

[호주 워홀러기 26] 센서스 인구조사에 참여하다

등록 2016.10.16 14:09수정 2016.10.16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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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호주의 일상에 익숙해졌다. 지루한 일상. 큰 이벤트가 없는 한 일은 계속된다. 중간중간 취재했던 것을 제외하면('위안부' 소녀상 관련) 하루가 명료하게 지나간다. 어느 날은 친구에게 '지루하다'며 불평을 했더니 한마디 던진다.


"지루하긴. 너 지금까지 있었던 일 생각 안 나? 차 도둑에 앞 유리에. 그 정도면 워홀러치고는 버라이어티한 경험을 한 거야. 지루함에 감사하라고."

빼거나 보탤 것 없이 정확하다. 지루함에 지루해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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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관련 커뮤니티에 인구조사에 대한 포스팅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 pixabay


호주 관련 커뮤니티에 인구조사에 대한 포스팅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내용인즉슨, 인구조사를 각 가정마다 하고 워홀러든 뭐든 상관없이 현재 집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전부해야 한다는 것. 처음에는 인터넷에 떠다니는 정보라 여겨 무시했다.

"Excuse me?"

애써 외면하는 무언가는 항상 예상치 못하게 맞닥뜨린다. 좋든 싫든 마주 봐야 한다. 그리고 그 정도에 따라 곤란한 일인지, 그냥 넘길 수 있는 일인지 정하는 것. 맞닥뜨렸다. 화창한 주말. 검은 안경을 슥 올리며 말을 거는 낯선 사람에게서. 그녀는 조사 안내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인구조사를 받아야 합니다. 안 받으면 벌금이 나와요. 총 3번 제가 올 것이고 그때까지 안 받으면 제 상관이 연락할 겁니다."

그녀는 무덤덤하게 영어로 설명했고 기자는 겨우겨우 말을 알아듣고 있었다. 결국은 인구조사를 해야 한다는 것. 안 하면 벌금이 나온다는 것. 이 나라는 정말 의무적으로 해야 할 일에 패널티 붙이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녀는 인구조사와 관련된 편지를 하나 주고 돌아갔다.

"이거 집주인이 해야 하네."

편지를 읽어보니 그렇다. 이 나라에서 편지는 유용한 도구다. 인터넷으로 하는 방법이 있지만 사람들은 편지를 더 활용한다. 가령 벌금을 내야 하는 경우가 있다면 편지로 호소하기도 한다. 잘하면 벌금이 없어지거나 깎이기도 한다고. 그러나 셰어마스터는 한국인이었다. 속 터지는 것은 싫다며 스마트폰을 꺼낸다.

"야 이거 해봐."

집주인이 일괄적으로 하거나 개인이 해도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이번에 옮긴 셰어하우스는 이전과는 달리 마스터가 상주한다. 가정집이라 그런지 사람 숫자도 적다. 덕분에 누나 동생 하며 지낸다.

"뭔데."
"생년월일, 소득이랑 적어야 한다는데?"


적으라는 대로 쓱쓱 입력한다. 물어보는 게 별거 없다. 얼마나 지냈는지, 얼마나 지낼 것인지, 성별, 소득 등등. 이 정보는 인구조사에만 활용되는 것이라 타 부서로 이관되지 않는다고. 다시 말해 자신이 '불법적인' 일을 하고 있더라도 보호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인구조사를 정확하게 하려는 조치겠지.

"됐다."

인구조사가 끝났다. 벌금이라는 말에 좀 서둘렀다. 5년 마다 한번 하는 것이라 어떻게 보면 운 나쁘게 걸린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낯선 나라에서 하는 낯선 경험은 신비롭다. 그렇게 '큰일'을 하나 치렀다.

덧붙이는 글 스물일곱.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호주에 왔습니다. 앞으로 호주에서 지내며 겪는 일들을 연재식으로 풀어내려 합니다. 좀 더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풀어내고 싶습니다.
#호주 #시드니 #인구조사 #워홀러 #센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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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전역한 따끈따끈한 언론고시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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