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 여성을 다문화로 대상화...부끄러웠다

[인터뷰] 조선족 문인 김추월씨

등록 2016.10.25 14:13수정 2016.10.25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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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가 함께 찍은 김추월씨의 가족사진. ⓒ 김추월


김추월(49)씨를 만난 것은 다문화가정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는 '내고향을 소개합니다' 인터뷰 때문이었다. 하지만, 김씨와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눈지 채 10분도 안돼 조선족 여성들을 아무 문제의식 없이 '다문화'로 대상화한 것에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다.


"내 고향요? 우리 할아버지 본적인 충남 공주 의상면 덕학리(옛 지명)요."

연변에서 나고 자라지 않았냐고 재차 묻자 김씨는 정색을 했다.

"태어난 곳이 고향인가요? 제가 태어난 연변 왕청에 대해 추억은 아련하지만, 뭐…. 우리는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뿌리에 대해 그렇게 배우지 않았거든요. 일제의 탄압을 피해 중국으로 건너가 모진 세월을 견디신 할아버지께서 늘 그리워하셨던 곳, 언젠가는 우리가 찾아가야 하는 고향은 공주였어요."

전통문화 지킨 '조선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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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춘에서 조선족학교에 다닐 당시 단체사진. ⓒ 김추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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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대학교 재학시절 초등학교 친구들이 놀러와 찍은 사진(맨 오른쪽이 김추월씨). ⓒ 김추월


김씨는 한국어 발음과 억양, 사용하는 단어 모든 것들을 '표준'이상으로 구사했다. 심지어 그는 문인이다. 연변대 국문학과(조선어학과)를 나온 시인인데, 산문 역시 웬만한 작가들에 뒤지지 않는 필력이다. 여성가족부가 운영하는 위민넷과 중국동포타운신문 기자로 활동한 이력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한국어로 초, 중, 고, 대학교 모두 다녔어요. 지금은 많이 희석됐지만, 조선족들은 마을마다 우리말학교를 세워 민족교육을 중시하고, 혼인도 한족과는 절대 못하게 하고 조선족끼리 시킬 정도로 정체성을 지켜냈기에 자부심이 대단했어요. 중국사회에서도 조선족들을 무시하지 못했죠. 그런데 오히려 한국에 와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많은 조선족들이 한국에 와서 '중국인'취급을 받으면서 굉장히 혼란스러워 하고 배신감마저 느낍니다."

나고 자란 땅이 달랐을 뿐이지, 단군역사를 배우고 한국전통과 문화를 지키며 살아왔기에, 외국문물에 젖은 한국내 성장 국민보다 더 단단한 민족의식을 갖고 있는 조선족을 '다문화가정'으로 분류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문제제기다.

한국에 오니 '중국인' 취급

대학졸업 뒤 대련에서 교사로 활동하고, 무역업에도 종사하던 김씨가 한국을 처음 방문한 때는 2001년. 당시 한 지방일간지에서 주최하는 문학제에 연변 여성시인협회 사무국장 자격으로 초청을 받았다. 충북 5개 시군을 순회하며 시낭송을 하고 머무르는 동안 "내가 활동할 곳은 바로 이곳이다"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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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대 재학시절 모습. ⓒ 김추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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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대학도서관. ⓒ 김추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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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대학캠퍼스. ⓒ 김추월


그 뒤로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무역업을 하다가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서울에 정착했다. 충남 예산과의 인연은 지난해 남편이 내포신도시 아파트건설현장 감리단에 파견을 나와 시작됐다. 현재 충남 예산군 삽교읍 신리 공동주택에서 살고 있는 김씨 부부는 예산에서 여생을 보낼 계획이다.

"남편 고향이 전라남도 해남이라, 귀촌해 살 생각으로 그곳에 땅도 사뒀는데, 예산에서 살아보니 여기에 정착하고 싶더라구요. 남편도 같은 생각이구요."

김씨는 예산의 매력에 대해 "산 가깝고 물이 좋아 온천과 약수, 가벼운 등산이 모두 가능하며 사람들도 좋은 고장"이라고 말했다.

윤봉길 이름 석자에 '글썽'

온라인 오픈마켓 상품판매, 무역업, 통역, 농업인대학 학생, 충남도민리포터로 분주한 가운데서도 일주일에 사흘은 (사)매헌윤봉길월진회에서 일하고 있는 김씨.

"윤봉길 의사님을 누구에게 설명하려면 이름만 말해도 눈물이 나요. 독립운동가들이 어떻게 살았을지 생각해보세요. 할아버지로부터 타국의 설움 속에서도 척박한 땅을 일궈 독립자금을 보탠 조선족 이야기를 듣고 자랐기에 가슴이 뜨거워져요."

윤봉길 의사에 '님'자를 붙이고, 금세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처음이다.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란 우리 국민들 중에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가슴으로부터 존경심을 갖고 '의사님'이라 부르는 사람 얼마나 있을까.

연변과 공주, 두 개의 고향을 갖고 있는 김씨, 예산이 그에게 제3의 고향이 되면 좋겠다.

"사람도 풀씨와 같아서 어디라도 날아가면 뿌리를 내리게 된다." - 김추월의 글 <빈터> 중
덧붙이는 글 충남 예산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 <무한정보>와 인터넷신문 <예스무한>에도 실렸습니다.
#조선족 #민족교육 #독립 #연변 #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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