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장모님. 지금은 어머님만 이승의 분입니다.
이안수
한 청년과 두런두런 말을 섞었습니다. 그는 대학 1학년을 마치고, 지금은 거반 회복된 건강 때문에 휴학 중입니다.
그 청년은 자신을 둘러싼 세상의 모든 것들을 스치듯 대하는 것이 아니라 깊이 사유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저와 마주할 때면 그 과정에서 결론낼 수 없었던 것들을 혼잣말처럼, 혹은 묻듯이 말하곤 합니다.
"선생님, 최근 아버지를 오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가 나를 보자마자 불쑥 새로운 어젠다를 꺼냈습니다.
"그동안 아버지와 간극이 있었는데 최근 화해했다는 것인가?""아버지와 대화할 기회가 있었거든요." "그럼 한집에 살면서도 아버지와 대화할 기회가 없었어?""저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부모님과 함께 밥을 먹지 않았어요." "그럼 누구와 식사를 한 거지?""혼자요.""왜?""부모님 두 분은 식사할 때 '쩝쩝'소리를 내세요. 저는 식사할 때 소리 나는 것이 싫었어요. 제가 좀 예민하거든요." "이런!""..." "그래, 아버지의 어떤 점을 오해하고 있었나?""아버지는 명문 대학을 나오셨지만 아버지가 원하시는 만큼 뜻을 펴지 못하셨어요. 아버지는 더 공부를 하길 원하셨데요. 하지만 그렇게 되지 못한 것에 대해 할머니께서는 아빠가 공부를 하지 않으려고 했다고 말씀하셨고, 어머니께서는 고모님들이 시기를 해서 더 계속할 수 없었다고 하셨어요. 아버지의 누나나 동생들은 고등학교를 가지 못한 분들도 있지만 아버지 혼자 대학을 가셨거든요. 아버지가 좋은 대학을 나오고 공부도 잘했지만 아버지께서 돈을 많이 벌지 못하는 것은 인간관계가 안 좋아서라고 어릴 때부터 어머니에게 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최근까지도 아버지가 무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아버지의 직접적인 목소리를 통해서 새롭게 안 것은 공부를 더 하지 못한 것은 공부가 싫어서도 누군가가 시기를 해서도 아닌, 단지 돈 때문이었어요. 아버지가 당장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되는 집안 형편이었던 것이죠. 이 오해만으로도 제가 아버지께 크게 잘못을 한 것 같아요." "그것을 알게 된 것이 언제쯤이었나?""두달전쯤이에요.""그럼 최근에는 아버지와 대화가 가능해졌다는 얘기군?""네." "아주, 잘했다. 그동안 아버지와 대화의 단절이 있어고, 오해도 그 단절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 단절은 또한 밥상을 함께 하지 않았던 것이 큰 원인인 것 같고.... 우리나라 가정의 라이프 사이클이 하루 세끼 밥을 함께 먹을 수 있는 환경에서 멀어진 것은 이미 오래 전이지만 적어도 아침이나 저녁의 한 끼 정도는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 보편적인데 너의 경우처럼 10년 넘게 한 밥상에 앉지 않은 것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이구나. 전통적으로 우리는 가족들이 밥상에서 집안의 사소하거나 중요한 일들에 대해 대화하고 부모는 아이들의 식습관 뿐만 아니라 예절까지 가르쳤거든. 그래서 아이들은 밥상머리에서 함께 사는데 필요한 거의 모든 사회적 필요와 관계의 예의를 배웠지. 전통적으로 그것을 밥상머리 교육이라고 하고...사실은 나도 너와 다르지 않는 처지였단다. 나는 농부인 부모님의 자식 교육에 대한 열망에 따라 국민학교 4학년 때 농촌에서 도시로 전학을 가게 되었고 그 후로는 줄곧 혼자였으니 말이다. 아버지에게 가장 후회되는 일로 남은 일이 있단다. 작년 10월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교통사고를 당한 어머니를 서울로 모셔다 치료하는 경황없는 중에 전혀 예후가 없었던 아버님께서 밤새 고향에서 홀로 세상을 버린 것이다. 그렇게 불쑥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보니 마음에 걸린 점이 한 가지 있었다. 91세의 아버지 성화로 지난 여름에 선산에 묏자리를 정하고 함께 석물들을 주문한 다음 고향을 떠날 때 인사를 드리는데, 내개는 언제나 용맹한 장수 같으셨던 아버지의 눈빛이 얼마나 간절하든지... 손과 입은 어서 가라는 송별이었지만 그 눈빛은 "네가 조금이라도 더 내 곁에 있어주면 좋겠구나!"라는 절절한 간구가 담긴 눈빛이었지. 그 이별이 영영 마지막이 된 것이다. 내게 남은 마지막 아버지는 야멸치게 뿌리치고 떠나온 그때 그 간구의 마지막 눈빛이란다. 인생이라는 사이클에서 너는 지금 전성기를 향해가고 있고 아버지는 가능성과 기력이 점점 쇠해가는 형편이다. 이것이 또한 순리이고... 그러니 이제부터는 아버지가 네게 얘기를 청할 때를 기다리지 말고 네가 먼저 아버지에게 함께 하는 자리를 만들도록 해라. 짬이 날 때 아버지께 먼저 말씀드려라. "아버지 오늘 밤, 저와 치맥 한잔 하실래요?"라고... 그것이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함께 하지 못 했던 밥상머리에서의 기회를 보충하는 방법이며 나처럼 아버지가 영영 떠나신 뒤 후회하지 않는 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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