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똑바로' 차려야 할 박물관

[다섯 부부의 인상파식 여행] 아! 이베리아반도①

등록 2016.11.07 10:29수정 2016.11.07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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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만6700여 컷이 모였다. 여행을 위해 '길동무'라는 이름으로 뭉친 다섯 부부가 이베리아 반도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16박 17일 동안 훑으며 찍은 것을 합한 숫자다. 눈이 끌리고 느낌이 이는 곳, 기억하고 싶은 곳들을 담았다.

각자 또는 부부, 모두 함께 포즈를 취하기도 했고, 특별히 가이드 추천이 있는 곳이면 "고뤠요?"를 외치며 자리를 앞다툰 순간들을 담았다. 어디선가 "얼음"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면 카메라를 향해 멈춰 섰고, 마음에 드는 포인트를 발견한 누군가 그 자리에 서면 또 다른 누가 그 순간을 '찰칵' 하고 기록했다.


절로 감탄사가 터지는 절경, 숨을 멈추게 하는 멋진 순간, 말문을 닫게 하는 역사 현장은 그렇게 한 컷 한 컷 다섯 부부의 것이 되었다. 한 장의 사진으로 담기는 아쉬운 곳, 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은 비디오로 담았다. 촬영을 금하는 곳도 있었다. 미처 사진으로 담을 틈도 없이 스친 차창 밖 풍경도 많았다. 눈과 뇌리로 다 기억할 수 없고, 마음에도 다 담을 수 없었던 그 많은 컷은 이번 여행의 아름다운 여백으로 둘 수밖에 없다.

살아 존재하는 현상이 찰나로 정지된 것이 사진이다. 찍히는 그 한순간으로 멈추는 실제, 하지만 그 실제는 여전히 현실을 유지하며 생동하고 변화한다. 그래서 그럴까. 같은 사진이라 할지라도 들여다볼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 특히 자기가 기록하고 스스로 창작한 상황은 오래 두고 보아도 늘 마음을 새롭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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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1904-1989), 한번 보면 절대 잊히지 않을 모습의 사진들이 그의 박물관 한 벽면을 가득 장식하고 있었다. ⓒ 길동무


"와우! 바로 이 사람이 살바도르 달리였어?"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피게레스, 달리의 극장 박물관(Teatre Museu Dali)에서 벽에 걸린 사진들을 보며 나는 화들짝 놀랐다. '어이' 없다는 말이란 바로 이럴 때를 위해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 박물관에 갈 때까지 그의 이름과 모습을 다르게 기억하고 있었다. 무지가 이쯤이면 그저 헛웃음을 칠 수밖에 없다.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 1904-1989), '한번 보면 절대 잊히지 않을 모습'의 살바도르 달리, 박물관에는 바로 그런 그의 모습을 증명하는 사진들이 즐비했다. 그의 뮤즈 갈라와 살며 창작하던 카다케스의 집 '까사 달리'의 한 방 벽면을 장식한 수많은 사진 또한 달리가 왜 달리인가를 여실히 뒷받침했다.

천재 작가 살바도르 달리, 그는 왜 어떤 희극배우보다 더 기이한 표정의 사진들을 많이 남겼을까? 자신이 추구한 초현실주의를 이해시키기 위함이었을까? 평생을 광적으로 풀어 헤쳐 냈어도 바닥을 볼 수 없었던 초현실주의를 그런 사진으로라도 보충하려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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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피게라스의 달리 극장 박물관(Teatre Museu Dali) 외벽의 모습. 지붕 위에 달걀 모습의 조형물이 보인다. ⓒ 길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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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 극장 박물관 내부 일차 공간 ⓒ 길동무


달리의 극장 박물관은 원래 피게레스 시립 극장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참혹했던 스페인 내란(1936~1939)을 피하지 못하고 불에 탄 것이 박물관으로 변화하는 계기였다. 극장의 재건을 맡았던 당시 피게레스 시장은 달리에게 전용 전시실을 마련해 줄 테니 작품을 기증해 달라고 제안했다고 한다.

이에 서슴없이 본인 작품 전체를 기증하겠다고 했다는 달리, 그의 기개와 광기로 볼 때 충분히 이해 가능한 부분이다. 박물관이 완성되기까지 달리는 온전히 자신을 바쳤다 했다. 현장에서 살기까지 하면서 전시실 구성과 설치 모두에 관여했고, 후에 그가 살던 집까지 확장함으로써 달리와 갈라 재단의 소장품 모두를 관장하는 오늘날의 박물관이 되었다고 한다.

눈으로만 보면 안 돼, 그릴 필요도 없어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은 그냥 눈으로만 봐서는 안 됩니다."

가이드 이 선생은 미술관으로 가는 차 안에서 그렇게 운을 뗐다.

"그럼 그려야 하나요? 전 미술엔 젬병인데..."

길동무 여행의 회계를 맡은 복나눔씨의 촌철살인 개그가 또 터졌다. 언제 어디서고 순간 반응으로 즐거운 상황을 창출하는 그의 놀라운 순발력은 함께 여행하는 내내 일행을 행복하게 한다. 가이드 이 선생 또한 폭소를 참지 못했다.

"아, 다행히 이 박물관에서는 그리기를 강요하지 않습니다. 초현실주의 작품이란 눈에 보이는 현실이 아닌 무의식 세계를 그린 것이잖아요? 살바도르 달리는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학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이상하고 비합리적인 환각을 객관적으로 또 사실적으로 표현하려 노력했습니다. 이런 초현실주의 작품들을 잘 감상하려면 아무래도 보이는 것보다는 그 이면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요? 기왕 오셨으니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을 통해서 그가 꿈꾸었던 초현실의 세계를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가이드 이 선생의 목소리에 힘이 넘쳤다. 길동무 일행이 순전히 달리와 그의 예술을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달려와 하룻밤과 하루를 소비한다 해도 결코 그것이 후회되지 않을 것을 그는 확신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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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 웨스트 입술 소파’(Mae West lips sofa). 1930년대에 세계적 섹스 심벌이었던 여배우 메이 웨스트의 입술을 본떠 만든 달리의 작품. 이 작품을 사진과 같이 감상하기 위해서는 별도로 설치된 렌즈를 들여다 보아야 한다. ⓒ 길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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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의 초상 달리에게 갈라는 늘 작품의 주제였다. 많은 작품에 갈라의 모습이 등장한다. ⓒ 길동무


달리의 극장 박물관은 피게레스 시의 상징이 된 지 이미 오래라고 했다. 박물관 문을 열기 전부터 길게 늘어서 입장을 기다리는 많은 관광객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박물관은 붉은색이 깊게 녹아든 외벽과 그 벽에 빵 모양의 덩어리들을 질서 정연하게 붙여 시선을 끌었다.

달리의 의외성이 거기서부터 스멀스멀 시작되고 있었다. 지붕 위에는 달걀 모양의 거대한 조형물들이 늘어서 있다. 타원형의 부드러운 곡선이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가 싶더니, 어느 영화사 상징물 같은 금색 피부의 여상들이 달걀 조형물들 사이에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피게레스 방문자들을 살핀다.

표를 사고 줄을 서니 눈에 띄는 조형물들이 부지기수다. 박물관 앞에 자리한 나무와 쇠, 사람과 동물이 혼합된 추상형 조형물이나 건물 벽의 조형물 모두가 심상치 않다. 골동품 다리미를 붙인 출입문 손잡이 또한 상상력에 충격을 가한다. 박물관으로 들어서자 층을 막지 않은 원형 공간이 펼쳐진다. 바닥엔 낡은 고기잡이배가 쇠줄에 얽혀있다.

난데없기는 마찬가지, 낡은 캐딜락 한 대가 사람들의 관음증을 실험한다. 안을 들여다보니 여자 마네킹과 가슴이 뻥 뚫린 남자 마네킹이 있다. 목에 치렁치렁 쇠사슬을 감은 풍만한 여인상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올려다보이는 창문들 밖으로 금색 나상의 여인이 툭툭 튀어나와 박물관이 곧 상상력과 감성이 생동하는 축제장임을 알린다. 그리고 갖가지 조형물들이 각기 다른 이야기를 지니고 설치되어 있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리 우왕좌왕하다가는 달리가 쳐 놓은 그물에 걸려 달리의 웃음거리가 되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생각을 멈추게 하는 그림 한 점이 눈에 든다. 모자이크 형상의 링컨이다. 신기하다 싶어 카메라로 초점을 맞추니 웬걸, 링컨의 얼굴 모습 안에서 여인의 나상이 드러난다. 달리의 여인 갈라다.

"달리는 이중영상을 활용함으로써 아주 기상천외한 이미지를 산출했습니다."

가이드 이 선생의 한 마디가 귀에 꽂힌다. 맞다. 그래서 설명이 필요하다. 옳거니 달리의 수법에 속지 말자. 차라리 이참에 내가 살바도르 달리가 되어 보자.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밀려드는 관광객들이 문제였다. 차분히 달리가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래 여기 오는 모두는 국적과 성별을 불문하고 달리가 될 자격이 있다. 자리를 양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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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가 미국에서 활동하던 시절 디자인한 보석 ⓒ 길동무


유형별로 작품들이 배치된 방과 방을 지나면 복도가 이어지고, 작품을 보고 느끼며 통로를 지나면 다시 방으로 이어졌다. 상상력을 간단히 비틀어버리는 표현력, 정형화를 가뿐히 밀쳐내는 자유롭고 다채로운 필력, 각종의 오브제를 밀가루 반죽 주무르듯 펼쳐놓은 입체와 설치 작품들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 모두는 살바도르 달리를 왜 초현실주의 거두로 평가하는지 담담히 설명하고 있었다. 사진 속 달리처럼 드러난 실제로 증명하고 있었다.

"달리의 대표작 대부분이 이 극장 박물관보다 세계의 손꼽히는 미술관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섭섭한 일이 아니었다. 대표작들에 몰두 되지 않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의 습작들이 있어서 좋았다. 박물관 전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꾸며버린 달리를 실감 나게 들여다볼 수 있는데 더 무엇을 바라랴.

살바도르 달리, 그는 참 전천후 예술가였다. 회화를 기본으로 조각, 판화, 다양한 오브제를 활용한 설치 미술, 영화 제작과 연극, 사진, 패션과 보석 디자인 등 가능한 분야를 가리지 않고 섭렵했다. 퍼포먼스를 즐기고 강연을 하며, 시와 산문을 쓰기도 했다. 1941년 서른여섯 나이에 탈고한 회고록이 지금도 명저로 회자하는 것을 보면 그의 예술 심상이 얼마나 넓고 깊었는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초현실주의 그룹에서 쫓겨남으로써 오히려 그는 진정한 초현실주의 작가의 표상이 되었고, 거침없는 기벽과 언행들이야말로 광기를 즐기는 것이 진정한 광기임을 시사했다. 자신의 삶을 그쯤 확신하면서 꿈을 펼칠 수 있다면 그게 행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실 나는 일생 '정상성'이라는 것에 익숙해지는 게 몹시 어려웠다. 내가 접하는 인간들, 세상을 가득 메우고 있는 인간들이 보여주는 정상적인 그 무엇이 내게는 혼란스러웠다."

"초현실주의를 현실에 융합시키지 않는 한 아무 가치가 없다."

달리의 어록 중에는 세상을 향해 던지는 비수 같은 말들이 많다. 끊임없이 추구한 가상의 초현실 세계를 실체가 있는 작품으로 드러내면서 초현실과 현실을 넘나들며, 마침내 그 경계마저 무너뜨린 결과이리라.

달리의 말은 명쾌하다. 그리고 비범하다. 그의 작품들은 흥미롭다. 정교한가 하면 무질서하게 흐트러진다. 투필성형(投筆成形), 붓을 던지면 형상이 이루어진다는 말이 바로 거기 살아있었다. 그러기에 들여다볼수록 상상력은 배가 되었다. 달리의 예술이 "시대와 인종 장소를 뛰어넘어 미술 애호가와 창작 선상에서 고심하는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줄 것이다"는 말에 적극적으로 찬성하게 한다.

박물관 출구를 나오자 몰려든 시장기가 달리 삼매에 빠진 시간이 꽤 길었음을 알린다. 길동무 일행은 서둘러 극장 박물관 근처 레스토랑을 찾아 늦은 점심을 해치웠다. 다음 일정도 달리다. 오직 그의 여인 갈라와 둘만 살았을 뿐 공개를 하지 않았다던 집, 카다케스의 까사 달리를 정중하게 방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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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사 달리의 달리 작업실 내부. 이젤 너머로 지중해가 보인다. ⓒ 길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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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사 달리 내부 응접실 ⓒ 길동무


달리의 뮤즈, 갈라

"나는 갈라를 아버지보다도, 어머니보다도, 피카소보다도, 심지어 돈보다도 더 사랑한다."

달리가 그의 여인 갈라를 향해 선포한 말이다. 도대체 갈라는 어떤 여성이었을까? 어떤 매력을 지녔기에 시대를 흔들고 역사가 된 달리에게 그런 고백을 토하게 했을까? 달리의 작품이나 사진에 드러난 갈라의 인상에 대해 길동무들은 느낌이 다 달랐다.

"눈동자가 주술적이지 않아요?"
"미인은 아닌데 육감적인 면 있던데요."
"책에서 읽은 건데요. 파산의 상황을 피해가며 그들의 낭비적 생활을 뒷받침하던 능력을 발휘한 상업적 관리자였더라고요. 그 말이 이해될 만큼 강한 인상이었어요."

길동무 유니카씨의 평가에 일행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그녀는 달리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는 영원한 뮤즈이자 전부였다."는 점이다. 전기 작가로 활동하는 소피 들라생은 달리와 갈라의 사랑을 다룬 소설 <달리의 연인 갈라>를 통해서 갈라에 대해 아래와 같이 밝혔다.

"갈라의 등을 바라보며, 달리는 비로소 자신이 늘 꿈꿔왔던 여인과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달리에게 갈라는 '혈관이자 피였으며, 산소이자 균형을 잃지 않게 해주는 천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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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 달리 지붕을 너머로 지중해가 바라다 보이는 뒷 정원. 달리는 이곳에 앉아 작품도 구상하고 갈라와 사랑을 속삭였을 것 같다. ⓒ 길동무


기다림이 어울리는 곳 카다케스의 카사 달리

카다케스의 까사 달리를 찾은 그날 오후 펼쳐진 지중해와 하늘빛은 그 농도가 한 치도 다르지 않은 쪽빛이었다. 자연이 만든 방파제 안에 떠 있는 요트 몇 척이 한가로움을 더했고, 매여있는 작은 배들은 까사달리를 품에 안은 작은 마을의 호흡마저 느리게 다스렸다.

스물다섯 살 달리가 11살 연상의 유부녀 갈라에게 홀딱 반한 해변은 어디쯤일까? 해안은 참 아기자기하게 연이어 있고, 잔잔한 파도는 속삭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가족과 함께 나들이를 온 아이들이 물놀이와 모래성을 쌓으며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가는 바람에 흩어졌다.

입장하기 위한 기다림이 그렇게 어울리는 곳이 있을까? 까사 달리 어디에 카메라 초점을 맞춰도 그림이 나오는 주변 분위기를 충분히 눈에 익힐 수 있어 좋았다. 그 맑은 공기와 여린 바람에 마음과 몸을 헹굴 수 있어 좋았다. 극장 박물관이 몰려드는 입장객으로 북적거렸다면 까사 달리는 한 번에 10인 이하 입장, 그마저 시간 간격을 엄격히 통제함으로써 그야말로 달리와 갈라가 남긴 채취와 손길을 더불어 속삭일 수 있었다.

까사 달리의 내부는 예상과 달리 참 차분했다. 커다란 이젤이 놓인 작업실, 재료 창고, 서재와 침실, 거실과 정원 등, 모든 것이 오밀조밀했고 바다가 훤히 보이는 정원 또한 하늘과 바다, 인근의 자연과도 대조적인 느낌이 들 만큼 아기자기했다.

광기가 넘치는 천재 예술가 달리와 자유분방한 성격의 갈라의 이면인가 싶어 새롭기까지 했다. 다만 주인이 집을 비운 것 같은 분위기여서 주인에게 차 한 잔 대접 받을 수 있는 느낌이 들지 않은 것은 아쉬움이었다.

누군가 내게 추천했었다. "카다케스 바닷가에서 낙조를 본다면 더 행복한 여행이 될 것"이다. 그러나 길동무는 다음 목적지를 향해 아쉬움을 접고 떠나야 했다. 그러므로 나는 말을 바꾼다. 어느 부부가 함께 카다케스에 간다면 반드시 그 작은 마을에서 하룻밤을 묵으시라. 달리와 갈라의 행복한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으리라. 그리고 평생에 잊지 못할 추억 하나가 생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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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의 극장 박물관을 떠나기전 아쉬움을 달래며 길동무는 또 한 컷의 사진을 쌓았다. ⓒ 길동무


덧붙이는 글 여행을 위해 ‘길동무’란 이름으로 뭉친 인도네시아에 사는 한국인 다섯 부부의 스페인, 포르투갈 여행 이야기입니다. 이 글은 인도네시아 한인 경제신문 사이트 PAGI에도 실립니다.
#길동무 #살바도르 달리 #갈라 #달리의 극장박물관 #카사 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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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가. 2015년 5월 인사동에서 산을 주재로 개인전을 열고 17번째 책 <山情無限> 발간. 2016, 대한민국서예대전 심사위원장 역임. 현재 자카르타 남쪽 보고르 산마을에 작은 서원을 일구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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