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보단 낫잖아요" 내가 떠나는 날, 그들이 왔다

[호주 워홀러기 28] 호주에서의 마지막 출근, 귀국이 코앞이다

등록 2016.11.07 11:10수정 2016.11.07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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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그만두겠다고 공지했다. ⓒ pixabay


"오늘 새로운 애들이 올거야. 트레이닝 해줘."


일을 그만두겠다고 공지했다. 귀국까지 한 달 남짓 남은 시간. 호주에서는 미리 공지를 해주는 것이 관례다. 그 기간동안 상대방이 새로운 직원을 구하고 트레이닝을 한다. 물론 관례는 지켜지지만 일하는 기간이 지켜지지는 않는다. 캐시잡(바로 현금을 받는 일자리)의 경우 계약서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덕분에 일을 그만두는 날짜를 마음대로 할 수 없다. 가장 가깝게 맞춰줄 수는 있어도.

기자가 담당하고 있는 사이트는 크게 4개다. 그 중 2개를 넘겼다. 어디를 집중적으로 청소해야 하는지, 몇 시에 들어가야 하는지를 알려줘야 한다. 인수인계는 의외로 간단하다. 처음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열쇠를 넘겨주는 것으로 끝난다. 6개월 남짓 일했던 곳을 넘겨주니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이 사이트에서 있던 추억들이 새록새록 피어난다.

온 지 3일밖에 안 됐어요

그리고 오늘 최종 공지를 받았다. 한국으로 가기 열흘 남은 시점. 새로 투입되는 두 명이 있다고. 트레이닝이 필요하단다. 아예 청소를 안 해본 사람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새심하게 알려달라고 한다. 신신당부하는 사장의 말을 뒤로하고 그들에게 전화를 건다.

"리드컴에 살아요."


픽업하기 위해 사는 곳을 물었다. 그들이 사는 곳은 한인이 많이 사는 곳 중 하나인 리드컴. 가장 핫플레이스인 '중앙식품' 앞에서 보기로 약속했다. 새벽 2시. 그들을 태우러 간다. 이제는 내비게이션 없이도 잘 다닌다. 익숙해진 시드니 도로. 어디로 가야 더 빨리 가는지. 위치는 어디에 있는지. 예전에 헤맸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안녕하세요."

건장한 남자 두 명이 차에 탄다. 큰 덩치에 쭉 찢어진 눈매. 그와 대조적으로 마르고 큰 키를 자랑하는 남자. 두 명은 차 뒤로 몸을 옮겼다.

첫 번째 사이트로 이동한다. 헬스장. 처음으로 일을 받은 곳. 생긴 지 얼마 안 된 곳이라 기자가 처음부터 관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곳저곳 하는 방법을 일러준다. 필요한 것은 어디에 있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하나. 뭔가 아끼던 물건을 넘겨주는 느낌이랄까.

청소가 끝나고 시간이 남는다. 잠시 주유소 앞에 멈춘다. 커피와 요깃거리를 사고 얘길 나눴다. 덩치가 큰 남자는 워킹홀리데이로 왔다가 학생비자로 돌린 케이스였다.

"저는 이곳에서 살 거예요. 여자친구랑 같이 정착하려고 다시 왔어요."

한국보다 호주가 기회의 땅이라는게 그의 생각이었다.

"혼자 오는 것보다는 친구들도 같이 오는 게 나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이 친구랑 몇몇한테 호주에서 일해보라고 했어요. 한국보다는 낫잖아요."

키가 큰 남자는 그의 말에 수긍했다.

"여기 온 지 3일밖에 안됐거든요. 아직 오페라하우스도 못봤어요. 오자마자 일하고 있는거예요."

태국 친구와의 이별

두 번째 사이트로 향한다. 바(Bar). 청소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꽤 높은 레벨에 속하는 장소. 술 자국이며 상상하지 못한 무언가가 나올 때도 있다. 주사기를 발견하는 건 예삿일. 그나마 평일이라 많이 더럽진 않다.

어김없이 태국 친구가 와 있었다. 그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아쉽다는 표정이다. 파트를 나눠 트레이닝에 들어간다. 어떻게 해야 더 빠르고 쉽게 할 수 있는지 노하우를 알려준다. 평소보다 속도는 느리지만 언제 이렇게 말을 많이 해봤나 싶다. 지금까지는 혼자서 묵묵히 했으니까. 청소가 끝났다.

"사진 찍어달라는대요?"

마무리하고 나오니 덩치 큰 남자가 말한다. 태국 친구가 사진을 같이 찍자며 스마트폰을 건네줬다고. 같이 와서 포즈를 취한다. 얼떨결에 사진을 찍는다. 아쉽다. 그동안 많이 얘기를 나눴다. 그도 평범한 꿈을 가진 사람이었다. 호주에서 공부해 고국으로 가고 싶어 했다. 고국에 있는 여자친구가 그립다며 하소연을 하던 그였다. 그렇게 그와 마지막이라니.

그렇게 호주에서의 노동이 끝났다.
덧붙이는 글 스물일곱.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호주에 왔습니다. 앞으로 호주에서 지내며 겪는 일들을 연재식으로 풀어내려합니다. 좀 더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풀어내고 싶습니다.
#호주 #시드니 #워킹 #노티스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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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전역한 따끈따끈한 언론고시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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