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성 확인을 위한 총궐기

11.12 민중총궐기를 다녀와서

등록 2016.11.13 14:24수정 2016.11.14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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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이 있던가요,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확실히 작금의 시국은 저뿐만 아니라 온 국민의 공분을 살만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가 그것입니다. 모두가 외우고 있는 헌법 조항이 있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국민으로부터 비롯된 이 권력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리고 이 끓어오르는 분함 역시 갈피를 못 잡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 까닭은 학교 내의 많은 후배들이 대자보를 통해 펼쳤던 시국선언이 곳곳에서 이루어져도, 그리고 무수한 집회를 해도, 정작 당신은 아랑곳하지 않으니까요. 우리들만의 공허한 외침, 당신의 대답 없는 그것은 효능감이 떨어졌습니다.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몇 번의 총궐기가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자니, 제 안에 무언가가 움트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것은 알량한 정의감일지도, 아니라면 일말의 부끄러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2016년 11월 12일, 훗날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될지도 모르는 민중총궐기에 저도 이끌리듯 동참했습니다. 광화문 광장을 시작으로, 종각역과 청계 광장, 그리고 시청 광장 외에도 많은 분들이 오셨더군요. 그러나 그 분위기는 흡사 '축제'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수들의 콘서트가 진행되고 있었으며, 가족 단위 혹은 연인들, 청소년 등 각계각층과 남녀노소 모두 어울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표정에는 왠지 모를 즐거움이 보였습니다. 덩달아 저까지 유쾌한 기분을 느끼곤 했답니다.

동시에 착잡함도 몰려왔습니다. 수많은 인파가 운집한 광화문 광장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는 세종과 충무공을 보며, 21세기를 살아가는 민주시민으로서 부끄러움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모두들, 이번 사건을 보며 봉건시대와 다를 바가 없다고 자조하지만, 저는 오히려 조선시대보다 후퇴했다고 생각합니다.

500년 전 세종의 치세를 떠올려보십시오. 일국의 국왕이었던 세종은 모든 분야를 망라하고 스스로 전문가가 되기를 자청했으며, 그것도 모자라 대소신료와 끝없이 토론하였습니다. 이 밖에도 조선의 왕들은 자연현상이란 우연히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비가 오지 않거나 천재지변이 발생하면 늘 자신의 책임으로 돌렸습니다. 대소신료와 선비들은 왕이 엇나갈 때면, 아무리 직급이 낮아도 도끼를 지니고 상소를 하는 등, '충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인사 문제 등 청와대는 그 직무수행에 있어 많은 결함을 보였으며, 조윤선 장관이 정무수석 당시 1년 가까이 독대한 적이 없다고 밝힐 정도로 정부 내 토론은 활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비선실세가 권력의 중추로 작용했습니다. 이것도 모자라 모든 사태의 책임을 져야 할 대통령은 늘 자신에 대한 비판에 대하여, 한류와 경제, 안보를 '볼모' 삼아 민의를 억눌렀습니다. 더불어 친박세력들은 국민과 나라를 위한 '직언'보다는 간신배와 다를 바 없는 홍위병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비가 와도, 벼락이 내리쳐도, 모든 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돌렸던, 그리고 목숨 대신 충언을 아끼지 않았던 봉건시대의 군왕과 선비들에 비해, '제왕'적 대통령제의 정치인들은 초라하기만 합니다.


이렇게 조선시대의 유자들을 떠올리고 나니, 제 안에 움텄던 무언가가 무엇이었는지 알 것만 같기도 합니다. 맹자는 다른 동물에는 없으나, 오직 인간에게만 존재하는, 그래서 인간 존재의 단서가 되는 네 가지 마음을 설파한 바 있습니다. '인·의·예·지'가 그것입니다. 제가 행동에 나섰던 이유는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합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에 측은함을 느꼈던, 정치학도로서 수수방관하는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꼈던,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자 했던, 즉 내 안에 잠재된 '인간성'이 발휘되었던 탓이라고 믿습니다.

결국 오늘날 벌어진 모든 파국의 원인은 우리가 지닌 인간성이 훼손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일에 연루된 당사자들과 여당이 자신들의 잘못을 미워하고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알았다면, 자신들의 사욕에 희생되는 국민과 나라를 측은하게 여길 줄 알았더라면, 옳고 그름을 구분할 줄 알았더라면, 지금의 모든 일들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청와대와 여당은 지금이라도 잘못을 뉘우칠 것이며, 또 야당은 역풍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태를 적극 개입해야 합니다. 그것이 뒤늦게나마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일이 될 것이며, 극에 달한 정치적 불신을 회복할 유일한 길이 될 것입니다. 정치학도로서, 국민들이 정치를 불신하는 참담함을 겪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시국선언을 하여도, 시위를 하여도 문제는 진전되지 않을지 모릅니다. 청와대에 가까이 가, 국민의 목소리를 전하려던 계획도 차벽으로 인해 실패하였습니다. 당신은 여전히 우리를 외면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중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총궐기의 궁극적 목표는 정권 퇴진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은 '인간성'을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만난 많은 이들의 얼굴에서 '기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모두들 깨달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과 달리, 아직 부끄럽지 않은 인간으로 남았다는 것을 말이죠.

또한 역사상 최대 인파가 집결했음에도 불구하고, 본래 계획했던 집회를 평화적으로 잘 끝낼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또 한 가지를 확인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대한민국은 아직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자 하는 이들이 많다는 '연대의식'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인간성을 확인하고 회복하자는 최대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이보다 더 큰 수확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직 대한민국은 양심과 정의가 살아 있는 나라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번 총궐기를 보며 부끄러움을 느끼고, 그들의 죄를 뉘우치기를 바랍니다.

"새는 알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

헤르만 헤세는 그의 저서 <데미안>에서 '삶은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고 자신에게 가는 길의 시도'라고 밝혔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번 총궐기는 우리 개개인의 인간성을 증명하는 여정의 일부였습니다. 이 길이 다다르는 종착지가 어디일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현재에서도, 미래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존엄한 인간으로 남아있을 것입니다. 청와대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우리 모두 우리 마음속에 존재하는 인간성을 향해 끊임없이 전진합시다, 행진합시다! 이 글은 일회적인 시국선언이 아니라, 인간의 시대가 끝나도록 계속될 '인간선언'이자 '정언명령'입니다!

늘 인간이고자 싶던 인간, 올림
#민중총궐기 #최순실 #박근혜 #인간 #존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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