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달아 말 바꾸는 트럼프, 주한미군은?

멕시코 국경장벽·오바마케어 한 발 후퇴, 주한미군에 촉각

등록 2016.11.15 11:14수정 2016.11.15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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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이 말을 바꾸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후보 유세 때 특유의 거침없고 '저렴한' 화법으로 갖가지 쟁점현안에 대해 민감한 발언을 쏟아냈었다. 그러나 막상 당선인으로 신분이 바뀌자 내뱉은 말을 차례차례 주워담고 있다. 먼저 멕시코 국경장벽을 "뚫을 수 없는 높고 강력하고 아름다운 장벽"이라고 했다가 "일부지역은 울타리로 대체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오바마 캐어라고 이름 붙여진 의료보험 개혁안을 두고서도 후보 시절엔 전면 폐지하겠다고 말했다가 "한 두 개 조항은 존속을 검토하겠다"고 물러섰다. 동성결혼에 대해서 트럼프는 "대법원 판결로 정리됐다"고 밝혔다.

이제 우리와 직접 관련이 있는 문제로 눈을 돌려보자. 트럼프는 후보 유세 기간 동안 종종 주한미군을 공개 언급했다. 지난 5월 CNN과 가진 인터뷰 가운데 한 대목이다.

앵커 :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 사령관 지명자가 최근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한국의 경우 주한미군 인적비용의 50%가량을 부담한다'고 증언했는데 어떤 생각인가?
트럼프 : 100% 부담은 왜 안 되는가?
앵커 : 한국, 일본, 독일 등 미군 주둔 국가 측에서 모든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취지인가?
트럼프 : 당연하다. 그들은 모든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그의 발언은 거침이 없었다. 주한미군을 언급할 때면 "한국이 안보 무임승차를 하고 있다. 부담금을 전액 부담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되풀이 했고, 그때마다 한국은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런 그가 당선인 신분이 되자 수위를 낮추는 모양새다. 트럼프 당선인은 우리시간으로 지난 10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과 전화통화에서 "미국은 한국을 방어하기 위해 굳건하고 강력한 방위태세를 유지하겠다. 흔들리지 않고 한국과 미국의 안보를 위해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그의 발언은 아주 원론적인 수준이다. 그러나 그가 본격적으로 정권 인수작업에 착수하고, 내년에 백악관에 입성하게 되면 어떻게 말을 바꿀지 모른다. 무엇보다 새 미국 대통령을 맞이하면서 주한미군은 양국간 안보 현안에 의제로 올라올 가능성은 높다는 판단이다.

주한미군 주둔비용, 한국 부담 늘리려는 술책?


이 지점에서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트럼프 당선인이 대통령으로서 공식 업무를 시작했을 때, 후보 시절 공약대로 한국에 주한미군 주둔비용을 전액 부담하라고 요구할 것인가? 만약 한국이 이를 거부해 협상이 난항을 겪을 때, 그는 정말 주한미군을 철수할 것인가?

우선 트럼프가 왜 주한미군 주둔비용을 쟁점으로 끄집어 냈는지 살펴보자. 일각에서는 '안보무임승차'론을 내세워 우리 쪽 부담 비율을 높이려는 의도로 풀이한다. 그러나 속사정은 간단치 않다. 2014년 2월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 타결에 따라 한국 정부는 2015년 9320억 원을 부담했다.

미국은 한국 정부의 부담 비율을 약 50%로 보고 있다.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 사령관은 4월 인준 청문회에서 "한국은 지난해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을 통해 주한미군 주둔 비용의 50% 정도를 부담했다"고 밝혔다. 각종 부가혜택을 따지면 우리 쪽 부담은 더 늘어난다는 시각도 있다. 시민단체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는 부동산 지원, 각종 세금 및 공공요금 감면 등의 혜택을 감안한다면 우리 쪽 부담비율은 65%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했다.

무엇보다 핵심변수는 트럼프 당선인의 공약일 것이다. 당선인의 대선 공약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미국 우선'이다. 즉 무역·통상에서는 보호무역주의로, 그리고 군사·안보 분야에서는 고립주의로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당선인이 미국 우선을 내세우는 이유는 미국의 막대한 재정적자 때문이다. 당선인은 지난 4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국가부채가 19조 달러(약 2경2000조 원)이고, 곧 21조 달러가 되려는 상황에서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할 수는 없다."

한국 측에 주한미군 부담을 늘리고, 여의치 않을 경우 철수 가능성까지 흘리는 건 미국 우선주의의 연장선이란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카터의 실패, 트럼프는 극복할 수 있을까? 

문제는 실현 가능성이다. 과거의 사례를 찾아보자. 주한미군 철수를 실행에 옮기려던 대통령은 트럼프 이전에도 있었다. 바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다. 카터 전 대통령은 주한미군 철수를 공약으로 내세웠고, 백악관에 입성하자마자 곧장 실행에 옮기려 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주한미군 철수에 매달렸다. 그러나 군부를 비롯한 거의 모든 정부부처가 반대했고, 결국 카터는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지 못했다.

카터의 실패요인에 대해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셀릭 해리슨은 자신의 책 <코리아 엔드게임>에서 "분명한 논리 없이 감축계획을 발표했다"고 지적했다. 셀릭 해리슨의 설명을 좀 더 들어보자.

"카터의 (주한미군 감축) 결정은 세 가지 요인에서 나온 것이었다. 해군 장교를 지냈던 그는 아시아 본토의 전방 진지에 미 지상군을 묶어 두는 것을 피해야 한다는 알프레드 머헨과 같은 해군 전략가들의 신념에 따랐다. 핵 공학도였던 그는 미국이 전선에 가까운 한반도에 전술 핵무기를 배치해 놓은 데 대해 특히 놀랐다. 인권 옹호론자로서 그는 남한의 박정희 군사 정권과는 상극이었다. 카터는 분명한 논리 없이 감축계획을 발표했다. 그가 그런 논리를 제시했더라면 국방 관료들과 의회의 보수주의자들의 예기된 반대와 싸우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사전에 일본에게 지상군 철수에서 더 진전시킬 의도가 없고 미일간 방위 공약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으리란 점을 분명히 납득시키지 않았다는 점이다."

카터 집권시절의 정세와 현재를 비교하기는 무리다. 가장 근본적으로 주한미군의 임무가 달라졌다. 미국은 지난 2003년 '냉전종식과 9·11 테러 등 안보환경의 본질적 변화로 대규모 주둔군을 특정 동맹국에 집중하기 보다 전세계적으로 소규모 부대를 탄력적으로 대응한다'는 전제에 따라 해외 주둔 미군 재배치에 들어갔다. 재배치 계획의 연장선상에서 한미 양국은 2006년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주한미군은 종전의 한반도 억지에서 벗어나 중국의 부상을 저지하고 북한의 국지도발에 대응하는 신속 대응군으로 임무가 재조정됐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당선인이 자신의 공언대로 고립주의 노선을 택할지, 아니면 '현실'을 인정하고 미국의 군사전략을 고수할지, 또 주한미군과 관련해 어떤 카드를 꺼내들지는 아직 미지수다. 불확실성이 크면 그만큼 불안감도 커지는 법이다. 따라서 새 미국 대통령의 전략을 면밀히 분석해 예측하고, 대비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문제는 우리 정부다.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현 박근혜 정부는 국정운영 동력을 사실상 상실한 상황이다. 이 와중에 민감한 쟁점을 들고 나온 새 미국 대통령을 상대해야 하니,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적어도 안보는 국가 생존에 직결되는 만큼 안보현안만 전담할 새로운 부처부터 먼저 꾸려 트럼프 당선인과 상대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정치권이 지혜를 모아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도널드 트럼프 #주한미군 #빈센트 브룩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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