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속 군사정보보호협정? 불난 집서 도둑질하는 격"

[스팟 인터뷰]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등록 2016.11.16 21:08수정 2016.11.16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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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 오마이뉴스


"오장육부(五臟六腑)가 썩어 문드러졌는데, 팔다리가 제대로 움직이는 걸 기대할 수 있는가?"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16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 인터뷰에서 '최순실 게이트'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즉각 외치(外治)에서도 손을 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정 전 장관을 비롯한 외교·안보 분야 전문가 42명은 이날 오전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박 대통령에게 외치에도 관여하지 말고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절차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정 전 장관은 경제·사회·교육 등 내치는 여야 합의 총리에게 맡기되 국군 통수권과 조약 체결권 등 외교·통일·국방 분야는 박 대통령이 그대로 맡아야 한다는 정치권 일각의 주장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내치와 외치를 분리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내치가 받쳐주지 않는 외치는 무력하다'는 지적이다. 정 전 장관은 '안으로 나라를 굳건히 다스리고 밖으로 힘을 키운다'는 의미의 '내수외양(內修外攘)'을 제시하면서 박 대통령이 외치에서 손을 떼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또 그는 최근 급물살을 타고 있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 절차에 대해서도 "불난 집에서 도둑질 하는 격"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다음은 정 전 장관과의 전화 인터뷰를 정리한 것이다.

"내치 손도 못 대면서 외치? 말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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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4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최순실 국정개입' 의혹 파문 관련 대국민 담화를 마친 뒤 밖으로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시국선언을 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최순실 게이트로 국정이 마비돼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내치는 손도 못 대면서 외치는 하겠다고 한다. 이건 정말 곤란하다는 공감대가 외교안보 분야 전문가들 사이에서 형성됐다.

내치에서 능력이 없다는 것이 확인됐는데, 어떻게 외치는 하겠다는 것인가? 내치와 외치를 분리할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이 말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내장이 온전치 않은데 어떻게 팔다리가 제대로 움직이기를 기대하겠는가. 내치든 외치든 대통령이 즉각 손을 떼고 거국 내각 또는 중립 내각 같은 대안적 통치기구를 빨리 만들 것을 촉구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시국선언을 하게 됐다."

- 성명서에서 야당을 향해서도 '외치를 마치 박 대통령이 내치에서 물러나게 하기 위한 교환조건이 될 수 있는 것처럼 호도하지 말라'고 했다.
"그렇다. 이런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모르고 있는 정치권에 대한 일종의 경고다. 야당에서도 전국구 의원들을 자기 사람들로만 뽑다 보니 외교·안보 사안들이 발생했을 때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모른다. 모르면 물어봐야 할 것 아닌가. 적어도 이 분야 공부를 하고 있는 우리들이라도 이 문제를 좀 일깨워줘야겠다고 생각했다."

- 내치와 외치를 분리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뜻인가.
"다시 말하지만, 내치를 하지 못하는데 외치를 어떻게 할 수 있는가. 내치와 외치는 표리의 관계다. '내수외양'이란 말이 있다. 안이 튼튼하게 다져져야 외적을 물리칠 수 있다는 뜻이지만, 그 두 가지가 연결돼 있다는 의미다.

조선 말기를 떠올려 보라. 개국을 요구하는 외세의 바람이 거세게 불어왔지만, 국내 정치는 엉망이어서 왕의 통치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했다. 그러니 이리 휩쓸리고 저리 휩쓸리다가 결국은 국권까지 빼앗기지 않았는가."

-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국정이 마비된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속전속결로 한일군사정보협정을 진행하고 있다.
"대중국 압박정책의 일환으로 한미일 군사동맹을 강화하겠다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다. 이미 한·미, 미·일 사이에는 군사정보협정이 체결돼 있는데, 한일 사이에도 체결이 되면 삼각동맹이 완벽하게 정리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이 빨리 끝내라고 압력을 넣는 것이다.

이렇게 되어야 미국이 전체적인 동아시아 군사전략을 제대로 전개할 수 있고 나아가서는 MD(미사일 방어)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 것이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가 하드웨어라면 군사정보협정은 소프트웨어다. 외형적으로는 우리가 자위대와 협력하는 것 같지만 사실상 한일관계가 미일동맹의 하위체계로 편입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지금 형국은 불난 집에서 사람들은 정신없이 불을 끄고 있는데, 도둑놈은 물건 훔쳐서 나가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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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평화회의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1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 반대 시국선언문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통일외교안보 전문가 시국선언]
한일 군사보호협정 체결 절차 중단하고 모든 외치에서 손 떼라

현재 대한민국은 비상시국이다.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국정을 농단하고, 사법체계를 위반하는 행위가 청와대에서 이뤄졌다. 이로 인해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명 및 안전이 위협을 받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초래한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 내치는 물론이지만 외교·안보·통일를 책임질 능력이 없음이 입증됐다. 대한민국의 현 통일·외교·안보 난맥상을 초래한 대통령이 '외치'를 계속 좌지우지한다면 대한민국은 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는 엄중한 상황이다.

박근혜 정부의 외교·안보·통일 정책은 합리적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난맥상, 바로 그 자체였다. 전작권 환수를 무기한 연기함으로써 자주국방의 기틀을 맞을 수 있는 기회를 던져버렸다. 위안부 문제를 앞에 내세우고 일체의 대일외교를 중단하더니, 갑자기 굴욕적인 '위안부 합의'를 맺었다. 장관을 포함한 통일부 내의 신중론을 갑자기 뒤집어 개성공단을 폐쇄했다. 자신의 공약인 한반도신뢰프로세스는 한반도 불신프로세스로 퇴락했다. 근거 없는 '북한붕괴'설을 무슨 예언처럼 신봉하며 제재와 압박에만 몰두했다.

박근혜 정부의 외교·안보·통일 정책이 총체적으로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는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신장이다. 대한민국의 안보는 나락으로 떨어졌고, 동맹국인 미국과 일본마저도 안보를 우려해야 할 지경에 처했다. 이러한 사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해결책을 마련하는 대신, 박근혜정부는 사드 배치 결정을 덜컥 내려 대한민국과 동북아전체를 위기의 소용돌이로 몰아넣고 있다. 그 결과 정부의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은 동북아 불안·긴장 상태로 귀결됐다.

외교·안보·통일 정책의 총체적 파국은 오롯이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이다. 박근혜 대통령 뒤에 비이성적 비선실세가 있었다는 언론보도는 그간의 난맥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을 면제하는 구실이 되지는 않는다. '외교'는 '외유'가 아니다. 비선실세가 골라준 옷을 입고 미소 지으며 패션쇼를 펼치는 자리가 아니다. 다른 나라 정상을 마주하고 "밤잠을 못자며 걱정하고" 있다고 하소연하는 자리가 아니다. 안보와 관련된 비밀정보를 "오랜 인연을 갖고 있었던" 한 개인과 공유하고, 통일 정책을 발표하는 연설문을 사이비 종교인이 수정하게 했다면 대통령은 외치를 담당할 능력이 없는 것이다.

이미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 외신은 박근혜 대통령을 로봇으로 표현하는가 하면, 미신적 종교에 의해 국정이 농락당했다는 등 조롱조의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전 세계의 비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재외동포들도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하는데, 대통령이 얼굴을 들고 외교를 할 수 있겠는가.

박근혜 대통령은 외교·안보·통일의 총체적 혼란을 초래한 장본인이다. 우리는 박근혜 대통령이 당장 외치에서 손을 뗄 것을 요구한다. 아울러 그 동안 사드 배치 및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논의 등 국민을 분열시키고 대한민국과 동북아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정책 등은 당장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내치든 외치든 국정을 이끌 능력과 정당성을 상실했으므로 마지막 남은 국민에 대한 의무로서 퇴진해야 마땅하다.

정부에 요구한다! 나라의 혼란한 틈을 타서 나라의 미래가 걸린 한일정보보호협정과도 같은 중요한 조약이나 협약을 추진하려는 모든 시도를 멈추고, 다음 정부로 넘겨야 한다. 시급한 사안이라면 국회비준을 통해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여 추진하도록 하라.

야당들에 요구한다! 외치를 마치 박근혜 대통령이 내치에서 물러나게 하기 위한 교환조건이 될 수 있는 것처럼 호도하지 말라. 내치와 외치는 분리할 수 없을뿐더러, 외치는 우리의 미래를 더욱 파국으로 이끌어갈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대통령에게 재차 강력히 요구한다! 트럼프 당선 이후 대응을 국면 전환용으로 삼지말라. 외치의 중요성을 진정으로 걱정한다면, 하루빨리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공백을 최소화하라. 

이만열(숙명여대 명예교수) 정세현(한반도평화포럼공동대표) 문정인(연세대 명예특임교수) 이종석(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고경빈(한반도평화포럼 이사) 구양모(미 노스위치대 교수) 김광길(변호사) 김근식(경남대 교수) 김동엽(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김서진(개성공단기업협회 전무) 김용현(동국대 교수) 김연철(인제대 교수) 김한정(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김준형(한동대 교수) 김화순(한양대 글로벌다문화연구원 연구원) 남태현(미 솔즈베리대 교수) 박순성(동국대 교수) 박진원(한반도평화포럼 사무처장) 백학순(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서재정(국제기독대 교수) 서보혁(서울대 평화통일연구원 HK연구교수) 양기호(성공회대 교수) 양성철(고려대 석좌교수) 여혜숙(전 평화를만드는여성회상임대표) 이장희(한국외대 명예교수) 이수훈(경남대 교수) 이선종(원불교 교무) 이오영(남북경협포럼 공동대표) 이제훈(한반도평화포럼 기획위원) 이창희(동국대 연구교수) 인기영(의사) 정완숙(디데모스 대표) 정욱식(평화네트워크 대표) 정현태(전 남해군수) 조현장(의사,부산참여자치21 대표) 진희관(인제대 교수) 최종건(연세대 교수) 한정숙(서울대 교수) 함보현(변호사) 홍석률(성신여대 교수) 홍순계(남북경협포럼 공동대표) 황방열(한반도평화포럼 기획위원) 황준호(한반도평화포럼 기획위원) 황인성(전 청와대시민사회 수석) 이상 42명
#정세현 #군사정보보호협정 #외치 #최순실 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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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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