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권이 역사 교과서를 손댄 까닭은?

[청소년책 읽기] 한홍구 <한홍구의 청소년 역사 특강>

등록 2016.11.29 11:16수정 2016.11.29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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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새로운 역사를 살아갑니다. 나라를 본다면, '우리 손으로 뽑은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끌어내릴' 수 있는 역사를 살아갑니다. 여기에서 '우리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란 '선거라는 민주 제도로 한 표 권리를 쓴 모든 사람'을 가리킵니다. '우리 손으로 끌어내릴'이란 '평화로운 시위'를 가리켜요.

'평화로운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현직 대통령한테 한 표를 준 사람'도 있을 테고, 그이한테 한 표를 안 준 사람도 있을 테지요. 현직 대통령한테 표를 주었든 안 주었든 이제 '우리'는 그이, 곧 현직 대통령이 어떤 잘잘못을 저지르면서 나라를 어지럽혔는가를 바로 오늘 또렷이 알고 지켜봅니다. 우리는 모두 새로운 역사를 살아간다고 할 수 있어요.


2016년에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는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2016년 역사'를 학교에서 역사 교과서로 배울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길거리에서 배울 수 있고, 마을에서 배울 수 있어요. 둘레 어른들한테서 배울 수 있고, 어린이와 푸름이 스스로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깨달을 수 있어요. 2016년 가을겨울에 벌어지는 새로운 역사는 '책(교과서)'이 아닌 온몸(현장)으로 저마다 배우는 역사라고 할 만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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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그림 ⓒ 철수와영희

'옛날이야기의 주인공은 평범합니다. 나무꾼도 나오고 농사꾼도 나오고 우리 동네 '철수'도 나오고 '영희'도 나옵니다. 그래서 옛날이야기는 편하고 재미있습니다. 지금 배우는 역사는 너무 거룩해요. 딱딱하고, 나의 삶과는 거리가 멀다는 느낌이지요 … 우리는 그동안 역사를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었습니다. 학교에서 제대로 역사를 가르치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게다가 '재미없는 역사'만 강요했습니다 … 이런 역사 교육은 옳지 않습니다. 사실 자체를 외우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 삶과 연결지어 생각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6쪽)

대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일을 하는 한홍구 님이 푸름이 눈높이에 맞추어서 한국 현대 역사 이야기를 풀어내는 <한홍구의 청소년 역사 특강>(철수와영희,2016)이 촛불모임으로 뜨겁게 타오르는 2016년 늦가을에 나옵니다.

이 책은 '재미없는 역사'를 떨치고 '살아서 숨을 쉬는 역사'를 어른들이 가르치고 푸름이가 배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습니다. '시험공부로 외우는 역사 지식'이 아니라 '뜨거운 가슴으로 깊이 받아들일 우리 역사'를 새로운 이야기로 바라보도록 이끌어 줍니다.

요즘도 학생들에게 머리를 깎으라고 강요하는 분들이 있지요. 왜 그러느냐고 물으면 "그래야 학생답다. 머리가 길면 산만해서 공부가 안 된다"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여러분, 학생답다는 게 뭘까요? 우리가 학생다우려면 인간다움을 버려야 하는 건가요. 민주 시민을 키워야 할 학교에서 왜 자꾸 사람을 길들이는 데 신경을 쓰느냐는 겁니다. (125쪽)


오로지 국·영·수로, 대입 시험 한 판으로 모든 게 결정되는 이 시대의 경쟁은 옳지 않습니다. 돈을 왕창 쏟아부은 사람이 유리하게 되어 있어요 … 옆사람과 경쟁하지 마세요. 같이 고민하고 함께 싸워 나갈 친구잖아요. 내가 다른 사람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세상이 달라집니다. (161쪽)

<한홍구의 청소년 역사 특강>을 읽다가 문득 생각합니다. 한홍구 님도 중·고등학생이던 무렵에는 빡빡머리여야 했다는데, 저도 중·고등학생이던 무렵에 빡빡머리에서 벗어나기 어려웠습니다. 오늘날 중·고등학생도 사내는 머리카락을 꽤 짧게 쳐야 하는데, 지난날보다는 조금 나아졌어요. 그래도 아직 '두발단속'이라는 제도가 버젓이 있어요.

'두발단속'이란 이름조차 일본 한자말인데요, 일제강점기에 군국주의와 제국주의로 억누르던 학교 제도가 아직 다 사그라들지 않았어요. 더군다나 사회에서도 '사내가 머리카락을 조금이라도 기르면' 사내답지 못한다고 여기거나 '품행 단정'하고 어긋난다고 여기기 일쑤예요. 머리카락이 길대서 안 얌전하거나 안 착하거나 안 똑똑할 까닭이 없는데 말이지요.

가만히 보면, 한국 사회는 어린이와 푸름이일 적부터 '사람다움'을 빼앗거나 억누르면서 '어른(기득권)이 시키는 대로 잘 따르도록 길들이는' 얼거리라고 할 수 있어요. 어떻게든 '더 좋은 대학교'에 들어가야 하고, 이동안 동무들을 밟고서 더 높은 점수를 따야 한다고 밀어붙여요. 어린이와 푸름이 스스로 꿈을 펼치도록 북돋우기보다는, 어린이도 푸름이도 '경쟁에서 살아남기'를 해야 한다고 몰아붙여요.

군대는 상명하복이죠. 그걸 민간인에겍 평시에도 적용하려는 자들이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사회가 숨이 막히죠. 학교가 왜 그렇게 숨 막히는 곳이 되었느냐, 우리나라 학교의 기원이 일제강점기 군인을 키워내기 위한 기관이었기 때문입니다. 해방 후에도 잔재가 남았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알아야 해요. (189쪽)

'상명하복'에다가 '생존경쟁'이 판치는 학교에서는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거나 배우기 어렵다고 느껴요. 정치권력이 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바꾸려고 하는 까닭도 '상명하복 입시 생존경쟁'에서 어린이와 푸름이가 고분고분 따르기만 하면서 참다운 역사에서 멀어지도록 하려는 속셈이리라 느껴요.

지난날 일제강점기는 "군인을 키워내기 위한 기관이던 학교(189쪽)"였다면, 오늘날 현대 사회는 '입시지옥 경쟁에서 살아남아서 혼자 잘살고 이웃하고 등지도록 내모는 학교'라고 할 수도 있어요. 그리고 이런 학교가 된다면 저절로 민주나 평화하고 멀어질 테고, 민주나 평화하고 멀어질수록 군대질서가 퍼지면서 사회는 정치권력 입맛에 맞추어 어두워지리라 느낍니다.

역사는 길게 봐야 하는 거예요. 한두 해 보면 역사는 퇴보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길게 보면 어때요? 역사는 진보하고 있습니다. (269쪽)

한홍구 님은 <한홍구의 청소년 역사 특강>이라는 책에서 또렷하게 외칩니다. "박근혜 정권이 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바꾸려는" 까닭은 "세상이 진보한다는 믿음을 없애 버리려는" 뜻이라고 외칩니다. 어린이와 푸름이가 "세상이 진보한다는 믿음"을 잃도록 내몰면서, 기득권 세력이 온갖 부정부패로 사회를 억누르는 얼거리가 되도록 하려는 뜻이라고 이야기해요.

박근혜 정권이 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바꾸려는 이유도 여기 있어요. 세상이 진보한다는 믿음을 없애 버리려는 거예요. 세상이 바뀐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세상을 더 빨리 더 많이 바꾸려고 할 것 아닙니까. "세상이 바뀌는 줄 알아? 처음부터 지금의 기득권 세력이 세상을 다스려 온 거야. 헛된 꿈 꾸지 말고 시키는 거나 잘하고 스펙이나 열심히 쌓아. 밥은 먹게 해 줄게." 이런 식으로 세상이 안 바뀐다는 잘못된 믿음을 우리 머릿속에 집어넣으려는 거예요. (270쪽)

현역 대통령 지지율 4%나 5%가 무엇을 말하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4∼5%를 뺀 우리'는 이제 "세상은 틀림없이 진보한다는 믿음"으로 '우리가 스스로 바라는 평화'를 이루기를 바란다는 뜻이리라 생각합니다. 아름답게 거듭날 나라와 사회와 정치와 교육을 바라는 우리는 '평화를 바라기에 평화로운 촛불모임'을 열어요. 앞으로 우리가 누리려고 하는 새로운 나라는 참말로 '평화·민주·평등·통일'이니, 이러한 길로 나아가도록 우리 스스로 평화롭고 민주다우며 평등하고 통일을 아름답고 슬기롭게 이룰 수 있도록 어깨동무를 합니다.

1970년대에 박정희가 민주주의는 비효율적이라서 경제 발전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괜히 민주주의가 어쩌고 떠들다가는 깡통 차고 북한한테 잡아먹힌다고 했어요. 하지만 박정희가 죽고 나서 그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납니다.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이 결코 따로따로가 아니라는 걸 국민들이 알게 된 거예요. (242쪽)

지난날 독재정권은 '민주주의가 밥 먹여 주느냐?' 하고 윽박질렀습니다만, 참말로 민주가 밥을 먹여 줍니다. 서로 아낄 수 있는 마음이 밥을 먹여 줍니다. 밥 한 술을 나눌 수 있는 마음은 바로 민주요 평화이며 평등이고 진보입니다. 더 많은 돈을 벌어들여야 경제발전이 아니고, 서로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함께 짓는 아름다운 살림이 바로 경제발전이에요. 성장율이 아닌 평화와 민주가 바로 경제발전이지요.

이리하여 우리는 스스로 역사를 새로 씁니다. 비록 '한때 대통령을 바보스레 뽑았'을지 모르더라도, 이제부터 새롭게 바꾸면서 하나씩 아름답게 세울 수 있어요. 현직 대통령을 뽑아 준 40%가 넘는 사람들이 이제 거의 다 현직 대통령을 끌어내리려는 손길로 바뀌어요. 한때 뒷걸음질을 하는구나 싶던 역사일 수 있지만, 뒷걸음질이 아니라, 앞으로 더 씩씩하게 한 발을 뻗으려고 한동안 숨을 고르던 몸짓이었지 싶어요.

입시 제도가 이대로 유지되는 한 교육 개혁, 꿈과 낭만이 숨 쉬는 학교는 그야말로 꿈에 불과하죠. 하지만 여러분이라면 다를 수 있어요. 바로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한다면 말이죠. (73쪽)

역사를 가르치는 까닭이라면 '바로 오늘 이곳'을 우리 스스로 제대로 바라보면서 되새기려는 뜻이지 싶어요. 어린이하고 푸름이한테 역사를 가르치는 뜻을 찾는다면, 어린이하고 푸름이 스스로 '바로 오늘 이곳'을 슬기롭게 살피는 눈길을 길러서 앞으로 이 땅에 '새롭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그야말로 새로운 역사로 아로새기도록 이끌려는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대통령을 뽑을 수 있는 사람들은 대통령을 끌어내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입시지옥과 대입시험도 얼마든지 뜯어고칠 수 있습니다. 비정규직과 온갖 차별도 얼마든지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도시로만 쏠린 문화라든지 핵발전소 말썽거리도 얼마든지 손볼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하나씩 새롭게 지으면 돼요. 역사를 제대로 배우고 가르치면서, 역사를 올바로 살피고 돌아보면서, 역사를 똑똑히 지켜볼 뿐 아니라 우리 손으로 가꾸면서, 앞으로 새나라를 우리 힘으로 열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한홍구의 청소년 역사 특강>(한홍구 글 / 철수와영희 펴냄 / 2016.11.17. / 15000원)

한홍구의 청소년 역사 특강 -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근현대사 이야기

한홍구 지음,
철수와영희, 2016


#한홍구의 청소년 역사 특강 #한홍구 #국정교과서 #역사책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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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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