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타고 무작정 나선 길, 이건 '예술'이다

[여행, 나의 일상에서 그대 일상으로 9]

등록 2016.12.27 17:57수정 2016.12.27 17:57
0
원고료로 응원
난생처음 온 장소에서, 말도 글도 모르는데 인터넷 지도를 보며 능숙하게 길을 찾는 이들이 있다. 미리 블로그 등에서 '맛집'이나 명소를 찾아 직접 먹고 보고 인증샷을 더하는 이들도. 하지만 가끔 이런 행위들이 되레 여행의 묘미를 반감시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한날, 숙소 주인의 자전거를 빌려 길을 나섰다.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가다 보면 뭐가 나오겠지. 안 나와도 그만' 하는 심정으로. 그런데 가다 보니 놀라운 일들이 생겼다. 그저 마음이 가자는 대로 갔을 뿐인데 가는 곳마다 '와!' 감탄이 절로 나오는 풍광들이 나타났기에.


a

그냥 길을 나섰다. 아무런 정보 없이. ⓒ 이명주


아무런 의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인도가 끊기고 차들은 늘고 갓길마저 좁아지자 '내가 사서 고생을…. 또 길 잃는 거 아냐?' 싶었다. 하지만 곧 '잘못돼봤자 얼마나 잘못되겠어. 길 좀 헤매는 정도지' 하는 맘이 들었다. 

a

'잘못돼봤자 얼마나 잘못되겠어. 길좀 헤매는 정도지' ⓒ 이명주


그리고 이런 믿음에 화답하듯 곧 멋진 길이 열렸다. 페달을 밟지 않아도 자전거가 부드럽게 미끄러졌다. 양옆에 푸른 숲과 멀지 않은 곳에 파란 바다. 그것들이 내뿜는 청량한 공기. 영 엉뚱한 길이 아님을 알려주듯 몇 명의 사람과 띄엄띄엄 오가는 차들.

a

갈색 이정표가 반갑다. '여기 볼만해' 하고 알려주는. ⓒ 이명주


얼마 지나지 않아 좌측에 보이는 갈색 이정표. 어디쯤인지 어떤 곳인지 모르지만 '여기 멋져. 좀 둘러봐' 하고 말을 거는 듯하다. 자전거를 끌고 이정표 뒤로 난 길로 들어갔다. 잠시 마법사가 나오는 영화 속 숲처럼, 기이하게 팔을 뻗은 나무들 사이를 지나 '전망대'라 표시된 계단을 올랐다.

a

드넓은 풍광, 시원한 바람에 숨이 탁 트였다. ⓒ 이명주


그리고 펼쳐진 드넓은 풍광. 빗방울이 좀 섞인 시원한 바람. 숨이 탁 트였다. 고개를 180도로 돌리며 여길 봐도 저길 봐도 커다란 하늘, 바다, 산, 그 안에 아기자기 조그맣게 자리한 사람마을……. 하얀 파도처럼 계속 감탄이 일었다.

a

사랑의 미로? ⓒ 이명주


전망대에서 내려와 다시 자전거를 끌고 가는데 이번엔 웬 '사랑의 미로'! 지역 관광안내서에서도 못 본 것 같은데. 어쨌거나 데이트 장소로 유명한 곳인지 커플들이 많았다. (이번 여행에 앞서, 떠나기만 하면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던 예감은 대체 정말 무슨 '근자감'이었나.)


a

설레는 길 ⓒ 이명주


또다시 설레는 길. 자연 가운데 뻔하고 식상한 길은 드물다. 도시에서와는 달리 자신 있는 방황을 하는 이유다. 초반에 잠시 짐스러웠던 자전거가 고마웠다. '이런 멋진 길 끝에 아무것도 없으면 어떠하리, 이미 이토록 아름다운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play

라오메이 해변의 암초 ⓒ 이명주


허나 자연의 창조물은 인간의 상상을 쉽사리 넘는다. '아무것 없어도 그만' 하고 당도한 그 길의 끝, 라오메이 해변(Laomei Beach)에서 발견한 암초군락지(Green Reef Furrow)다. 사실 얼마 전 관광안내서를 보며 숙소 주인이 "포토샵의 농간"이라고 했다.

하지만 조작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자연이 빚은 예술 자체였다. 마치 밭고랑처럼 펼쳐진 바위 위에 암초들이 자라나 푸른 잔디처럼 보였다. 그러나 조심할 것.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바위 틈새로 요란한 물폭탄이 터질 수 있다.

a

'마음이 곧 지도' ⓒ 이명주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내 마음 안에도 지도가 있다는 것을. 모든 것이 너무 익숙한 일상에선 결코 꺼내보지 않던. 하지만 이렇게 낯선 길 위에 서면 본능이 되살아나듯 마음의 소리가 들린다. 그것을 믿고 따라가는 여행. 이러한 여정 속에서 여러 번 같은 깨달음을 얻었다.

'길이 안 보인다고 길이 없는 게 아냐.'

<여행, 나의 일상에서 그대 일상으로>

'여행은 결국 나의 일상에서 누군가의 일상을 오가는 여정. 고로 내 일상에선 먼 곳을 여행하듯 천진하고 호기심어리게, 남의 일상에선 나와 내 삶을 아끼듯 그렇게. '삶은 여행'이라는 너무 익숙해서 인용조차 꺼리던 이 표현이 새롭게 깊이 다가오는 요즘입니다. 지난 11월 9일부터 또 한 번의 여행 중입니다. 길의 단절이 아닌 확장을 위함이고, 보다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나와 내 삶을 만들고자 하는 바람입니다.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 종종 전하겠습니다. facebook /travelforall.Myoungju


덧붙이는 글 스먼 교통 정보> 기사에 소개된 장소는 대만 신베이시에 속한 스먼(石門, Shimen)의 라오메이 해변 인근입니다. 이곳을 지나다니는 작은 862번 버스(일명 '타이완하오싱 - 황관북해안선 버스', 일반 큰 버스 862번과 다름)를 타시면 지난 글에서 소개한 지우펀의 788이나 826버스처럼 대표 관광 명소를 모두 들를 수 있습니다. 160TWD인 1일 탑승권을 사시면 당일 무제한 승하차 가능하며 정차 노선은 다음과 같습니다. 단수이지하철역 - 첸수이완 - 싼즈관광안내소와 명인문물관 - 베이관 국립공원관리처(바이샤완) - 쓰먼웨딩프라자 - 후꿰이쨔오 등대(라오메이해변) - 쓰먼동굴 - 줘위엔(등려군 묘지) - 쭈밍미술관 - 찐산 라오제거리 - 찐산관광안내소(쓰토우산 공원) - 쟈퉈리(온천) - 예류지질공원 - 구이호 어항
#SHIMEN DIST #스먼 #예류공원 #타이베이여행 #PALLET GUESTHOUSE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캐나다서 본 한국어 마스크 봉투... "수치스럽다"
  2. 2 황석영 작가 "윤 대통령, 차라리 빨리 하야해야"
  3. 3 300만명이 매달 '월급 20만원'을 도둑맞고 있습니다
  4. 4 '25만원 지원' 효과? 이 나라에서 이미 효과가 검증되었다
  5. 5 샌디에이고에 부는 'K-아줌마' 돌풍, 심상치 않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