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세월호 특별조사위원의 남루한 정치지망

"사퇴" 선언 두 달만에 돌아와 표결 참여한 석동현 전 특조위원

등록 2016.12.06 11:14수정 2016.12.06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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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여당쪽 특조위원 사의는 충성서약용?' ⓒ 한겨레


12월 5일 <한겨레>에는 고 김영한 민정수석의 2014년 11월 28일 메모를 통해 청와대가 "세월호 특조위 부위원장은 정치지망생으로" '꽂아' 넣으려 의도했음을 알리는 기사가 실렸다. 그리고 실제 2012년 박근혜 캠프에서 역할을 했던 조대환 변호사가 세월호 특조위 부위원장에, 역시 정치지망생인 석동현 변호사(전 부산지검장)가 비상임위원으로 내정되어 세월호 특조위에 합류하게 되었다.

2015년 7월 27일 세월호 특조위 조사관에 채용된 필자는 바로 직전에 사퇴한 조대환 부위원장의 경우 어떠한 소신에 입각하여 부위원장(사무처장 겸임)을 수락하였는지 그리고 그에 따른 업무를 적절히 수행했는지 관찰하지 못했기에 이 지면을 통해 왈가왈부 할 순 없다. 그러나 2015년 11월말까지 활동한 석동현 위원의 경우 굵직한 행보로 세월호 특조위 방해사의 한 단락을 장식하고 있는 인물로서 그 비중이 결코 작지 않은 까닭에 부득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세월호 특조위를 지켜봤던 많은 이들이 공감하듯 2015년 11월 23일 제19차 전원위원회는 세월호 특조위가 좌초되는데 있어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날로서, '4·16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구조구난 작업과 정부대응의 적정성에 대한 조사에 관한 사항'을 조사개시 의결하는 날이었다.

흔히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과 연관 지어 해석될 수 있어 위원들 간의 치열한 공방을 앞두고 있었음은 물론, 이 사안을 적절히 조사할 수 있는가에 대한 판단조차 조사관들 사이에서도 분분한 터라 이 회의의 향방은 안팎으로 주목받을 수밖에 없었다.

19차 전원위원회의 시작 전 목격한 놀라운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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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특조위 비상임위원 사퇴 밝히는 석동현 2015년 9월 7일 오전 서울 중구 나라키움빌딩내 세월호특조위 사무실에서 열린 전원위원회의 도중 석동현 비상임위원(새누리당 추천)이 "활동 근거지를 부산으로 옮겨야 하고, 하려는 일의 취지가 세월호특조위와 맞지 않다"며 사퇴를 밝히고 있다. ⓒ 권우성


그렇게 19차 전원위원회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던 필자는 놀라운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

다름 아니라 같은 해 9월 7일 제12차 전원위원회에서 발언신청을 얻어 '공식사퇴'를 표명한 석동현 위원이 2개월 만에 나타나 '4·16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구조구난 작업과 정부대응의 적정성에 대한 조사에 관한 사항' 조사개시 가부 표결을 위해 착석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조위 비상임위원 사퇴 시 "향후 활동의 근거지를 부산으로 옮겨야 한다"는 사퇴의 변을 남겼던 석동현 위원의 행보는 다분히 2016년 총선을 위한 포석으로서 해석될 수 있었기 때문에 정치인의 자기 책임적 발언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갑자기 2개월이 지나 해당안건을 부결시키기 위해 여당 측의 수적 불리를 만회하고자 전원위원회에 참석한 석동현 위원을 보며 속에서 괴로운 탄식이 흘러나왔다. 간단한 자리도 아니고,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에게는 말 한마디가 엄중할 수밖에 없는 그 자리에 나와 표결권이 있음을 주장하며 반대표결에 가담한 그를 생각하면 아직까지도 그날의 참석이 청와대의 독촉으로 타의적으로 이뤄진 것이라 믿고 싶을 만큼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사실 여당 측 추천위원 중 고영주, 석동현 위원은 다소 의외라 할 만큼 이석태 위원장의 리더십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고 필자는 판단한다. 다행히도 그런 모습을 통해 얼마 간 세월호 특조위가 범정치적, 범정파적 행보를 취하며 객관적인 조사업무를 준비할 여건을 갖출 수 있었다.

그러나 '4·16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구조구난 작업과 정부대응의 적정성에 대한 조사에 관한 사항'이 며칠 후 19차 전원위원회에 상정될 것으로 예상되던 11월 19일, 이헌, 고영주, 차기환, 황전원 위원은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해당 안건이 가결될 시 '특조위원 전원 총사퇴' 압박을 가했고, 23일 전원위원회에서 해당 안건이 가결되자 그 자리에서 고영주, 차기환 위원이 사퇴하고, 석동현 위원이 '또 다시' 사퇴하는 바람에 특조위라는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지 못하게 된 것이다.

고 김영한 민정수석의 메모는 마치 이 모든 것들이 청와대의 계산 혹은 통제 하에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 같아 더욱 씁쓸하다.

필자는 유가족, 여야 정당, 대법원, 대한변협에서 특별조사위원을 추천하여 국회에서 의결을 거치는 구조 자체가 지극히 정치적이며, 구성된 위원회가 특조위의 방향을 결정짓기 위해 치열한 주도권 다툼을 전개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 역시 존중할 수 밖에 없다고 본다.

그 안에서의 토론과 합의 과정이 정반합(正反合)이 배제될 것이라 애초에 기정사실화할 필요는 없는 까닭이다. 그러나 누군가의 삶을, 거창하게 표현해서 국민들의 삶을 일정부분 책임지겠다고 한 어느 정치지망생의 남루한 행보는 고 김영한 수석의 메모와 함께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세월호 특조위 #석동현 #김영한 #조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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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가 생기면 항상 펜을 잡는 자유기고가. 시민단체 흥사단에서 이사로 활동했으며, 최근까지 국회 정무위원장 비서관으로 일했습니다. '근거있는' 소통의 공간을 열기 위해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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