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일대기가 금장된 세비야 대성당의 중앙 재단의 부분
길동무
"자 보시죠. 세비야 대성당의 중앙 제단(Capilla Mayor)입니다. 예수의 생애를 조각으로 표현해내는데 1480년부터 1560년까지 무려 80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놀라지 마세요. 높이 27m, 폭 27m입니다. 여기 쓰인 금이 무려 금 20톤이라고 합니다. 황금 재단으로 불리는 이유입니다." 놀라게 해놓고는 놀라지 말라고 한다. 80년 세월? 그때 사람들은 꽤 장수를 누렸는가 보다. 아니면 최소한 200여 년 사는 사람의 마음의 여유를 지녔든지. 어쨌든 넓고 높은 수행을 참 길게도 했다 싶다. 80년간 수많은 사람이 고되게 몸을 움직이고 바쁘게 손을 움직여 빚어낸 걸작, 여정은 고되고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몸과 마음을 바친 자들에게는 그 작품으로서 자기 목적에 순정하게 다가갈 수 있었으리라. 마침내 자기 구원을 얻었으리라.
놀랍다. 이 많은 금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다니. 중앙 재단은 모든 여행객에게 참 후하게 금빛을 선사한다. 금이 뭔가? 무게로 가치를 가늠하지만, 그 본질은 빛이다. 그 아름답고 빛나는 빛이다. 그 빛이 시대를 초월해 무한 빛을 발산하고 있다. 과연 금이 과연 금답게 쓰였다. 옹골지게 금부자 한 번 된 느낌이다.
걸음을 옮기자 크고 섬세하고 화려하면서도 육중함으로 압도하는 성가대석이 펼쳐진다. 탐방한 성당마다 성가대석은 늘 놀라움의 대상이었다. 그중에서도 세비야 대성당은 특별하다. 들여다볼수록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당시에는 문맹자가 많았다 합니다. 가톨릭은 글을 모르던 성도들에게 음악으로 신앙을 고취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성가대석을 크고 화려하게 꾸몄다고 해요."성당 안에 세비야가 켜켜이 쌓여있다. 예술의 도시 세비야, 고대 로마 시대부터 안달루시아 지방 중심지였던 세비야, 무역 기지로서 흥성했던 세비야가 성당 안에 다 있다. 어떻게 스페인을 대표하는 화가 '벨라스케스', '무리요'를 세비야가 배출할 수 있었는가? 왜 세비야가 <카르멘>과 <세비야의 이발사>의 모차르트 <돈조반니>의 배경이 될 수 있었는가? 세비야의 대성당은 아주 구체적으로 증명한다. 아 그러고 보니 성당은 무슨 건축양식이나 따지는 건축물이 아니다. 역사요 사람이며 바로 그 땅임을 세비야 대성당이 해설하고 있다.
"푸우..."대성당 내부를 돌아보면서 긴 숨이 멎을 새가 없다. 분명 맘 놓고 촬영해도 된다고 했는데 마구 사진을 찍기가 송구하다. 그 위대함을 작은 핸드폰 안에 담는 것이 죄스럽다. 그 두터움을 얇은 평면에 옮기는 것이 미안하다. 느낌이 많다. 그러나 말도 글도 줄이자. 모든 보는 이들의 감성에 맡기자. 어설픈 설명으로는 침묵을 능가할 수 없다고 침묵하는 곳이 세비야 대성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