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평의 낡은 동네 '삼릉', 이곳의 과거를 아시나요?

부평역사박물관 특별기획전 '삼릉, 멈춰버린 시간'

등록 2016.12.15 11:40수정 2016.12.15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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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릉, 멈춰버린 시간'.

지난 11월 23일부터 내년 2월 19일까지 부평역사박물관에서 열리는 기획전시 제목이다. '멈춰버린 시간'이란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여러 의미가 중첩돼있을 것 같아서였다. 지난 7일 김정아 부평역사박물관 팀장을 만났다. 예상이 적중했다. "중의적 표현을 잘 살리고 싶었는데 많이 부족한 전시라 부끄럽다"는 말이 겸손이 아니라 갈증이라 느꼈다. '삼릉'과 '멈춰버린 시간'에 대해 듣고 보았다.


기록을 남기는 것도 보존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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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름, 멈춰버린 시간' 전시장 입구 ⓒ 김영숙


부평 남부고가교를 타고 부평공원을 넘어 부평2동 치안센터를 지나 오른쪽 골목길로 들어서면 삼릉 줄사택 유적지가 나온다. 도로명 주소로는 '부평구 부영로 25번길'이고, 행정구역상 부평2동에 속하지만 사람들에게는 '삼릉'이라는 이름이 더 친숙하다.

인천의 10개 구·군 중 인구가 가장 많은(약 57만 명) 도시 부평과 어울리지 않는 낡은 동네 삼릉, 빠르게 변하는 도시의 속도를 외면한 삼릉은 시간이 멈춘 듯하다.

"지난해에 '신촌 다시보기' 전시를 했는데 사실은 '신촌보다 삼릉을 먼저 해야 하지 않나'라는 토론을 하기도 했어요. 현재 줄사택이 80여 채 남아있는데 곧 무너질 것 같아요. 원형 그대로 남기는 것도 보존이지만 자료를 찾아 정리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보존이라고 생각합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전에 조사해 보고서를 남기고 이번에 전시도 하는 것입니다."

줄사택이란 일제강점기 미쓰비시 공장에서 일하던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숙소를 말한다. 벽과 벽이 연결된 채 줄지어 지었다고 해서 줄사택이라 불린다. 일제강점기에는 1000여 채가 넘었다는데, 지금은 87채만 남아있다. 17가구 30여 명이 살고, 빈 집이 더 많다. 공가는 버려진 가구와 쓰레기로 악취가 나고 외견상 좋지 않다. 도시가스도 들어오지 않아 LPG나 부탄가스를 쓰며, 공동화장실을 사용한다.

부평구는 지난 10월 6일 부평2동 미쓰비시 줄사택에 대한 '새뜰마을 마스터플랜 수립 용역 최종 보고회'를 개최했다. '새뜰마을 사업'이란 취약지역 주민의 기본적인 생활수준 보장을 위해 안전과 위생 등, 긴요한 생활 인프라를 확충하고 주거환경 개선과 주민역량 강화 등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부평구는 2018년 준공을 목표로 총45억원을 투입해 줄사택 일부를 매입, 이곳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전시관이나 사랑방 등, 주민공동시설을 짓고 사람이 사는 집은 수리를 지원할 계획이다.


그런데 수리하려면 일정 부분 자부담을 해야 하는데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이곳을 찾은 주민들에겐 그 비용마저 없어, 현실에 맞지 않은 정책이라는 비판의 소리도 들린다.

인천의 중심이 된 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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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부터 현재까지 삼릉의 변천사. ⓒ 김영숙


이곳은 조용한 시골 동네였다. 그런데 1899년 일제가 경인철도를 부설한 이후 마을에 변화가 생겼다. 서울과 인천을 잇는 역 7개 중 하나가 부평이었다. 당시 인천의 중심은 계양구 계양산 주변지역이었다.

1938년 기계를 제작하는 일본의 히로나카상공이 지금의 부평공원 자리에 공장을 세웠다. 4만7000여 평에 달하는 넓은 땅이었다. 숙련공을 양성하기 위한 공원양성소도 세웠다.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공장에서 일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고, 이들이 살 집이 공장 주변에 생겼다.

히로나카상공은 무리한 공장 확장으로 자금난에 시달리다 1942년 일본의 미쓰비시에 매각됐다. 미쓰비시는 아시아태평양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군수공장 역할을 했고, 우리나라 사람들을 강제 징용해 노동력을 착취했다. 미씨비시의 한자음이 삼릉(三菱)이다. 사람들은 그 때부터 이 마을을 삼릉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오늘날 인천지역 도시 형성의 역사로, 이 사실은 중요합니다. 미쓰비시는 일제강점기에 군수공장으로 지정돼, 임금 지불에 의무가 없는 노동력을 제공받아요. 원료가 부족한 상황인데 가장 먼저 원료를 지급받고 시장 판로가 안정적이라 대기업으로 급성장했어요. 여기에 국민징용령이 실시되고 많은 사람이 오게 됩니다."

일제는 1939년 국민징용령을 제정해 조선인들을 탄광과 공장으로 강제 징용한다. 부평은 미쓰비시가 들어오기 한 해 전인 1941년 부평구 산곡동 일대의 부지 33만평에 대규모 일본 육군조병창을 만들었다.

그때부터 부평은 한강이남 최대의 군수단지가 됐고 폭발적인 인구 증가를 보였다. 지금의 부평은 그렇게 시작됐다.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는 삼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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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비시 공장에서 일했던 송백진 씨. 아래 전시품에는 그가 일했던 당시 미쓰비시에서 받았던 상장 등이 전시돼 있고 오른쪽 사진은 미씨비시에서 일했던 동료들과 찍은 것이다. ⓒ 김영숙


"미쓰비시가 중국과 일본, 우리나라에 세운 공장이 284개입니다. 그중 절반 가까운 120여 개가 한반도에 있어요. 현재 흔적이 남아있는 곳은 부평이 유일합니다. 사람들이 징용이라고 하면 배 타고 외국에 끌려간 것만을 생각해요. 국내에서 징용당했던 사람을 피해자로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요. 국내 징용자는 편했다는 왜곡된 시선이 있어요. 누가 더 아팠고 덜 아팠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노동력을 빼앗긴 사람은 동일한 피해자라는 걸 이번 전시로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김 팀장은 '삼릉의 멈춰버린 시간'은 줄사택이라는 건물의 인연과 역사가 멈춤과 동시에 징용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변하지 않고 멈춰있는 것에 대해 생각해봤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전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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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역사박물관 김정아 팀장 ⓒ 김영숙


"국내 징용자는 해외 징용이 어려운 어린 아이와 노인이 많아 부상과 사망률이 더 높았어요. 우리 정부는 국내 징용자의 수도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 중요한 건, 일제강점기의 역사만을 중요하게 생각해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곳에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 싼 월세에 살고 있어요. 사람들한테는 이곳이 도시환경을 헤치는 흉물스러운 곳일지 몰라도, 이곳에 사는 사람들한테는 보금자리 이상과 이하도 아닙니다"

'보금자리 이상과 이하도 아니다'라는 김 팀장의 말에는 뼈가 있었다. 지난 2월 서경덕 성신여자대학교 교수는 국내 강제징용이 이뤄졌던 곳의 흔적이 있는 부산의 일광광산과 인천의 삼릉에 안내판을 설치하기 위해 모금운동을 벌였다. 그게 언론에 보도된 후 관련 연구를 하는 전공자들이 삼릉을 방문했다. 낡은 건물에 사람이 살지 않으리라 판단한 그들은 주민이 거주하는 공간에도 문을 여는 일이 잦았다.

"이곳이 알려져 사는 분들의 생활이 많이 불편해졌어요. 아무 보호도 받지 못하고 생활이 노출돼 불편해했죠. 가장 큰 불편은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었어요. 전시 준비를 하면서 사시는 분들과 인터뷰를 했는데 우시더라고요. 과거 역사도 중요하지만 지금 사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어선 안 됩니다."

안내판을 설치하려는 계획은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사라지기 전에…

"삼릉은 오늘날 부평 역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일제강점기에 형성돼 인정하고 싶지 않기도 하겠지만, 변함없는 사실이에요. 그것을 이해해야 부평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야 해요.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역사가 되는 거니까요. 우리의 역할은 과거를 기록하는 것과 더불어 지금의 역사를 남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시를 준비하면서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게 쉽지 않았다. 김 팀장은 이곳이 알려지는 게 불안한 현지인들로부터 문전박대를 당했다. 겨우 두 명 만났는데, 그게 제일 아쉬웠다.

"삼릉은 일제강점기에 나라 잃고 힘없는 사람들이 살았고, 한국전쟁이 끝나고 배고픈 뮤지션들이 모였습니다. 그 후 공단이 들어서고 노동자들이 살았고, 지금도 여전히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운 사람들이 살고 있어요. 그래서 이주도 잦고 일제강점기 당시의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얘기해 줄 토박이들이 살고 있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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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내 미쓰비시 작업장 분포 현황도. ⓒ 김영숙


김 팀장은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일제강점기를 증언할 사람을 찾지 못해 안타까워했다. 그런데 인터넷을 검색하며 누군가를 발견했다.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라는 단체가 생겨 국내 징용에 대한 조사를 했어요. 그런데 신고제에다 보상이 없으니까 신고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현재 제주도에서 사는 사람 중 미쓰비시에서 일했던 1명이 등록했는데, 그마저도 연락이 안 됐어요. 그러다 미쓰비시에서 일했던 할아버지를 찾았어요. 그게 전시를 준비하면서 어려웠던 걸 그나마 위로해주었죠."

우연한 기회에 히로나카상공이라는 검색어로 인터넷을 하다 찾았다. 현재 서울 암사동에 사는 송백진씨는 히로나카상공에서 근무하다 미쓰비시에서 일했고, 그 후 미군부대에서 일을 했다.

송씨는 일했던 곳에 대한 흔적을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서울교육박물관에 기증했다. 이번 전시회에 미쓰비시 공장에서 받았던 표창장 등, 일부를 대여해 전시하고 있다.

산곡동과 신촌에 이어 삼릉을 주제로 특별전시를 하고 있는 부평역사박물관은 내년에는 십정동이나 청천동 중 한 곳의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뉴스테이 사업으로 지정돼 재개발이 예정된 곳들입니다. 재개발을 한다는 건 예전의 마을이 사라진다는 것이죠. 사라지기 전에 지금 마을의 모습을 최대한 담아내고 싶습니다. 부평전통시장 얘기도 하고 싶고, 부평지하상가 얘기, 공단 얘기도 빨리 해야 해요. 하고 싶은 얘기가 많습니다."
덧붙이는 글 <시사인천>에 실림
#삼릉, 멈춰버린 시간 #부평역사박물관 #특별기획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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