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가 이런 거구나...' 19번째 만에 깨달았다

전역군인이 생각하는 이사의 경제학

등록 2016.12.16 15:20수정 2016.12.16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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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년 직업 군인 생활을 마무리하고 가족과 함께 살 전셋집을 얻었다. (사진은 본문 내용과 관련없는 자료사진입니다.) ⓒ pixabay


내게 경제학을 거론할 자격과 능력이 없을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이후 줄곧 공학을 공부한 나는 경제학 과목을 정식으로 공부한 적이 없다. 30여 년을 직업군인으로 생활했던 내가 돈을 버는 방법이라곤 그저 묵묵히 부여된 임무를 수행하면서 국가에서 지급하는 봉급을 받는 것뿐이었다.

그 흔한 주식투자 한 번 해보지 않았고 아내가 가끔씩 동행해 주기를 바라는 쇼핑 또한 대부분 거절했으니 경제학의 이론과 실제를 거의 경험하지 못하고 반세기를 살아왔다. 허심탄회한 자리에서 나는 스스로를 '자본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봉건주의자'로 소개할 정도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 특히 자본주의 세상의 하루하루는 곧 경제활동이며 모든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경제주체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반세기 이상을 본의든 아니든 경제활동에 참여해 왔으니 어설프나마 경제학에 대해 이야기하더라도 문제될 건 없다고 자위하며 이글을 쓰고 있다. 축구를 즐겨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축구이론이나 경기력과 관계없이 국가대표 축구경기를 평가하고 감독의 전술을 논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내겐 조금 특별했던 '19번째' 이사

직업군인들은 평균 2년에 한 번 정도 이사를 한다. 나도 33년의 군 생활 중 열여덟 번이나 부대 이동을 했고 그 때마다 이사를 했다. 결혼 후에도 열세번의 이사를 했으며 그 과정에서 아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아홉 번이나 전학을 해야 했다. 얼마 전 전역을 하면서 열아홉 번째 이사를 했다.

전입신고를 하고 주소변동 내역을 떼어봤더니 변동내역 출력물이 세장이나 되는 것을 보고 나도 놀랐다. 법률과 조례가 바뀌어 주소가 변동된 것까지 포함해 스물일곱 번의 주소변동 내역이 기록돼 있었다. 이쯤 되면 이사의 달인이 되었어야 하지만 나는 여전히 경제 분야는 물론이고 이사에 관해서도 문외한이다.   

며칠 전의 이사는 내게 특별한 이사였다. 이제까지의 이사는 군인으로서 소속부대나 직책이 바뀌면서 나의 선택과 무관하게 전출부대의 관사에서 전입부대의 가용한 관사로 이사를 한 것이었다. 반면 이번에는 '군인에서 시민으로' 신분이 바뀌면서 부대 울타리 밖으로 나오는 이사였다. 생애 처음으로 부동산 시세에 관심을 기울였고 내가 살집을 선택하고 전세계약을 하는 등 경제주체로서 활동을 해볼 수 있었다.

오랜 기간 관사에서 살았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커다란 혜택을 받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아내의 생각은 달랐다. 결혼을 하고 몇 번째부터인가 이사에 지친 아내의 불평이 시작됐다. '관사를 제공하지 않았다면 시가에서 얼마간의 전셋돈이라도 받을 수 있었고 그랬다면 그것을 종자돈 삼아 작은 집이라도 마련했을 것이고 가족들이 철새처럼 이곳저곳 떠돌지 않아도 되지 않았겠냐'는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다분히 잦은 이사에 대한 불평이겠지만 전역군인들의 자가 보유율이 비슷한 기간을 근무한 다른 직종의 직업군에 비해 떨어진다는 통계를 생각하면 관사를 제공하는 것이 직업군인들이 내 집 마련 노력을 소홀히 하는 하나의 요인일 수도 있으며 군인들의 경제관념을 희미하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동의했다. 사실 군에서는 그런 취지를 담아 관사를 제공할지도 모른다.

경제 주체로서 첫 경험

집을 구하는 일은 역시 어려웠다. 더우기 한 번도 자기가 살집을 직접 구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 입지와 가격, 생활환경 등이 만족스러운 좋은 집을 구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애당초 나와 아내는 내가 구직노력을 해서 전역 직후 제2의 직장을 잡는 지역에 집을 장만하기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재취업의 조건(내가 하고 싶은 일, 군과 관련이 없는 일, 이웃과 보람과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일 등)을 너무 까다롭게 설정한 때문이었는지 전역 3개월 후까지 직장구하기는 실패했다.

어디로 이사를 할지 고민스러웠다. 대상지역으로 수도권과 친구들이 많이 살고 있는 대전권, 그리고 귀농을 겸해 고향인 금산으로 내려가는 방안을 두고 고민한 결과 경기도 성남부근으로 결정했다. 나의 직장이 아닌 딸의 직장을 감안한 선택이었다. 중학교 이후 학업을 위해 가족들과 떨어져 생활했던 딸과 같이 살아보고 싶다는 아내의 희망사항이 크게 작용했다. 그리되면 지금은 병원에서 제공해준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딸이 내년 초 새집을 얻어야하는 부담도 덜어줄 것이기에 가족 모두 찬성했다.

집을 선택하는 과정은 흡사 결혼 적령기의 청춘남녀가 배우자를 고르는 과정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한쪽이 좋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양쪽 모두가 상대의 환경과 조건을 수용해야 계약(?)이 이루어질 수 있으니 말이다.

집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한 조건은 역시 '돈'이었다. 아무리 좋은 집이라도 집을 구하는 사람이 지불할 수 있는 금액을 초과하는 집은 구할 수 없었다. 결국 집을 구하는 사람이 준비한 '돈'에 맞는 집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딸의 출퇴근이 편리한 아파트나 빌라는 너무 비싸든가 너무 낡은 곳뿐이었다. 우리는 딸이 근무하는 직장근처인 분당지역에서 집구하기를 포기했다. 어쩔 수 없이 조금 더 싼 집을 찾아 분당과 접해있는 지역에서 집을 찾아야 했다.

아파트냐 빌라냐, 전세냐 매입이냐를 놓고 아내와 의견충돌이 생겼다. 나는 작은 돈이지만 조그마한 마당이라도 있는 빌라를 매입하면 개발이익을 기대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주장을 했고 아내는 생활의 편리성과 자산의 안전성을 내세워 전세로 아파트를 얻자고 했다.

우리는 우리보다는 경제상식이 있다고 판단되는 친구의 자문을 받기로 했다. 그 친구는 아내의 손을 들어주었다. 미래는 누구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전제하에 그는 자신의 논리를 펴나갔다. 대개의 빌라는 주차여건이나 보안성 측면에서 아파트보다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서울 주요 지역이 아니면 미래수익 또한 기대하기 어렵다고 했다.

또 빌라는 차후 매각이나 전세도 어려워 지금 가지고 있는 작은 돈마저 묶이기 십상이라고 조언하면서 신축 아파트 하나를 소개해 주었다. 결국 우리는 친구가 소개해 준 신축 아파트를 얻기로 했다.      

전세계약서를 쓰고 전세대금을 지불하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값비싼 저택을 사는 것도 아니고 작은 전셋집 하나 얻는 것도 이렇게 어려워하는 것을 보면 나는 확실히 자본주의 시대의 '루저'임이 틀림없구나!

근로자 평균소득보다 높다고 생각했던 내가 30여 년 나름대로 열심히 일해서 모은 돈이 전셋집 하나 얻을 정도 밖에 안 된단 말인가? 자본주의 시대에 재테크에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온 삶은 역시 무언가 결핍이 있는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씩 뉴스에 등장하는, 한두 마디의 조언과 청탁으로 수십억 원의 돈을 받는 변호사나 정치인, 수십 채의 집을 소유한 부동산 재벌을 생각할 때 나의 인생은 정말 하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사할 집이 결정되고 나서 우리는 더욱 바쁘게 움직여야만 했다. 아내는 우리가 대구(제2작전사령부)에서 고양(합동참모대학)으로 이사할 때 이삿짐을 날라줬던 회사가 이삿짐을 싸는 것도 그렇고 마무리 정리까지 성의 있게 했던 기억을 떠올려 그 회사에게 이사를 의뢰했다.

평균 2년 주기로 이사를 다녔던 내가 5년 동안 한 곳에서 정착해 살다보니 살림살이가 많이 늘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베란다며 벽장 구석구석에 박혀있는 가재도구며 옷가지들을 보고 이삿짐 회사에서는 일반적으로 많이 쓰는 5톤 차량으로는 안 될 것 같다며 7톤 차량을 써야 한다고 견적을 냈다.

내가 전역할 때까지 사용했던 사무실 정리도 만만치 않았다. 전역을 하는 마당에 쓸모(?)가 없어진 표창장이며 기념패들만 해도 몇 박스가 나왔다. 생각날 때마다 사두었던 도서들 중에는 읽은 것과 읽지 못한 책이 반반 정도 되었다. 이러저러한 학회나 단체에서 받아두었던 자료집들도 수북했다. 이 많은 짐을 옮긴다 한들 얼마나 읽고 활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가져가자니 짐만 될 것 같고 버리자니 아깝고 한마디로 '계륵'과 같은 물건들을 끌어안고 끙끙대며 살아온 내 모습이 저만치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이사를 하는 날은 초겨울날씨답게 차갑고 매서웠다. 새벽 6시 반에 이삿짐회사 직원 다섯 명이 화물차와 사다리차를 타고 왔다. 아주머니 한분이 주방용품 정리를 전담했고 가구와 옷가지들은 두 명의 남자가 포장을 했다. 팀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사다리차를 이용하여 가구 등을 내려주면 한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화물차 적재함에 차곡차곡 채워나갔다. 형광등 하나를 교체할 때도 한 시간 이상 걸리는 나와 달리 그들은 능숙한 솜씨로 포장을 하고 집안의 짐들을 화물차에 옮겨 실었다.

나는 집에 있어봐야 도움은커녕 걸리적거리기만 할 것 같아 주말에 자주 가는 집 근처 목욕탕에 갔다. 마침 미리 끊어놓았던 티켓도 한 장이 남아 있었던 터였다. 목욕탕에 다녀온 2시간 남짓의 시간에 큰 짐들은 거의 정리가 되어 있었고 3시간이 안 되어 우리가 살던 집은 앙상한 골조만 남게 되었다.

두 시간 정도 뒤에 이삿짐 차량과 우리는 새 터전에 도착했고 새살림을 꾸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전에 살던 군인아파트보다 공간이 넓어서 이삿짐을 푸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짐을 옮기는 과정에 아내가 아끼는 공예품 하나가 일부 파손 된 것을 제외하고 살림살이들이 새로운 자리를 잡았다.

비용계산을 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아내는 신용카드를 내밀며 계산을 해달라고 했고 팀장 격의 남자는 현금으로 계산해 줄 것을 요구했다. 아내는 신용카드로 계산하면 연말정산에서 몇 푼이라도 환급받으려는 생각이 있었고 이삿짐 회사에서는 현금으로 받아 세금을 줄이려는 심사였을 것이다.

나도 '요즘 카드결재가 안 되는 사업장이 어디 있느냐?'며 따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다섯 명의 사람이 새벽부터 10시간 넘게 노동하면서 받는 금액이 120만원 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떠올리면서 현금결재를 해주라고 거들었다. 아파트를 계약할 때 공인중개사에게 수수료로 136만원을 현금으로 주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들 다섯 명에게 120만원은 너무 적은 금액이라는 생각까지 들어 진열장에 있던 면세 양주 1병까지 건네주었다.

가족이 만족하는 이사

이사 후 가족들이 느끼는 만족도는 높은 편이었다. 아내는 빌트인 주방기구와 넓은 수납공간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좁은 기숙사에서 동료들과 생활하던 딸은 자기만의 조용한 공간을 가질 수 있었고 버스정류장이 아파트에서 가깝다는 것에 만족스러워 했다. 나도 작은 방에 처음으로 서재라는 공간을 가질 수 있어서 아주 좋았다. 경제학을 포함해 관심은 있었으나 해보지 못한 분야의 공부도 하고 그동안 구상해 오던 책도 한권 집필하려 한다. 방 하나도 못 차지한 아들은 가장 넓은 거실은 자기가 몫이라며 내년 초 대학졸업과 동시에 독립을 하라는 뜻으로 알겠다며 환하게 웃어주었다.

이사 과정에서 나는 가장으로서 주도권 행사를 거의 하지 못했다. 군대에서 되 뇌이던 '필승의 신념'을 발휘해 내 의견을 관철할 기회도 없었다. 그러나 가족들이 만족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장으로서 모처럼 탁월한 선택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역시절 같았으면 나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 결정이 내려지면 자존심이 상했을 텐데도 말이다. 경제학의 지식보다 가족들과의 소통과 전문가의 조언을 적극 수렴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군인으로서 몸에 밴 '필승의 신념'을 잠시 접어두어도 얼마든지 좋은 결정과 성과를 이룰 수 있다는 새로운 사실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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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동안 입었던 군복을 벗고 사회 초년병으로 살고 있음. 군대에서 경험하지 못한 인권문제, 봉사활동, 인문학 등에 관심을 가지고 제 2의 인생을 가꾸어 가는 중. 다문화 사랑방을 운영하는 인생 3모작을 꿈꾸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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