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아, 나 좀 도와줘"... 엄마의 몸은 '공포'였다

[남성성들] 치매와 파킨슨병을 함께 앓는 엄마를 마주하며

등록 2016.12.22 11:27수정 2017.07.11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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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치매 그리고 파킨슨씨 병은 내게 큰 의미였다. ⓒ pixabay


"엄마, 이게 무슨 짓이야!"


앉지도 서지도 못한 어정쩡한 자세로 속옷을 반쯤 내린 칠십 노인에게 난 소리를 질렀다. 엄마는 좌변기 앞에 구부정하게 선 채로, 파킨슨병 특유의 무표정한 떨림으로 반응할 뿐이었다. 난 화장실 문을 거칠게 닫았다.

2015년 설 연휴였을 것이다. 엄마가 다니던 주간보호센터도 쉰다. 치매와 파킨슨병을 함께 앓고 있는 엄마를 어찌해야 하나? 난 우리 집에 모시기로 했다. 사회적 통념에 따른, 그래서 내 욕망을 만족시키려는 결정이었을 것이다. 인생 황혼에 남편에게 이혼을 당하고, 병에 걸려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어머니.

그를 명절에 모시는 것은 '장남'의 당연한 도리라고 여겼다. 더구나 홀로 사는 시어머니를 자주 보러 가지 않는 처에 대한 일종의 '보복' 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 결정으로 엄마는 물론 나와 처 그리고 아이들까지, 설을 함께 보낸 모두가 불행했다. 난 엄마를 돌볼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던 것이다.

엄마는 종종걸음으로 화장실에 갔을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 속옷을 완전히 내릴 수도, 좌변기에 앉을 수도 없었다. 마침 지나가던 나에게 도움을 청했다.

"훈아, 나 좀 도와다오."


그 순간 난 이성을 잃었다. 왜였을까? 봐서는 안 되는 것을 보았다. 난 화가 났다기보다 공포에 사로잡혔다. 엄마의 '몸'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추하고 역겨운 엄마의 몸. 병으로 바짝 마른 그녀의 배, 그 배를 제대로 받치지도 못하고 후들거리는 허벅지, 듬성듬성 음모가 덮은 사타구니. 엄마를 돕기는커녕 화장실 문부터 닫은 것은 그래서였을 것이다. 엄마의 몸으로부터 도망친 것이다.

모성을 제외한 엄마의 여성성... 공포 그 이상이었다

난 깨달았다. 엄마의 맨몸을 처음 보았다는 사실을. 아니 거짓말이다. 과거에는 흔히 그렇듯, 난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엄마와 함께 공중목욕탕을 갔다. 내 기억 어디에도 그때 보았을 엄마의 몸에 대한 불쾌한 감정은 없다. 그러니까 난 사춘기 이후에 엄마의 몸에 대한 공포를 갖게 된 것이 분명했다.

우리 부모는 무척 자주 밤새우도록 싸웠다. 이제 와서 그 선후 관계가 중요하지는 않지만, 엄마는 내 사춘기 어느 시점부터 우울증을 앓았다. 창자 깊은 곳까지 비우겠다는 듯, 엄마는 감정을 토해냈다. 반면 아버지는 무섭도록 냉정했다. 많은 남편들처럼 결국 입을 닫고 마는 순간까지, 논리적으로 엄마에게 맞섰다. 따라서 당시 나에게 '평화를 파괴하는 자'는 거의 언제나 엄마였다.

엄마는 집요하게 아빠의 외도를 의심하곤 했다. 명절에 시댁에서 뼈 빠지게 고생한 아내에게 '수고했네' 한마디 하지 않는 무심한 남편을 원망했다. "당신은 날 발톱의 때만큼도 여기지 않아!" 엄마는 밤새도록 지치지도 않고 이런 말을 되풀이했다. 아들인 나에게 엄마의 여성성은 악의 근원이었을 것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모성을 제외한 엄마의 여성성은 받아들일 수 없는 공포를 가져오는 그 무엇이었다. 대상화가 주는 자기분열이었을까? 사춘기 때 '빨간책'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된 '여성'은 여성의 '몸'과 같았다. 그리고 그 몸은 쾌락과 같은 말이었다. 하지만 엄마라는 여성은 어떤가? 그것은 내가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인 모성을 위협하고 있었다. 난 엄마에게 화가 나 있었다. 아빠에게 무시당하는 엄마가 불쌍했다. 하지만 난 결코 엄마에게 공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때의 난 말이다. 하지만 성인이 된 지금은 어떤가? 

1년이 지나고... 엄마의 목욕을 도와줄 수 있었다

남은 설 명절에 엄마는 기어이 바닥에 똥칠을 했다. 치매 환자들이 하게 된다는 그것 말이다. 치매 환자는 환경이 바뀌면 증상이 악화된다는 상식을, 의사인 내가 무시하고 있었다. 처에게 시어머니의 존재를 각인시키려는 내 비뚤어진 욕심 탓에, 정작 엄마가 가장 불안했을 것이다.

설 명절 '사건' 이후 난 죄책감을 씻으려는 듯, 거의 매 주말을 엄마 집에서 보냈다. 침구와 옷 빨래를 했다. 처음에는 참기 힘들었던 엄마의 소변 냄새도 익숙해졌다. 엄마 손을 잡고 화장실에 데려가고 산책도 했다. 초등학교 졸업 이후 처음으로 그녀의 손을 잡아 보았을 것이다. 내 두려움과 달리, 엄마 손이 내 몸에 닿아도 죽지 않았다! 몇 개월 후엔 엄마의 머리를 감겨주었다. 그렇게 조금씩 난 엄마의 몸에 익숙해졌다. 동시에 처에 대한 원망도 줄어들었다. 필요한 것은 처가 며느리로서 통상적으로 요구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남편이 시어머니와 화해하는 것이었다. 내가 엄마에게 공감을 표현하고 돌봄을 배워야 했다. 

그렇게 거의 일 년쯤 지났을 때, 난 엄마의 목욕을 도와줄 수 있었다. 엄마의 맨몸. 그렇게 엄마의 몸과 화해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밑은 엄마가 씻어." 막판에 퉁명스럽게 말하고 욕실을 뜨긴 했지만 말이다.   

더 이상의 기회는 없었다. 엄마의 상태는 갑자기 안 좋아졌고, 결국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엄마는 가끔 날 '남편'이라고 병원 사람들에게 소개한다. 그렇게 엄마의 여성을 마주하는 것이 아직 편하지는 않다. 

친구에게 '우리 엄마는 불행한 사람이야'라고 말한 적이 있다. 아마 공감을 바라고 별 생각 없이한 말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에게서 돌아온 말이 뜻 밖이었다.

"한 사람의 생을 그렇게 쉽게 요약하지 말자. 어머니에겐 네가 모르는 기쁨이 있었을지도 모르잖아."

"어머니와 행복했던 기억은?"...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 친구의 바람대로 엄마의 삶에도 행복이 있었을까? 사십 중반이 되도록 가해자의 삶을 산 나에게, 그것을 판결할 자격은 없다. 단지 내가 이제라도 엄마를 있는 그대로, 여성의 몸으로 70년을 살아온 한 인간으로 바라보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길 뿐이다. 안타깝게도 엄마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언젠가 심리치료사가 나에게 물은 적이 있다. "어머니와 행복했던 기억을 말해 보세요." 순간 난 얼어붙었다. 한참 기억의 숲을 헤맸지만 떠올릴 수가 없었다. 절규하며 울던 여성만이 보일 뿐이었다. 치료사 앞에서 난 오래 울었다. 내가 엄마와 행복한 추억을 갖지 못한 아이였다니... 그런 내가 불쌍했다.

하지만 기억은 조작된다. 이 글을 쓰면서 난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엄마와 함께 간 공중목욕탕. 넉넉하지 못한 시절이었다. 엄마와 목욕탕을 가면, 적어도 두 시간은 보내야 했다. 내가 여성의 몸을 아직 대상화된 무엇으로 보기 전이었던 그 시절, 목욕탕은 따뜻하고 편안한 곳이었다. 엄마는 '본전'을 뽑아야 한다며, 내 피부가 빨게 지도록 때를 밀어주었다. 살이 따끔거리긴 했지만, 기분이 좋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엄마가 짜장면을 사주었다. 정말 행복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정상훈은 전 국경없는의사회 해외활동가이자, 현재 노동당 관악당협위원장으로 현재 노동당 여성위원회가 페미니즘에 대해 고민하는 남성 당원들과 함께 시작한 '남성성들: 남성 페미니스트 글쓰기 연재'에 참여합니다. '남성성들: 남성 페미니스트 글쓰기 연재'는 페미니즘에 대해 고민하는 남성 노동당원들이, 노동당 여성위원회와 시작한 글쓰기 시리즈입니다. 여기에서 '남성성' 이란 R.W.코넬의 저작 <남성성/들>에서 인용한 것으로, 하나의 '남성성'이 존재한다기보다 만들어지고, 수행되는 개념으로서 한국사회의 남성성이 어떻게 실천되고 유지되는가를 성찰적으로 나누기 위한 개념으로 사용하였습니다.
#남성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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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아르바이트 노동조합. 알바노동자들의 권리 확보를 위해 2013년 7월 25일 설립신고를 내고 8월 6일 공식 출범했다. 최저임금을 생활임금 수준인 시급 10,000원으로 인상, 근로기준법의 수준을 높이고 인권이 살아 숨 쉬는 일터를 만들기 위한 알바인권선언 운동 등을 펼치고 있다. http://www.alb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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