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함께 사는 삶을 시작하다

한집에서 같이 살며 사랑을 배우며

등록 2016.12.26 10:39수정 2016.12.26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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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서울로 옮겨와 살게 되었다. 1년 정도 혼자 산 적도 있지만, '외롭지 않겠다', '더 넓은 집에서 지낼 수 있겠다', '재미있겠다' 정도로 생각하며 함께 사는 삶을 시작했다.


지금은 서울 북한산 자락에 있는 인수마을로 이사해서 언니들 셋과 함께 '이울채'라 불리는 집에서 살고 있다. 오전에는 저마다 일터에서 지내다가, 다같이 한곳으로 모인 저녁이면, 거실에 앉아 하루 있었던 일도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나를 더 잘 알아가게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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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울채 식구들 배고프다는 한 언니의 말에 집에 있는 재료로 금방 맛있는 음식 만들어 먹으며 ⓒ 변은미


공동생활방 생활 초반 갑자기 다른 일정이 생겼을 때, 따로 연락하지 않고 집에 늦게 들어간 적이 있다. 그 날 한 언니에게, 늦게 되면 잘 연락해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을 듣고 처음에는 굳이 다 이야기해야 하나 싶었다.

나를 기다려주는 언니들이 고맙기도 했지만 부담도 되었다. 그러나 그 뒤로 언니들이 신경 써서 연락하는 모습을 보고, 나 역시 일찍 들어왔을 때 언니들을 기다리는 걸 보고선 내 상황을 세세히 나누는 게 자연스러운 모습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내가 지내는 일정을 점검하게 되고, 불필요하게 소비하던 시간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내 시간을 어디에 내어주고 있는지 함께 이야기하며 분주하게 보냈던 일상을 단순하게 꾸려가게 되었다. 공부하고, 약속 잡고, 여러 일정을 만들며 바쁘게 하루하루 보냈는데, 삶의 속도를 조금 늦추며 넉넉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법도 배워가고 있다.


함께 살면서 나에 대해 제대로 알아가는 중이다. 혼자 생각하고 시간 보내는 것이 나에게 더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라 생각 했는데 함께 살면서 나에 대해 더 잘 알게 된다. 나는 살아오면서 내 감정을 느끼고 살피는 것보다는, 그 감정을 알맞은 정도로 절제하는 데에 힘을 썼다. 그것이 성숙한 모습이고 철든 모습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가니,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야 할 때가 많다. '지금 무슨 마음이 들었어?',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때마다 나는 주위 상황을 살피며 적절한 대답을 하려고만 했다.

그러나 절제하고 중도로 맞추는 것은 그다음 일이고, 내 안에 일어나는 감정을 잘 들여다보고 소통하는 게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게, 너를 더 드러내줘. 숨기거나 꾸미지 말고 드는 감정 그대로'란 말도 들었다. 나를 더 잘 이해하고 싶어 하는 언니들 속에서 나도 나를 새롭게 알아가고 있다.

나만 생각하던 습관 바꾸어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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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재료 함께 김장하며 재료손질 한 모습 ⓒ 변은미


함께 사는 이들은 누군가 생일이 되면 축하해주고 조촐한 공연까지 준비한다. 지친 언니의 등을 밟아주며 서로의 몸도 살피기도 한다. '나 이거 먹고 싶어'란 말에 바로 재료 준비하고 요리하고 마을 친구들도 초대한다.

식당에서 사 먹는 것보다 훨씬 맛있게 나눠 먹는다. 바쁘게 지내는 언니 일터로 몰래 찾아가 함께 퇴근하는 것 등 재미있게 일상을 보낸다.

얼마 전 공동생활방에서 손수 김장도 했다. 내 손으로 김장을 하리라는 생각은 못해봤는데, 함께 하니 금방 해냈다. 쪽파를 손질할 때 쪽파에 물을 먼저 묻혀서 애정 어린 구박을 받기도 했다., 김칫속에 넣을 무를 너무 크게 잘라서 지금도 김치를 먹을 때마다 당황하기도 하지만, 함께 살면서 살림을 배우면서 누릴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나의 성취를 통해 얻는 행복보다 옆 사람을 생각하고 위하며 느끼는 행복이 훨씬 크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시험기간에는, 함께 공부하는 이들과 나눠먹으라고 언니들이 직접 만들어서 싸준 간식으로 든든한 마음도 얻는다.

어쩌다 체했을 때에는 혼자 앓고 있지 않도록 내 손과 발을 따주는 한 손, 어깨를 주무르는 다른 손이 있다. 부엌에서 들리는 죽 끓이는 소리는 순간적으로 아픔을 잊게 해주고, 내 몸을 더 잘 돌봐야지 다짐하게 해준다.

함께 사는 삶은 하루를 생기 있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힘이다. 나에게만 집중하던 시선을 남에게도 돌리는 삶을 배우며 살고 싶다. 나를 더 잘 알아가고 싶고, 남을 더 사랑하고 싶다. 아직은 사랑받고, 챙김 받는 것이 익숙하고 좋지만, 함께 살며 누리는 것들 잘 기억하며 이에 걸 맞은 삶 살기를 다짐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아름다운마을신문 73호(2016년 12월)에도 실렸습니다.(http://admaeul.tistory.com/)
#함께사는 삶 #인수마을 #이울채 #공동생활방 #아름다운마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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