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기어가고 삭발해도 '사람값' 받지 못했다

생활고에 '투잡' 뛰던 어느 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 노동자의 죽음에 부쳐

등록 2017.01.10 13:45수정 2017.01.10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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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8일) 저녁 늦게 <오마이뉴스>의 기사를 확인하고 가슴 한구석이 아픈, 아니 마음 어느 한 곳이 떨어져 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최저 임금도 받지 못하고 일하던 한 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 노동자가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아침에 신문 배달을 하는 또 다른 일을 하다가 과로사로 숨졌다는 이야기였다(관련 기사 : '투잡' 내몰린 활동보조인의 서글픈 죽음). 이렇게 충격 아닌 아픔을 받아 안은 건 내가 장애인이기에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왜 이 노동자는 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최저 임금도 받지 못하고 또 다른 직업을 가져야 했을까? 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는 직업이 아닌가? 아니 법이 정한 테두리 내에서 받아야 할 '최저 임금'이라는 분명한 선이 존재하는데 왜 그는 받지 못했을까? 누군가는 노동법을 위반한 것이 아닌가?

먼저 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는 "신체적·정신적 장애 등의 사유로 혼자서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을 하기 어려운 중증 장애인에게 활동지원급여를 제공함으로써 자립생활과 사회참여를 지원하고 그 가족의 부담을 줄임으로써 장애인의 삶의 질 증진을 목적"으로 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장애인들은 "만 6세 이상~만65세 미만의 자로 혼자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을 하기 어려운 '장애인 복지법'상 1~3급 장애등급을 받은 사람"으로 제한되고 있다. 그리고 "65세 미만으로 '노인 장기 요양법'에 의한 장기요양 급여를 받는 사람은 제외"된다.

장애인 단체들, 특히 정부의 운영비를 받지 않고, 오로지 개인들의 후원에 의존해 활동하는 장애인 인권 단체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들이 연례 중 치르는 가장 큰 행사(?)는 정부에서 국회로 넘어온 장애인복지예산 증액 싸움이다.

연초 기획재정부가 정부 각 부처로 보내는 한 해 예산의 가이드라인을 따라 정해진 예산안에는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기에 국회로 넘어온 정부 예산을 증액하기 위해 싸운다는 것이다. 각 당의 대표, 원내대표, 정책위원회 의장에게 면담 요청서도 보내고, 국회예산결산위원회 국회의원들을 찾아가고, 이마저도 별 반응이 없으면 중증장애인들이 도로를 기어가기도 하고 삭발도 감행한다.

중개료를 제하면 최저임금도 안 되는 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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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역 장애인단체들이 지난해 12월 12일 오전 대구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2017년 장애인복지예산 동결에 대해 규탄했다. ⓒ 조정훈


올 늦여름부터 정부 예산이 확정되는 초겨울까지 어김없이 이런 과정을 거쳐 장애인들을 위한 복지서비스예산 증액을 이루어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의 이야기는 예산 증액은 "개미 눈물"만큼이라고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장애인복지예산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기도 하고, 장애인들의 삶과 직결된 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 예산증액은 정말 형편없었다고 한다.


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의 구조는 먼저 '지역 장애인 복지관이나 장애인자립생활센터'(이하, '중개기관')가 장애인과 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 노동자를 연결해준다. 장애인들은 자신의 장애 급수에 따라 활동보조서비스 시간이 정해져 있기에 이것에 맞추어 신청하고 정부 예산을 바우처 카드로 계산한다. 가령, 계산의 편의를 위해, 어느 한 장애인이 100시간의 활동보조서비스를 받는다고 가정해보자. 저 100시간 중 시간당 9240원(2017년 단가)이 정부로부터 지급된다. 총 92만4000원이 활동보조서비스인에게 지급되고, 하루 8시간의 노동을 하게 되면 받게 되는 각종 수당을 합쳐 최저 임금 혹은 그 이상을 받게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계산이다. 저 시간당 9240원 중 앞서 언급한 장애인과 활동보조서비스 노동자를 연계시켜 준 중개기관에게 25%가 지급되고, 나머지 75%를 활동보조서비스 노동자에게 지급한다. 그리고 중개기관은 장애인들로부터 건네받은 25%에서 활동보조서비스 노동자들에게 각종 수당과 중개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하도록 채용한 또 다른 노동자(코디네이터)들의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이러한 비율로는 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 노동자들의 최저 임금은 꿈도 꿀 수 없다. 중개기관과 활동보조서비스 노동자들 간의 고소·고발은 흔하디흔한 장면이다. 특히 2015년 국정감사 때 모 정당의 한 국회의원이 고용노동부 국정감사 자리에서 '최저임금을 위반한 사업장들을 왜 가만히 두느냐'는 지적에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장애인자립생활센터들의 감사가 이루어져 꽤 많은 숫자의 장애인자립생활센터들이 벌금을 냈다.

인천의 한 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벌금만 2억 이상을 내고 폐업한 사태가 있었다. 또한 2017년 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 예산안이 확정되자 전국 여러 곳의 중개기관, 특히 지역 장애인 복지관을 중심으로 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 중개 사업을 그만두는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노동자인 활동보조인, 그의 죽음은 '제도적 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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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인관련 단체 회원들이 지난 2016년 6월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는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을 요구하며 이날로 4일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노동당 구교현 대표를 지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최윤석


이러한 사태를 만들어낸 것은 보건복지부였고, 이에 따라 매년 따라붙어야 할 예산의 증액을 차일피일 어떤 이유를 둘러대서라도 막으려고 했던 기획재정부에게 모든 공이 돌려지게 된다.

특히 보건복지부 한 관계자는 "기재부 장애인 예산 담당에게 아무리 활동보조 예산 증액을 설명해도 알아듣지를 못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무시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얼마나 인격적 모독을 당했지 몰라요"하며 볼멘소리를 했다. 또 어느 활동보조서비스 노조원은 기재부 장애인 예산담당 관계자로부터 "활동보조인이 무슨 노동자예요? 그냥 봉사 아니에요? 최저임금이 왜 필요해요?"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결국 저 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 노동자의 죽음은 "제도적 살인"이라는 말밖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어 보인다. 청와대 유폐 당한 박근혜 대통령이 "적폐 청산"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가 지금은 자신이 "적폐"가 되었고 "청산"의 대상이 되어 있다. 이제 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를 통한 "제도적 살인"이라는 적폐를 청산할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뿐만 아니라 예산의 증액이 시급해 보인다.

사망하신 어느 한 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 노동자가 그 주위에 사람들에게 어떤 인격을 갖춘 사람이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도 멈추지 않았던 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라는 노동을 통해 그는 어느 한 장애인의 손발이 되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손발을 잃어버린 어느 한 장애인은 또 어떻게 삶을 가야 할지 망연자실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 #제도적 살인 #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 노동자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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